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인천에서 태어나 4세 때 귀가 안 들리는 것을 부모님이 아셨고, 저에게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말이 느려 1년 늦은 9살에야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시려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수영을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3학년 겨울 방학쯤부터 수영이 재미 있어 열심히 했고 그 덕에 수영 특기생으로 선화여중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영을 하다 보니 흥미를 잃게 됐고, 흥미를 잃으면서 수영 실력은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저희 아버지에 대해 말씀드리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철인3종 경기를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모릅니다.)
수영에 흥미를 잃고 있던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하려 했으나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수영부에 몸담았지만 기록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 때는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고 내성성적인 성격으로 어울리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고교3학년에 되던 해 드디어 철인3종 경기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싸이클까지 1위로 독주했지만 근전환 실패로 마라톤에서 떨어져 3위로 골인 후 기절했었고,
다시는 철인3종을 안하겠다고 했지만 몇일 지나지 않아 그 환희를 잊지 못해 3종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고교3년 12월에 필리핀대회 주니어 1위를 확정 지으며, 대학 진학할 길이 있었으나 교수님의 불의의 사고로 무산되고 졸업 후 철인3종 연맹 회장님의 추천으로 설악 국제마라톤 풀코스에 나가 우승하면서, 강릉대학 육상부 감독님께서 같이 하자고 하셨지만 철인3종만이 길이라는 생각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 후로도 대학이나 실업팀의 여건이 맞지 않아 일반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다시 편입까지 학업을 하면서도 철인3종 경기는 한해도 쉬지 않고 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여러 매체에서도 인정을 해주셨고, SBS 조오련 통일바닷길 종단팀에도 같이 할 수 있었고, KBS 도전지구 탐험대, MBC 세계7종 모험경주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철인3종과 더불어 도전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기에 모든 게 다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20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수영 강사 일을 하려고 알아보았으나 의사소통의 문제로 일자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좌절의 순간 다시 생각나는 건 도전이었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뉴질랜드로 사비를 털어 훈련을 떠났고 6개월간 훈련 후 귀국 하여보니 전국체전에 트라이애슬론 여자 정식종목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하늘이 도와주시는 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는 4년간 인천시 체육회 소속, 1년간 대구체육회 소속, 총 5년간 실업팀 선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던 인천장애인 체육회 지도자 면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통영시청에서 통영시청 소속으로 뛰어 달라고 연락이 왔고 많은 고민 끝에 다시 통영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7세를 끝으로 통영시청 소속으로의 활동을 마치고 은퇴하여 인천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7세때 장애인 체전에도 육상 선수로 출전하게 되면서,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에 대해 알게 되면서 훈련에만 열중하려 했으나 일정한 수입이 없어 마라톤대회 상금이나 다른 비정규 수입으로 생활하며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4년전 소피아 데플림픽 대회 참가하기 위해 노력하여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57분의 개인 최고기록을 올릴 정도로 몸을 만들어 대회 출전을 알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피아 데플림픽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다시 4년간 철인3종 대회에도 출전하면서 마라톤 훈련을 계속 해왔고, 드디어 삼순 데플림픽을 앞에 보이기 시작한 2016년 4월 갑자기 복통으로 병원에 가보니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씀에 좌절하였다.
그 재활까지 4,5달을 쉬고 다시 몸을 올려보려 했지만 생각 같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열심히 뛰었다. 8월 여주 철인3종 대회 릴레이 수영종목 출전을 시작으로 전국체전, 장애인체전까지 출전한 후 대망의 중앙 마라톤 대회, 국제대회의 기록으로 국가대표 선출이 된다고 알고 있었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4년전 최고기록을 올릴때에 비해 몸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수술 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고 다행이 대표팀에 뽑히게 됐다.
처음으로 나가는 올림픽이라 걱정도 많았다.
다행이 주변에서 도움 주시는 분들이 많아 차근차근 마음에 준비를 했고 대회 마지막 국제대회인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5분으로 몸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4월 데플림픽 국가대표 모임 후 6월부터 있을 합숙훈련을 대비에 나인어택 황문상 단장님의 지도하에 개인훈련을 하였고, 6월 11일 한국체대 합숙 훈련에 들어가 약 열흘간 몸을 만든후 다시 이천 선수촌에 입촌하여 훈련을 했습니다.
