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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죽산박씨
 
 
 
카페 게시글
수필, 시 스크랩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 설흔
sunny 추천 0 조회 113 09.12.24 0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는 구월초에 나온 신간이다.

이책은 조선의 학자인 퇴계가 일흔이 든 나이에  도산에서 한나절은 족히 가야 하는

청량산의 오가산당(숙부인 송재 선생이 학문을 배운곳)에서 지낸 나흘간의 행적이다.

애제자인 이함형과 머슴 돌석만들 데리고 자초지종은 설명도 않은채

제자들을 도산에 두고 오가산당으로 떠난다.

 

앞으로 나흘동안 공부에 관한 가르침이 있을 계획이니

돌석에게 기록으로 남기라는 과제물만 준다.

선생은 오가산당에 도착하여  배움에 목마른 자가 올거라는 얘기만 한다.

이함형과 돌석이 대체 누굴까하며 기다리는 대목도 재밌다. 

선생은 마을사람들의 이목을 떠나서 공부에 목마른

이들의 씨앗을 보시고는 이곳으로 오라고 서신을 미래 보내두었다.

그 가르침 외에도 이번 나들이는 선생에겐 더 큰 뜻이 있었으니..

다 읽어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습니다.ㅎㅎ

 

 

첫째 날 양민인 ''배순'이 찾아온다 돌석과 제자 이함형은 깜짝 놀란다.

배순은 마흔이 넘은 대장장이이다. 술김에 선생에게 편지를 보낸것이

인연이 되어 선생의 부름을 받아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무식한 놈'이라고 놀리는 것이  제일 듣기 싫어서

 공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생앞에서 공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터 놓는다.

너무 늦은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된다는 배순에게 선생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한다" 논어의 구절을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조급해하고 안달복달하는

그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공부할 자격이 있다" 고 격려한다.

 

자신을 미욱하다고 여기는 배순에게 미욱함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미욱하다는 말을 방패삼아 대충대충 할 뿐 열심히 하지도 않은 사람이  '정말 문제'라고 한다.

공부방법에선 "죽자고 열심히 해야지요."라며 예나 지금이나 정도가 없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남들은 초시에 한번에 붙는것을 자신은 세번이나 떨어졌으니

타고난 미욱함을 논하자면 자신도 똑 같으니 말해 무엇하겠느냐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러면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여러 일화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준다.

그 설명을 머슴 돌석이 저녁에 정리한 기록이다.

 

 

도대체 공부는 왜 하는가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다. 

과거에 급제해 임신양명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것은 아니다.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 것.

바로 그 것이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삶을 위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재물을 모으고 도구를 만드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듯 삶을 살아가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공부란 우리가 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는 동안은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의 기술로서의 공부다.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

 

항상 안달복달하라

배움은 마치 닿지 못하는 것처럼 하며 잃어버릴까 안달하듯 해야 한다.

결국은 졸라대는 놈에게 떡이라도 하나 더 주게 되는 것이다.

모르면 물어라. 학문( 學問)은 문학(問學)이다. 잘 묻는 사람,

모르는게 많아 질문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소의 일상적인 말들을 곰곰히 살피길 좋아했다.

순의 예를 따라야 한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힘에 부친다는 것은 힘껏 달리다가 쓰러질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제대로 달려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미리 마음속으로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순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난들 순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당찬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스승 탓, 책 탓을 하지 마라.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스승 탓, 책 탓을 하는 법이다.

현명한 이를 보면 어깨를 겨루려 힘쓰고, 현명하지 못한 이를 보면 안을 돌아보아 스스로를 살핀다.

그런 마음이라면 하루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순간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첫째날 배움의 싹이 돋아나다 -  첫째 날의 가르침 기록부분

 

 

둘째 날 찾아온 이는 최의원댁 무남독녀 최난희다.

그녀가 오가산당의  들어올때 여성이라서 이함형도 돌석도 약 심부름을 온 줄 안다.

선생의 친서를 들고온 난희를 보고 의아해한다.

 

최난희의 공부에 대한 궁금증은 '소학'까지는 마쳤는데

'대학'을 공부하자니 도무지 진전이 없어 난관을

 돌파하고 픈데 잘 되지 않는 부분의 고민을 이야기 한다.

