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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영 시읽기
불온의 시대를 건너며 희망의 달을 띄우다
이오우
‘시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존재와 사유’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존재란 무엇이며 사유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급히 ‘언어적 질서’로 봉합하려 한다. 하지만 시의 근원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가장 실속 있는 선물이 ‘시(詩)’라면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원천을 짚어봐야 한다. 농부가 씨를 심듯, 우리는 그것을 가꾸는 자의 입장이 되어야 하며, 비를 기다리는 간절함과 곡식을 거두기까지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을 외면할 수 없다. 우주적 질서 속에 마음을 풀어놓아야 한다. 어쩌면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이며 자연과 합일(合一)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시가 오는 토양이고 원천이라 생각한다. ‘시(詩)’라는 문학 장르가 확립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예사조를 거쳐 왔다. 모두 시대와 조응하고 삶의 문제를 진단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향기는 시대와 삶의 천착에서 피어난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박철영 시인의 시적 세계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 흡입력과 파장이 어떠한지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찰랑찰랑 파도에 좋아 / 쉬이 맘 드러내지 마라
바닷속 감춰진 파랑은 교묘한 것 / 욕진 밑창 뒤집으며
속 창아리 없이 다 퍼준 뒤 / 말도 없이 매몰차게 떠난 뒤태를
한없이 바라봐야 한 심사는 환장인거지 / 들물 따라 돌산 머리 확 밀쳐버리고
내 앞에서 이내 멀어졌지만 / 떠꺼머리로 마음 잡고 잘 되길 빌며
한 시도 널 내친 적 없다 / 여수 끝자락 망망한 불빛을 보며
간발로 놓쳐 따라 건너지 못했지만 / 밀친 바다를 탓하지 않겠다
파도 찰랑댈 때마다 / 스스로 무뎌진 칼 등을 돌려
자란 머리카락을 잘라낼 때마다 / 내 어딘들 편하겠느냐
잊겠다 떠나버린 꽁무니를 되돌려 / 다시 돌아오지도 않겠지만
부질없는 짓이려니 하며 탓하지 않겠다 / 첨벙첨벙 던진 말들이 살아나도
총총한 윤슬 슬어 달래듯 / 후회한다는 내색 않겠다
-「여수 낭만 밤바다」 전문
반짝이는 물빛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바람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입술들을 만날 것이다. 물은 수면으로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내면은 알 수 없는 깊이를 가졌다. 생명의 시원을 투명한 기억으로 재생하는 빛을 가졌다. 아무리 거칠고 뾰족한 것이라도 유연하게 감싸는 몸이 꿈을 꾸듯 출렁인다. 경계를 허물며 꿈틀대는 내면의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잔잔하게 읊조리게 되는 추억의 미로가 있다.
여수 밤바다, ‘찰랑찰랑 파도에 좋아’ 절로 맘이 출렁이는 낭만의 자태를 가졌다. <버스커 버스커> 1집 앨범에 ‘여수 밤바다’라는 곡이 떠오른다.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과 낭만적 분위기의 노래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 뭐하고 있냐고 /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 아 아 아 아 아 아 아 / 너와 함께 걷고 싶다 /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함께 걷고 싶다는 정보, 우리를 ‘낭만’이라는 크로마키(chroma-key) 앞에 서게 한다. 피사체가 되어 상상의 배경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환상적 경험의 세계를 연출하는 마력을 가졌다.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 네게 전해주고파 전활 걸어 / 뭐 하고 있냐고 /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노랫말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듯하다. 그러나 낭만이라는 세계관은 어쩌면 SF 영화처럼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현실이 물거품으로 망망해질 때가 있다.
「여수 낭만 밤바다」는 ‘알 수 없는 향기’가 아니라 “속 창아리 없이 다 퍼준 뒤 / 말도 없이 매몰차게 떠난 뒤태를 / 한없이 바라봐야 한 심사”를 말하고 있다. “떠꺼머리로 마음 잡고 잘 되길 빌며 / 한 시도 널 내친 적 없”는 자아의 무상함과 “파도 찰랑댈 때마다 / 스스로 무뎌진 칼 등을 돌려 /자란 머리카락을 잘라낼 때”를 환기한다. 부질없음을 탓하거나 후회를 내색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뱉는 자리다. 진정한 삶의 비늘은 ‘총총한 윤슬 슬어 달래듯’ ‘첨벙첨벙 던진 말들이 살아나’는 순간을 쓸어 담는다.
