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줄을 가지고 있어서 칠현금이라고 하며 왼손으로 줄을 짚는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자개로 만든 휘(徽)를 박아 놓았기 때문에 휘금이라고도 하는 '금(琴)'은 '슬(瑟)'과 더불어 중국의 고대악기에 속한다. '금'은 순(舜)임금때 이미 5현금이 있었고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각각 한 줄씩 더하여 칠현금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진나라에서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고 이를 개량하여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외에는 다른 옛문헌에는 '금'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고려 예종11년 송나라에서 들여온 대성아악(국가적인 규모의 궁중의식이나 제례의식에 사용하는 음악)에 일현금, 삼현금, 오현금, 칠현금, 구현금 등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금'에 대한 설명은 조선 성종때의 '악학궤범'에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림이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칠현금은 각종 제례의식에 사용되었을 뿐이고 조선 말기에 이르러 영산회상이나 가곡반주에 '금'을 사용한 예가 윤용구의 '휘금가곡보'나 '칠현금보'등의 악보에 의하여 확인될 뿐이다. 현재는 문묘제례악의 등가(단상위에서 연주하는 것을 말함)에서 사용되는 것이 유일한 쓰임이며 이 경우에도 음량이 극히 작고 연주법의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음악적으로 그리 중요한 기능을 하지는 않고 있다. '금'은 예로부터 사대부들의 인격을 수양하는 방편의 하나로 쓰이던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문고의 위세에 눌려 별로 쓰이지 않았고 다만 부부사이의 화목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금슬지우(琴瑟之友)나 금슬지락(琴瑟之樂)등의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