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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의 역할은 이제 다 됐다. [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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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특임 장관이 가장 잘 나갈 때는 과연 언제였을까,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2007년 여름에 있었던 한나라당 대선 후보자 경선 때가 아니었겠나 싶다. 당내 기반이 전무 했던 이명박 진영의 좌장으로써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무지막지하게 돌격 행진을 감행 한 것을 목격하기도 했고, 그가 동원한 방법 중에는 회유와 압박, 그리고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 보장과 차기 정부에서의 굵직한 감투 제시 등등, 수단이 란 수단은 총동원 되었을 것이라는 유추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반면에 당 대표를 지냈지만 세력과는 거리를 두었던 박근혜는 현저한 자금력의 열세와 공정한 경선의 룰을 최대한 지키고자 하는 스탠스 아래,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 그 만의 원칙 속에서 경선을 치루고 있었다. 세계 정치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6대1의 등가성을 부여하는 여론조사라는 기형의 프레임을 수용한 결과 이명박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게 되었고 .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이때부터 이명박의 대선 승리는 이재오의 도움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불가능 했을 것이다, 라는 세간의 평과 함께 실세, 2인자 , 왕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승리에 너무 도취 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대통령을 만들었다”라는 일등 공신의 지나친 자만심과 과시욕 탓 이었을까, 적어도 지난 17대 총선 이전 까지는 조선시대의 한명회도 서러워 할 정도로 대단한 세도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 때문 이었을까. 지난 17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 공천에서 이재오를 대신한 이재오의 대리인들에 의해 박근혜를 지지했던 소위 친박들이 줄줄이 공천 학살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재오는 정치 보복을 통해 정적을 말살할 줄은 알았지 정작, 자신의 미래는 몰랐다. 이런 광경을 죽 지켜본 박근혜 팬클럽인 박사모는 스스로가 저승사자임을 자처하고 공천 학살 주범들의 낙선을 위해 본격적으로 박근혜 구출하기에 나섰고 그 결과 이재오는 탄탄하다고 알려진 자신의 지역구를 지켜내지 못하고 낙선하고 만다. 한 때, 문경 새재 입구에 수만 명의 지지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거창한 출판 기념회를 열기도 한, 권력 2인자의 위치에서 천하를 호령 할 것 같기도 했지만, 하늘은 그에게 그러한 지위는 너무나 무겁다고 판단한 결과물인지는 몰라도 총선 낙선과 더불어 그는 해외로 나가 일정한 기간을 보내야만 했다. 권토중래가 적합 한지 , 호시탐탐이 적합 한 표현인지는 가늠 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이재오는 백두산에서 mb 만세를 부른 뒤 국내 정치판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귀국 후 공신에 대한 mb의 배려로 인해 국민권익위원장 이라는 직위를 받자마자 숱한 화제를 뿌리며 연일 뉴스의 포커스가 되기도 했다. 문국현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정치적 사형이 선고되자 이재오는 손쉽게 국회의원에 복귀했고 , 의원 뺏지를 달자마자 mb는 이재오에게 특임장관 이라는 공식 직함을 통해 정적 박근혜에게 차기 대권이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지막 임무인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하기에 이른 것으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이재오는 개헌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부침을 반복 해온 권력 2인자, 또는 왕의 남자라고 불리 우는 이재오에게는 정권 초기와도 같은 동력과 추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는 한나라당 의원 총회가 열렸다. 125여명이나 참석을 했지만 개헌을 주장한 얼굴들을 보면 한결같이 친이계의 결사체인 “함께 내일로”에 소속된 그 얼굴에 그 얼굴들 뿐 이었다. 주로 서울 , 수도권 출신이 주류인 이들 개헌 찬성파들은 찬성 발언을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민도 높은 수도권의 주민들의 반응과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개헌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찬성 발언을 할 수 밖에 없는 개헌 찬성파들의 신세를 보니 얼마나 고달프고 얼마나 처량한지 연민의 정마저 생기기도 했다. 그나마 20여명 밖에 나서지 않았고 오후에는 지겹다는 반응과 함께 자리가 텅 비워 버렸고 , 오늘은 단 한명 밖에 발언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하니 , 그렇다면 대세는 이미 끝난 것이나 진배가 없다. 국민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형편없는 여론의 평가절하 , 야당의 극심한 냉소와 외면 속에서일부 강성 친이계 소수만 가지고는 의원 총회마저 정상적으로 개최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당초 3일간으로 예정된 의총을 이틀로 단축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니 이재오 앞에 붙어 다니는 권력 2인자. 왕의 남자라는 수식어도 떼어 낼 때가 온 것 같아 보인다. 아니 , 어쩌면 진즉 떼어 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재오는 처음부터 그러한 수식어를 붙여줄 자격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년에는 총선도 있고 공천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지극히 짧은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그만의 시간을 놓쳐 버리면 자신의 역할은 거기서 끝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내년에 실시될 한나라당 총선 공천에서 행여나 17대 공천과 같은 계획을 도모하거나 꿈을 꾸다가는 친이계라는 타이틀이 붙은 출마자들은 현실의 차가운 냉대가 얼마나 가혹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