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고향을 찾아서 명례 성지
명례 성지: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122 사무실☎: 055-391-1205; 070 8869 3205 (반송성당: 055-262-0985) 명례 카페: cafe.daum.net/myungrye 성지조성주친위원장 이제민 신부☎: 010-3166-0773; 홈피: www.rijemin.com
신앙의 고향 명례
천주교 마산 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인 명례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명례는 네 가지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가 출생한 곳이며, 신석복의 순교를 가능케 한 교우촌이 형성된 곳이다. 둘째, 영남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의 첫 본당이 설립된 곳이다(1897년). 셋째, 명례의 첫 본당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가 사목하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강 신부는 김대건, 최양업에 이어 세 번째 방인 사제로서 한국 땅에서는 처음 서품된 사제다(1896년 서품). 넷째 현재 남아 있는 성전건물의 문화사적 가치이다. 이 건물은 첫 성전(1928년)을 축소 복원한 것(1938년)인데, 남녀 석이 구분되어 있는 성전내부와 벽 쪽을 행한 제대와 그 위에 모신 십자가와 장미의 성모님에게서 초기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을 느낄 수 있다.
명례성지 연표
1784년 이승훈 북경성당에서 영세. 한국천주교회 창립. 1785년 추조(秋曹)적발 사건. 김범우 밀양 단장면으로 유배. 1827년 정해 박해. 피난 교우들 영남에 등장. 1828년 신석복 마르코 명례리 1209번지에서 출생. 1866년 병인 박해. 3월 31일 신석복 대구 감영에서 순교. 1886년 영남지방 첫 본당인 대구본당 설립. 초대 주임 김보록 로베르 신부. 1887년 김보록 신부 명례 방문 공소 신설. 1897년 영남지방 네 번째 본당이자 현 마산 교구의 첫 본당 인 명례본당 설립. 1898년 1월 초대 주임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 부임. 1903년 9월 강성삼 신부 명례에서 선종. 명례는 마산본당 공소가 됨. 1926년 재건 명례본당 설립. 권영조 마르코 신부 부임. 1928년 기와성전 완공 후 낙성식. 1930년 삼랑진으로 본당 이전. 명례는 삼랑진본당 공소가 됨. 1935년 성전 태풍으로 전파. 명례는 진영본당의 공소가 됨. 1938년 성전 축소 복원하여 낙성. 현 건물. 1996년 10월 21일 수산성당 설립. 2008년 9월 명례성지 조성 추진위원회를 마산교구에서 승인. 2009년 6월 19일 사제의 해를 시작하면서 마산교구 사제단 명례성지 방문.
명례 지방의 천주교 전파
조선 천주교 초창기 교우들은 주로 경기지역에 살았다. 박해가 일어나자 피신처를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명례에 피난 교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27년 정해박해 이후이다. 그들은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다 이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명례에는 나루가 있어서 피난교우들이 정착하기에 좋았다. 1895년에 발간된 ‘치명일기’에는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이곳의 교우 두 분의 이름이 실려 있다. 백산리에 살던 오 야고보와 명례리에 살던 신 마르코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는 1828년 명례에서 출생하였고 1866년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1887년, 대구본당(1886년에 설립. 영남지방의 첫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인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명례를 방문하여 성사를 집행하였으며 주민 5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명례에 공소를 설립한 후 1890년까지 매년 명례를 방문하였다. 1897년 9월에 명례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고 1898년 1월 초대주임으로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강 신부는 밀양, 언양, 경주, 기장, 양산, 동래에 이르기까지 15 개 공소를 사목하였다. 기록에 나타난 당시 총 교우 수는 547명이었다. 본당승격 소식을 접한 명례 교우들이 현 위치(명례리 1122번지)에 120냥을 주고 세 칸짜리 집을 구입했다. 강 신부가 1903년 선종하자 명례 본당은 마산본당(완월동)의 공소가 되었다. 1926년 5월 ‘재건 명례본당’이 설립되고 갓 서품된 권영조 마르코 신부가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1928년 8월 기와로 된 성당을 봉헌하였다. 이 성전은 1935년에 태풍으로 전파되었다. 현재의 성전 건물은 1938년 축소하여 지은 것이다. 권 신부는 1930년 본당을 교통의 중심지인 삼랑진으로 옮겼고, 명례본당은 삼랑진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35년에는 진영본당이 설립되자 그 공소가 되었고, 1996년에는 수산에 본당이 신설되면서 명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되었다. 명례의 역사적 가치가 새로 조명을 받으며 2008년 명례성지 조성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마산교구가 이를 승인하였다.
