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손진숙
얼마 전, 선생님 댁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책상 앞에 앉으신 선생님께서
“이거 가질래?”
뭔가 싶어서 받아 보니 휴대용 돋보기였다.
“선생님 쓰셔야죠.”
“나는 큰 거 있어.”
“그럼 주세요.”
내 눈은 아직 돋보기를 사용할 정도는 아니다.
십여 년 전, 눈병이 잦아지더니 나중에는 눈이 침침해져 좌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잇달아 후낭혼탁이 와서 레이저 치료를 한 뒤로는 안과(眼科) 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젊은 날보다 시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실감하고 있는 터였다.
바느질을 하려면 바늘귀가 보이지 않아 대충 감으로 실을 꿴다. 수차례 실패를 하고 나서야 겨우 소발에 쥐 잡는 식이다. 열심히 하면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글을 읽을 때면 쉼표와 마침표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아서 곤란을 겪거나, 마쳐야 할 때 마치지 않아서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지 않은가.
그 외에도 어둑한 곳에 설치된 수도계량기 숫자라든가, 옷 안쪽에 붙은 라벨에 표시되어 있는 세탁방법 등의 분간이 어려울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 주신 돋보기는 네모반듯한 가죽 케이스에 싸여 있다. 황갈색 케이스는 반으로 접혀있다. 돋보기는 케이스 한쪽 모서리에 대갈못으로 연결되어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숟가락만 한 크기에 보름달처럼 둥글다.
며칠 전 수필 합평회가 있었다. 합평할 작품을 배부하자 글자 크기가 10pt라 작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쪽수를 줄이려고 그랬단다. 그런데 그 원고를 준비해 온 회원이 돋보기안경을 가져오지 않았다. 가방에 든 소지품을 뒤적이며 찾다가 없어 안경을 낀 다른 회원이 대신 읽는 장면을 연출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임기 2년인 사무장을 맡고 있다. 제때 장부 정리를 하지 않고 영수증은 빠짐없이 모아두었다. 몇 개월이 지나서 보니 한 영수증의 검은 글자가 모조리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의 영수증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궁여지책으로 선생님께서 주신 돋보기를 열어 비춰보았다. 해독할 수 없는 암호 가운데 ‘동해식당’이란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언제, 왜, 누구와, 무슨 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얼마를 계산했는지가 기억났다. 현금출납부의 그 날짜 지출 내역 확인이 가능했다.
올가을 남편은 매일 운동 삼아 집 부근 야산에 가서 밤을 주워 왔다. 쥐방울만한 토종밤을 찾으려고 가시덤불을 엔간히 헤집은 모양이었다. 자정 무렵 전등을 끄고 누웠는데 불을 켜고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따끔거린다며 빼 달라는 게 아닌가. 잠이 몰려오는 데다 가시는커녕 아무 티끌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날이 밝으면 보자고 손을 밀쳤으나 어떡하든 가시를 제거해 달란다. ‘아 참 그렇지’ 돋보기를 대고 두 눈의 초점을 모았다. 겨우 가무스름하게 포착되는 것이 있었다. 그 부분을 바늘로 살살 달래가며 조이니 가시가 빠져나왔다. 그제야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들 수가 있었다.
그날 선생님께서 돋보기를 주시기에 엉겁결에 받아 오긴 했지만 이제 짐작해 보니 우연이 아닌 듯하다. 돋보기는 작은 것을 크게 보이도록 알의 배를 볼록하게 만든 확대경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좋은 편이라 안경을 끼지 않고 살아왔다. 내 옷 앞자락에 묻은 작은 터럭은 물론 상대방의 등에 붙은 머리카락 하나도 곧잘 눈에 띄어 집어내었다. 그 눈이 몇 해 전부터 흐려져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나서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잔글씨는 알아볼 만하다. 그래서 돋보기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리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앞으로 어두워질 내 눈을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지원자를 얻은 기분이다.
선생님께서 내게 돋보기를 주신 데는 어떤 뜻이 있어서일까 헤아려보았다. 잘 보이지 않는 바깥 형상뿐만 아니라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안의 현상, 곧 마음의 상태도 수시로 살피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책상 앞에 앉으면 항상 손길이 닿고, 눈길이 머무는 자리에 돋보기를 소중하게 놓아두고 지낸다.
《계간수필》 20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