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과 요양원 풍경
병마와 외로움에 시달리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메마른 일상이 전개된다. 자식 두고 처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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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양육하고, 교육하고 재산까지 물려준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모를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핵가족의 현실은 늙은 부모를 자녀가 모시기를 꺼려하고, 늙은이 본인도 자식들과 어울려 살기가 부담스러워 혼자 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늙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곳을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큰 숙제다.
양로원은 65세 이상이 17.5%다.
https://blog.naver.com/yoplaut/223091356118
최근 여생을 준비하는 노인들을 위한 요양병원, 요양원, 양로원, 실버타운 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시설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간단하게 구분하면 요양병원(2022년 기준 전국에 1,600개 운영 중, 병원비 90% 정부보조+간병비, 소모품 등 은100% 자기부담)과 요양원(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원사 기준, 2022.12월 현재 742개 운영 중, 지병은 없으나 스스로 식사나 거동이 불편한 분, 노인 장기요양등급 필요, 80% 정부보조+20% 자기부담)은 의료목적기관으로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한편, 양로원(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원사 기준, 2022.12월 현재 84개 운영 중, 65세 이상으로 대부분 무연고, 기초생활 수급권자 100% 정부보조, 일반입소자 100% 자기부담)과 실버타운(만 60세 이상 입소가능, 2022년말 현재 전국에 36개, 7,925명 입소 중이며 고령 인구 850만 명의 0.1%)은 혼자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거주하는 형태의 주거복지시설이다.
부유층은 실버타운, 저소득층은 공공임대실버주택(일명 저렴한 실버타운으로 무주택자, 소득과 자산요건 충족 필요)은 비교적 잘 되어 있으나, 중산층이 이용할 만한 곳이 별로 없는 편이다.
따라서 중산층의 노인들은 가족과 함께 살지 않으면 각자도생을 하거나 급기야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으로 내몰리게 된다. 양로원과 요양원은 스스로 입소하거나 자식들의 권유에 의해 입소하여 죽어야 나오는, 죽으로 들어가는, 모든 걸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
화려하게 생을 마감하는 단풍잎과 대비되는 양로원과 요양원의 풍경을 아래 소개한다.
잎 떨 군 나목들이 OO양로원 뜨락처럼 쓸쓸하다.
병마와 외로움에 시달리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메마른 일상이 전개된다.
양로원 마당에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망중한을 즐기며 낯선 이방인에게 시선을 꼽는다. 행여나 자신을 찾아주는 이가 아닌가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직접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양로원에 입소해 계신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찾아보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 것인데, 사실은 그러하지 못하단다. 바리데기(부모로부터 버려졌지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약초를 구해 아버지를 살린 이야기)가 효자 노릇한다고 부유하게 사는 자녀보다도 어렵게 사는 자녀가 양로원 방문이 많다는 것이 양로원 실무자들의 이야기다.
양로원 벤치에 앉아 있는 90세쯤 되어 보이는 한 노인네의 탄식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자식 열 남매 있음 무엇 하리요. 그리고 그 자식들 유명인사면 무엇 하리요, 이 한 몸 갈 곳 없어 여기까지 흘러흘러 왔더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최고학벌 자랑하며 고생도 보람으로 알고, 자식 뒷바라지 했던들 무엇 하리요, 작디작은 이 한 몸, 자식 아닌 사람 손에 매인 것을,...보고픔만 더하더이다.”
저의 직장동료였던 한 분이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머니를 양로원에 모셔놓고 나오는데 원장이 “어머니가 이곳에 잘 적응하도록 초기에는 자주 방문을 삼가라고 권유했어요.”라고 했다. 그 뒤 양로원 원장이 어머니의 상태를 전화로 알려왔다. 어머님이 집에 간다고 날마다 옷 보따리를 싸고, 또 풀고, 또 싸고. 핸드백을 손에 든 채, 잠겨진 창문 앞에 서서 양로원 입구 쪽을 바라보며 온종일 서 계신다고 한다. 더운 여름이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행여 자식들이 오면 빨리 따라 나가려고 서 있는 거란다.
