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 선생님
김경림
예전에 여성 의류 비즈니스를 했다.
가로수들이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졸고 있는 오후시간, 지열에 까맣게 그을린 아스팔트 도로 위로 화들짝 놀란 아지랑이가 앞 다퉈 솟아올랐다. 무연히 밖을 내다보던 내 눈이 번쩍 떠졌다. 믿기지 않아 눈만 슴벅거렸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선생님이 건물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졸업하고 십 년이 훌쩍 지나 지구의 반대편에서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며 아차 싶어 멈칫했다. 맞다. 이 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단발머리에 중학교 티를 벗어나지 못한 여학생이던 내가 파마머리를 하고 뛸 듯이 달려와 어쩔 줄 몰라하니 당황했을 게다. 고등학교 은사님이었다는 사실을 두서없이 설명했다.
“자네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네, 선생님. 여자 옷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타국에서 고생이 많구먼. 내 아들도 여기서 티셔츠 가게를 하지.”
세상이 넓다지만 몇 사람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 했던가. 안면이 있던 이웃이 선생님 아들이라니.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는 과거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역은 고등학교 일 학년 미술반 교실. 평소 그림 그리는데 관심이 많았던 나이기에 특별활동을 미술반으로 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 미술반으로 갈 때 뛰다시피 한달음에 갔다. 선생님은 항상 문이 닫혀 있던 옆 교실에 이젤 앞에서 꼿꼿한 자세로 그림을 그렸다.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열중하던, 내가 기억하는 L선생님이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격자 유리창 너머 선생님을 쳐다보며 스쳐 지났다.
2학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국전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았고 국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선생님 방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 속의 소 그림은 이중섭 화백을 생각나게 했다. 거칠고 투박한 선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꼈다면 선생님의 소는 다른 질감으로 느껴졌다.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된 소와 옆에 농촌의 아낙네나 바지 단을 접고 고무신을 신은 소년이 함께 그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온유한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미술 후학을 길러내는 것이 더 큰 보람이라며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을 마다하고 고등학교에서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했다. 명예도 멀리 한 진정한 교육자요 예술가 삶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L선생님과 교집합 없이 시간이 흘렀다. 친구 중 한 명을 모델로 정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될 즈음 L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림 그리는 것을 꼼꼼히 살펴보며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질문을 했는데 기억에 없다. 다만 당황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제대로 답을 못했다. 선생님은 수업 끝나고 잠시 보고 가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남은 시간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정신이 아득했다.
노크하고 들어선 선생님 방. L선생님과 우리 담당인 S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미술을 배우고 싶으면 방과 후에 오라 했다. 소질이 있고 일 학년이니 배우고 익히면 잘할 수 있겠다 했다.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던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게 어떠한 상보다 좋았다. 그렇게 미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L선생님은 나에게 높은 산이었고 S선생님은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었다.
방과 후 미술실로 향했다. 텅 빈 교실 안을 꽉 채운 유화물감 냄새와 또 다른 안료 냄새가 섞여 코를 자극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주변을 정리하면 수업을 마친 언니들이 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 그릴 준비를 부산하게 하는 선배의 동선을 눈으로 따랐다. 풋풋한 초여름의 빛을 담고 있는 수채화와 거칠고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유화 작품을 보며 내가 그림 그리는 상상을 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동안 데생만 하다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재료를 준비해야 했다. 목록을 보면서 좌절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포기도 빨랐다. 학교 다니기도 버거웠던 가정형편을 잘 알기에 미술은 나에게 닿지 않는 신기루였다. 조용히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벽 앞에 꿈을 접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지만 한 점의 연결이 온 우주 마냥 크고 넓게 내 안에 자리했다.
선생님은 수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봄바람처럼 가벼운 나와의 인연을 떠올리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짧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짜릿한 감정과 지속할 수 없었던 아쉬운 나만의 위로 속에서도 행복을 맛보게 해 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스승이다.
키가 다소 작아졌고 검은 머리카락이 흰 머리카락 안에 새치처럼 거뭇거뭇 자리 잡고 있었다. 여전히 비딱하게 쓴 베레모가 멋지게 잘 어울렸다. 문턱이 높았던 선생님의 방을 들어섰을 때의 흥분과 처음 이젤 앞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4B 연필로 선을 긋던 여고생의 수줍은 모습으로 돌아가 선생님과 마주 대했던 짧은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