박철영 시인의 시적 언어가 낭만적 순간의 환상적 경험과 허구적 로맨스를 새로운 우주적 질서로 재편집하고 있다. 미사여구가 아닌 질박한 생활 언어를 통해 경건함과 진정성의 포문을 여는 비기(祕記)를 보여준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삶의 환부를 뒤집듯 뛰어든 자리에서 제 목소리로 자신을 베어 물며 나아가야 하는 삶의 결연함이 맥동한다.
시골 면 소재지는 차부가 터미널이다 / 가쁜 버스 승강 계단 오르며
된 숨 몰아쉬는 것만 다르지 / 쇠락과 흥이란 것도 / 허리께 힘이 들 때 말이다
아랫도리가 매번 휘청거리는데 / 두 팔 지렛대질은 더 어렵다
시골 버스 고갯길 돌 때마다 / 위태로운 중심을 놓쳐버린 할매
목덜미 부동맥이 한나절만큼 부풀었다 / 좋던 시절 간데없는 운전기사 양반
다섯 살배기 아이 둘이면 / 반표짜릴 더 끊어야 된다는
반 으름장이 기세 등등하다 / 사실 버스를 모는 것은 기사양반이 아니다
흰머리 채반처럼 인 할머니의 봇짐에다 / 빈자리 휑한데 불평 한마디 없이
반표 끊으러 간 아이 엄마에 / 현기증 나도록 아슬아슬한 운봉 연재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 엄마처럼 방긋대며 동생 어르는 버스 안
저물어가는 해를 기억하는 차표가 / 능선 아래 걸린 달을 끌어올렸다
*인월 : 전북 남원시 소재 지명
**운봉 연재 : 도로가 험해 사고가 빈발했던 도로
- 「인월」 전문
‘인월(寅月)’은 음력 정월이다. 『서경(書經)』 「하서(夏書)」편에 “하나라의 정월은 북두성(北斗星)의 자루가 인방(寅方)을 가리키는 달로 삼았다(夏正 建寅).”라고 한 구절이 있다. 참고로 봄의 시작은 십이지(十二地) 중에 인(寅)이다. 인시(寅時)는 새벽닭이 우는 시간이며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는 양(陽)과 목(木)에 해당한다. 따라서 봄과 아침의 의미라면 희망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하지만 시인은 ‘인월’을 ‘전북 남원시 소재 지명’으로 한정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능선 아래 걸린 달을 끌어올렸다”라는 시의 마지막 행을 통해 ‘달을 끌어올린다’라는 ‘인월(引月)로서의 의미를 살려 인월면(引月面)의 지명을 은유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다층적 의미로 다가오는 부분이며 지명으로서의 ‘인월(引月)’은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떠올리게 한다.
「인월」은 ‘시골 면 소재지’를 배경으로 ‘시골 버스’ 안 풍경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고갯길 돌 때마다 / 위태로운 중심을 놓쳐버린 할매”와 ‘운전사 양반’, 그리고 ‘다섯 살배기 아이 둘’과 아이 엄마, 그들 사이에 나긋한 실랑이가 사건이다. 그야말로 ‘현기증 나도록 아슬아슬한 운봉 연재’-도로가 험해 사고가 빈발했던 도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태로움도 잠시 ‘엄마처럼 방긋대며 동생 어르는 버스 안’은 ‘저물어가는 해를 기억하는 차표’와 함께 순항한다.
시인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남루한 듯싶지만 부족함 없는, 바쁘지도 느리지도 않은 장면을 담아내고 있다. 시골이 삶의 변두리라면 그곳은 쇠락과 휘청거림, 그리고 위태로움과 아슬아슬함의 경계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포착한 장면은 정작 평온함의 귀갓길이다. “하 노피곰 도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며 마치 행상 나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정읍사」에 등장하는 여인의 간절한 기원이 달에 닿듯, 모두의 안녕한 귀가를 위해 마련된 차표로 상징되는 여로는 ‘능선 아래 걸린 달을 끌어올렸다’는 신비한 체험을 낳는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경과와 극적인 시상 전개가 긴장과 이완을 이루며 진행된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위화감은 사라지고 ‘방긋’, 잔물결처럼 가라앉으며 잔잔한 여운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퍼진다. 올해가 임인년(壬寅年)이다. 호랑이의 기운을 담아 시작하는 인월, 희망찬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한몫한다.
