오후 4시 정각, 제 방으로 들어간 아이가 컴퓨터를 열어보더니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할머니 저 합격했어요."
신입 간호사 공채에 최종 합격한 아이가 기쁨을 참지 못해 방방 뛰었다.
"어우 장하다 내 새끼."
아이를 끌어안는 내 가슴도 먹먹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기관인 분당 서울대학병원 간호사 시험에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으니 그 얼마나 장한가.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에 밤잠도 설쳐가며 고군분투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티브이에선 연일 코로나19가 화제의 중심이다.
온몸을 방호복으로 무장한 의료진들이 24시간이 짧다 하고 의료업무에 매달리고 있다.
세계가 코로나를 앓는다. 지구가 하나의 병동이 되었다. 수만의 사망자를 배출시키며 코로나란 놈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친척 간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대면을 자제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일로다. 이런 상황이 닥칠 줄 예견이나 했을까. 한 점 그늘도 없는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에 납덩이 하나가 얹히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쐬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짧은 여행을 준비했다.
김밥을 말고 이것저것 반찬도 준비하고, 따끈한 어묵탕도 만들어 보온병에 담았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라면 어디 근사한 식당에 가서 아이의 합격을 축하해 주었을 것을.
목적지는 속초 외옹치항. 데크를 따라 바닷바람을 마시며 걸을 수 있는 최고의 산책로가 있는 곳.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준비한 마스크를 쓰고 차에서 내려 잠시 방파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노니는 젊음이 코로나 따윈 관심 없다는 듯 마스크도 쓰지 않은채 모래벌판을 뛰어 다녔다.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파도가 발밑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아름아름 보이는 수평선 끝에서 몇척의 배가 검은 점으로 보였다 안 보였다가 숨길 반복한다.
산책로 중간 쉼터엔 코로나 따윈 잊은 사람들이 몸이 닿을 듯 모여서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배설물이 하얗게 굳어버린 갯바위 위로 몇 마리의 갈매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아이가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걸어오자 사진을 찍던 아이가 재빨리 등을 돌리고 난간에 몸을 밀착 시킨다. 나도 따라서 등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좁은 데크 위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나누며 지나쳤을 것을,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만난 양 그들도 고개를 돌리고 간다.
높아진 해를 보며 차에 올라 싸가지고 온 음식을 꺼냈다. 등받이를 젖히니 좁은 차안이 금방 식당으로 변신이다. 밥맛이 꿀맛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가 고맙다. 코로나 펜데믹이 차 밖에서 요동을 친다한들 강철로 무장한 차 안까지 넘보랴. 한껏 입을 벌리고 김밥을 밀어넣는 아이의 손에서 일회용 장갑이 부스럭 소리를 낸다.
내 생애 마지막 차식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그렇게 짧은 여행을 끝냈다. -끝-
첫댓글 ㅎㅎ 형수님~ 축하드려요~~~^^
손녀딸이 간호사가 되자마자 코로나 방역의 일선에 서게되어 걱정이 앞서겠지만
그래도 축하는 드려야겠죠.
나름 축하파티도 멋지게 잘하셨습니다.
코로나 물러가면 한번 찿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