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부산시조 하계세미나 르포 >
시조에 숨을 불어넣다
- 2017 부산시조 세미나를 마치고
김덕남(부산시조 사무국장)
2017 부산시조 세미나가 8월 18일(금) ~ 19일(토) 1박 2일의 일정으로 창녕 성씨고택에서 열렸다. 부산시조 회원 41명과 서울 시조시인 4명, 경남 시조시인 4명이 참석했다. 마침 제1회 새싹시조문학상을 부산시조 세미나 시 시상하기로 하였기에 수상자 양계향 시인과 축하하러 온 서울과 경남의 시조시인들이 함께하여 행사가 더욱 성대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바깥 날씨는 더웠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회원들의 얼굴은 함박꽃이 피고 노랫소리는 흥겨웠다. 양파시배지 표지석상을 지나 고택에 들어섰다. 성씨고택은 1929년 건립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355호)로 지정되었으며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채, 사랑채, 별당, 영주집, 아석헌, 본가, 석운재, 청수당, 경근당, 별당정사, 행랑채 등의 규모로 보아 이 집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정원에 한반도 모양으로 조성된 연못을 보면 주인의 나라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을 실감한다. 현재 고택은 영원무역(노스페이스) 성기학 회장의 소유로 되어 있다. 나라 발전의 바탕은 바로 학문 발전이라는 성 회장의 철학에 따라 대강당을 신축하여 세미나 장소로 제공하고 한옥도 숙소로 개방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용목적에 합당하면 무료이며, 행사경비까지 지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뜻깊은 장소이다.
3시 30분부터 대강당에서 제1부 행사로 전연희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노중석 시인(영원무역 이사)의 축사와 정해송 자문위원의 격려사가 있었다. 이어 축하공연에 들어갔다. 김석이(「목련꽃받침 주워 들고」), 윤원영(「오래된 사진, 명동성당에서의 결혼」), 천성수(「복권을 사는 날」) 회원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시조 낭송을 하였다. 이어 부산여류시조가 아카펠라로 ‘사랑하는 까닭’ ‘푸른 열매’를 중창으로 불렀다. 다음은 필자의 가야금 반주에 맞춰 이상훈 회원이 개사한 ‘아리랑’과 ‘밀양아리랑’ ‘꽃노래’를 불러 흥을 고조시켰다.
제2부 행사로 시조의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세미나 발표가 있었다. 이성호 회원이 ‘시(詩, 時調)의 종자와 만남’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시(詩)는 말을 고르는 일이며, 살아있는 정신적인 생물로 대상과의 교감을 통하여 시를 창작하’며 조지훈과 박목월, 유희경과 매창, 안민영과 박효관을 예로 들어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손영자 회원의 ‘妓生시조의 情과 恨’이란 주제로 발표가 이어졌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읊은 황진이는 6수를 남겼다. 솔이(松伊)는 14수(청구영언 수록)를 남겼지만 황진이에 가려서인지 그만한 유명세는 타지 못했다. 임을 그리는 뜨거운 상사의 정한과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비유로 시조를 쓴 솔이의 시조를 중심으로 발표하였다. 서관호 회원은 ‘동시조는 시조의 미래’라는 주제로 ‘동시조의 필요조건, 충분조건’과 ‘동시조의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동시조는 동심이 생명이며, 어린이를 키우는 노래로 말랑말랑해야 하며 반듯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다. 서관호 회원은 시조의 텃밭을 일구는 《어린이 시조나라》 발행인이며 이번에 새싹시조문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는 등 시조의 미래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세미나 발표 후 귀촌가든에서 단합과 정담을 나누는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만찬 후 제3부 행사가 이어졌다. 회원을 5개 조로 나누어 준비한 퍼포먼스로 각자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추첨으로 정한 순서에 따라 ‘꽃’조(2조장 김정)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꽃밭에서’ 노래로 처음과 끝을 장식했으며 꽃과 관련한 자작시조를 낭송하였다. 조용한 음악 아래 제만자의 「괭이밥」, 이상훈의 「달맞이꽃」, 김정의 「장미꽃 엄마」, 배종관의 「밤꽃」, 배리라의 「꽃밭에서」 등 꽃시를 통해 우리네 삶을 낭랑한 목소리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낭송하였으며 윤원영 회원의 아름다운 노래와 이규철 회원의 열창이 감동을 주었다.
‘여자의 일생’조(5조장 정희경)에서는 ‘여자, 시조를 만나다’란 제목으로 다섯 마당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당이 열리기 전 이정재 회원이 ‘나더러 시인되라 소망하시는 아버님’으로 시작하는 「복수초」를 낭송했다. 첫째 마당에
는 어린시절, 처녀시절, 결혼식 사진을 올려 아련함을 주었으며 신진경, 정애경 회원이 손무경의 「사랑」을 낭송했다. 둘째 마당에는 엄마 닭과 병아리 가면을 쓴 김정수 회원 등 7명이 등장하고 서관호 회원이 「엄마 닭과 병아리」를 낭송하여 육아시절을 표현하였다. 셋째 마당은 집안일을 하는 무대로 최성아 회원이 「부침개 한 판 뒤집듯」을 실감나게 낭송하였다. 넷째 마당은 어머니를 저승으로 보내는 이별의 장면을 필자의 시조 「젖꽃판」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이별의 아픔을 담은 ‘한네의 승천’을 불러 어머니를 승천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다섯째 마당에는 ‘시조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큰 항아리에 둘러 앉아 시조를 조리질하는 모습과 정희경 회원이 「조리에 관한 명상」을 낭송하는 것으로 마감하였다. 여성의 삶을 여러 소도구와 분장으로 볼거리를 제공하여 큰 관심을 모았다.
