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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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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선원의 카페에서 지난《빠알리대장경》성자의 포살(1) 편을 보시고 보내온 질문 내용과 제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서 한 법우님과 나눈 법담을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
<참고 자료>
지난《빠알리대장경》성자의 포살 편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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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담 1)
일상 생활에서 늘 좋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보면서 관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알아차리고 비우는 작업). 늘 적절하게 조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과찬의 말씀을 다 하십니다.😄🙏🏻
맞습니다. 틈나는 대로 마음에 의식을 둬 보십시오.
그러면 처음에는 그저 그렇지만 누구나 본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마음을 보다 보면 희한한 마음들이 일어난답니다.
그렇잖아도 이번 주 선문염송에 조사선 질문이 들어와서 준비 중에 있는데요.
저도 대념처경을 통해 배운 것인데요.
직접 해보니까 너무 좋아서 같이 공유해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다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늘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조건 이번 생에는 우리 모두 끝장내고 가도 갔으면 좋겠습니다.😄🙏🏻
<보충 설명>
[일상 생활에서 늘 좋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보면서 관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알아차리고 비우는 작업)]
지금 이 내용 안에 모든 수행의 중심이 들어 있어서 올려본 건데요.^^
왜냐하면 실제로 이렇게 하다 보면 누구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희한한 일들이 마음에서 일어나는데요.
특히 자성(自省)의 지혜가 일어나게 된답니다.
이 자성을 불교 용어로는 포살(布薩)이라 하는 것인데요.
왜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데 자성이 필요하고 포살이 필요하느냐 하면요?
자성과 포살이 딱딱히 굳어 있는 내 마음의 것들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비유로 말씀 들였던 건데요.
밭이나 논을 마음으로 비유했을 때 밭이나 논이 딱딱하게 굳어있으면 잡초들을 뽑아내기 어렵잖아요?
그러나 쟁기로 밭이나 논을 갈아엎거나 물을 흠뻑 주면 밭이나 논이 부드러워져서 잡초를 뽑기도 좋고 좋은 곡식을 심기도 좋아지듯이
우리들 마음도 자꾸 보면 자성과 포살심이 본성의 지혜와 함게 내 마음을 내 스스로 부드럽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 영원히 그렇게 지낼 수박에 없지만 내가 나 자신을 자주 보면 누구나 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성과 포살의 마음이 스스로 일어나게 되고
이 외에도 수많은 지혜들이 스스로 일어나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성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처럼 희한한 지혜가 스스로 일어난답니다.
그렇다고 무슨 요술 같은 그런 것은 아니고요. ^^
물론 금방 뭐가 가 이루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지속적으로 내 마음을 보다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자기 자신이 느끼게 된답니다.
단 여기서도 생각에 끌려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각을 마구니라 하는 것이고 번뇌망상을 수행에 최고 적으로 여기는 것이랍니다.
이 생각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의식을 생각에 두면 안 되고 조사선 같은 경우는 마음에, 간화선 같은 경우는 화두에, 위파사나 같은 같은 경우는 현재 이 순간에 두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아래 내용과 같은 것이라 이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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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안녕하세요, 거사님. ^^
저의 선원에 매번 좋은 법문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쉽게 설명을 해 주셔서 잘 이해하고 따라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경우는 5년 정도 열심히 하다가 거의 포기를하고 있었는데 같은 선원에 계신는 분이 한번 읽어보라고해서 거사님의 글을 읽고 다시 의욕이 생겨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질문 내용은 다름이 아니오라 앞전에 조사선을 설명하시면서 마음을 그냥 보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맹숭맹숭하기만 하고 다른 변화가 없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는 간화선으로 수행을 했는데 화두는 그만하고 마음만 보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거사님의 좋은 가르침을 받고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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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아이고 가르침이라니요?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우리는 다 같은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도반들이고 법우들인 것을요. ^^
조금은 어렵더라도 차근차근히 한발 한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
아무쪼록 질문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리고 성의껏 답변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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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하신 수행을 하면 더 정확히 말하면 화두든, 현재 이 순간이든, 마음이든 알아차림만 하면 맹숭맹숭하다는 것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잘하고 계시다는 증거랍니다.