선생은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벽에 다다른 상황'이라며

이 고비만 넘기면 공부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공부에 눈을 뜬 이들이 알아두어야 할 지침서를 알려준다.

 

 닭이 알을 품은듯이 그저 쉼없이 꾸준히 부화될 때까지 품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꾸준히 공부하는것으로 고비를 넘기면 즐길수도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바로 너의 마음이며  너의 마음을 제대로 갖추면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제자 이함형에게 선생은 화내는 이유에 대해서도 일갈을 한다.

이함형은 아내에게 화가 나있고 부부애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 뿐이라네 사람은 오직 배우지 않았기에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받으면 화를 내는 것이라네 알겠는가?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라는 준열한 비판을 제자 이함형에게 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아침 저녁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고

경전을 제대로 해석해낸다 해서 과연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는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공부를 하고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 주는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 사랑의 마음, 공부한 자의 마음일세 인이 어디 멀리 있던가?

변에서 능숙히 비유를 취할 수 있다면 인의 길에 접어든 것이지.

 

 선생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돌석과 난희에게 거울 2개를 내밀고 자리를 비운다.

많이 더러운 것은 난희에게 조금 더러운 것은 돌석에게 내민다.

난희는 자신의 거울이 더 더러운 것을 보고 투덜댄다

 돌석은 난희의 거울을 바꾸어 닦아준다.

한참 뒤 선생이 들어오자 돌석이 닦아놓은 거울을 난희가 재빨리 낚아챈다.

  더러운 거울을 통해서는 공부의 고비를, 덜 더러운 거울을 통해서는

날로 밝아지는 기쁨을 설명하기 위해 두개를 준비한 것임을 알려준다.

 

난희는 선생에서 결국 자기가 닦지 않고 뺏었노라고 이실직고 한다

선생은 공부 끝나고 나가는 돌석을 남으라고 한뒤 묻는다.

 

'돌석아 거울을 바꿔 닦자고 한 것은 바로너겠지?"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런데 왜 그랬느냐?"

"아가씨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저야 뭐 늘 하는 일이니까요."

"지금의 그 마음, 영원히 잊지 말거라."

 

난희에게 준 선생의 가르침을 돌석이 기록한 부분이다.

 

 

 

공부하다 벽에 부딪힌 이들을 위한 지침

 

닭이 알을 품는 것을 기억하라

공부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힘들다고 잠시라도 쉬거나 서두른답시고 뜨거운 물에 담가버리면 알은 부화하지 않는다.

결국 공부하다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거울은 닦을수록 깨끗해진다.

거울은 처음 닦을 때가 가장 힘든 법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닦을 때에는

처음보다 덜 힘들뿐만 아니라 조금의 노력으로도 거울을 더 밝게 만들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낑낑거리며 한계를 넘고 나면 그 뒤로는 훨씬 쉬워진다.

 

공부의 단계를 알아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 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공부에는 아는 단계와 좋아하는 단계와 즐거워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 단계뿐만 아니라 앞으로 갈 길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라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이 그것이다.

전자는 자신을 위한 공부이며, 후자는 세상에서 활용하기 위한 공부다.

위기지학을 해야 한다는 것은 공부해서 무엇이 되어야겠다.

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장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기지학이 되어야 세상에 나가도 중심을 잃거나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다.

 

공부한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잘못을 지적받아도 화를 내지 않은다.

사람은 오직 배우지 않았기에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받으면 화를 내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금방 깨우치므로 잘못을 지적받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지적을 들으면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을 바로 잡는 거울로 삼는다.

 

공부를 한 사람은 남을 배려한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이다. 공부를 한 사람은 바로 그 인의 마음을 갖추게 된다.

공부한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다.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어도 잘 배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지혜로운 이를 지혜롭게 여기고, 부모를 섬김에는 온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기에는 온몸을 바치고, 벗을 사귐에는 말에 미쁨이 있다면

그 사람은 비록 배우지 못햇더라도 실제로는 잘 배운 사람이다.

결국 공부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공부는 말짱 헛것이라는 뜻이다.

