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젯밤에 신비한 꿈을 꾸었습니다.
한 평범한 모습의
하지만 인디언 느낌이 조금 나는 비범한 중년 남성이 꿈 속에서 나타나
저에게 현명한 영적 조언과 함께
힐링의 에너지를 가득 부어주셨습니다.
그동안 심신이 지친 저에게 재충전이 될만큼
아주 아름답고 신비롭고 영감 가득한 꿈이었습니다.
마치 인디언의 세계에 다녀 온 것 만큼이나 힐링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난 후 , 모레노가 얼마나 신비한 사람이었는가를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모레노가 얼마나 영적인 사람이었고 ,
또한 신 (神) 적인 열망이 강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레노의 자서전적인 책
사이코드라마의 창시자 - 제이콥 모레노 라는 책에서 충분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A. P Hare
(BenGurion 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이며 , 소집단 , 드라마 , 창조성 등에 관한 수많은 책을 저술 , 편집)
rmflrh J. P Hare
( 사이코드라마티스트로서 활동 중이며 , BenGurion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이코드라마 이론과 방법 등이 있다.
두 분이 이 책의 원저자이시며
국내에서는 현재 부산대학교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신
서수균 선생님이 이 책을 번역하셨습니다.
제가 서수균 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생님이 번역하신 이 책은
선생님이 사이코드라마에 관한 경험이나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번역하신 책이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번역하신 선생님이 사이코드라마나 그것을 창시한 모레노에 관해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으신 상태에서 책을 쓰셨다는 걸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책의 일부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전문가를 꿈꾸던 비엔나 시기 (1909 ~ 1925)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모레노는 2 년간 집중적인 영적 탐구에 심취했다.
그는 신 (神) 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꼈으며 ,
그 사명이 뭔지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혼자서 많은 책을 읽었다.
어느 날 , 그는 자신이 신 (神) 의 하인이라 느꼈으며 ,
이어서 , 자신이 전능자의 분신이요 ,
심지어는 모레노 자신이 곧 신 (神) 이라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그는 행동이 말 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경험이 책 보다 더 좋은 스승이라고 확신하였다.
모레노는 1909년에 비엔나 대학에 입학했다.
한동안 그는 오스트리아 농부가 즐겨 입는 푸른색 망토를 두르고 학교를 돌아 다녔으며
모자는 쓰지 않았고 , 수염을 길렀다.
어느 날 , 아침 Chaim Kellmer 라는 학생이 그에게 다가왔는데
곧 ,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감 위에 깊은 우정을 쌓아갔다.
카임은 모레노의 가족을 찾아가곤 했으며 , 모레노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모레노의 어머니는 그가 너무 특이하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카임에게 토로하곤 했다.
카임은 모레노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아이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이 둘은 함께 ` 참 만남의 종교 ` 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는 자체적인 규율을 갖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였다.
세 명의 학생이 더 참여했으며 , 이민자와 피난민에게도 개방되었다.
이 단체의 슬로건은
` 어떤 국적의 사람이든 환영합니다. `
` 우리는 여러분의 쉼터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 였다.
이민자가 서류나 공문서를 작성하거나 , 일자리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매일 밤 ,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가 하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 - - 중략 - - -
1911 년 대학생 시절 , 모레노는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이 강화받는 일련의 경험을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익명성과 자발성 그리고 불을 지피는 나무 같은 창조성을 지녔다.
나는 비엔나의 거리와 공원에서 나만의 신 (神) 놀이 (God - Play) 를 즐기기 시작했다. `
그는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하루는 대공의 궁 근처에 있는 정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멈춰서 그들에게 얘기를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다른 곳에 있던 아이들까지 하던 놀이를 멈추고 내게 귀를 기울였으며 ,
나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가던 보모 , 부모 , 경찰까지 합류했다.
그 날 이후로 , 나의 가장 즐거운 소일거리는 비엔나 정원의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찾아 온 아이들에게 요정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요정 얘기 속에 나온 사람처럼 나무 아래에 앉아 있고
아이들이 마치 마술 피리에 홀린 듯이 , 내게로 다가와 칙칙한 현실에서 벗어나
요정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들려주는 동화 얘기를 넘어서서 비현실이 현실이 된 신비롭고도 역설적인 경험이었다.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가끔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위에 앉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원을 만들어 나를 둘러 쌌고 , 계속해서 겹겹이 원을 만들어 둘러 쌌다.
나는 이 원이 무한히 계속 되는 것처럼 느꼈다. (1953)
모레노는 정말 ` 신의 은총 ` 으로 자신이 무한한 힘을 갖게 된 것처럼 느꼈다.
그는 아이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의 틀 내에서
` 신 (神) 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 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혔다.
그는 ` 신 (神) 신드롬 ` 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 그렇게 행동해 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략 ...
.
프로이트가 정신 감응 꿈 분석 강의를 마친 직후였다.
학생들이 책을 정리해서 나가고 있을 때 ,
프로이트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물었다.
` 프로이트 박사님 , 저는 선생님이 멈춘 그 지점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길거리나 그들의 집과 같은 자연적인 환경에서 만납니다.
선생님은 사람들의 꿈을 분석하시지요.
저는 그들에게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주려고 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신처럼 되는 법을 가르칩니다. `
프로이트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날 보았다.
정신 분석은 젊은이들 사이에 두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신경증에 대한 두려움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정신 분석은 천성에 맞서 싸움을 걸어 왔으며 ,
사람들이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를 꾸짖고 불신하도록 만들었다.
다윈과 마르크스가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창조적인 우주의 힘을 무시한 뒤로 ,
남은 마지막 단계는 정신 분석에 의해 천성이 무시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열등한 마음이 모든 것을 가장 천한 수준으로 깍아 내리는 일종의 복수였다.
모든 사람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창조적인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사람은 똑같다.
모든 사람이 천성을 갖고 있으나 ,
어떤 사람은 천성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은 천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블레셋 군대가 삼손을 쓰러 트렸다.
삼손은 모든 사람에게서 칭송 받았지만 ,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우리보다 더 강하지는 않았다.
긴 머리가 그의 유일한 콤플렉스였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머리가 길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 - - 여기까지 옮겨 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내용을 정리해보니 아래와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사이코드라마의 창시자 모레노는 인간의 천성을 신성 (神性) 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그가 말했던 사이코드라마의 핵심 개념인
자발성과 창조성과 즉흥성도 신성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하게 연결되는 지점이다.
창조자는 반응하기 보다는 창조한다.
그것이 창조주인 신 (神) 이 할 줄 아는 유일한 방식이고
창조만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창조자는 창조하는 존재이니까 ...
모레노에 따르면
오히려 다윈과 마르크스와 정신 분석을 주창했던 프로이트가
인간의 길들여지지 않고 , 거부할 수 없고 , 부정될 수 없는 천성인 신성(神性) 을 위배했던 것이다.
첫댓글 🧘♂️
날씨가 점점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