한 줄기 빛만 남았어도 과분한 것 / 어둠을 가르며 집을 나선 새벽 3시
세상 잠 못 든 사람들이 / 어찌 한 둘뿐이랴
긴박한 하루가 새면 들이닥칠 / 빚 독촉에 한숨 푹푹 몰아쉬며
빈궁貧窮의 수를 헤아려봐도 / 동지 긴 밤보다 깊다
추수 이후 해 넘길 빚더미 / 쌀가마니로 환산하며
달라붙을 이자까지 헤아리다 보면 / 본 자를 훌쩍 넘고 마는 말 빚이
굽은 등을 내리눌렀다 뜬 눈으로 궁리窮理를 거듭할 때
무섭게 울어대는 뒤안 대숲 찬 바람 따라 / 앞산까지 내려온 핏발 선 부엉이 소릴
박차고 나가시던 아버지, 그때에다 치면 / 나는 행복한 농사를 짓는 거다
몸이 쓰러진다 해도 / 이것저것 청산하고 나면
손해 볼 것 없는 농사니 / 농부도 아니면서 농사꾼을 흉내 내는 3월
경칩 지나 조바심 깊어 / 흙 돋워 희뿌연 논바닥에
어설프게 퇴비를 뿌린다 / 먼 새벽 해소를 기침으로 내뱉으시던
동로골 아버지의 세월은 오 밤 중이다
- 「박명薄明」 전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 김환기 화백의 대표 작품이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밤하늘에 별처럼 무수한 점들이 빼곡한 작품이다. 하나하나는 초라한 점들로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밝음과 어둠, 만남과 이별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대한 미적 형상화다.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구절처럼 애잔하지만 강력한 빛이 출발하는 자리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별은 밝음 속에서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처럼 말이다.
박철영 시인은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박명薄明」을 통해 말하고 있다. 돈으로 환산되는 삶이 아닌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듯 시인은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삶을 병치시키며 농부의 고단한 삶을 통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행복의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얼마 동안 주위가 희미하게 밝은 상태를 가리키는 ‘박명(薄明)’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이자 희망과 절망의 교집합 같은 역설적 의미로 다가온다. ‘어둠을 가르며 집을 나선 새벽 3시’는 어둠의 시간이다. ‘빚 독촉’과 ‘빈궁貧窮’이라는 현실적 상황과도 맞물린다. ‘굽은 등’으로 표상되는 궁핍한 삶은 ‘무섭게 울어대는 뒤안 대숲 찬 바람’의 서러움으로 환기된다. 절박함은 ‘핏발 선 부엉이 소리’를 앞산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다. 새벽을 박차고 나가신 아버지의 삶이 그려진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삶이 오버랩 (overlap)된다. ‘행복한 농사’라는 역설적 진술은 오히려 씁쓸한 삶의 불가항력적 상황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농촌 현실에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세대의 대물림으로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쓰러진다 해도’ ‘손해 볼 것 없는 농사’라면 모순이며 불온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시인은 “먼 새벽 해소를 기침으로 내뱉으시던 / 동로골 아버지의 세월은 오 밤 중이다”를 통해 한 세대가 지났지만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행되지 못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박철영 시인은 「박명薄明」을 통해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을 가리키듯 아픈 시간의 역주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벼리는 작업을 보여준다. 아울러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시대의 질문에 삶의 진정성이 가시적인 물질로 평가되는 삶의 모순적 상황을 전복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불금 거리가 자정 너머 / 이른 파장이 되어버렸다
불금을 갖다 붙이다 보니 / 작은 도시의 뒷골목 안까지
야금야금 먹어 들었다 / 주 오일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피로가 겹쳐서일까 / 상가 불 다 꺼진 골목 안은 컴컴한데
2층 노래방에서 튕겨 나온 7080 통기타 소리 /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낯익은 노랫가락이 뚝뚝 끊어지는 밤 / 애절해져 불러 보는데
쌩하고 나가버린 그녀의 빈자리 / 싸구려 분내 짙은 향수가
연향동 동성공원 금목서 향기처럼 / 몽롱해지는 가을밤
어차피 떠난 사람이나 지는 꽃이나 / 이 밤 애타는 것은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 생이 슬픔같이 초라해서다
탈탈 털린 화투판에서 막장을 잡고 / 안절부절 조바심 내던 것도
똥 쌍피 한 장이 절박해서였다는 / 변명도 코로나 전 이야기다
- 「막장」 전문
현재 우리는 코로나-19의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변이가 유행하고 감염의 우려가 지속되면서 무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가 하면 개인의 심리적 변화가 사회적 우울감으로 증폭되어 나타나는 ‘코로나블루’를 실감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는 대인관계를 무너뜨리며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곤 한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마스크와 백신 접종에 익숙해졌다. ‘일상으로의 회복’이라는 말도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현실이 어쩌면 ‘막장’의 깜깜한 터널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처럼 암담하고 그 끝에서 쓰러지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철영 시인의 시 「막장」 은 흡사 탄광촌의 ‘막장’을 연상시키며 현실의 굴레를 스케치하듯 그려나간다. ‘몽롱한 가을밤’은 ‘금목서의 향기’의 향기처럼 유혹의 끈을 쉽게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없는’ 이미 파장이 되어버린 컴컴한 골목에서 자신의 ‘생의 슬픔’을 초라하게 붙잡은 자아상으로 귀결된다.