왜냐하면 모든 수행은 맹숭맹숭한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그 어떠한 형체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제대로 꽂히면 맹숭맹숭할 수박에 없답니다.
여여하다는 표현도 같은 표현이고요.
[여여(與與) 하다] 란 마음이 "한가하다" "여유롭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맹숭맹숭한 것이고요.
그냥 밋밋한 것입니다.
심심한 것입니다.
마음이 복잡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00 님께서 "맹숭맹숭하다"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잘하고 계시다는 증거랍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번뇌망상과 마음이 어지러워서 난리들인데 00님께서는 지금 그 단계를 벗어났다는 것이데 이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
00님께서는 맹숭맹숭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열심히 하셨다는 증거랍니다.
그만큼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증거이고요.
그동안 마음이 시끄럽고 번뇌망상들이 들끓다가 조용해지니까 적응이 안 되는 거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도 그랬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말씀하신 "변화가 없다"라는 말씀도 당연한 것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성 자리는 특별할 것이라고 상상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렇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본성 자리는 정말이지 허공과 같거든요.
허공에 무슨 변화가 있고 진전이 있고 특별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오죽했으면 옛 분들은 본성 자리를 공(空)이라고 표현하셨을까요?^^
그만큼 본성 자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無) 그 자체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으면서도 못 알아차리는 것이고 모르고 있는 것이고요.
바로 앞에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어른들 쪽에서는 답답해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세 번째로 질문 주신
[그동안 저는 간화선으로 수행을 했는데 화두는 그만하고 마음만 보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라는 질문을 주셨는데요.
왜 화두를 버리십니까?^^
그동안 화두로 그 자리까지 오셨는데요? ^^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화두만큼 힘이 좋은 무기도 없었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게 해보십시오.
마음을 보는 조사선이든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위파사나든 알아차리고 보는 것이 수행이잖아요?
이때 화두를 같이 써보는 겁니다.
예를 들면 마음을 보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서 마음을 보면 훨씬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힘이 좋음을 느끼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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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사선인 마음 보기를 하면서 같이 육체의 반응들도 관찰해 보십시오.
부처님은 십이연기법인 열두 가지의 흐름으로 말씀을 하셨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어려우니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관찰해 보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은 모든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을 통해 들오고 나가는 것들이 원인이 되어 [십이연기법]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인데요.
누구나 눈이나 귀 등을 통해 보고 들으면서 욕심도 생기는 것이고 집착도 생겨서 말이나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십이연기법의 흐름이랍니다.
눈이나 귀를 통해 보고 들으면 가지고 싶고, 가지면 더 큰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이 욕심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가난하고 돈이 없을 때에는 라면만 먹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자전거만 타고 다녀도 감지덕지 한데..
돈이 많아지면 더 좋은 것들을 찾게 되듯이 무엇이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뭐든지 [안이비설신의]등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이 원인이 되어 몸이 반응을 하게 되고 몸이 반응을 하면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지게 되고
그렇게 비추어지는 마음이 진짜인 줄 알고 말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들이 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세존 말씀의 전체 흐름이랍니다.
그 업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시 집착을 낳게 되고요.
실제로 나를 관찰해 보시면 알겠지만 누구든 이 그물에서 못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손오공 이야기에서도 저팔계와 사오정은 툭하면 그물에 걸려서 허둥대고 있는 것이고요.
우리들 모습이 그렇다는 옛 분들의 표현이 손오공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저팔계처럼 눈(몸)을 통해 보면 육식과 육근과 오온 등이 반응을 하게 되고 그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져서 실제 내 마음이 그러는 줄 착각하고 말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되어 업을 쌓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만히 있는데 모두가 밖에서 일어나는 것들(몸도 본성 입장에서 보면 밖임)이 마음에 비추다 보니까 마음이 그런 줄 알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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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이 십시연기법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 열두 가지 모두로 하면 가지 수도 많고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네 가지로 나누어서 알아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네 가지 안에 십이연기법이 다 포함되어 있거든요.
오히려 단순해서 제 경우는 하기가 더 좋았답니다.
그 네 가지란
(1) 몸의 기능
(2) 의식 기능
(3) 생각 기능
(4) 마음 기능
으로 나누어 알아차림을 하는 방법인데요.
