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무엇이며 어떻게 그런 죄를 범하게 되었는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장자와 차자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많은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다. 모세와 아론과 함께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목도하는 특권을 누렸다(출 24:1~9). 그야말로 '하나님 대면'(visio Dei)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를 가장 신성한 사업에 임명하셨다. 따라서 그분은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께서는…산에서 목격한 그 장면이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더욱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하나님께 높은 존귀와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다(3증언, 297).
그런 그들이 제사장 봉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심판의 불로 죽임을 당했다.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불이 그들을 삼킨 것이다. 그런데 옷은 타지도 않았다(5절). 마치 감전사와 같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범한죄는 무엇이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
먼저 이 사건이 발생한 시간적 배경을 살펴보자. 이때는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인 아론이 공식적인 봉사를 위한 위임식과 취임식이 막 끝난 직후였다. 레위기 8장에서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의 제사장 위임식이 7일간 진행되었다. 9장에서 제8일에 아론의 대제사장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나답과 아비후는 그 순서를 조력하였다. 그들은 각종 제물의 피를 아버지 아론에게로 가져다주었다(레 9:9, 12, 18). 제8일의 행사는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 것으로 끝났다(레 9:23~24)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은 “여호와의 불이 제단을 사른 얼마 후에 "(부조, 359) 발생한 것이다. 이때는 "저녁 제사 때”(재림교회성경주석, 2권 193~194)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제사장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자마자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본문은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린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다른'이란 히브리어 자라는 영역본에서 strange, profane, unauthorized, unholy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니 이 불은 이상한/속된/공인되지 않은 거룩하지 않은 불이다. 그러면 어떤 불이 정상적이며, 거룩하며, 공인된 불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번제단에 붙이신 불이다(레 9:24), 제사장들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로 향로를 채워야 하였다(레 16:12). 그 불은 신성한 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 고라의 반역 사건이 있을 때에도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에 번제단의 불을 담아 향을 피워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민 16:46) 지시하였다. 회막의 뜰에 제사장들이 음식을 마련하는 화로가 있었다. 나답과 아비후는 거기에서 보통의 불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죄였다.
그런데 이 견해에 대한 반론이 있다. 그것은 번제단의 불로 향로를 채우라는 지시는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후에 주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레 16:1, 12 참조). 그래서 '다른 불'을 '다른 향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은 레위기 10장의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인 출애굽기 30장 9절에서 분향단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라”는 지시를 주셨다. 레위기 10장은 '다른 향을 살라바친 행위를 '다른 불'을 드린 것으로 묘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불'과 '다른 향은 엄연히 다르다.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소개하는 다른 두 본문도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민 3:4, 26:61) 죽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향로에는 오직 번제단의 불을 담아야 한다는 지시가 사건 이후에 언급되었다는 것만을 근거로 그전에는 그러한 지시가 없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과 연관된 사항들이 사건 직후에 재심재사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회막을 출입할 때에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시가 그 사건 이후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레 10:9)고 해서 그전에는 그런 금령이 없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그때 '다른 불을 사용한 향로를 들고 다른 곳이 아니라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음에 틀림이 없다. 레위기 16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그러니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여 식을 행한 바로 그날 저녁 제사 시간에 방자하게 지성소로 들어가려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부주의하고 방자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사건 직후에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내리신 특별한 지시에서 알 수 있다.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10:9)고 하셨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상실되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후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것을 삼으며 단것으로 쓴 것을 참사 200제 된다. 그들은 그날 술을 마셨고 취하였다. 그리하여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다른 불'을 취한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해 있지 않았더라면 이 치명적 죄를 결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주의 깊고 엄숙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부조, 361).
그 사건 이후 모세는 아론에게 이런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나타내리라.” 그런데 본문은 이 말을 들은 “아론이 잠잠하였다"(레 10:3)고 강조한다. '나를 가까이하는 자'란 표현은 제사장들을 지칭하는 말이다(출 19:22; 겔 43:19). 이 말을 들은 아론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잠잠하였다. 왜 그랬을까? 시내 광야에서 집단 분위기에 굴복하였던 나약한 자기 모습이 떠올랐을까? 그런 성격 탓에 나답과 아비후의 방중을 제어하지 못한 실패한 자녀 교육에 대한 자의식 때문이었을까? 다시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유년 시절에 자제하는 습관에 대하여 훈련을 받지 않았다. 아버지의 우유부단한 기질과 정의에 대한 확고부동함의 결핍이 그로 하여금 그의 자녀들의 훈련을 등한히 하게 하였다. 그의 자녀들은 그들의 성향대로 하도록 방임되었다. 오랫동안 자라온 방종의 습관이 그들을 굳게 붙잡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받은 가장 신성한 직무까지도 그들의 방종을 깨트릴 힘이 없었다(부조, 360).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빛은 이웃과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 할 '빚'이다. 주어진 특권에 상응하는 미덕이 없으면 지위가 높을수록 재앙이 된다.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그들이 받은 빛과 특권에 비해 너무나 대담하고 방자하며 현저한 것이었다. 이에 모세는 아론과 그의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레10:6)고 명령하였다. 자식과 형제의 죽음에 대해 어떤 애도의 표시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너무 잔인한 명령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는 죽음 앞에서 슬픔의 표시도 하지 않아야 하는 죄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