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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일주
백룡동굴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길 42-5(구 마하리 324번지)에 위치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60호
로써 2005년에 착공해서 2010년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설명을 듣자하니 이 백룡동굴은 백운산에 있다하여 백자를 따고 이 동굴을 발견한 정씨형제들의 돌림자가 용자라 해서 백룡동굴로 이름 하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동굴의 위치가 바로 수정 같은 동강을 굽어보는 백운산 자락 양지녁에 있는데 그 주변경관과 동굴내부의 아름
다움이 여느 관광지, 여느 동굴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서 백룡동굴에 대한 식견이 새롭게 각인되긴 하였지만 처음 가본 나의 생각으로도 그렇다는 느낌이다.
동굴관광을 개시한 초기에는 매표소에서 동굴까지의 왕복이동수단을 암벽에 잔도를 걸고 회랑을 놓아 그리로 다녔다 하는데 지금은 그 길을 폐쇄하고 자그마한 배로 탐방객을 실어 날으고 있었다.
참고로 동강에 대하여 백과사전을 찾으니 본래의 강 이름은 조양강(朝陽江)이라 하는데 총길이 65km로 영월읍
동쪽을 흐른다 하여 현지주민들이 동강(東江)이라 부른데서 연유했다 한다.
백룡동굴 생태체험은 A코스 약 750m를 왕복하는 방법인데 이곳이 가장 안전한 코스이고 나머지 B, C, D 코스는 절대 탐방객이 갈 수 없는 미개발 동굴로서 수직절벽 등 도처에 위험구간이 산재해 있다한다.
외국의 동굴이나 국내의 한다하는 동굴 여러 군데를 가 보았지만 유독 그곳 백룡동굴만큼은 굴 내부에 조명장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데 특징이 있다.
억겁의 세월을 거처 자연이 빚어낸 빼어난 자연경관을 영구히 보전해 가겠다는 정부와 당국의 정책에 동감하면서 아무리 전등불이라 해도 석회질이 섞인 물방울 하나하나 그리고 더 미세한 기포 하나라도 증발하거나 건조 시키거나 하여 종유석과 석순과 석주와 동굴산호 등 다양한 모양으로의 형성 작용에 방해가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 아름다운 동굴 내부의 형성물에 곰팡이가 끼던가 하여 변색되는 부작용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일체의 사진기,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 갈수가 없도록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원래가 강원도 그것도 한강의 상류지역인 동강과 서강 일대는 물론 동해, 삼척, 태백등지에는 무수한 천연동굴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동강일대에 무려 1,800여개의 동굴이 산재해 있다한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 영월에서 어라연으로 거기에서 다시 이곳 민박촌까지 오는 내내 강변 여기저기 암벽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을 꽤나 많이 보았는데 그게 그런 것이었음을 알았다.
특히 이 지역에 자연동굴이 많은 이유는 이곳을 형성하고 있는 지질의 특성 때문이라 하는데(우경식 한국동굴연구소장의 주장) 하부 공생대인 캠브리아기에서 부터 오르도비스기 동안에 그러니까 약 5억 5천만년전에서 약 4억 5천만년전에 바다에 퇴적된 퇴적물이 고화(固化)된 암석이라 한다.
한편 백룡동굴 매표소 앞에 있는 간판에는 동강유역은 4억 5천만년전의 거대한 석회암 지질의 모암층과 2억 5천만년 전의 역암층 및 사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였는데 하여간 기가 질릴 정도로 오랜 세월임에 분명하다.
그러니까 내가 다시 이해를 해 보니 그런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가 되고 산이 되었는데 그곳에 빗물,지하수가 석회질을 녹여 동공이 생긴 결과 이렇듯 멋진 동굴을 만들고 내부에 예술품 같은 종유석등 다양한 모양이 형성되었다는 설명이니 가히 세월의 무한한 능력 앞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무엇에 견주랴.
동굴내부 생태체험을 하기위해서는 물론 예약도 해야 하지만 학습장에서 지급하는 관람복과 장화, 헬멧,장갑을
착용해야만 하며 전문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굴 내부에서는 절대로 석순이나 종유석등이 다치지 않게 좌우를 붙잡지 말아야 하며 여러 번의 낮은 포복자세로 좁고 낮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들어가 보면 충분히 그 보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다.
