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達牙) 아는 어금니 아. 어금니를 깨문 포구. 어금니를 깨물게 하는 포구. 일년 삼백육십오일 어금니를 깨물망정 이름은 달아. 순하고 환한 이름 달아. 이름은 순하고 환해도 속은 딴딴한 포구. 외유하나 내강한 포구.
가게도 외유내강이다. 보기엔 허름해도 속은 딴딴할 것 같은 가게다. 달아다방 달아이용원 달아슈퍼 달아낚시. 손님을 깨물고서는 안 놓아주지 싶다. 일단 발을 들이면 단골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지 싶다.
깨물릴 것 같은 염려에 발을 들인 식당은 달아가 아닌 보물선인지 보물섬인지 하는 식당. 민박도 겸한다. 아주머니는 사천서 시집 왔고 아저씨는 작은 사량도 출신. 왜 달아냐고 묻자 자세히는 모르겠고 동네어르신께 알아두었다며 달아 한자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꺼내온다. 메모지엔 '達牙' 두 자가 반듯하게 적혀 있다.
"그날 하루는 박이 터집니다." 달아는 지는 해도 일품. 뜨는 해도 일품. 한 해 마지막 날은 보물선인지 보물섬인지 하는 식당에 잠잘 방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이 집도 손님을 깨물고서는 놓아주지 않는 모양. 늦은 점심을 서둘러 먹어치우고는 발을 뺀다.
방파제 둑방. 둑방 말뚝에 걸터앉아 해를 본다. 바다에 비친 햇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내게로 온다. 나에게 와서 멈춘다. 해의 저 빛은 얼마나 먼 거리를 거쳐서 내게로 오는가. 얼마나 먼 시간을 거쳐서 내게로 오는가. 기억 속의 당신. 나는 얼마나 먼 거리를 거쳐야 당신에게 가는가. 얼마나 먼 시간을 거쳐야 당신에게 가는가. 당신 앞에 멈춰 서는가.
"모두 백아흔세 곳인데 하나는 잠겼다더라." 통영토박이 김보한 시인 말대로 통영은 섬이 '천지빼까리'다. 방파제 저 멀리 안개에 가려 어렴풋한 섬. 안개에 가려 세월에 가려 이제는 어렴풋한 당신. 어렴풋해서 더 가고 싶은 섬이 된 당신. 저 섬에서 보면 내가 선 이곳도 어렴풋할 터. 내가 당신을 보는 거나 당신이 나를 보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는지요.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거나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거나 무엇이 다르겠는지요.
해를 보며 이리 걷고 저리 걷는다. 바다에 비친 햇빛이 나를 따라온다. 이리 가면 이리 오고 저리 가면 저리 온다. 달아에선 햇빛도 어금니다. 이리 가면 이리 오고 저리 가면 저리 오면서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깨물고서는 놓아주지 않는다. 은근히 즐긴다. 다섯 보 더 가서 해가 따라왔는지 보고 열 보 더 가서 따라왔는지 본다. 어김없는 어금니다.
이 순간만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해가 졸졸 따라다니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가진 게 없다고 나서기를 꺼리는 그대. 달아 방파제에 서 보라.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해가 그대만을 따라다니는 호사 중의 호사를 누려 보라.
나는 부자다. 세상의 모든 나는 부자다. 가진 사람은 가져서 부자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잃을 게 없어서 부자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더 부자다. 잃고 나서 상심하는 사람보다 잃을 게 없어서 상심할 일이 없는 사람이 더 부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처음부터 가진 게 없어서 처음부터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더더욱 부자다. 가장 부자다.
"뽈라구 잔잔한 것 올라오네, 젓뽈라구!" 젓볼락이 올라오자 낚시꾼은 밑밥 크릴새우를 듬뿍 던진다. 가라앉는 새우를 먹으려고 잔챙이가 모여든다. 이 너른 바다에 손톱크기만한 새우를 알아보고 모여드는 잔챙이가 다시 보인다. 이 너른 세상에 먹고살 일이 왜 없으랴. 손톱크기만한 일이라도 이것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부딪치면 손톱이 손등이 되고 팔목이 되는 일이 왜 없으랴.