사실은 마음만 빼고는 모두가 몸의 기능에 해당하지만 의식과 생각은 그래도 수행에서 특별히 다루어야 할 대상이라 따로 뽑은 것뿐이고요.
왜냐하면 깨닫기 전에 사람들에게는 나의 [의식]과 [생각]이 어디에 가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마음에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나의 의식과 생각이 가는 곳에 나의 마음도 몸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비추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닫기 전의 사람들에게는 내 마음에 무엇이 비추어지느냐에 따라서 천 길 속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백두산 꼭대기로 올라 탈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마음에 무엇이든 비추어지게 되면 그것이 내 마음이라 착각하고 말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되어 십이연기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세존의 말씀이랍니다.
제 이야기는 열두 가지를 다 알아차리자면 복잡하니까 처음에는 최소단위로 단순하게 해서 알아차려 보라는 것입니다.
저도 대념처경을 통해 배운 것이고요.
아무튼 잘 관찰해 보시면 이 네 가지 기능들은 서로 동시에 일어나고 진행됨을 알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엄청 화가 났습니다.
그러면 이때 [몸의 기능]들을 관찰해 보시면 육식과 육근과 오온 등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화가 나면 심장이나 가슴이 마구 뛰거나 오그라들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육식과 육근이 발광을 하는 것이지 마음이 발광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온에 해당하는 감성이나 감정 등이 폭발하고 지랄발광을 하는 것도 모두 몸에서 일어나는 착용들이지 마음이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직접 관찰해 보시라는 것이고요.
이때 몸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알아차려보시고 이러한 몸에 작용들이 어떻게 마음에 영향을 주는지도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마음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무슨 신경 쓰이는 일들이 생기면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몸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혈압이 올라가는 것도 몸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심장이 떨리고 오그라드는 것도 몸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감성이나 감정도 몸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생각도 몸에서 나오는 작용이지
마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는 그 어떠한 것들도 물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잘 관찰해 보시면 전부가 몸에 해당하는 것들이 지랄발광을 하는 것이지 마음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열두 가지로 다 관찰해 보다가 머리만 복잡해지기에 이럴 때에 제 성격은 포기가 아니라 다른 쉬운 방법을 찾는 쪽이라
"그만 됐어? 나는 마음과 몸으로만 분리해서 할 거야."
했다는 것이고요.
어차피 몸 안에 육근과 육식과 오온도 다 있거든요.
왜냐하면 복잡하게 하니까 자꾸 내 머리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박에 없는 것이 가짓수가 많다 보니까 자꾸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면 죽도 밥도 안된다고 옛 분들에게 배운 것이 있어서 저도 그랬던 것인데요.
네 가지나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서 하니까 오히려 제 경우는 더 잘 된다는 뜻입니다.
뭐든지 나를 관찰해 보시면 그렇답니다.
나의 [의식]과 [생각]이 어느 대상이든 가 있으면 [마음]도 [몸]도 그쪽으로 가고 싶어 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십이연기법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끊는 방법은 오직 하나 무명(無明)을 광명(光明)으로 바꾸는 것인데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의 기능들을 죽이면 좋겠지만 이것이 어렵다 보니까 세존께서는 방편을 설했던 것이랍니다.
그 방법이 나를 관찰해 보라는 것이고, 나를 알아차려보라는 것이고, 내 마음을 알아차려 보라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누구든 자신을 보게 되면 손오공의 금고아(禁錮我)인 본성이 가만두지를 않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보니까 사람들이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방편으로 간화선이나 위파사나 같은 수행들이 나온 것이고요.
그래서 조사선(祖師禪)이 수행에 원조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사선(祖師禪)이란 뜻이 선(禪)에 조상(祖)이라는 뜻이고 스승(師)이라는 뜻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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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알아차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분리해서 관찰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은 가만있는데 몸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다 보니까 마음이 진짜로 그런 줄로 착각하고 말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연기법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거울을 보면 내가 거울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마음도 외부에서(몸도 포함) 비추어지는 것들 때문에 육체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화를 내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과 현상들이 모두 오온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이 오온이 공(空) 한 것을 알면 옛 분들은 깨달음이라 했던 거랍니다.
