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춘천전국관악경연대회
2012. 8. 28. 춘천문화예술회관
평 _ 이 영 진(음악저널 편집위원)
관악인구의 저변 확대와 그들의 음악적 분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뜻있는 관악인(管樂人)들이 모여 삼십
칠 년 전에 만든 대회가 한국관악협회 주최 대한민국관악경연대회이다. 규모와 연륜 면에서 이에 미치지 못하
지만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이끌어 와 척박한 땅에 관악의 활성화 기반을 조성한 대회가 춘천전국관악경연
대회이다.
흔히 메카(Mecca)라는 단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국내 관악의 메카로 거명되는 대표적인 도시가 제주와 대전
그리고 춘천을 이야기 하게 된다. 제주는 국제관악제 유치로 이미 탄탄한 관악의 성지로 구축되었고, 대전은
관악계의 거물급 지도자와 많은 연주가들을 배출하여 그 뿌리가 깊고 견고함을 오늘 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춘천은, 오래 전 강원 도내 관악지도의 전설이 된 당시 춘천중 음악교사 서종호 선생의 종횡무진한
활동으로 그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조련해 온 과정이 결실을 봐, 비로소 국내 곳곳에서 그들의 역할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다. 춘천전국관악경연대회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바로 그들의 지역서 그들이 시작한 경
연대회로, 이제는 매우 인지도 높은 명실상부한 전국대회로 성장시킨 모범사례의 대회이다.
대부분의 콩쿠르나 경연대회가 그렇듯, 선의의 경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이틀간 경연을 벌린다는 사실
은 대회에 참가한 학생이나 듣는 청중, 혹은 평자(評者)의 입장에서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다. 지정곡으로 부
여된 행진곡을 스물여섯 번(참가팀이 26개교) 들어야 하고, 십여 분이 넘는 관악 작품을 거의 반복적으로 역
시 스물여섯 번을 들어야 한다. 경연대회의 연주가 일반 음악회의 연주와 다름은, 듣는 이와 연주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긴장감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이고, 같은 곡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는데서 오는 지루함이다. 따라
서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이들은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곳곳에 긴장감이 배어 있게 마련이고, 긴장감이 묻어 있는 음악을 들으려는 청중도 긴장 속에 있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런 가운데도 모든 부자연스러움을 떨쳐 버리고, 시종 흐트러짐 없이 유려하고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 준 몇몇 관악합주단이 있기에 춘천전국관악경연대회의 품격이 높게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 품격의 주인공이 청주 일신여고 관악합주단과 옥천여중합주단, 경북 구미의 형일초등학교 합주단이다. 관
악연주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표현이겠지만, 실력 있는 국내
초등학교 관악합주단의 연주능력을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일반 보병 사단군악대의 연주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실력으로 보면 지나치지 않는다. 과거 미 해병대가나 수우자(Sousa)의 행진곡 정도를 소화하는 수준의 연주
가 아니라, 얄미울 정도의 정확한 텅잉과 난이도 높은 아티큘레이션의 완벽한 테크닉을 기본으로 놀라운 기량
의 톤 컬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정상급 초등학교 관악부의 현실이다.
대회 첫날인 28일 연주에서 뿜어 낸 형일초등학교 관악부의 행진곡 「Spring breath marc(Watariguchi, T
omonori)」와 합주곡「Fate of the gods(Steven Reineke)」은, 80여명의 대 편성 관악합주단의 퀄리티 높은 톤 컬러를 바탕으로 파트 간 정확한 피치와 밸런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어 냈다. 지도
교사 전진현의 헌신과 피눈물 나는 열정이 없었다면 과연 초등학교에서 저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라
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질 높은 연주력을 펼쳤는데 여덟 명의 타악기 주자의 연주력도 탁월했고, 트롬본의 안
정적인 호흡도 전체적인 합주의 균형을 조화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상대적으로 편성 면에서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형일초등학교와 대등한 수준으로 연주했던 학교를 소개하자면
진주초등학교 관악 합주부였다. 지휘자 이문형의 비팅 테크닉이 돋보였고 다이내믹이 절묘하게 연주에 녹아
들어 합주의 묘미를 잘 살려 낸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같은 날 중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한 충북 옥천여중의 지도교사 김민정은, 여성 지휘자라는 온정적인 시선을 날
카롭고 섬세한 지휘로 물리치며 황금빛 사운드로 집중력 높은 연주를 하였다. 일본 작곡가 겜바 후지타(Gemb
a Fujita)의 행진곡「Marine City March」으로는 금관 파트의 안정적인 음색과 훌륭한 호흡으로 고급한 연주
를 선사했고, 자유곡으로 연주한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행성(The Planets)」중 <JUPITER>는 리드(reed) 파트의 현란하고 정확한 텅잉을 바탕으로 난이도 높은 곡을 황홀감 넘치게 연주했다.
그러나 춘천전국관악경연대회의 백미는 단연 29일 경연무대에 오른 청주 일신여고의 완벽한 관악 사운드였
다. 스물여섯 개 참가팀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합주단에게 수여하는 대상 수상학교답게, 균형감과 잡티 하나 없
는 순백한 톤 컬러로 관악합주의 국정교과서 같은 흠결 없는 연주를 들려 줬다는 점에서 갈채를 보낸다. 완성
도 높은 일신여고의 이날 연주는 실내악과도 같은 섬세함과 결코 지나침 없는 다이나믹으로 관악합주의 예술
성 높은 경지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기념할만한 연주였다.
<음악저널 201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