‘나무’조(4조장 이옥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한 나무의 한 살이를 조원들이 나무가 되어 연기하였다.
이옥진의 「목련, 시간을 풀다」, 김석이의 「비탈에 선 나무」, 안귀녀의 「한여름 오름」, 천성수의 「추억 속에 피는 여름」, 김소해의 「질문나무」 등을 낭송과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이성호 회원은 바람에 휘거나 꺾이는 나무를 아슬아슬한 온몸 묘기를 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오기환 회원의 엉거주춤한 연기도 사뭇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사랑’조(조장 김임순)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 낭송, 춤까지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무대가 열리자 음악에 맞추어 김임순 회원은 낭창낭창하게 춤사위를 멋들어지게 보여줬다. 장정애 회원의 기타 반주에 맞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로 흥을 돋운 뒤 노래와 춤을 곁들인 오페라타 형식으로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자작시 낭송 말미에 가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주 멜로디를 추임새로 넣어 트로트장으로 만들었다. 손영자의 「옛사랑」 추임새로는 ‘다디미돌 빵꾸 나겠네 ~’ 박옥위의 「개망초 꽃이 있는 풍경」에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무색하게 ‘개망초꽃 다 시들겠네 ~’로 최정옥의 「부부」에는 ‘전용신과 최정옥이다 ~’로 장정애의 「벚꽃 단상 2」에는 ‘벚꽃지고 날 샜다카네 ~’로 전연희의 「화석」 에는 ‘전연희도 숯덩이란다 ~’를 도니제티의 아리아로 맺었다. 김임순의 「비어 있어도」에는 ‘빈 자리도 쓸어안는다 ~’로 막을 내렸다. 사랑의 여러 모습 즉 눈물, 헌신, 기다림이라는 메시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마지막으로 ‘자갈치’조(3조장 손증호)에서는 자갈치의 내력을 김병한 회원이 변사조로 유장하게 낭독하면서 첫째 마당의 장을 열었다.
둘째 마당에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가 슬로건인 자갈치시장을 안영희 회원의 「자갈치」로 시작하여 ‘자갈치 아리랑’을 정현숙 회원이 선창하고 조원은 후렴으로 맞받았다. 최옥자 회원의 신나는 장구장단에 맞춰 자갈치 사람들의 웃고 우는 하루하루를 아주 코믹하게 펼치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셋째 마당은 권애숙의 「자갈치의 달」을 강신구 회원이 낭송하고 손증호 회원은 「우리는 자갈치에 가야 한다」를 낭송하면서 장마당을 파했다. 흥남부두의 영상이 리얼하게 펼쳐지고 각 마당과 마당 사이 ‘굳세어라 금순아’를 노래하여 참여자 모두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잔치를 베풀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한 결과를 취합하는 동안 각 회원들이 찬조한 경품으로 환호와 박수, 탄식이 이어졌다. 박달수 심사위원장의 예리한 눈으로 분석한 결과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총평을 해주었다. 각 조의 장단점을 족집게로 찍어내듯 하나하나 위트와 유머를 얹어 총평을 해주니 흥겨운 퍼포먼스가 더욱 격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여름밤은 짧아 공식행사를 끝냈으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한담. 자연스레 축제 한마당이 이어졌다. 이상훈 회원의 사회로 노래와 춤은 뜨거웠지만 아쉽게도 풀벌레 소리 들으며 배정된 각 방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잠들지 못하는 성씨 고택의 밤은 깊어만 가고 몇몇 회원들이 석운재 대청에 모여 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달래야 했다. 한 두 사람 불어나 10여명의 여류회원과 청일점 서관호 회원이 정취를 만끽하던 중 필자가 분위기에 도취되어 가야금을 뜯자 최옥자 회원이 흥을 못 이겨 즉흥춤을 추기 시작했다. 추녀가 날아갈 듯한 아름다운 밤, 고택의 시계는 새벽 3시였다.
이튿날 아침은 해장국으로 속을 다스리고 창녕 석빙고(조선 영조 때 축조)를 관람한 후 서울 회원들과는 헤어져야 했다. 제1회 새싹시조문학상을 수상한 양계향 시인과 그 일행들을 노래로 전송하였다. 오는 길에 김해박물관에서 가야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00년 가야의 역사가 박물관에서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역사를 불러내어 숨을 불어넣는 시조를 창작할 것이다. 이어 평가회를 겸한 점심은 특갈비탕으로 한 후 1박2일 일정의 세미나를 마무리하였다.
이번 세미나를 담당한 이옥진 회원, 처음부터 끝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진두지휘한 전연희 회장, 다양한 기념품과 경품을 제공해 준 이석래 회원을 비롯한 열네 분의 협조로 행사는 더욱 알차고 빛이 났다. 무엇보다 이 세미나 장소와 경비 지원을 주선한 임종찬 자문위원, 기꺼이 협조해준 노중석 시인께 감사드린다. 소중한 시간을 회원들과 함께 하여 시조를 좀 더 깊이 있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람을 느꼈다. 고마운 마음 전하여 이 세미나가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 《부산시조》 2017. 하반기호 (통권 제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