쉽게 말하면 [몸의 기능]들이 공(空) 한 것을 알면
즉 몸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무상하다 것을 알면..
쉽게 말해 몸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자주 변한다는 것을 알면..
지금은 몸에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리고 힘줄이 당겨서 내 마음이 그러는 줄 알고 있지만 조금 지나면 몸은 무상하기 때문에 차분히 변한다는 것을 알면..
마음도 자동으로 잠잠해 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진실)
그런데 문제는 일반 사람들은 생각이 계속 그 화나는 쪽으로 물고 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생각이 그 쪽으로 휩쓸려들어가고 집착을 하게 되지요.
이때 화두 쪽이든, 현재 이 순간 쪽이든, 마음 쪽이든 잘 되는 쪽으로 의식과 생각을 돌려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화택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의식이 화택이 아닌 수뢰 장난감 쪽으로 돌리게 해서 스스로 나오게 하듯이 말이지요.
몸의 기능들이 잠잠해지면 마음도 자동으로 잠잠해질 수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몸이 지랄발광을 하면 그것이 마음에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내 마음도 그런 줄 알고 있거든요.
그러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동요가 없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마음은 보래부터 공(空)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육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심하게는 지랄발광을 하면 마음도 거울처럼 육체의 지랄발광을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내 쪽에서는 마음이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그런지 안 그런지 마음과 육체로 나누어서 관찰해 보라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화가 나든, 혜가처럼 괴롭든, 즐겁든, 운전을 하면서 또는 어떤 일을 하면서 마음이 쫓기거나 조급할 때,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거나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보면서..
무엇이든 좋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맛, 감촉, 느낌, 마음 (한문으로 하면 眼耳鼻舌身意) 등을 통해 [몸]에서 반응하는 것들과 [마음]에서 반응하는 것들을 분리해서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가만있는데 육체에서 반응하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그런 줄 알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장이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이나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거나?
심장이나 가슴이 오그라들거나?
또는 심장과 힘줄 등이 흥분을 하거나? 또는 당기거나?
힘줄이 부들 부들 떨리거나?
뒷골이 당기거나?
혈압이 올라가거나?
이런 현상들은 모두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지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즐겁거나 사랑할 때도 몸의 기능들이 반응을 하는 것이지 마음이 아니랍니다.
마음이 두근거리거나 생각 등이 어떻게 마음의 기능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일뿐이지요.
이 외에도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주 많답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져서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요.
마치 거울 앞에 서면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마음도 [안이비설신의] 등을 통해 뭔가가 접수되면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생각이 또 생각으로 이어지고 하다 보면 ..
심장이나 근육이나 신경들이 이완이 되거나 반응을 하게 되고 ..
이러한 반응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지면 육체 입장에서 보면 마치 마음이 슬퍼하고, 화를 내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혜가 처럼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달마대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 그러면 네 괴로운 마음을 한번 내 앞에 내놔 보아라?"
했던 것이고요.
이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네 괴로운 마음을 한 번 잘 관찰해 보라는 뜻이거든요?
진짜로 네 마음이 괴로워하고 있는지? 아니면 네 육식과 육근과 오온 등이 괴로워하고 있는지?를 말이지요?
부처님도 대념처경에서 말씀하시길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려 보라는 것입니다.
아! 이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
아! 이것은 육식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
아! 이것은 육근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
아! 이것은 오온에서 일어나는 것이구나?
아! 그러면 마음은 어차피 그 무엇도 물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내가 비우고 버리고 달래줘야 할 것은 마음이 아니라 육식과 육근과 오온이겠구나?
그리고 육식과 육근과 오온 등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화택 이야기에 세존께서 잘 설해 두셨으니까
화두나, 현재 이 순간이나, 마음 쪽으로 의식을 돌려야 하겠구나?
그러면
식심견성자성불도(識心見性 自成佛道)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식심(識心) 즉 마음을 알아차리면 견성(見性)은 쉽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자동으로 본성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도(佛道) 즉 부처의 길은 자성(自成)이 스스로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고 한번 따라 해 보라는 것이 모든 선인들의 가르침인 것이고요.
