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4. 16
코로나19의 짙은 먹구름 속에서 치러진 총선이 여당의 기록적인 압승으로 끝났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무모한 방역 대책이 오히려 놀라운 성공의 비결이었다.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다. 그런데 중국 다음으로 끔찍한 홍역을 앓은 '감염대국'을 한 순간에 세계 최고의 '방역 강국'으로 변신시켜준 것은 과학기술이었다. 우리 바이오 벤처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낸 '신속 진단키트'가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1만명이 넘는 감염자와 200명이 넘는 사망자의 희생과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우리 진단키트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개발한 진단키트가 신속성·정확성에 경제성까지 두루 갖춘 더 없이 완벽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벤처들이 키트를 개발해낸 속도였다.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오고 2주 만인 2월 4일에 코젠바이오텍이 식약처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고, 새로운 키트가 검사 현장에 투입된 것이 2월 7일이었다.
감염자가 100명을 넘어서는 폭증이 시작된 것이 2월 20일이었다. 결국 과학계가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막힌 해결책부터 내놓았던 셈이다. 이제는 40여 개의 바이오벤처들이 다양한 기능의 진단키트를 넘치도록 공급하고 있다.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2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염기서열을 공개한 것이 1월 12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선진국의 과학자들이 공개된 자료를 검토하는 동안에 우리 벤처들은 그야말로 귀신같은 실력을 발휘해버린 것이다.
전 세계의 120여 개국이 우리의 진단키트를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기적이다. 심지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협조를 요청했고, 우리 진단키트를 신속하게 승인해주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검체를 직접 공수해주고 검사를 요청한 나라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이 남의 것이나 베끼는 하찮은 '모방형'이라고 함부로 비웃고 폄하하던 경제·정책 분야 관료·전문가들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에서 과기부가 보이지 않는다. 진단키트 개발에도 침묵했고, 마스크 대란에도 그 흔한 보도자료 하나 내놓지 않았다. 정부가 백신·치료제 개발에 50억을 투자하겠다는 데도 묵묵부답이다. 모두가 '과학'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코로나19의 방역에 대해 정작 과기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그 자체가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막중한 현안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에 제기될 사회 문제나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과기부가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의 경험을 과학기술 재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과기부가 해야 할 일이 막중하다. 작년에 산업부 대신 떠안은 소재·부품 산업 문제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쏟아진 예산이 자칫 과학기술의 발목을 붙잡아매는 족쇄가 돼버릴 수도 있다.
탈원전에 대한 과기부의 입장도 분명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과기부는 원자력진흥법에 명시된 '원자력 진흥'의 주무·전담부서다. 지난 3년 동안 과기부의 침묵 속에 정부가 에너지 전환으로 포장해서 밀어붙인 탈원전은 명백한 원자력진흥법 위반이다. 과연 우리가 이룩해놓은 가장 뛰어난 기술을 무작정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한전공사법을 무시하고 세워지는 한전대학이 에너지와 아무 관련없는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대한 입장도 정리를 해야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분명한 입장도 필요하다. 지난 3년 동안 과기부가 대책 없이 흔들어놓은 KAIST와 IBS 문제는 기초과학의 싹을 잘라버린 횡포였고, 국제적으로도 망신스러운 일이었다. 기초과학을 망쳐놓은 관련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하고, 과기부가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기부 해체로 시작된 과학기술의 추락은 이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과학기술이 코로나19로 멈춰서버린 경제를 다시 가동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방역 강국으로 높아진 국격을 유지하는 일도 과학기술이 떠맡아야 한다. 과기부가 엉뚱하게 교육부의 온라인 교육에나 기웃거릴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절대 아니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문진탄소문화원장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