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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 서광일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파란시선(세트 0015) / B6(신사륙판) /
148쪽 / 2017년 9월 18일 발간 / 정가 10,000원 / ISBN 979-11-87756-10-1 / 바코드 9791187756101 04810
신간 소개
꽃이여, 언젠가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서광일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가 2017년 9월 18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서광일 시인은 1973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했으며, 1994년 <전북일보>, 2000년 <중앙일보>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03년부터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며, 주요 출연 작품으로 「에쿠우스」 「당통의 죽음」 「맥베드」 「황구도」 「싸지르는 것들」 「삼국유사프로젝트 꿈」 등이 있다.
놀랍지 않은가. 23년 만이다.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는 21살에 등단한 청년 시인이 등단한 지 23년 만에 펴내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물론 시를 다듬고 매만진 기간이 시의 좋고 그렇지 않음을 가르는 기준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서광일 시인의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는 그 한 편 한 편이 매섭고 웅숭깊고 비범하다. 서광일 시인의 시는 정말이지 군더더기가 단 한 구절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서광일 시인의 시가 단지 간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경영 전략은 때로 청소년 혹은 청소 노동자의 입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때에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의 핵심을 향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바투 직핍한다. 한마디로 서광일 시인의 시는 생생하다.
그 현장엔 독신자 아파트에서 “이혼한 엄마 남편과 밥을 먹”고 있는 당신이(「풍림아파트 106동 407호」), “저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일 년”이 넘은 남편과(「웅덩이」)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는 “삼양연립 201동 401호”의 당신이(「마침」), “고래를 잡으러 로또 방에” 출근하는 당신이(「고래밥」), “이 계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돈”이라고 생각해야만 버틸 수 있는 당신이(「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확 그어 버리고 싶”은 당신이(「도라에몽과 딸의 재구성」), “공짜로 공연도 보여 주고 선물에 관광에” 들뜬 당신이(「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이들이 다른 동네 애들과 어울릴까 봐” “아파트 단지에 학교 후문에 번호키를” 다는 당신이(「바통을 놓친 이어달리기 선수 4」), “연명하기 좋은 계절”이라며 “번데기처럼 오므리는 노숙인들”이(「엄습」), “뭔가에 쫓기는 듯” 매번 어디에서나 도망칠 수밖에 없는 불법 체류 노동자가(「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차에 타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다가(「소녀시대 1」) “졸라 빡”친 소녀가(「소녀시대 5」), 그네를 타며 욕을 하고 미끄럼을 타며 욕을 하고 평행봉에 매달려 욕을 하다가 헤어지면서까지 욕을 하는 아이들이(「놀이터」), “도무지 아침이 올 것 같지가 않”은 아르바이트생이(「아침이 올 때까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라고 얼렁뚱땅 눙치는 당신이(「드림고시원 301」), “버려진 전단지처럼 몰려다”니는 당신이(「바로 그때」), “그 어떤 장래 희망의 위용도 무너뜨린 건물주라는 직업을 얻기 위해 참새처럼 조잘대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새」), 그리고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세월호의 아이들이(「신호 대기 중 할증택시」 「不在」), “버리고 갈 식기까지 깨끗이 씻어 말”리는 그 아이들의 부모가 있다(「이사」).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바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견디고 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스스로 “하염없이 꽃잎”이기도 하다(「봄 1」).
이찬 평론가가 서광일 시인을 두고 ‘시인-연기자’를 넘어 ‘시인-사제’라고 명명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즉 서광일 시인은 참으로 비루하고 참담하고 남루하고 힘겹고 때로는 비겁한 우리의 생을 다만 연기하거나 위무하는 게 아니라,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 버린다. “누군가 지금도 세상을 빠져나가고 있을 테지만”(「불편하면 여기서 나가도 좋다」), 모두가 저마다 꽃 하나씩을 품고 있을 당신에게 서광일 시인은 기어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아직도 거기 있네” “깊고 푸른 그 속에”(「눈물」), “온몸이 전부 투명한 씨앗”(「성에」)인 생이여, “언젠가 나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그림자」).