한 80세 초반쯤의 눈이 먼 한 할머니의 넋두리는 가슴을 알알하게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인생 종착역인 이곳까지가 멀고도 험하였지. 종착역에 벗은 많으나 마음 나눌 벗이 없어 외롭더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속에 맑은 정신은 더 외롭더이다. 치매로 정신을 망각함은 차라리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지만, 몸 쇠하고 정신 맑으면 무엇하나요. 괴로움만 더한 것을...가는 마당에 야속함도, 사랑도, 그리움도, 추억도, 정신에서 모두 내려놓으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 하다네.“
이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린 자식 이름을 밝히지 않으시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문소리만 나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며, 자식을 기다린다고 한다.
양로원과 요양원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르다. 박사건, 무학이건, 전문직이건, 무직이건, 재산이 많건, 적건 상관이 없다. 그곳에서는 안부 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간식이나 생필품을 많이 받는 이가 “상류층”이다. 간식과 생필품을 의료진이나 환우들에게 자주 나눠주는 이가 기거하는 방의 계급을 좌우한다.
옆자리 할머니는 교장 선생님이셨고, 아들이 고위공무원이라는데 사과 몇 알은 커녕 전화도 없어 이웃이 받은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주면 감사하다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 다.
제 아내 간병인의 지인이 지난 2022년 9월과 10월에 걸쳐 요양원에서 40여 일을 보내고 간병인을 만나러 요양병원에 왔을 때 함께 얘기를 나누던 중 ”요양원 생활이 어떠하더냐?“고 물었더니 ”군사훈련보다도 더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하는데 기상이 5시 30분. 조식이 6시 30분. 조식도 겨우 먹고 죽지 않을 정도의 칼로리. 세끼가 거의 똑같다. 간식이 한번 나오는데 빵 반 조각?. 그곳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생지옥이다.”라고 답해 준다. 그는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요양원은 가지 않는 게 좋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입소한 노인의 자식들이 원하는 바대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는 곳이 바로 요양원의 모습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 지인이 말을 이어 간다.
”요양원에 입소해 있는 노인들의 운동이 너무나 중요한데 겨우 허락된 장소가 거주하는 곳의 복도뿐이었어요. 겨우 운동한다는 것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러니 종일 시간 대부분을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수밖에 없으니 몸은 자연히 더 악화 될 수밖에 없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그 지인이 살짝 귀띔해준다.
”통상 요양원에 들어올 때는 자식하고 같이 와서 계약서를 작성한다. 이때 통상 자식들이 대필한다며 계약을 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문구가 있다. 즉 계약한 자식의 허락 없이는 요양원 퇴소를 못하게 규정해 놓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퇴소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꼼짝없이 오고 가지도 못하게 계약을 해놓았으니 나중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게 되므로 계약 시는 본인도 입회하에 이 항목을 삭제해야 만약 나오고 싶을 때 자유롭게 나올 수가 있다는 것 명심해야 한다.“
이상에서 양로원과 요양원 풍경을 간단히 스케치해보았다.
사실상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마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부분 병상에서 또는 양로원과 요양원 등에서, 심지어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많은 돈을 가지고 들어가면 우대하여 주고 좋은 시설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노년에 필요한 것은 자식보다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아울러 노후에 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 줄 이가 있다면 “노후의 가장 큰 행복”이다. 결국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관계’다. 최근 후배에게 점심을 사줬더니 후배가 “왜 항상 돈을 선배가 내느냐?”고 물어왔다. 거기에 “보험료를 많이 내야 보험금을 많이 타지.” 라고 답했다.
내가 나중에 아팠을 때 후배가 병실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가끔은 안부 전화를 걸어주거나 혹은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반갑게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투자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노후보험료를 많이 내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그래야 행복한 말년이라는 보험금이 내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앞으로 더 나이 들어 혼자되었을 때 하루 세끼 좋은 식사와 말벗이 될 친구들, 외출과 면회가 자유로운 그런 곳에 살 수 있으면 내 여생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히 준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하기에 노후에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지난한 숙제를 차일피일 미룰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노인들은 사그라져가는 모닥불 신세나 다름없을 터이다. 꽃이지만 시들어가는 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여생 길을 준비해 가는 노인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반짝이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야 한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은 오늘도 우리의 귓전에 입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여생을 준비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고, 조심하라.
문득 이승을 떠나기 전에 요양원에 3년 여 계셨던 아버님 생각이 나서 먹먹한 마음으로 아버님 영정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