탈탈 털린 화투판의 막장을 잡던 쓰린 기억도 이제는 과거 완료형이다. 저마다 격리된 듯 뚝뚝 떨어져 나간 자리에 만리향(금목서의 꽃향기가 만리를 간다 해서 붙여진 별칭)의 향기가 미련처럼 남아 흐른다. ‘당신의 마음을 끌다’라는 금목서의 꽃말처럼 애절함이 이별의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그것도 싸구려 인생 같은 ‘막장’ 기분을 잠재우기 어렵다. 「막장」은 ‘코로나 전’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생이 결국은 ‘애상(哀傷)’이라는 키워드로 연동되고 있다. 슬픔의 향기가 만리향처럼 진하게 ‘절박한 변명’으로도 모자란 코로나 상황을 일상적 언어와 통속적 모멘텀 속에서 풀어 헤쳐진다. 시인의 일상을 탐구하는 자상의 언어가 안개처럼 자욱하다.
한편 불안한 시간에 갇힌 텅 빈 거리와 언약의 기억조차 아련한 꿈속 같은, 눈먼 부족으로 남은 것 같은 일상의 황량함, ‘백신’ 방역 속에서 초롱초롱한 빈털터리 세상을 그린 작품, 「백신 후유증」도 함께 감상해 보자.
너무 멀리 돌아온 탓인가 / 당연하듯 따라오다 보니 / 잊지 말라던 언약조차 가뭇해 기억할 수 없다 / 주사 바늘 자국이 부풀어 오른 반점처럼 / 불안한 시간에 갇힌 텅 빈 거리 / 통증을 씻어내듯 자꾸만 비가 내렸다 / 그럴수록 깨어나 더 환해진 것들을 보며 / 먼저 "빈차"라고 말해버린 호객행위도 그렇고 / 순정을 맹세하듯 "순천"이라고 꾹꾹 눌러쓴 새벽 세 시 / 연향동 메디팜 약국 앞 영업용 택시 한 대가 / 백신 맞은 내 모습 같다 / 졸다 꿈속을 좇듯 / 간절해진 빗방울에 초롱초롱한 네온이 / 번져 보이는 것은 분명 / 노안에다 백내장일 거라며 / 그럴 때 '신세계안과의원'을 찾아가라는 / 전조등의 2.0 투시력에도 / 문짝 광고판이 거뭇해 보인다 / 인기척 없는 불금 날, 시동을 켠 채 / 꼬박 새운 피로의 질량과 달리 / 부족한 사납금을 채울 수 없어 / 시동을 켠 채 대기 중이다 - 「백신 후유증」 전문
박철영 시인은 ‘순정을 맹세하듯’ 자신의 시공간을 탐구한다. 그의 시적 좌표는 어두운 거리에서도 한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며 ‘연향동 메디팜 약국’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영업용 택시 한 대’라는 피사체를 해부한다. ‘노안’이나 ‘백내장’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를 밑천 삼아 내밀한 소통도 불사한다. ‘시동을 켠 채’ 밤을 꼬박 새우며 ‘부족한 사납금을 채’워야 하는 처지는 ‘백신 후유증’ 만큼 ‘시대의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통증’을 씻어내듯 비가 내리는 밤, 코로나 세상은 대기 중인 자동차처럼 돌아가야 할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부릉거릴 뿐 출발 시간은 계속 지체되고 있다. 무채색 같은 시대의 슬픈 단면을 선명하게 찍어 낸 시어들이 공감의 자력을 형성하고 있다.
박철영 시인의 시가 피어나는 자리는 바로, ‘지금 여기’인 듯하다. 현시점과 현 지점에서 시적 질서가 한 알의 씨앗에 담기듯, 고유한 유전인자가 새겨지듯, 하나의 시편에 집적된다. 시는 통념과도 거리가 먼, 어쩌면 깊이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철부지와 같은 감성과 바람직하다고 인정되는 관계를 지속하려는 이성의 칼날 사이에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의 너머를 탐미하는 초월적 자아와 그 틈바구니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자아의 고뇌를 담보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박철영 시인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소통한다. 자신의 우주를 그려나가는 시인의 음성은 미확인비행물체처럼 우리를 새롭고 낯선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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