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한 공간에 모였다. 2020년 5월은 공교롭게도 딸의 생일과 나의 생일, 그리고 어버이날이 나란히 줄을 섰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기념일 3일을 모두 챙긴다는 것이 어쩐지 현명한 일은 아닌 것 같아 가족 모두의 의견일치로 나의 생일에 딸아이네 집에서 저녁 식사 자리를 갖기로 하였다. 뒤늦게 달려온 아들 부부와 손자까지 집안이 꽉 찼다. 친정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외로워하던 딸의 친구까지 합석하였다.
음식솜씨 좋은 딸아이가 차려낸 식탁 위에 막걸리 두 병이 따라 나왔다. 아들은 운전 관계로, 사위와 며느리는 술을 못하기에 손자들과 함께 음료수로, ‘생신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건강 하십시오.’를 소리 높여 외친다. 딸에게도 축하한단 말을 건넨다. 나와 딸, 딸의 친구까지 셋이서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 나니 약간의 취기가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기도 하다 보니 불현듯 옛 시절이 생각나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피식거리는 나를 본 손녀가 혼자만 재미있어하시지 말고 우리에게도 들려주세요, 했다.
고2 때였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남녀공학이다. 교련 시간은 예비군 중위인 꼬장꼬장한 선생님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그날은 교련 선생님의 결근으로 체육 선생님이 대신하여 교단 위에 섰다. 아래위 하얀 체육복을 입고, 손에는 빳다 방망이를, 목에는 호루라기를 걸고 휙휙 불면서 학생들을 집합시켰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긴 하였어도 그 당시는 준 전시상태나 다름없었다. 이북으로 넘어가지 못한 빨치산들이 산속에 많이 숨어있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남녀학생 모두 제식훈련을, 여학생들은 덤으로 전쟁터 부상병들을 응급처치하는 훈련까지 받았다. 『남학생이 부상병이 되고 여학생은 팔다리가 부러진 병사들을 위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는 법과 지혈방법. 그리고 들 것으로 야전병원으로 후송하는 훈련이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거셌다. 우리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정열 했다. 빠진 놈 없지. ‘예’ 교련 시간만 되면 긴장이 극에 달하는 학생들의 대답이 우렁찼다. “자 제자리 뛰어, 한둘. 한둘” 그때 뒤에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킥 거리는 소리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선생님께서 방망이로 교단을 내려치며 ‘누구야’ 하고 소리친다. “1분 내로 자수하라. 그러지 않으면 단체 기합이다.” 무섭긴 하여도 누가 감히 웃음의 이유를 말할 수 있겠는가. 모두 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서도 입가로 새어 나오는 소리까지는 어쩌지 못하였다.
이북에서 피란 내려와 편입한 학생들은 우리보다는 서너 살은 많았다. 선생님의 얇은 체육복이 바람과 함께 몸에 밀착되자 이미 사춘기를 넘어선 아이들이 선생님의 뛰는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다가 한 아이가 그만 방귀를 뀌고 말았다. 방귀 소리에 구멍 뚫린 수도관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듯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킥킥, 쿡쿡, 키드득 운동장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단체 기합에 들어갔다. 남녀학생을 가리지 않고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린다. 팔은 후들후들 떨리고 쓰러지기도, 울기도 했다. 운동장은 난장판이었다. 팔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기합을 받으면서도 킥킥대는 소리는 불맛 본 콩알처럼 튀었다. 선생님의 호령에도 웃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무릎이 까이고 피가 흐르는 아이도 있었지만, 우리들은 쉬는 시간도 반납한 체 운동장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몽둥이를 휘두를 순간에, 여학생 중에 “선생님 화장실”하고 우는 아이가 있었다. 그날의 해프닝은 마침내 끝을 보았다. 교실로 돌아온 남학생들은 여학생에게 다그친다. “가시나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고” 누가 방귀를 뀌었는지 자수하라 설쳐댔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2년을 놀다 뒤늦게 편입해온 여자아이가 미안하다며 엎드려 운다. ‘야, 너희들도 웃었지 않냐, 사내들이 좁쌀처럼 이제 와 꼭 따져야겠냐.’ 며 편 가르기가 되고 말았다.
다들 그날 그렇게 웃던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는 있을까? 어디에 살던 공기는 서로 어울릴 텐데, 왈칵 그리움이 밀려온다.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 보고 싶어진다.
1분 내로는 지금 당장 어떻게 하라는 말이다. 여유를 주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뜻에 따르라는 지시어이다. 요즈음 ‘1분 내로’ 하면 어찌 될까. 말하는 사람이 더 조급해질까, 듣는 사람이 더 초조해질까, 슬로우를 바라는 요즈음 시대에 그런 때만큼은 ‘3분’의 여유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미의 옛이야기에 아이들은 즐거워하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다. 할머니. 정말 그러셨어요? 군사훈련에 버금가는 훈련을 받았다는 것에 이해가 되질 않는 모양이다. 머리가 귓불 밑으로 내려오면 가위로 잘라버리고 교복 치마가 무릎 밑으로 몇 센티 내려왔는지 자로 재던 그 시절과는 너무나 판이한, 지금의 학교생활이 지나치게 자유로워진 탓이리라. 선생님의 말씀이 곧 부모님의 말씀이었던 순수했던 옛 시절이 그립다.
모두 들 이 어미의 이야기에 배를 움켜쥐고 웃을 수 있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생일을 보내었다. 하루를 이렇게 티 없이 웃으며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삶이다. 가족애가 넘쳐흐르는 하루였다.
가족이란? 명주 솜이불처럼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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