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서서, 한 곳을 보고, 함께 나아갈
영화 「그녀에게」를 보고
특수교사 백설아
모든 인생의 단계마다 자신의 계획과 예상대로 이루고야 마는 당차고 유능한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 수월치만은 않았던 아이를 갖는 과정까지도 그녀는 노력과 열망으로 이루어내고 만다. 전투적으로 쌍둥이 남매를 양육하고 다시 복직과 승진의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 당연하다 여겨서였을까. 누나보다 늦되고 다른 발달양상을 보이는 동생 지우의 싸인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한 날들이 반복되던 즈음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지우가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으면서 그녀는 삶의 지진을 맞는다.
영화 [그녀에게]는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올랐던 작품으로, 뜻하지 않게 장애 자녀를 만나게 된 부모의 심리변화 및 생의 혼돈과 균형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전직 정치부 기자 출신인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0년 넘게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며 겪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서사에 녹여내 여전히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하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상영관에서 개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반갑고 기뻤다. 친분이 있는 작가님이기도 했지만 부모과 교사로 서로를 응원하고 이해하는 관계였기에 그녀의 힘찬 행보에 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었다. 비록 가장 바쁜 명절 전날과 명절 당일, 단 2일 개봉이었고 관객수가 적어 스크린은 줄었지만 이렇게 막을 내리기엔 너무 아까운 그녀에게 영화의 필름이 전국 곳곳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래본다.
주인공을 맡은 김재화 배우의 연기는 실로 최고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장애아 엄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카메오로 출연한 현실의 주인공 류승연 작가도 원작과는 또 다른 색으로 입혀진 영화에 현실감각을 불어넣느라고 애썼다는 것을 안다. 장애아를 키우며 겪는 어려움은 육체적, 경제적 부담보다 오히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일 것이다. 날마다 직면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아이의 작은 변화를 찾아내는 눈이 있었기에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지우가 웃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고 혼자 양치질을 하던 날에는 온 가족이 신나서 다 함께 백번이고 이를 닦았을 것이다. 지우와의 일상이 조금은 익숙해지고 엄마로서의 역할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상연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글쓰기 기술로 또 다른 장애자녀를 만나게 된 ‘그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말과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하기 시작한다. 상연은 영화 말미에 머리를 짧게 자르는데, 투쟁의 현장에 서는 투사처럼 묘사된다. 이 사회에서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싸우고 외쳐야만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더욱 단단해졌고 다른 ‘그녀들’을 품을 만큼 넉넉해지며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 장애가 등장하는 영화 [말아톤]이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 분명히 있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는 절규는 자폐 초원이가 엄마 그늘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닌 세상 밖으로 나와 도전을 선포한 커밍아웃이었다. ‘천재 변호사 우영우’에서부터 ‘펭수 옷만 입고 다니는 어른 정훈’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그들이 가진 장애의 정도와 기능이 천차만별임을 보여주어 많은 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주기도 하였다. 말아톤은 2005년에 나왔고 우영우는 2022에 나왔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나 구체적인 지식, 정보는 물론이고 법과 지원의 측면도 2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이 변화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가 설정하고 있는 장애 학생을 둘러싼 인적, 물적 환경과 태도가 오늘날의 모습보다는 한참 지난 이야기 같아서 안타까웠다.
첫째는 장애아 부모님들의 태도에 대한 너무도 극단적인 비유였다. 지우엄마의 대학선배도 장애아의 엄마로 등장하며 상연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다독여주며 많은 조언을 해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의 말로 시작하여 일단 복지카드부터 만들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활동 보조인을 신청하고 싶다는 상연에게 아직은 안된다, 엄마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무란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유명하다는 사설 치료를 늘려야 아이가 나중에 사람 구실이라도 하고 살게 된다고 다그친다. 사실 최근 장애 부모님들의 자조모임이나 장애인부모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은 매우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바우처 지원을 통해 제공하는 사설치료교육은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이거나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다. 장애아를 구조화된 치료장면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생태학적인 접근과 맥락적 교육장면에서 생활과 놀이중심으로 지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행동수정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긍정적행동지원을 필두로 인권적이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용어로 새롭게 세팅된 현장이 대부분이다.
둘째는 학교 선생님들의 태도이다. 작년부터 매우 예민한 문제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일명 주호민사건이나 왕의DNA 운운하는 갑질편지 등으로 특수교사들은 손과 발이 묶이고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살얼음을 걷는 듯한 시절이다. 초등학교 1학년 지우는 아쿠아리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서 상어를 보고 그 모습에 매혹당해 그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아이의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손을 잡아 끌고 지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쓰고 울게된다. 현장학습에서 돌아오는 지우를 마중 온 엄마는 선생님께 끌려(?) 버스 뒤편 조용한 곳으로 가서 다짜고짜 “어머니 이런 식이면 정말 곤란해요. 앞으로 이러면 지우랑 함께 못가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모습이다. 나는 24년차 특수교사로서 단언코 저와 같은 교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요즘 학교에서 교사들의 위치는 “보조인력을 미처 배정못해서 죄송합니다.”를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니, 아이가 주저앉아 떼를 쓰는 이유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을 것이고, 그 상황을 멈추고 전환해 주기 위한 방법을 조치하지 않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번에는 엄마를 근처 카페로 불러 상담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바짝 엎드리는 태도로 나간 상연에게 특수학급의 담임은 지우를 특수학교로 옮기라고 권한다. 지우에게 통합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어서 고집을 하냐고 묻는다. 더구나 ‘다른 어머님들 사이에서 지우의 퇴학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의 우리 교육 현장에서 듣기조차 힘든 단어가 너무 쉽게 등장하고 있었다. 장애인과 그들이 속한 현장의 모습을 잘 모르는 비장애인들이 보는 영화이니 설정을 보다 극적으로 몰아가고 장애가족에게 세상이 생각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주어 비탄의 감정을 이끌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이건 좀 오류가 심했다. 일반인들에게 오해와 불신을 주게 될까 싶은 우려도 된다. 해서 이런 사회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명한 영화에 있어서는 관련 전문가들의 충분한 감수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고충과 희망을 다룬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시선을 견지해야 할 지에 대해 관객에게 큰 공감과 이해를 줄 것이다. 상연과 그리고 또 다른 그녀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제시해주며 통찰력을 제공한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여전히 교사와 부모를 협력적 관계로 본딩시키지 못하는지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더해지는 장면들이 곳곳에 서려있어서 아쉬웠다. 교사는 장애부모와 부딪혀 싸우고 이겨내야 할 역경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 긴밀하게 협력하고 진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관계이다. 실제로 특수교육 현장에서 많은 시간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고 때론 온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알아주는 사람 없이도 우리 아이들이 제일 예쁘다고 여기는 사람이 바로 특수교사이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서서 갈등을 엮었다 풀었다 할 시간이 아깝다. 부디, 함께 서서 한 곳을 보고 함께 나아갈 동지로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자.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는 괜찮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괜찮을…, 겁니다.”
첫댓글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