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막측(神妙莫測) / 권재기
나는 성경의 시편 139편 14절에 나오는 ‘신묘막측’(Wonderfully and Fearfully Made )이란 구절을 아주 좋아한다. ‘신묘막측’이란 신통하고 묘하여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걸작품이라고 한다, 첫아이를 낳고 처음 아기를 간호사가 데려왔을 때 나를 쳐다보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경이로움에 전율을 느꼈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산고의 고통도 잊은 채 지남철처럼 나의 가슴에 들어온 아기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엄마와 아들의 영원히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두 번째 아이를 낳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었다. 첫째보다는 경험이 있어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이하게 만드신 소중한 생명을 더욱 감사하고 사랑할 여유가 생겼다. 지금까지 신묘막측 하게 태어난 두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로서의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다. 나에게 주신 두 아들은 형제라도 똑같지 아니한 독특한 개체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하나님께 매일 감사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도 하나님의 지으심이 신묘막측 함을 보고 감탄한다. 4월이면 뒷산을 덮는 유채화의 모습은 정말로 화려하고 멋있다. 물 한번 안 줘도 저절로 자라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구제 불능의 우리 집 뒤뜰 잔디에도 새끼손톱만큼 작은 분홍색의 잡초들이 잔디 대신 다투어 자란다.
우리 집 뒤뜰은 넓은 편인데 잔디가 다 죽어 모하비 사막처럼 연갈색이다. 그래서인지 토끼와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비교적 사이좋게 한 마당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내 손바닥 크기의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자신의 몸보다 3배는 더 큰 까마귀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결국은 까마귀가 다시는 우리 뒷마당에 나타나지 못했다. 다람쥐까지도 공격하니 이제는 다람쥐가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작년에 우리는 처음으로 잘 익은 대추를 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다람쥐의 횡포로 과일나무에 열린 감, 대추, 석류 등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 새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봐도 알 길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오늘 아침 나의 채소밭 옆에 아주 앙증맞게 핀 작은 보라색 잡초 풀의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맞추고 있는데 바로 그 새가 나타나 내 주위를 뱅뱅 돌며 계속 짹짹거렸다. 무섭기도 하고 사진도 끝내고 싶어서 나도 계속 큰소리로 “Be quiet! stop it”라고 소리치면서 대꾸했는데 막무가내였다. 꼭 쪼일 것 같은 공포감에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채소밭 옆에 무성한 큰 덤불(bush)이 있는데 그 속에 어미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보는 주인에게 유난을 떤 것을 보면 제 식구 보호 본능에서 다람쥐 쫓듯이 나한테도 그런 것 같다. 더군다나 시꺼먼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니 그것이 무기같이 보였을 거다. 자기 식구의 생명을 지키려고 소란을 떤 것 같다. 아빠의 보호 본능인가 보다. 얼마 안 있어 새끼 새들이 뒤뜰에서 먹이를 주워 먹는 것을 보게 되면 오늘의 나의 추측이 증명될 것이다. 이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귀한 존재인 것이 틀림없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획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루어지는 것 같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하나님의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태어나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50년을 살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나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고귀한 뜻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외롭게 자랐던 것도 미국에서의 생활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신묘막측한 존재로 이 세상에 아무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 없음을 안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4)
우리 뒷뜰의 왕초
첫댓글 주님의 솜씨는 참으로 신비롭죠.
선생님 뒷마당 왕초도 새끼들을 보호하다보니 왕초가 된것 같아요.
새끼들이 걸음마를 시작하면 꼭 한 컷 찍어 보여주세요.
그 새가 어떤 새일까 궁금했는데 가족을 지키는 아빠였군요. 너무 재미있고 메세지가 있는 글입니다. 신묘막측이란 단어에 대한 사유가 아주 좋습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