그 보상이란 어느 동굴에서도 볼 수 없던 다양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면 약 200여 년 전까지 사람이 사용했다는 온돌 주거지 터가 있다.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인데 그 당시 교통수단도 열악하고 더욱이 먹을 양식은 어찌 구하려고 이런 최악의 조건에 찾아들어와 살았다면 단 하나 눈비와 춥거나 더움이나 피할 곳이지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힘든 조건인바 필경 그런 전제라면 모르면 몰라도 잡히면 죽는 목숨인 중죄인 아니면 누가 이런 곳에 살았을까 싶었다.
우리가 탐험한 동굴은 A코스인데 나머지 코스들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 탐방을 절대 할 수 없는 곳이라 한다.
전에는 우리가 탐방한 A코스 곳곳에 박쥐들이 서식하였다 하는데 탐방객이 하도 많아 지금은 녀석들이 다른
코스, 그러니까 사람들이 탐방하지 않는 동굴로 들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황금박쥐가 이곳 백룡동굴에 살고 있다 하니 참으로 이곳이야말로 귀하디귀한 자연 유산이구나 했다.
동굴내부 여러 곳에 마치 계단식 논을 만들어 물을 가둔 것 같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야이얀 아주 작은
새우가 살고 있었고 그 녀석들은 박쥐의 똥을 먹고 산다고 하니 자연의 섭리가 참으로 희한하기도 하다.
동굴뿐만 아니라 이곳 생태계가 안전하게 보전되고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값진 자연 유산이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금지된 물고기잡이와 산약초 채취가 암암리에 저질러지고 있으니 실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직접 본 일인데 그것은 그 일대에 있는 민박집 주인들이 손님 받는 재미에 못 본체 묵인하는 가운데 금지된 낚시와 투망질이 자행되고 있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이 지역이 제대로 보전되겠느냐 이 말이다.
어떻게든 동강 유역만큼은 대한민국의 청정지역으로 오염되지 않은 태고적 땅으로 남아주길 바랄뿐이다.
이번 여행을 결정하기까지는 참으로 기가 막히게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았다.
내 아버님은 올해로 90이신데 병원에 계신지가 2년이 넘어 산소호흡기로 연명하시니 늘 불안해서 집을 비우고 멀리 떠날 수가 없었고 설령 어디로든 나가고자 하여도 아내가 무릎관절 수술을 한지가 6개월 정도는 되었는데 만날 아파서 쩔쩔매는걸 보면서 차마 홀로 나서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었다.
그러다가 천만 다행스럽게도 아버님은 조금씩 기력을 되찾으시는 중이고 아내역시 많은 쾌차를 보이고 있으니 부랴부랴 교재에 명시되어있는 전국의 생태관광지를 물색하다 평창의 백룡동굴을 예약하게 되었다.
여행이란 언제나 가슴이 설레는 흥분제 같은 존재인지 동굴체험 예약을 사나흘 전에 해 놓고서는 날마다
컴퓨터로 그 주변을 검색하며 맛 집은 어디가 좋을까, 숙소는 어디로 정하나, 또 동굴을 나와서는 그 다음 코스는 어디로 갈까 등등 이것저것 생각에 생각을 잠자리 때마다 궁리하다 잠들기를 벌써 몇 날이던가?
천상 숙소는 백룡동굴 인근에 전화로 알아보고 민박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 차림이야 등산복에 운동화면 최고라 생각하니 따라가겠다는 아내역시 등산복에 찬성을 해 주었음에 그 마음에 감사했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평창 백룡동굴 인근 민박집을 찍으니 무려 179km에 2시간 50분이 소요된단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원주지나 새말에서 나아가 나머지는 한적한 시골길에 가을정취를 한껏 느끼리라 여기면서 오는 길엔 법흥사나 아니면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들려오기로 아내와 약조를 하며 여유 있게 달렸다.
