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김 성 문
2021년 가을, 하늘 맑은 오후 전북 남원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기문국 세계문화유산 등재 반대” 피켓을 들고 큰소리로 호소했다. 기문국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지명으로 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 남원으로 추정한 지역이다.
현재 문화재청에서는 찬란했던 가야의 역사를 간직한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추진 중이다. 추가로 합천의 옥전 고분군을 다라국으로,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지명이고, 우리나라 역사서에 없는 지명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합천은 대야, 대량이고 남원은 고룡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없는 지명인 다라국과 기문국으로 등재할 경우 가야를 임나로 보는 임나일본부설(說)을 정당화시키는 일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서기 369년에 신라를 깨뜨리고 남가라 등 일곱 개국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이 일곱 개국을 가야의 여러 나라로 추정하고 대가야 멸망 해인 서기 562년까지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가야국과 임나국은 동일시될 수 없고 별개의 국가이다.
가야국은 서기 42년부터 서기 562년까지 존속했고, 임나국은 『일본서기』에 기록되기를 기원전 33년부터 서기 646년까지 존속했다. 건국과 멸망 연도가 다르다.
일본이 서기 369년부터 200년 동안 가야를 지배했다면 『삼국사기』의 ‘신라 본기’나 ‘백제 본기’에 그 기록이 한 건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가야를 임나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정한론(征韓論)이다. 일본은 언젠가는 조선을 정복하여 일본 땅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야욕을 품었다. 그 명분으로 가야를 임나라고 우긴다.
임나일본부설은 가야를 임나로 만들기 위해 메이지(明治, 1867~1912) 시대 때 일본군 참모부가 먼저 발상했다. 1882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임나고고(任那稿考)』와 『임나명고(任那名稿)』라는 책을 발행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883년 일본군 참모본부 소속 ‘사코 가케노부’ 중위는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가지고 왔다. 비의 하단과 3면 상단에 있는 ‘왜’에 관한 내용은 훼손하고 ‘임나가라’만 뚜렷이 보이도록 조작해서 왔다. 가야를 임나가라로 읽도록 했다.
1893년 ‘칸 마사토모’는 『임나고』를 집필하여 가야 지역을 임나로 주장하게 된다. 1896년, 일본 도쿄제국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사학잡지』에 ‘나카 미치요’는 ‘가라고(加羅考)’를 실어 임나가 가라라고 본격적으로 주장한다. 그는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는 것이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는 엉뚱한 논리를 폈다.
일제강점기 때는 노골적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쳤다. 1920년부터 일본은 ‘조선교육연구회’에서 편찬한 『심상소학 일본역사 보충 교재 교수 참고서』에 가야를 임나가라로 지도하게 하였다. 우리의 역사 찬탈이다.
광복 후에도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1949년 『임나흥망사』를 집필하면서 가야를 임나라고 뼈대를 세운다. 일본은 가야 지배를 전제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경상도와 전라도에 비정하고 고증작업을 한다.
즉, 우리나라 가야 지역 지명인 아라를 안라로, 고령을 가라로, 합천을 다라로, 거창군을 자타로, 창원을 고차국으로, 남원을 기문으로, 김해를 남가라로, 장수를 반파로, 강진을 침미다례 등으로 부르고 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역사 교수들을 양성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가야사는 더 왜곡되기 시작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에게 배운 제자들이 현재 교수가 되어 우리나라 곳곳에서 매국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또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서기 2010년 국내 여러 언론 기관에서는 가야를 임나로 규정한 임나일본부설은 폐기되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로 실었다.
그 당시 주요 신문에 보도한 문구를 보면,
‘일(日) 학계도 임나일본부설은 잘못, 한일공동연구서 용어 폐기 합의'
‘임나일본부설 추종 학자 일본에도 없다.’
‘한-일 임나일본부설 폐지 합의, 일(日) 스스로 폐기’
이 내용을 알고 있는 국민은 모두가 임나일본부설이 폐기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폐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모 교수는 신문의 기고문에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 적 없다”고 말했다.
임나일본부설을 폐기 안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신봉하는 자들이고, 가야를 임나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들의 주장으로는 우리나라 남부를 일본의 속국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환단고기』에서 임나는 대마도와 일본 규슈 지역 등에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 지명은 일본에 있었던 지명이므로 우리나라 가야사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가야’를 ‘임나’로 명시하여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 여러 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를 인정하면서 ‘왜’가 한반도로 출정했다고 가르친다.
일본 역사 교과서의 한반도 지도(地圖) 표기에는 가야와 임나를 동격으로 표기한 것과 아예 가야를 빼 버리고 신라, 고구려, 백제, 임나로 표기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남부를 자기들이 지배했다고 하는 터무니 없는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먼 훗날 가야의 역사가 걱정된다.
남원 시민의 외침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가야의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가 바로 잡힐 수 있도록 각성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바른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무가 있다.
첫댓글
가야사를 바탕으로
4국시대로 정리해야 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가야사를 바로 세우면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선다고 봅니다. ^^
김성문선생님! '고대 한류의 주역'인 가야인들이 일본출토 조형물로 만나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국립 김해박물관이 '바다를 건넌 가야인'이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어 소개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peaceful_flower/223096903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