초대주임 강성삼 신부
강성삼(라우렌시오) 신부는 1866년 7월 15일 충남 홍산(現 부여)에서 출생했으며 1881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나가사키 신학교를 거쳐 1882년 말레이시아의 페낭 신학교에서 10년간 수학하였다.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가 완공되자 조선으로 돌아왔다. 강성삼 신부는 1896년 4월 26일 서울의 약현성당(現 중림동 성당)에서 강도영, 정규하 신부와 함께 서품되었다. 조선에서 실시된 첫 서품식이었고 생년월일에 따라 강도영 신부가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정규하 신부가 네 번째, 강성삼 신부가 다섯 번째 사제로 기록되었다. 강 신부는 서품 전에 부산본당 3대 주임신부로 내정되었지만 건강 때문에 부산본당의 일부를 분할하여 사목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897년 명례에 본당이 설립되고 강신부는 이듬해 1월에 부임하였다. 첫 해 그가 사목한 구역은 밀양, 경주, 언양, 양산, 기장, 동래까지였고 1900년부터는 밀양, 김해, 창원 일대만 맡았다. 건강이 악화되어 1903년 9월 19일 젊은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명례에서 20리 떨어진‘대미공소’(現 삼량진읍 미전리)에 안장되었다가 1971년 9월 부산 용호동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
1828년 경상도 밀양의 명례(현 경남 밀양읍 명례리 1209번지)에서 출생한 신석복(申錫福) 마르코는 소금과 누룩 장사를 하면서 생활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창원 마포로 장사를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오 야고보 등과 함께 대구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신앙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되던 해였다. 포졸들은 마르코의 집을 찾아내어 재산을 탈취하고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목인 김해 가산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밀양에 하루를 머무르는 동안 포졸들이 그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대구로 끌고 갔다. 그의 형제들은 돈으로 포졸들을 포섭하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르코는 형제들에게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말라.”고 했다. 대구 감영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 유혈이 낭자하고 뼈도 부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나를 놓아 준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관장은 마르코에게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런 다음 교수형을 집행하였다. 1866년 3월 31일(음력 2월 15일)이었고,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후 마르코의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안장하려 하였지만 동네 유지들이 반대하여 강을 건너지 못하고 노루목에 묻었다. 그의 묘는 1975년 진영 성당 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남겨진 주춧돌을 바라보며
그동안 순교자의 생가는 명례 성전과 담을 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무심 속에 축사로 변하였고, 성전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습니다. 축사로 변하도록 방치한 순교자의 생가와 초라한 성전은 그대로 우리 교회의 부끄러운 복음화 현실을 보여주며 점점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우리의 신앙 상태를 반사해 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쓰러져 가는 교회를 어깨로 떠받치는 꿈을 꾸고 나서 다미아노 성당을 재건하였듯이, 늦었지만 그런 애정으로 순교자의 생가와 그 주변 일대의 부지를 확보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고 복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신앙의 산실로 새롭게 조성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조성사업을 오로지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만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벽돌 한 장이 모이면 한 장만큼, 백 장이 모이면 백장만큼 그렇게 한 평 한 평 성전을 가꾸어 가고자 합니다.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 없고 아무 것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 없다는 말을 믿으며, 많든 적든 가진 것을 희생으로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지를 가꾸고자 합니다. 명례성지의 지금 모습은 그동안 여러 뜻있는 분들이 쏟아주신 정성의 모습 그대로이며 미래의 성지 모습도 그렇게 지금 우리가 쏟는 정성의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으로부터 신앙하고, 순교의 정신으로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명례성지가 우리들에게 가난한 마음, 순교의 정신, 희생심을 선사하여 우리들이 찾는 복음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복음의 터전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기도와 아낌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명례 성지 조성을 위한 후원회 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자기만을 위해서 살면 행복은 늘 자기 밖에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행복 안에 있게 된다.”(엠마 프라이징거) 명례성지조성 추진위원장 신부 이제민 드림
명례 성지조성 후원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 후원회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요? - 정기회원: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후원해주시는 분. - 기부회원: 물품이나 현금(10만원 이상)을 일시에 후원해 주시는 분.
