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6•25 사변 직후에 금강산에서 머물던 이혜명(李慧明) 스님이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일타스님(99년 열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실화를 들려 주었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혜명 스님이 한 때 중국의 불교 성지를 두루 참배하고 명승지를 구경한 바 있다. 중국 상해의 큰 공원을 들렀는데 공원 한쪽 편의 까만 소 한 마리를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스님도 호기심이 생겨 그 쪽으로 가서 소 앞에 세워 놓은 게시판을 자세히 보니 너무나 신기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남녀노소 여러분들이여, 이 소의 배를 보십시요........중략”로 시작하여 사연에 얽힌 내용을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상해 근처에 큰 부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왕중주(王中主)에게 어떤 이유인 지는 모르나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 주도록 부탁함과 동시에 등기서류뿐만 아니라 인감도장까지 모두를 맡기게 되었고 그에게 상당한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중주는 친구의 은혜를 저버리고 합법적으로 모든 재산을 가로챘습니다. 하늘처럼 믿었던 친구가 자기 재산을 교묘하게 사취(邪取)한 것을 알게된 부자는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거지가 되다시피한 그는 조금 남은 패물을 팔아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논과 밭을 갈 암소 한 마리를 사서 길렀습니다. 몇 해가 지나자 암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의 배를 보니 글씨가 적힌 흔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자신을 배신했던 철천지원수 왕중주의 이름 석 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본 결과 왕중주는 얼마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원한으로 가득찬 그는 “그 원수가 죄값을 치루려고 내 집에 태어난 것이로 구나......, 이 놈! 잘 만났다. 사람이 죽을려면 3년 전 부터 환장한다는 말은 있다만, 너처럼 환장한 놈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네가 죽어 이제 빚을 갚으러 온 모양이다만, 송아지로 내 집에 태어난 것만으로 나의 분한과 원통한 빚을 다 갚는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이제부터 네 놈에게 원수를 갚을 터이니 견뎌 보아라.” 이렇게 다짐을 하고 그는 아주 모질고 기이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는 왕중주의 후신인(왕중주가 죽어서 빚을 갚기 위해 소로 태어남) 송아지를 가두어 놓고 끼니 때마다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밤중이 되면 촛불을 밝혀 놓고 시퍼렇게 간 칼을 들고 소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는 매여 있는 송아지 목에 큰 칼을 들이대고는 살기 띤 음성으로 속삭였습니다.
“네 이놈! 왕중주, 이 나쁜 놈! 네 놈이 이리와 같은 놈이었으니 그런 짓을 했겠지. 이 나쁜 놈! 내 너를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는다. 조금 더 키워서 잡되 그것도 한 번에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네 놈 앞에 숮불을 피워 놓고 시퍼렇게 칼을 갈아 하루에 살 한 점씩만 베어낸 다음, 네 놈이 보는 앞에서 구워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네 이놈! 단단히 들어 두어라.” 그는 이렇게 매일 같이 계속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왕중주의 이름이 새겨진 송아지는 삐쩍 마르기만 할 뿐 자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을 지내고 있던 어느날 왕중주의 아들이라며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마당 한가운데에 넙적 엎드려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어르신네, 제발 널리 용서해 주시옵고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재산을 모두 돌려드리고 모든 것을 영감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부디 아버지만 살려주십시오.” 아들은 수없이 절을 반복하며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금 꼭 돈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너의 아버지 소행이 너무나 괘씸하고 분함을 참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이며, 어떻게 이런 사연을 알게 되었느냐?”
“저희 선친이 어르신네의 은공을 저버리고 사취한 것을 저도 짐작은 했으나 자세히는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러 달 전부터 어머니와 선친께서 저의 꿈에 나타나시어 그 동안 지은 죄를 소상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네 집의 소로 태어나 죄 값을 갚으려 하지만,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소의 몸을 버리고 나더라도 다시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괴로움도 괴로움이거니와 재산을 어서 돌려드려야만 당신의 죄를 벗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 부친께서 자세한 내용을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이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가족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고, 그 내용을 알면 저희들이 떳떳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계신 이곳을 꿈속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모든 재산 문서를 이렇게 가지고 와서 사죄를 드리오니, 널리 용서하시옵소서. 부디 이것을 거두어 주시고 저희 아버지를 돌려 주시기만 하면, 그 은혜 백 번 죽어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간청하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하여 재산을 되돌려 받고 송아지를 내어 주었다. 왕중주의 아들은 아버지 후신인 송아지를 데리고 가서 음식도 잘 대접하고 각별히 보살폈습니다. 그 소가 자란 다음에는 공원에다 좋은 우리를 만들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여물을 쑤어 대접하면서, 오가는 만 천하 사람들이 이 소를 보고 경각심을 일으켜서 인과를 믿고 선행을 닦으라는 뜻으로 사연을 쓴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인과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갚아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죄를 짓고,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짓기도 하면서 죄를 많이 짓게 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사성육범(四聖六凡)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네가지는 성인의 요소를, 여섯가지는 범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인의 요소는 부처님의 요소, 보살의 요소, 성문과 연각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처와 보살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도둑질을 일삼는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가 한 할머니가 리어카에 무거운 짐을 싣고 언덕을 오르는 것을 보고 측은 심이 들어 뒤에서 밀어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육범은 흔히 육도라고 하는데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의 여섯 요소를 말합니다. 반면에 착한 사람도 악인의 모습의 행동을 할 때가 있지요, 친구의 꼬드김을 받고 죄업을 짓는 일에 공범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내부에 감추어진 이 열가지 모습이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좋은 일만 하고 살기는 힘들지요, 반면에 평생을 악한 일만 하기도 힙들지요, 당시의 인연에 의해 착한일도 하고 악한 일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항상 착한일 좋은 일을 하도록 늘 고민하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자신이 지은 죄업은 반드시 자신이 되돌려 받는 다는 인과의 법칙을 깊이 믿고 신뢰해야 향상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善을 증장시키는 일을 즐겨 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