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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의 재형성
우리 씨족은 득성 후 고려말기까지 400여 년 동안 크게 번창하였으며 휘 영의 네 아드님 후손들과 방계 일족들은 번창하여 각각 한 가계를 이루었다. 사실 고려말기에는 여러 파로 분류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았 으며 드러난 현조들이 많았다. 사실 고려말기에는 여러 파로 분류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았으며 드러난 현 조들이 많았다. 생활근거지도 변화가 많았는바 대부분은 관향지에 세거했으나 더러는 현조들의 부임지 를 따라갔으며 혹은 여선 교체기에 고향을떠나 새로운 지역에 은거하였다. 또 그 당시에는 서승공파, 영양군파, 소감공파, 남곡공파, 소윤공파 등, 오늘날 우리가 호칭하는 파명은 없었다. 그러나 고려중기에 형성된 일부 대파는 소파가 형성될 만큼 씨족이 번창하였다. 이런 명칭이 부여된 것은 1798년 무오대동보 편찬 때로 보계를 체계화 하고 제 파를 분류한데서 비롯되 었다. 무오대동보를 보면 대파(大派)는 7세 때를 기준으로 분류하였으며 중시조 체제와 지파는 고려말기 를 기준으로 정립하였다. 특히 익양군 휘 극인의 6세로서 고려말 대장군 휘 백수(伯修)의 후가 미상이 되자 휘 극인의 후손인 영양 군 휘 대영과 울산군 휘 중영분이 익양군의 가계를 계승하게 된다. 그러나 두분은 익양군 후 어느 대와 연관이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후손>으로 명기하고 각각 한 파 를 창설하여 중시조 1세로 모시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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