❈ 후원금 송금은 어떻게 하는가요? - 본인이 직접 은행에 가셔서 자동이체 신청하시거나 - CMS를 이용하시거나 - 본당의 후원회 창구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 CMS란? - 후원자님께서 직접 은행에 가는 번거로움 없이 편리하게 납입할 수 있도록 명례성지조성위원회에서 출금이체서비스를 대행하는 것입니다. - 은행명,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이체일, 금액을 기록해 주시면 자동으로 출금됩니다. - 위의 인적사항은 통계와 후원회 소식의 발송을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 후원회 자동이체 은행: 농협중앙회: 301-0050-5265-21 예금주: (재)마산교구천주교유지재단(마산명례성지) 우리은행: 1002-537-811887 (예금주: 이제민) 경남은행: 538-22-0717489 (예금주: 이제민)
❈ 후원자님께서 받는 혜택 - 연말정산시 소득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매월 성지 미사에서 후원회 회원을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 명례성지 조성 후원회원을 위한 미사: - 하절기 (4월 - 10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명례성지 - 동절기 (11월 - 3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명례성지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리며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 “풀어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 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용감히 순교한 신석복 마르코를 당신의 품에 받아들이신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그가 순교하던 병인년 먼 충청도에서 태어난 강성삼 라우렌시오를 이 고장의 첫 본당신부로 부르시고 그가 태어난 지 100년 되던 해에는 명례 언덕에 웅장한 기와성전을 허락하시어 태고의 유유한 낙동강을 굽어보게 하신 천지의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감사와 찬미를 받으소서.
그로부터 여러 세월 교회가 그를 성인품에 올리기 위하여 순교자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성전은 태풍으로 스러져 위축되었고 순교자의 생가는 축사로 변하였으며 그는 강 건너 낯선 땅에 외로이 묻혀있으니 저희들은 그동안의 무심함을 부끄러워하나이다.
저희를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뒤늦게 저희 어리석은 당신의 자녀들 깨어 신앙 선조들의 거룩한 정신을 본받고자 하오니 그들의 진실한 삶과 굳은 믿음을 외면하고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묘를 꾸미면서(마태 23,29) 저희가 그들의 고결한 순교에 가담한 듯 자랑하는 저희 속됨과 위선을 용서하소서.
저희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골로 1,29) 저희가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콜로 1,23; 마르 16,15) 온 세상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희생과 사랑으로 믿음의 고향을 찾아 살게 하소서.
명례성지 오시는 길
◈ 마산 창원 방향에서 오시는 길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진영을 거쳐 밀양 방향으로.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 미터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빠짐(교통도로 표시판 부곡 방향). - 빠지자 말자 부곡 방향이 아닌 오른쪽으로 거의 180도 조심스럽게 회전하여 - “명례성지” 안내판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약 6 Km)
◈ 부산방향에서 오시는 길 - 서부산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 10번을 타고 오다가 동창원에서 빠져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진영을 거쳐 밀양 방향으로.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 미터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빠짐(교통도로 표시판 부곡 방향). - 빠지자 말자 부곡 방향이 아닌 오른쪽으로 거의 180도 조심스럽게 회전하여 - “명례성지” 안내판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약 6 Km)
◈ 광주 순천 진주 방향에서 오시는 길 - 고속도로 10번을 타고 부산 방향으로 오다가 서마산을 지나 동창원에서 빠져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진영을 거쳐 밀양 방향으로.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 미터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빠짐(교통도로 표시판 부곡 방향). - 빠지자 말자 부곡 방향이 아닌 오른쪽으로 거의 180도 조심스럽게 회전하여 - “명례성지” 안내판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약 6 Km)
◈ 대구 방향에서 오시는 길
*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오시는 길: - 남밀양 IC에서 빠져 국도 25번을 타고 창원방향으로. - 낙동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 수산으로 진입(약 500m 진행) - SK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명례,밀양영화학교 방향으로) - 명례성지 안내판 따라(지방도로 1022번) 약 6Km 들어오시면 됩니다.
* 창령 부곡 방향에서 오시는 길: - 구마고속도로(45번) 영산 IC에서 내려 지방도로 1008번을 따라 진행 - 부곡온천을 지나 약 30분간 직진하여 - 양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수산읍내 방향으로 약300미터 진행 - SK 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명례방향(밀양영화학교)으로 - 지방도로 1022번을 따라(명례성지 안내판 따라) 약 6Km 오시면 됩니다.
◈ 그 외: 하남읍까지 오셔서 버스노선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도보순례길
* 진영 순교자 묘지 - 가산 - 가동 - 유등 - 수산대교 - 명례 * 용잠성당 - 주남저수지 - 가술 - 수산대교 - 명례 * 수산성당 - 명례 * 명례 - 외산공소 - 삼랑진 성당 * 웅천 왜성 - 진례 - 가산 - 유등 - 수산대교 - 명례
2010년 5월 교회인가 |
|
첫댓글 모든것을 빠짐없이 알기 쉽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곳에서도 헤매지 않고 신앙의 고향-명례성지를 잘 찾아 올것 같습니다...
다음엔 꼭 도보순례길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명례성지 조성을 위해 늘 수고하시는 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