 둘째 날 공부의 잎이 무성해지다 - 둘째 날의 가르침 기록 부분

 

 

 

셋째 날은 손님이 없다.

선생은 이함형과 돌석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간다.

 가뭄이 심해서 물이 부족한 다른 이웃들에게 자신의 논에 물을 퍼 가라고 한다.

자신은 창고에 먹을 쌀이 있으니 농사를 짓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일 하나하나도 모두 머리에 담아두는 선생의 모습과

어떻게 하면 원만하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쉼없이

고민하는 선생의 모습이야 말로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인생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돌석은 하게 된다.

.

  

일상에서 간단없이 이루어지는 공부

매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집중하도록 하라

마음을 다 잡는 공부, 곧 경 공부에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주일무적(主一無敵) 이다. 단 하나를 붙들 뿐, 딴 데로 가지 말라는 듯이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거나

그 뒤의 내용을 예단하느라 바빠 주일무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나씩, 하나가 다 마무리된 후에야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주일무적이다.

 

둘째는 정제엄숙(整濟嚴肅)이다. 정제엄숙은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엄숙하게 가지라는 의미로,

의관을 '정제'라의 정제와 '엄숙'하게 하라의 엄숙이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외부를 가다듬는 형식적인 면 또한 중요하다.

옷 입는 것이나 자세를 바로잡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들이 결국은

마음을 다잡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섯째는  상성성법(商惺惺法)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순간에 깨어 있어야 미묘한 변화까지 눈치 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넷째는 마음을 수렴하여 한 물건도 용남하지 않는 것으로  

기심수렴(基心收殮) 불용일물 (不容一物)이다.

 

공부는 따로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순간, 모든 상황에서 공부 아닌 것이 없다.

경재잠은 상황별 공부법이며 숙흥야매잠은 시간별 공부법이다.

 

공부는 일사에서 충서(忠恕)의 마음으로 드러난다.

충은 내 마음의 중심을, 서는 나의 마음과 다른 이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충서는 내가 깨달은 내 마음의 중심을 그대로 남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물아일체 이일분수가 바로 충서이다.

 셋째 날 열매로 주위를 이롭게 하다 - 셋째 날의 가르침 기록부분

 

 

마지막 4일째 되는 날 돌석은 누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올까 기다리지만

오늘 손님은 더디 올 것 이라며 선생은 돌석을 방으로 들인다.

 

돌석은 방에서 오래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과 선생에게 조금이라도 좋으니 가르침을 받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긁적거리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낙서 종이를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제자들이 버리는 파지 한장도 허투루 보지 않는 선생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선생은 돌석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받을이는 너라고 한다.

 

마지막 가르침은 자신의 미욱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독학으로 공부한 일, 그리고 아는 내용도 먹빛이 희미해지고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던 일화들을 이야기 해준다.

돌석이 다 아는 글을 왜그렇게 읽었느냐고 묻자,

"진정으로 안다고 하는 것은 문자의 의미를 아는 걸 넘어서 내 일상 자체가

배운대로 행해질 때 가능한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느니라".

 미련함과 끈기만이 공부의 비결임을 거듭 강조한다.

 

 

공부의 핵심은 무엇인가

미련함으로 장애를 돌파하라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미련한 사람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는 법이다.

선생은 고루병폐인임에도 공부에 몰두함으로써 오늘날의 선생이 되었다.

재능이 아닌 미련함과 끈기로 공부를 해라.

 

공부는 일상에서 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비어약은 실은 공부를 하되 미리 기대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며, 억지로 하지도 말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솔개와 물고기가 공부의 본보기다.

그들은 욕심도 부리지 않고 쉬지 않고 날고 뜀으로써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평생에 걸쳐 자연스럽게 해낸다.

공부는 그렇듯 일상에서 잠시도 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자신에게 충실하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화를 낼 동안 서안 앞에 앉아 한자라도 더 공부를 하는 것이 옳다.

 넷째 날  씨앗이 되어 돌아가다- 넷째 날의 기록 부분

 

 

이 마지막 가르침을 적는 순간 돌석은 선생이 왜

이함흥이 아닌 자신에게 기록하라고 했는지를 알아챈다.