거침없이 내 달리는 자동차의 질주감은 그렇지 않아도 몇몇 달을 갇혀있다시피 했던 나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하고도 남는다. 들판을 누렇게 물들이는 볏논의 황색물결과 아직은 때 이른 단풍이지만 이따금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야산과 들판의 가을정취를 내다보는 기분은 그야말로 즐겁기가 한량없는데 ... 문득
이제 이렇게 가을이 물들어가고 또 추워지고 온 세상에 흰 눈이 내릴 겨울도 오겠고 또 그렇게 한해가 저물면 나는 또 먹기 싫은 나이를 한 살 더하겠지 하는 마음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
예전에 없던 겁이 늘고 걱정이 심해지는 건 60대의 주책없는 염려란 말인가 아무튼 요즘 마음이 그랬다.
아니다, 이런 마음을 깔끔히 걷어내고 이 좋은 가을바람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마땅하지 했다.
강원도의 풍광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수준이다.
산은 높고 물이 깊어 가는 곳마다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니
이것은 억지로 갖고자 해도 가질 수 없고 우리 것이되 우리만의 독점물이 아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값진 보배요 재산 아니랴. 그러하기에 함부로 개발하고 인공을 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중앙고속도로를 내리달려 영월로 접어들고 문득 어라연계곡을 한번 가 보고 싶은 충동에 네비를 찍고 달려가 보니 여름철 한때 성행했던 래프팅, 민박촌만 휑하니 강변마다 즐비 할뿐 무엇 하나 볼게 없다.
다시 백룡동굴 인근의 민박집으로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다가 어디쯤에선가 한참 신나는 음악소리가 나기에 차를 멈추고 바라다 보니 음악회를 하는가보다.
아내와 차를 파킹하고 찾아가 보니 “마차초등학교” 교정에서 면민 약 100여명정도가 구경하는 가운데 관현악단 10여명에 여성백댄서 2명으로 이름도 알 수없는 무명가수가 노래를 하는데 정말 잘한다.
약 1시간정도 구경을 하자니 뉘엿뉘엿 지는 해에 저녁 바람이 제법 추워서 다 보지를 못하고 출발했다.
하기야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가는 곳곳마다 체육행사가 많고 특히 문화행사는 전국 방방곡곡 유행처럼 열리는 계절이고 보면 잘만하면 오고가는 도중에 공짜로 좋은 구경도하고 먹거리 행사장에서 맛있는 지방
음식들을 사먹을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어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은 때이다.
언제부턴가 시장 군수를 직선으로 뿝기 시작한 그 이후부터 이런 행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고 보면 이게 좋은 건지 아니면 그릇된 건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찌 되었거나 그들에게 누군가는 돈을 주어야 공연이고 뭐고 할 것 아니겠냐 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또 아내와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며 군수나 시장들이 자기 돈 내는거면 그렇게 할려나? 했더니 미쳤지 그걸 왜 하느냐 하기에 웃었다.
해는 지고 사방이 캄캄해진 초저녁에 백룡동굴을 찾아가는 동강의 강변도로는 정말이지 낭만이라기엔 너무나 한적해서 쓸쓸하고 무서워 동행한 아내가 자꾸만 도로 나가자는데 곤란했다.
나는 암만해도 이곳 동굴 체험기를 써야만 하는데 여길 아니 가면 할 것이 없는데 이 사람은 굳이 동해안으로 가자는걸 간신히 달래며 차를 전진 시켰다.
가도 가도 저녁식사를 할 만한 식당은 없고 좁디좁은 미탄강 강변도로에 오고가는 차라고는 오로지 내 차
하나인데 만약에 마주 오는 차라도 있었더라면 초행길에 피할 곳도 마땅찮아 그것도 곤란한 일이었을게다.
하여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가는 차 없이 외줄기 기나긴 강변도로를 한참을 달려가니 더 이상 갈 곳 없는 문희마을이 나오고 이곳저곳 물어물어 민박을 하나 얻어들어가니 방값은 싼데 저녁 식사를 할 방법이 없어 그 댁 사장님한테 부탁을 하였더니 아주머니가 군민의 날 행사 준비로 부녀회 저녁모임에 나가신 관계로 안 된다며 컵라면이나 자시라 하여 조금 수고스럽지만 물 끓이는 김에 라면을 좀 해주시길 바란다 했더니 라면 2봉지를 끓이고 햇반 1개를 덥혀 소주 1병을 마시니 꿀맛이 이보다는 더 할리 없을 듯 했다.
