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2일자로 군산기계공고에 발령을 받아 출근도장을 찍었다.
기계과1학년 담임에 용접 실습을 지도하였고, 업무는 학생부 교내외 생활지도 담당이였다. 학생부의 일이라 학생들의 여러문제들을 해결과 벌을 주는것을 주로한다. 정학을 받은 애들을 학생부실에 모아놓고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한후 오후에 검사를 한다. 때로는 부모님께 편지쓰기, 영어단어 쓰고 외우기 검사, 시를 저고 외우기 등 주로 하기싫은 공부를 하도록하고, 환경부에서 청소나 제초작업이 있으면 환경부에 인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검사에서 불합격 하거나 벌작업에서 게으름피우면 정학의 날짜가 하루 늘어나고 또한 벌로써 손바닥닥을 맞기도한다. 특히 애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사이가 가까워져서 학생들과 장난도 치고 그러다 우연히 학새의 고추 부분을 잡았는데 그학생이 바지를 내리고는 털이 뽑혔다고 하면서 웃고있었다. 그때부터 난 아이들이 잘못한것이 있으면 바지위에대고 털을 뽑았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벌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인지 거의 전교생이 다 인식하고있었다. 남자들 끼리의 통할수있는 꺼리낌이없는 가까움과 친근감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렀을때 이제는 사랑의 매 마저도 사라진 지금 그것으로 벌을주면 벌점주는것보다 학생들이 더욱 좋아하더라.
3년되던해에는 환경부장이 되어 학교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청소를했다. 아침 일찍 먼저와서 공공근로학생들과 함께 학교의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수업이 끝나면 각학급 청소를 감독하기도한다.
그렇게 환경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교감선생님의 교육부장관상의 추천을 받기도 하였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추천되면 동문선배들과 경합이 되더라. 그래서 4번이나 양보를 했다. 그랬더니 그결과는 참혹했다. 무슨 일이든지 나에게 오면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알았다.
환경부장을 하면서 고아원과 양노원 봉사활동에 희망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함께 매주 토요일 방과후에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학교에서도 적극 지원하여주었다. 그렇게 하면서 2년의 환경부장을 끝내고 기계과 부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학교가 마이스터고로 바뀌면서 새로이 학과개편이 되었고, 각 중학교의 중상위권의 학생들이 지원을하여 기숙사도 지원해주었고 학급의 학생 인원도 20명으로, 진학보다는 전문 기능인 육성의 획기적인 마이스터고로 바뀌었다.
난 자동화기계과 부장을 하면서 금형이라는 종목의 기능특기생을 만들어 지도도하였다. 정말 쉴틈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며 근무하였다.
금형기능특기생을 지도하며 구미전자공고에 원정훈련을 하면서 많은것을 배웠다. 첫해의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는 도중에 실수하는 바람에 아쉽게 순위에 못들었는데, 그해 11월 폴리텍대학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회에서는 2위를 하는 쾌거를 거둬 다음 전국기능경기대회엔 메달권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든게 끝이나고 만다.
2011년에는 악몽의 해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후 나의 추천으로 군산마이스터고 기능경기대회를 치르도록 계획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기과 기능특기생의 선배가 후배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가해학생이 기능지도교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교장선생은 학교의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하고 상담교사는 철저히 규명하자고 하면서 학교가 매우 시끄러웠다.
나의 입장에선 내가 추천해서 학교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고 다른학교에서 심사위원들도 초대하였는데, 학교가 이리 시끄러우니 짜증이 났고, 전날 저녘 초대된 심사위원들과의 만찬후 다음날 출근하여
어두워진 학교를 밝게하고자 인터넷에서 떠도는 재밌는 사진을 전교직원에게 보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화살이 나한테로 변경되었다. 상담교사는 내가 학생들의 성기털을 뽑는다며 교육청에 신고를 하였던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으로 난 해임을 당하였고, 억울하여 재판을 하였지만 세상은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후로 모든 꿈은 깨어지고 가슴에는 억울함에 별의별 생각만 갖게되고 하물며 복수심과 세상끝내는 생각들 정말 무시무시한 생각도 많이 했다.
이제는 세월이 말해주고 나의 인생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것을 깨우치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