선생은 처음부터 자신을 위해서,  청량산행의 목적은 배순도 아닌 최난희도

이함형도 아닌 자신을 위한 길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퇴계선생은

아끼는 제자를 자신이 살아 있을때 떠나 보냄으로  면천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말고 꿋꿋이 공부하면서 사리사욕에서 절제하고

천명의 지나한 길을 잠시도 쉬지 않고 걸으라는

뜻의 사자성어 '유인정길'의 뜻이 담긴 '유정'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결국 공부를 한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바동거리다가

마침내 그 의미를 깨닫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다, 나중에는 스스로 그 존재 자체에서

멀어져 영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그 심오한 경지를 바로 물아일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볼 때 공부의 귀결점은 인생에 질문을 던지고, 인생의 의미를 배웠다가,

나중에는 다 놓는 것을 배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양민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처자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소유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자신의 부끄러움마저 다 털어놓고,

자기 곁에 둔 사람도 멀리로 보내는 것은 다 그런마음에서나 가능하단걸  돌석은 알게된다. 

돌석은 선생곁을 떠나면서  선생에게서 느낀 공부의 의미를  되새긴다. 

 

 

 

아래 글은 제자 이함형이 4년만에 아들을 얻었으나 2살에 죽게되자

아내와 소원하게 되고 그런 좋지  못한 부부애를 보면서

선생이 오가산당에서 집에 다녀오라며 주는 편지글이다.

 

 

들으니 그대 부부가 화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로 그리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잘 알지는 못하네.

선생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네.

여자의 성품이 좋지 못해 스스로 소박을 자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편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네.

남편이 항상 자신을 반성하고 잘 보살펴주면 부부의 도리를 잃고

가정이 파괴되는 끔찍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 법이란 말일세.

여자는 한 번 시집가면 오직 남편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네.

그런데 어찌 정과 의리가 맞지 않는다고 길 가는 사람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서 이르기를 '자기에게 잘못이 없는 연후에 남의 잘못을 나무란다'고 하였네

 

내가 겪은 결혼 생활을 예로 들어보겠네. 부끄럽지만 나는 결혼 생활을 그리 잘 꾸리지 못했다네.

장가를 두 번 갔으나 아내와 마음이 맞지 않은 탓에 한결같이 불행했네.

그래도 그저 애써 잘 지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이 십 수 년,

그사이 더러 마음이 흔들리고 번민과 고뇌로 견디기 어려운 때도 없지는 않았네.

그러나 그렇다고 어찌 인정을 돌릴 수 있겠는가.

어찌 내 마음대로 인간의 도리를 소홀히 하며 홀로 계시는 어머니로 하여금 근심하도록 하겠는가.

후한의 질운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부부의 도리를 어겨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는

실로 진리를 어지럽히는 사특한 자이다'라고 말하였네.

자네는 마당히 거듭 깊이 생각하고 고치도록 하게.

그럼에도 끝내 고치는 바가 없다면 공부를 해서 무엇하며,

실천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디 이 늙은이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주게나.

퇴계가 이함흥에게 쓴 편지

 

 

반드시 집앞에서 읽어보고 들어가라고 부탁한 이글을 읽고

선생도 다른남편과 다르지 않았으며 선생이 평생 밝힌적이 없는

자신의 허물까지 부끄럼 없이 드러내며 제자를 설득하는 글을 보고 감화를 받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내를 아껴야하며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공부할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찌른다.

 

함형은 눈물을 흘리며 들어가 아내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고

아내도 그 글을 읽는동안 내내 눈물을 흘리고 둘이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는 이런 훌륭한 분 곁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라며

남편을 다시 퇴계에게 돌려보낸다.

 

 

  배움에 목말라 하는 자에게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주려했던

퇴계의 지성을 다양한 일화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 삶을 풍요롭게 만들며 유익한 것인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맛보고 알아야할 맛 일 터이다. 

 

허나 사는 일에 급급해 놓치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 

바빠서 놓치는 건지 놓치고 싶어서 바쁜건지 모를만큼 ...

세상이 아무리 변해가도,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고귀하며 그 가치를 존중받고 인정받고 있다.

다만 내가  모르고 살고 잊고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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