그 도 그럴 것이 오늘 나는 점심을 생각이 없어 않먹었더니 역시 그 효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바로 옆방에 든 사람들이 6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고 문밖에서 매운탕을 끊여 식사와 술을 마시던중 나를 불러 합석하잔다.
말리는 아내를 무시하고 같이 앉아 몇 잔을 하며 이야기를 하니 그들은 인천에서 왔고 그중 한명은 수원 장안동이 고향이라며 내게 반갑다고 한잔 더 하라는 바람에 받아 마셨다.
술도 취하고 피곤한 몸에 곧바로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이게 그게 아닌 것이 영 잠이 안 온다.
아마도 아까 문막 휴게소에서 커피를 진하게 마신게 또 탈인 듯한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아내도 잠을 못자고 하품만 냅다 해 대는걸 보아하니 내일 일이 걱정이다.
이럴 땐 내게 “ 농촌스러워 그렇다 ” 며 놀려대던 아내도 역시 잠이 안 온다니 좀 못된 생각이긴 해도 뭐 나 혼자 그러는 것 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뒤척이다 눈을 뜨니 다음날 새벽 6시다.
세면하고 아내와 강변에 나가 산책을 하며 시원한 바람에 맑은 공기를 마시고 주변을 살펴보니 어젯밤에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8시에 주인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니 그댁 따님은 병원 간호사인데 사위도 간호사라 하며 아들은 강원랜드에 있는 마트에 근무한자 오래되었고 38세에 총각이란다. 연일정씨라며 성씨도 밝힌다.
우리가 오늘 예매한 시간이 10시 10분짜리인데 앞당길 수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매표소 직원한테 이야기 하면 거의 편의를 봐 줄 거라며 친절하게 요령까지 일러주신다.
아닌 게 아니라 사무실에 들려 사정을 이야기 하니 명단에 기록하고 옷, 헬멧, 장화, 장갑을 받아 입고서
전문 가이드를 따라 배를 타고 가서 동굴 탐험을 했다.
전에 가 보았던 환선굴이나 대금굴, 고씨동굴, 성류굴 그리고 중국의 장가계를 갔을 때 들어갔던 동굴들과는 전혀 딴판이요 분위기 자체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우선 다른 동굴들은 내부가 높고 넓어 웅장한데 거의 서서 걸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 백룡동굴은 여러 곳을 기어서 통과하는 코스가 많아 그 점이 크게 다르고 또 다른 동굴들은
내부에 조명 설치를 하여 관람객 위주의 시설을 한 반면 백룡동굴은 조명시설을 거의 하지를 않아 사람이 아닌 자연위주로 초점을 맞춘 동굴이라는 점에서 대별되니 이것이야말로 귀중한 자연유산을 오롯이 후손에게 훼손됨이 없이 물려줄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다고 해서 백룡동굴이 다른 동굴에 비해 석주, 석순, 종유석등이 유달리 더 크고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그 형성되고 감추어진 아름다움의 가치가 더욱 귀하다고 보는 것이다.
동굴 내부 체험 내내 가이드로부터 좌우에 되도록 손으로 붙잡지 말라는 주의를 수도 없이 들었다.
어느 경우는 그 가느다란 종유석들이 몇 천년 또는 몇 만년을 자라온 생명체와도 같은 것인데 자칫 잘못했다간 부러지거나 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될 수도 있고 또 그리되면 처벌도 받는다니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도 못할 일이요 구경 왔다 처벌 받는다는 것도 재수 없는 일이라 가이드의 거듭되는 주의환기가 오히려 옳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이 동굴 내에 있던 거꾸로 달린 남근석을 영월경찰서장이 잘라갔다가 사회적으로 크게 반향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 일로 인하여 그자는 처벌도 받고 벌금도 냈다하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참고로 그때 잘라갔던 남근석을 찾아다 다시 붙였다, 그러나 색깔도 변하고 자연미가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잘라진 부위에 철심을 박아 붙여는 놓았지만 붙인 자리에 금이 선명하게 달라 보이고 이상하게 위에 것과 아랫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며 색깔이 검으틱틱 한 것이 전과는 많이 다르다 했다.
아마도 그 때의 그 사건으로 인하여 동굴내부 종유석 수난은 획기적으로 개선된듯 하다는 나의 생각이다.