그렇게 7월 3일 결단식후 1진이 먼저 출발한후 우리는 2진으로 17일 밤 출국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먼 여정을 지나 도착한 삼순은 시골 마을 같은? 친근한 동네였다.
바닷가 쪽 숙소에 배정되어 참 좋았지만, 경치구경도 잠시 대회에 대한 부담감이 커져갔다.
식사는 뷔페식이었는데 입에 맞지 않아 고생도
많았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시차적응도 마쳤고 도착 10일 만에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대회전 선수명단과 기록을 보니 나는 4위 였다.
1위 독일 2:46, 2위 2:59, 3위 3:01... 랭킹 4위 였지만 당일 컨디션으로 순위가 매겨질 것으로 보였다.
감독님께서는 할 수 있다고 힘을 넣어주셨고 코치님께도 항상 긴장을 풀어주시려 노력해 주셨다.
7월 29일 오전 7시반 출발.
참가선수 총 12명. 초반 오버페이스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초반 만미터 출전했던 선수들이 무서운 페이스로 치고 나간다.
나는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초반 4,5번째로 달리고 있었다. 중간중간 우리나라 선수들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 주는데, 많이 울컥했다.
초반 치고 나갔던 1만터 선수들은 중간에 포기했고 3위로 달리는데 2위 선수와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걸 알고 페이스를 올리는데 30키로쯤 종아리부터 근육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뛰어야 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눈물이 난다. 뒤뚱뒤뚱 억지로 달리면서 뒤를 계속 쳐다봤다. ‘이렇게 가다가는 4위에게도 잡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가 늦더라도 달려보자. 천천히 라도 달려야 한다.’ 간신히 5:30초 페이스로 달려서 골인.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대로 쓰러져 부축 받아 마사지 받고서야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상식장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다음에 한번더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생각을 한다.
그리고 폐회식 후 귀국 전 하루의 시간 대표팀 선수들과 스텝분들과 관광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이스탄불 공항으로의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돌아와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새벽에 깨면 조깅을 다녀왔고 그렇게 몇일이 지나도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계속됐다.
이게 단순 시차적응인지 아니면 아쉬움의 느낌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목표가 있고 도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대회 준비하는데 너무너무 감사한 분들.
감독님, 코치님, 트레이너님, 수화통역사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같이 했던 선수분들 부족한 저를 주장으로 뽑아주시고 잘 따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한 장애인 체육회, 대한 장애인 육상연맹, 한국 농아인 스포츠연맹 임원님들 여기서 진심으로 표현 못할 정도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에게 스폰해 주셨다.
아디다스웨어 고글, 컴포트 양말, JK SPORTS 김주경 대표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인어택교실 가족, 아라한클럽, 인천 장애인체육회, 인천장애인육상연맹, 인천 동구청, 인천시 농아인 협회, 인천 농아인 체육연맹,,,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계신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지만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첫댓글 오선수 반듯이 좋은일 있을거에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꼭 복이 찾아오고든요
다음에 또 도전 있으니 화이팅
하고 또 달리자고
넘 고생하고 참 잘했어 토닥토닥
오 선수 화이팅!! 뭉클하다~^^
넘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즐기면서 잼나게 운동하세요~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네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겁니다~~~
화이팅!!!!!
그런데 별명이 혹시 '오작가' 아닌가요? ㅋㅋ
글을 잘 쓰네요~
고생했다. 도전이 인생이야 끝까지 가는거야 그게 진정한 삶이야
네 맞습니다^^;; 도전이 인생이라 끝까지 가는게 같습니다 그게 삶인게 깨달았습니다 ㅎ
긴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나 글 읽어보니 참 노력도 많이하고 많은 시련도 있었네 그래서 더 멋진것 같아 앞으로도 우리링 같이 운동하고 잘 이끌어주길 바래 화이팅ㅎㅎ
고생많았으! 오선수!
금문도에서 칠리새우랑 고추잡채랑 짬뽕시켜 함 먹자구~~
구례대회끝나고 함 연락할께!
그동안 대회준비랑 대회하니라
수고했네!
영양보충 함 혀자구!
늘 응원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