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수필-진월 (김부배)
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때였다.
마음속 길목에서 서성이는 그리움으로
몸살앓던 어느날,서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있는
아랍왕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훵한 빈자리 같은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가끔씩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일상이라는 틀에서 탈피해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딱딱해진 가슴에
낭만이 깃들었다.그 낭만이라는
에너지로 다시 일상을 꾸려갈 수
있었다.
아시아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입헌군주국,정식 명칭은 요르단
삼왕국이다.종족 구성은 아랍인이
98% 아르메니아인이 1% 체르케이스
인이 1%였다.여러 종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나라.사막의
땅이라는 색다른 느낌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설레였다.'사상누각'
이라는 말이 있다.모래 위에 세운
누각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그런데 어떻게
사막의 땅 위에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곳
요르단에서 모래놀이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잠시 즐거운 상상도 해보았다.
요르단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종교는 92%가 이슬람교였고,기독교
는 6% 기타 종교는 2%정도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광공이다.
중동 내육의 교통 중심지로 국제공항
노선과 통신망이 잘 발달되어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누각은
이곳 요르단에서는 분명 잘못된 것
같다.사막이라는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요르단 사람들의 저녁이
눈부셨다.요르단은 국왕 중심제의
입헌군주제이고,의회는 양원제이다.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 55석과 임기
4년의 하원 11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르단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그들이 참으로 휼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요르단으로
들어서는 길이 몹시도 위험해 보였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꿈꿨는데
순간 긴장을 했다.왜냐하면
사막의 도시 자체가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가끔씩 계곡에서 만나는
푸른 나무들은 작은 키로 듬성듬성
서 있었다.너무나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몇 시간쯤 지나고 보니,어느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오가는 요르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느꼐졌다.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전개되어 매우 좋았다.
깨끗한 상태로 계속 이어진 정경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시간에는
호텔 로비에서 이방인들과 어울렸다.
그 사이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그리고는 한 방에 모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우리 일행은 모두
일정에 맞추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
하고 싶었다.나는 잠시 현지 가이드와
상담 했다.그 결과 유명한 페트라에
가기로 결정 지었다.나는 27명을
인솔하는 인솔자의 자격으로 용감
하게 여기까지 왔다.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대견해 보였다.어렸을
때는 선생님의 뒤만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인솔자가
된 것이다.무엇이든지 여행지에서는
내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었으니까.
현지 가이드가 날 여왕처럼 대하는
태도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가이드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여행 계획를
세웠다.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꽤 흘렀다.우리는 내일을 위해 각자
자기 방으로 가서 쉬었다.
호텔의 분위기가 정말 멋졌다. 요르단 패트라
깨끗한 욕실에 인테리어까지 알카네,알 데이르수도원,왕가무덤
세련됐다.디자의 변기가 인상적
이었다.딱 맞는 사이즈가 맘에
들었다.꼭 필요한 곳마다 제대로
물품이 갖추어져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인솔자였기에 혼자서 쓰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다니 매우 감사했다.
내일을 위해서 인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일정은 그 유명한 페트라를
만나는 것이었다.페트라를 향하는
마음이 몹시 설랬다.사막에 새겨진
장미빛 도시 페트라처럼 나의
기분도 장미빛이었다.사막에 있는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대상 도시이다.선사시대부터 사람
들이 살았던 곳으로,홍해와 흑해
사이에 있다.이곳은 이집트와 아라비
아,페니키아 사이의 중요한 교차지점
에 위치해 있다.그래서 번영을 누려왔다.페트라의 건물들은 바위
산을 반쯤 깍아서 만들었다.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이 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대 동방의 전통과
헬레니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곳이
페트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페트라는 과거 문명을 아주 특별하게
증언하고 있다.비바람에 깍여도 살아
남을 사막의 증언들이 페트라를
떠받치고 있었다.사막의 고요를 입고
장미빛 도시로 피어난 페트라는
여전히 웅장했다.움알아마드의 구리
광산과 지하 갱도는 기원전 4세기의
광산 건축물의 탁월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우회 땜과 두트림 터널,
수로,수도,집수지,물탱크 등은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의 치수
기술을 보여 주는 탁월한 유적이다.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다.그 후,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시달리고 있었다.페트라는 그리스어
로는 돌이라는 뜻으로'바위'를 의미하고 있다.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페트라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또한 영국의 시인 존 버건이
페트라를 원영의 절반 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다.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존스,마지막 성배"
(1989년)찰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런저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 깊은 유적지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페트라 사람이
되어 보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고대의 그 시절에도 우리처럼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왁자한
열기로 1월이 오고 12월이 갔을
것이다.그 속에서 고대인들도 사랑에
아파하며 이별을 지워 나갔을 것이다.
페트라 안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오고가는 길이 재미가 있어 보였다.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진 페트라의
엄청난 돌 조각들, 그 자체로도
웅장했다.직접가서 보지 않고는
무어라 표현을 할 수조차 없는
모습들이었다.찬란하게 빛나는 이곳,
정말 환상적이었다.어디선가
페트라 인의 사람이 반짝 돌아보는
것 같아 눈이 부셨다.점심은 미리
예약된 양갈비였다.양파,피망,토마토
등 다양한 종류의 구이뿐만 아리라,
특색 있는 음식들이 다양하게 준비
되어 있어서 좋았다.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까지 맛깔스럽게 해 아름다운
페트라의 추억을 만들었다.
요르단을 사랑하는 마음을 뒤에
남겨 놓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사막의 길에 있는 모세의 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정말 신기한 못습이
었다.겉은 모래와 돌뿐인데,밑에서는
큰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세의 샘물은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식물 등을 키우고 있었다.
석회수이기 때문이었다.물이 귀한
사막에서 이렇게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물이 마냥 아까웠다.사막을
걷고 있는데 모래바람에 시야가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대의
페트라인들도 이런 막막함 앞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그 막막함을
딛고 사랑이라는 꽃을,페트라라는
도시를 피웠을 것이다.
모래바람과 모세의 샘 그리고
페트라,이렇게 곳곳이 전혀 다른
색깔의 요르단은 참 매력적인
곳이었다.역시 요르단 여행을 잘
왔다.볼거리가 많고 요르단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배울 점도 많았다.멋진 나라,
문명이 살아 숨쉬는 요르단이여
안녕.(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