비록 동굴 내부의 종유석등 보호뿐만 아니라 이 지역 특히 동강유역의 자연생태계 보호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주변 지인들이 곧잘 들 하는 말을 빌리면 동강 어느곳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네 낚시를 했네 하며 자랑을 일삼고 그 동강 어느 산에서 무얼 캐고 따고 하기를 해마다 한다느니 하는걸 보면 이건 분명 어딘가 구멍이 뚫려도 크게 뚫려있다는 증거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잘못된 행위들은 그 행위자들이 본래 나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건 역시 그 주변부에 있는 민박이나 팬션업자들의 묵인하에 벌어지고 있는 아주 고약한 불법행위이다.
그 구차한 돈 몇 푼 벌자고 나쁜 짓 하는 사람들 고발도 못하고 말리거나 제지하기는커녕 그 안주에 술까지 함께 마셔대는 그 판국에 장차 이 땅에 무엇인들 제대로 남아 있기나 할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내 처음 들어가 보고 온 사람으로서 느낀 점이 이러하다면 분명 이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강원도는 특히 남한강 상류지역들은 청정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소중한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곳이 수도권 대다수 인구의 상수원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번 끊어진 생태계의 고리와 사슬은 인위적으로 이을 수도 없고 복원할 수도 없는 난제중의 난제이기 때문이다.
1차로 관람을 마치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차에 오르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백룡동굴을 뒤로하고 나오는 기나긴 미탄강과 강변도로는 정말이지 길을 함께 가는 친구처럼 보인다.
또 네비게이션을 영월 수주면 법흥사로 찍고 달리는 내내 식당을 찾아보지만 없다. 있어도 아니한다.
거참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2시가 다 되도록 식당이 있어 가 보면 밥장사는 하지를 않고 맨 고구마, 옥수수, 무슨 잡다한 것들만 팔 뿐 그전에 먹어보던 밥집의 정체는 찾을 길이 없었다.
한층 눈에 띠는게 있었는데 그것은 가는 곳곳마다 펜션에 민박은 즐비하고 저게 저렇게 많이 있어가지고 제대로 운영이 될까 궁굼 했으니 팬션.... 정말이지 많아도 엄청나게 많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결국은 법흥사 일주문 바로 안쪽에 있는 신라가든에 이르러 보니 두부전골, 산채비빔밥, 묵밥 종류를 한다고 하기에 두부전골을 시켜 점심을 먹고 절로 올라갔다.
법흥사(法興寺)는 신라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사찰로서 다른 여느
사찰처럼 대웅전을 짓고 그 법당에 부처님을 봉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즉 부처님의 유골을 모셨는데 별도로 부처님 상(像)을 법당에 또 모실 이유가 없다는 이치이다.
법흥사 경내를 지나 절 뒤편으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그곳은 참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십여년전 그 때도 아내와 함께 왔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산길이 매우 정취가 있다.
산 속으로 난 완만하게 비탈진 움푹 들어간 오솔길은 좌우로 솔바람소리를 내는 키도 엄청나게 큰 적송들이 무수히 서 있고 그 밑으로 작은 나무들이 때 이른 단풍을 물들이고 있었다.
더구나 굵직한 소나무 몸통을 타고 기어오른 담쟁이 넝쿨이 붉게 물든 아름다움은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도 남음이 있는데 어디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그곳이 별천지 같다는 느낌이다.
법흥사 경내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느덧 서산에 걸린 해가 법흥사 이곳저곳 요사채는 물론 주변 산까지 환하게 비추니 마치 환한 조명을 켜서 비추는 듯 찬란한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떠나야 하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렇듯 석양에 비치는 사물은 형광작용을 하듯 돋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으로 하여금 아쉬움을 자아내게 하는 마력을 지닌 듯 한데 이것이 곧 부처님의 섭리라 여긴다.
이번 여행길에 그 아름다운 동강의 미탄리 강변길도 달려보았고 말로만 듣던 백룡동굴 생태체험도 하였으니 이 보다 더한 복은 없다 여기는데 더하여 법흥사 적멸보궁을 오가는 산속의 숲길을 그 멋진 분위기 속에서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참으로 멋진 여행이었고 감동의 1박2일이었다.
2015년 10월 4일 江村
첫댓글 ㅋ 시원한 사진과 동강의 자상한 해설과 안내 감사하오. 늘 건강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