추천사
이 사람을 보라. “8평 반 지하에서 온몸으로 드리핑을 완성”(「웃는 여자」)하는, 또는 “마침 아기를 재우고 걸레를 빨던 삼양연립 201동 401호 은경 씨”(「마침」) 같은 사람, “이 직업의 미학은 참는 거야”라고 말하는 “말이 곧 직업인 그녀”(「토한 자국」)와 “독신자 아파트엔/아무도 혼자 살지 않는다”고 외쳐 대는, 그리하여 “당신은 애인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이혼한 엄마 남편과 밥을 먹기도 하고/작은방을 월세로 내놓기도”(「풍림아파트 106동 407호」) 하는 그/그녀를 보라.
저 인물 군상들의 박물지 위에서 서광일은 마치 어떤 사람에게 빙의된 것처럼, 아니, 바로 그 사람인 듯 ‘-되기’의 무대에서 파란만장한 생의 겹주름들을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 아니, 그/그녀의 무수한 실존과 그 낱낱의 감정들을 이미 천연덕스럽게 살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또한 연극적 대사와 시적 고백의 현란한 엇갈림이 “수면의 파문처럼 겹쳐 떨리”(김현)면서 “나는 너다”(황지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전율스런 공명의 파토스를 우리의 명치끝으로 찌른다. 하기야 “우덜 같은 계약직. 요샌 뭐 계약직 말고는 당최 일자리가 없는 모양이등만”(「고백이 필요해」)에 주름진 저 비루하고 난폭한 실존의 고해성사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마디마디에 매복된 정동의 뇌관들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감당키 어려운 분노와 절망과 허무를 토로할 수 있을 뿐.
우리 모두가 겪어 내고 있을 무수한 노동 감정의 얼룩들과 그 신음과 절규와 비명들을 단단한 보석처럼 예리하게 벼려진 말들의 짜임새와 침묵의 그림자로 빚어내는 비범한 솜씨를 보라. 결국, 서광일은 그 말의 참된 의미에서 좋은 ‘시인-연기자’로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는 그 어떤 시인보다도 세계의 이지러진 진실을 함께 앓아 내려는 윤리학적 근본주의자이기에. 아니, 타인의 고통을 제 온몸으로 정화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사제’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리하여, 저 ‘시인-사제’로서의 서광일이 미칠 듯이 연출하는 대속(代贖)의 무대 위에서 제 온몸을 불사르며 휘황한 빛으로 치솟는 정동의 천재성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거듭나는 가슴 벅찬 드라마를 우리는 함께 목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덜 마른 채 달려와 내가 어느새 흠뻑 젖을까 봐”(「세탁기를 돌렸더니 당신이 돌아왔네」)라는 저 가공할 감염력의 파장에 깃든 어떤 운명처럼.
―이찬(문학평론가)
시인은 버스 정류장에 서 있고, 사람들은 버스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본다. 시인은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이별의 기미들을 읽어 내고, 자신의 부모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 이미 단절과 이별의 종착점 어디쯤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 관계의 단절은 어머니, 아버지의 부재만이 아닌 곧 자신의 부재임을 시인은 감지하면서, 이 무채색의 겨울 풍경에 지워진 자신을, 곧 ‘부재’를 아로새긴다. 버스 정류장을 오가는 사람들과 무관한, 일상의 단절은 쇠락해 가는 겨울의 데카당스한 풍경 속에 적절히 스며들면서, 시인의 부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데카당스한 시선은 퇴락과 부패, 소멸을 품고 있지만, 여타의 시에서처럼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부재를 긍정하는 이 자기부정의 데카당스는 ‘종말’을 뜻하는 12월의 반복에 대한 우려와 물질주의 비판을 품고 있지만,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처럼 시인은 종내 이 허무와 종말을 긍정하고야 마는, 쇠락의 기운으로 빛나고 있다. 이 역설적 긍정의 힘이 이 시집을 통해 보여 준 시인의 데카당스에 대한 예민한 촉수, 일상에 대한 빼어난 소묘와 더불어 그의 시를 더 넓은 지평으로 이끌리라 믿는다.
―정은경(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저자 약력
서광일
1973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했다.
1994년 <전북일보>, 2000년 <중앙일보>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극단 <작은 신화>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다.