방파제 오른쪽은 가두리 양식장. 양식장엔 갈매기가 판을 친다. 양식장 사료를 훔쳐 먹으려고 모여든 괭이갈매기다. 갈매기가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는 사람에겐 사진을 찍어둘 만한 풍광이겠지만 양식장 사람에겐 저 갈매기가 골치다. 허수아비를 세워서라도 쫓아내고 싶은 갈매기다. 나라고 그렇지 않으리. 어떤 사람에겐 사진을 찍어둘 만한 나지만 어떤 사람에겐 허수아비를 세워서라도 쫓아내고 싶은 나다.
해가 애를 먹인다. 사람 애를 달군다. 보여주려면 아예 보여주든지 보여주지 않으려면 아예 보여주지 말든지 안 하고 사람을 감질나게 한다. 구름에 가렸다가는 구름을 밀어내고 구름을 밀어내다가는 구름에 가린다. 나 몰라라 돌아서고 싶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해가 빨간 건 사람 애를 달구기 때문. 사람 애를 달구고 빨개진 해가 진다.
'통영바다에 해가 지고 있었지/ 해는 빨갰지/ 지는 해를 심호흡해서 들이켰지/ 나도 빨개지기를 바랐지/ 내가 살아온 가볍고 얕은 날들/ 그날들에게 미안해서/ 정말로 미안해서/ 얼굴 빨개지기를 바랐지/ 마음 빨개지기를 바랐지'- 동길산 시 '통영바다'에서
춥다고 몇 잔 들이킨 소주 탓일까. 나를 따라다니던 해가 내 속에 들어온 걸까. 일행은 내 얼굴이 빨갛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보이는 곳이 빨간 건 걱정되지 않는다. 걱정되는 건 보이지 않는 곳. 건강검진을 받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 탈이 났을까 봐 오륙 년째 미루고 있다. 내가 살아온 가볍고 얕은 날들에 탈났을 보이지 않는 곳.
해가 다 진다. 해가 다 진다고 한 생애가 다 지랴. 오늘 가진 게 없다고 내일도 가진 게 없으랴. 하루하루가 당장은 고단해도 살아보면 살아지는 게 우리 삶이다. 하루하루가 당장은 고달파도 어금니 깨물고 희망의 군불을 지펴내는 게 살아가는 재미다. 밤바다에 던진 야광찌가 오뚝이처럼 선다. 내일도 해가 뜬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오뚝이처럼 세운다. -끝-
dgs1116@hanmail.net
■ 통영의 섬 - 달아공원서 본 다도해 진경 섬 물들이며 지는 일몰 장관
달아 지명유래는 여러 가지다.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를 닮았다고도 해서 달아다. 포구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면 공원이 있다. 달아공원이다. 달아공원은 통영바다가 다도해임을 실감나게 하는 곳. 통영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물들이며 지는 일몰도 장관이다. 공원 안내판 섬 이름이 적힌 사진과 실제의 섬을 맞추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미도 추도 남해도 사량도 가마섬 곤리도 쑥섬. 공원 오른편에 보이는 섬이다. 두미도.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된 섬이다. 남쪽이 올챙이 꼬리처럼 튀어나와 있다. 추도. 한국에서 가장 굵다는 후박나무가 바다를 굽어보는 섬이다. 지금은 물메기철. 물메기 본산답게 집집 담벼락마다 물메기를 내다말린다. 사진에 담아둘 만.
사량도. 뱀이 많아서 사량도고 크고 작은 사량도 두 섬 사이로 흐르는 물길이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해서 사량도다. 그리고 가마를 엎어놓은 형상이라서 가마섬, 고니새와 연관이 있는 곤리도, 쑥이 많이 나서 쑥섬이다. 공원 왼편으론 학림도 연대도 비진도 매물도가 보인다. 달아공원을 거쳐 일주도로를 한 바퀴 빙 돌면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생전에 꼭 봐 두어야 할 진경. 공원에서 보이는 수산과학관도 견학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