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02
보통 선수단은 5월쯤 휴가를 마치고 훈련에 복귀하는데, 전 시즌을 마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선수가 있고, 수술과 재활을 병행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체중과의 전쟁이다.
배구는 종목의 특성상 체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복적으로 점프를 하고 공중에서 변형된 동작들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그만큼 허리와 무릎에 부하가 많이 걸려서 부상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나도 선수 시절 체중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다.
▲ 습관처럼 모아둔 인바디의 흔적 사진(한국 전력 시절)
내 지인들은 아직도 내 체중이 선수 시절과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20년간 프로선수로 활동할 당시 내 평균 몸무게는 88~90k를 유지했다. 2021년 5월 은퇴 후 시간이 흐른 지금, 내 몸무게는 90~93kg이다. 겉보기엔 큰 체중의 변화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갑작스럽게 불어난 체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08년 5월, 내 나이 28살 때 일이다. 당시 나는 현대캐피탈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보냈다.
2미터 키에 몸무게는 85kg. 그 시절엔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라고 얘기해도 될 만큼 몸이 가벼웠고, 힘도 있었다.
그런데 그전 시즌 정규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경기 도중 눈에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했고, 가장 중요한 시기인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을 남긴 채 시즌을 접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초반 훈련 도중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수술이 불가피했다.
시력회복은 시간이 필요했었고, 손가락 수술은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는 게 낫다는 팀과 나 자신의 판단하에 수술대에 올랐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포지션의 특성상 정확한 공을 보는 눈과, 높이로 상대 공을 막아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수술 후 재활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시력은 회복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기에 수술 후 한 달 가까이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절대 안정, 절대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휴식 후 한 달 만에 팀에 복귀했더니, 주변의 반응은 놀라웠다. 한 달 사이 내 체중이 12kg 가까이 불어나, 코칭스태프조차 나를 못 알아볼 정도로 내 몸에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처음 체중계에 올랐을 때 나는 인바디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렇게 몇 번을 다시 재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수술 전 8~9%대를 유지하던 체지방은 20%대까지 올라갔다.
말 그대로 거인이 따로 없었다. 평소 헐렁하게 입었던 유니폼도 꽉 맞다 못해 자칫 몸을 잘못 움직였다가는 금새 실밥이 터져나갈 기세였다. 숙소 복귀 후 워밍업을 하는데, 당시 김호철 감독님께서 놀라는 표정과 함께 저놈이 무슨 생각으로 몸을 저렇게 만들어 왔지!라는 의구심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윤봉우, 뒤뚱뒤뚱 뛰지 말고! 똑바로 뛰어!!!!!”
그런데 웬걸. 감독님이 호통을 치셔도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 현대캐피탈 시절 산악 러닝 훈련 / 현대캐피탈 제공
대부분 프로배구 남자 선수들은 체지방 10% 미만을 유지한다. 간혹 시각적으로 몸이 좋아 보이는 선수들은 3~4%대를 유지하는 선수도 있다. 나도 한때는 체력적인 면에서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땐 ‘체중과의 전쟁’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대부분의 배구 팬들은 선수들을 떠올릴 때 하얀 피부에 길쭉한 팔다리를 연상한다. 겉보기엔 잘 느낄 수 없어도 배구 선수들 또한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데 안간힘을 쓴다.
5월 휴가 이후 팀에 복귀하면 선수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도 몸무게 측정이다. 만약 살이 많이 붙어서 온 선수라면 그때부터는 지옥의 문이 열려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선 기초체력을 만드는 훈련을 시작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훈련마저 따라가기 버겁기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체중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매일 식사시간엔 철저한 식단 관리로 원하는 체지방이 만들어질 때까지 샐러드에 의존해야 한다.
아침도 샐러드, 점심도 샐러드, 저녁도 샐러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반복하다 보면 풀만 봐도 무섭다. 물론 선수들에게는 단백질 보충도 필수다. 이때 단백질은 프로틴으로 보충한다.
그렇게 삶에서 먹는 즐거움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갈 때쯤 살과의 전쟁에서 매일 체중계 위에 올라 몸의 변화를 확인한다. 훈련의 강도는 나날이 올라가고, 철저한 식단 관리로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2~3주 정도 지나면 체중과 체지방, 근육량까지 제자리를 잡는다.
체중!
배구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체중이 본인의 경기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배구 선수들은 제자리를 잡은 몸 상태라면 기본적인 훈련만 소화해도 워낙 점프 동작이 많은 종목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또 공중에서 중심을 잡고 때리는 스파이크와 블로킹 등 코어의 영향이 많은 스킬들이 많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 또한 몸을 키우는 것보다는 밸런스에 초점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둔다.
배구를 잘하기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깨는 강화하고, 중심에 필요한 등 운동과 코어는 단단함과 유연함을 유지하면서, 점프를 가볍게 할 수 있도록 허벅지와 종아리는 탄력을 유지하는 운동을 한다.
/ 한국배구연맹 제공
이러한 목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트핏과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선수들이 많다. 많은 시상식에서 배구 선수들을 본다면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
배구 선수들은 몸매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배구를 위한 몸을 만들다 보니, 많은 팬분들이 배구를 보러 오시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되어간다고 생각을 한다.
선수들은 이 단단해진 몸으로 팬분들이 원하는 더 다이내믹하고 호쾌한 배구를 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윤봉우 / 전 프로배구 선수, 현 이츠발리 대표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