시인의 말
상추와 토마토 모종을 심고 물을 뿌리는 일도
채석강 물보라에게 가슴 안쪽을 내어 주는 일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하나하나 돌 위에 새기는 일도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 지구의 속삭임도
어쩌면
당신에 관한 생각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봄 1 ― 13
봄 2 ― 14
봄 3 ― 16
마침 ― 17
웃는 여자 ― 18
치부 ― 20
토한 자국 ― 22
어제 생긴 라이터 ― 24
웅덩이 ― 26
엄마가 ― 28
세탁기를 돌렸더니 당신이 돌아왔네 ― 30
소녀시대 1 ― 32
소녀시대 2 ― 34
소녀시대 3 ― 35
소녀시대 4 ― 36
소녀시대 5 ― 38
제2부
성에 ― 41
숫돌 ― 42
저수지 ― 44
젖내 ― 46
때깔 ― 47
나무거울 ― 48
이 ― 50
이사 ― 53
계란형 ― 54
발원지 ― 55
글쓰기 좋은 시간 ― 56
복숭아 ― 58
제3부
눈물 ― 63
풍림아파트 106동 407호 ― 64
바로 그때 ― 66
정읍사 ― 68
겨울 골목 빵집 앞 ― 70
고래밥 ― 71
드림고시원 301 ― 72
아침이 올 때까지 ― 74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 76
엄습 ― 78
터질 ― 80
노랑노랑노랑 ― 81
그림자 ― 82
신호 대기 중 할증택시 ― 84
不在 ― 87
제4부
바통을 놓친 이어달리기 선수 1 ― 91
바통을 놓친 이어달리기 선수 2 ― 93
바통을 놓친 이어달리기 선수 3 ― 95
바통을 놓친 이어달리기 선수 4 ― 97
나비 ― 100
불편하면 여기서 나가도 좋다 ― 102
아무것도 아닌 데칼코마니 ― 104
놀이터 ― 106
Traffic cone ― 108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 110
고백이 필요해 ― 112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 114
구연동화 워터월드 ― 116
새 ― 119
도라에몽과 딸의 재구성 ― 122
방어흔 ― 124
해설
정은경 봄, 데카당스의 서막 ― 126
시집 속의 시 세 편
웃는 여자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웃었다
너무 지쳐 오는 길에 한잔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개 안 되는 문장의 주어는 고객님이다
CCTV
그 속에서 웃고 있을 자신을 상상한다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 앞에는
쓸데없이 손님들이 많다
문을 잠그고 창을 닫고
욕을 하며 잡히는 대로 집어던진다
매니큐어가 튀고 스킨로션이 터진다
침대 시트에 피가 흥건한 날도 있었다
거울 속에서 흘기고 있는 쟨 누굴까
헝클어진 모나리자 티슈처럼 웃었다
울었다 선풍기 목을 부러뜨렸다
스마트폰을 박살냈다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8평 반 지하에서 온몸으로 드리핑을 완성한다
거울 조각 속 수많은 그녀가 운다
웃는다 마스카라처럼 흘러내린다
내일은 모처럼 쉬는 날이다 ***
풍림아파트 106동 407호
당신은 407호에 대해 잘 안다
방, 화장실, 거실 겸 방, 베란다
독신자 아파트 복도식 독립동
덜컹 현관문이 열리더니
할아버지와 손녀가 손을 잡고 나왔다
꼬부랑 할머니가 들어갔다
부부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있는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베란다에 이불이며 옷가지가 잔뜩 걸렸는데도
소리가 소리를 넘어 위층으로 올라온다
쿵이 쾅을 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복도에 모인 항아리와 화분들과 당신은
삼대가 함께 사는 가능성과 마주한다
당신은 애인 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이혼한 엄마 남편과 밥을 먹기도 하고
작은방을 월세로 내놓기도 한다
독신자 아파트엔
아무도 혼자 살지 않는다 ***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공중전화
코트를 입은 외국인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동남아시아 어디쯤
짧은 한숨 끝에 동전을 꺼낸다
사내는 좌우를 살피더니 급하게 걷는다
툭 종이 가방이 떨어진다
걸음을 무르고 재빨리 줍는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단거리 주자처럼
몸이 심하게 앞으로 쏠린다
힐끔 뒤를 본다 걸음이 빨라진다
계단을 두 칸씩 밟고 오를 때
무심코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지하철 4번 출구를 나가는 중이었다
사내는 뭔가에 쫓기는 듯
계단이 끝나자마자 뛰기 시작한다
붙잡고 싶었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을 쫓고 있는 기분
노동자로 보이는 외국인 한 무리가 내려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자음과 모음들이 부딪친다
이미 늦었다 ***
❚펴낸곳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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