이것은 방법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봐야 직접 따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제 경우는 처음부터 이러한 것들을 알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대신 제 경우는 어릴 때부터 무조건 따라 하는 성격이라 따라 했던 것이랍니다.
순서나 방법 등을 모르고 하다 보니까 조금은 뒤죽박죽으로 하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본 것이고요.
그때는 모랐지만 나중에 하나하나 경전들을 맞춰서 보니까 스토리가 맞춰졌다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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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은 화를 나게 하거나 마음이 조급한 경우가 있잖아요?
이때에도 조급해 하는 것이 내 마음인지 내 몸인지를 분리해서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지 마음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상담을 받아 보면 간혹 예전에는 화가 별로 안 일어났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 화가 일어난다는 분들이 있답니다.
이런 분들은 예전에는 몸의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몸의 반응들이 심해졌다는 뜻이거든요.
예를 들면 심장이 예전보다 떨리거나, 힘줄이나 신경 등이 예전보다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 경우처럼 예전에는 몸에 해당하는 육근과 오온 등이 지랄발광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것들이 잠잠해졌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본래부터 마음은 그대로 잠잠했었거든요.
저도 그때는 마음이 그런 줄 알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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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해 보시면 처음에는 그동안 살아온 습관들이 있기 때문에 잘 관찰이 안된답니다.
그러나 잘 관찰이 될 때까지 해보십시오.
이것이 세존이 말씀하신
[알아차림의 확립]
이랍니다.
이 [알아차림의 확립]이 안 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제 경우는 자랑 갔지만 95% 이상을 이렇게 알아차릴 수게 됐다고 할 수 있고요.
그래야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그때그때 대처를 할 수가 있거든요.
이것이 안 되어 있으면 저팔계처럼 자기도 모르게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차분하게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비교해 가면서 잘 관찰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면서 세존의 말씀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어느 쪽이든 마음과 육체를 분리해서 관찰해 보시면 마음과 육체의 반응들은 따로따로 놀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옛 어른들의 비유로 하면
마음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육체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다 보니까 마음이 화가 난 것 같지만 실상은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체가 지랄발광하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내 쪽에서 거울을 보면 내가 거울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육체가 화가 나면 마음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그 육체에서 마음으로 비치는 화가 마음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화] 뿐만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 [괴로운 마음], [집착된 마음], [쫒끼는 마음], [급한 마음], 등 어떤 마음이든 실제로 관찰해 보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체에서 오는 반응들 때문에 마음도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혜가처럼 "내 마음이 너무 괴롭고 고통습니다"
하니까 달마대사도
"그러면 네 괴로운 마음을 한번 내놔보아라"
했던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했듯이 실제로 마음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육체(오온, 육식, 육근 등)에서 일어나는 반응들 때문에 마음도 그런 줄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심장이 떨리거나 오그라들면 그것이 마음에 비추다 보니까 마음도 그런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좀 여유가 생기면
(1) 몸의 기능
(2) 생각의 기능
(3) 의식의 기능
(4) 마음의 기능
등으로 나누어서 관찰해 보시고요.
그래서 부처님도 대념처경을 통해 자꾸 나를 관찰해 보라고 하는 거랍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관찰해 보라 하는 것이지요.
나의 늙어 가는 모습도 관찰해 보고
내가 화가 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관찰해 보고
나의 의식이 어디가 있는지도 관찰해 보고
이렇게 수행은 나를 관찰하는 것이랍니다.
간화선도 마찬가지랍니다.
화두를 보다 보면 육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용과 현상들이 꼭 있지요?
다리가 지리든 생각이 많든?
이러한 것들도 모두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아닌가요?
이러한 것들 전부가 좋은 관찰 대상이 아닌가요?
이때 마음도 같이 잘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쓰다 보니까 글이 길어졌네요. ^^
저의 글이 긴 이유가 저도 부처님 방법을 따라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부처님은 저보다 더 반복을 하셨거든요? ^^
어떤 것은 열 번 이상을 반복하는 구절도 있답니다.^^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조금 있다가 아까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이러는 이유는 각인(刻印) 시키기 위함이랍니다.
그래서 선문에도 인(印)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고요.
아무쪼록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리면서 이만 주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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