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토장정 13 (2010. 12. 04)
23.3km (258.9km)
(당진군 신평면 도성리 -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 팔봉면 흑석리 - 덕송리 - 태안군 읍 어은리 - 산후리)
7시 안양에서 만나 바로 서해안 고속도로에 올라 서산 IC를 나와 서산시 읍내동에 “진국집”으로 들어가 아침식사를 한다.
오늘 아침 메뉴는 서산에만 있다는 게국지 백반.
메뉴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에는 너무 일찍 온 손님들이 반가운 건지 아님 귀찮은 건지 아주머니는 주문은커녕
눈도 안 마주치며 “어쩐듀.” 만 외고 있고
방문을 열고 나오시는 할아버지는 막걸리부터 한 잔 따라 단숨에 들이키시고 입맛을 다시신다.
영 분위기 썰렁한 것이 인터넷 맛집에 또 낚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침 첫 손님 같아 개시 턱은 해야겠기에 “아주머니 3사람이요” 라고 말하니
또 아주머니는 “어쩐듀. (잠시) 방으로 들어 가실류?” 그냥 그렇고 해서 몇 안 되는 테이블에 그냥 앉는다.
막걸리를 다 드시고 잠에서 덜 깨신 듯 아님 해장술에 취하신 듯 표정으로 할아버지 한 말씀하신다.
할아버지 : 어찌 이리 후진 집에 찾아 오셨슈?
경용 : 인터넷에 유명하다고 나와서 먹으러 왔지요.
할아버지 : 그리유? ! 인터넷인가 뭔가에 여기가 유명해유?
경용 : 서산 맛집 딱 치니까 일등으로 나왔는데요.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보여드린다)
할아버지 : 그리유? ! (아까의 그리유 와는 억양이 약간 다른 듯)
경용 : 맛있으니까 이렇게 나왔지요
할아버지 : 그리유? ! (“?”인지? “!”인지?) 내가 올해 여든셋인디. 인제 전화도 뭐 그런 것두 아무것도 몰라유.
경용 : 아니 할아버지 진짜 그 연세세요? 일흔 좀 넘어 보이시는데요.
할아버지 : 진짜유 여든셋이유. (잠시)
우리 할멈이 부엌에서 60년 넘어 그것만 만들어 쓰이 맛은 그리유.(이번에는 긍정과 자랑이 좀 섞여있는 듯)
경용 : 할아버지 건강하신게 다 할머니 가 좋은 음식을 해 드려서 그런가 봐요.
할아버지 : 그리유 맞는 지두. (다시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근디 그런게 전부 다 나와유. 신기하네
(할머니 반찬을 가득담은 쟁반을 들고 등장)
할머니 : 인터넷에 언제 나왔는디 봉창 뚜들겨유. 조용히 들어가유.
할아버지 : 나는 몰랐네 나왔는지. 그리구 손님 싹싹하니 말을 거니께 대답한거지.
할머니 : 어여 들어가유. 셋째 나오면 또 한소리 들어유.
모두 : (쟁반에 나온 반찬을 보고 다 놀라고 있다)
경용 : 그런데 어떤 게 게국지죠?
할아버지 : 그거유 (손으로 가리키며) 그럼 잘 먹고 가유. 난 아들오기 전에 들어가유.
모두 : 네
할아버지: 신기하네 그게 나 나왔어. (방으로 퇴장)
할머니 : 어쩐듀. 아직 반찬이 다 안되나서. 뭘 좀 더 드릴까?
아까 아주머니의 “어쩐듀”는 아직 아침 준비가 덜 됐는데 벌써 찾아 온 손님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배인 말씀이란 걸
비로소 알았다. 게국지인지 겟꾹지인지 메뉴판에 쓰여 있질 않으니 알 수가 없지만
게장의 국물을 김치와 새우등을 넣고 끓였다는 찌개는 푹 삭힌 우거지(김치)의 맛이 흐린 맛으로 느껴질 정도로
뒷맛에 은은히 따라 올라오는 게의 비린 맛과 달콤함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게국지와 쟁반 가득 서산의 산과 들에서 또 바다에서 나왔을 나물이 서산의 맛과 할머니의 정을 듬뿍 담고 있다.
일흔 여덟이신지 일흔 아홉이신지 (할아버지가 우리 할멈이 나랑 네 살인지 다섯 살인지 차이가 난다고 말씀하셨음)
많은 나이지만 오래오래 건강하게 서산의 맛을 지켜주셨으면 한다.


든든한 아침에 도성리 마을 앞길에서 장정을 시작한다.
태안반도의 바다 쪽 마을은 거의가 다 오래전에는 바닷가 마을이 간척으로 인해 농촌으로 변한 곳이다.
도성리도 마을에서 방파제가 있는 곳까지 바둑판 모양의 논들이다.
그 논길을 걸어 바닷가로 와서 물 빠진 갯벌, 바닷가로 계속 걷는다.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어마 어마한 갯벌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이 바다의 속살이 바지락, 꼬막, 낙지로 지천이라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웅도까지 아니 그 넘어 고파도까지도 지금은 모두 갯벌로 보인다.



그렇게 중왕리를 지나 1km가 조금 넘는 방파제를 지나고 나서 중하와 인변이가 교대를 한다.
바닷가 길은 물이 들어오면 없어져서 걸어 갈 수 없지만 물이 다 빠진 바닷가도 이제는 갈 수 없는 길이 많다.
바람에 쓰러진 해송들이 바닷가를 덮쳐 버린 곳은 정글 탐험도 아니고 나무를 타고 이리 오르고 또 이리 내려서
간신히 지나가면 갈대가 점령해 버린 그런 곳도 나오고 그냥 길을 걷는 것보다 몇 배나 힘이 든다.
이 굽이만 지나가면 넘어가는 길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계속 헤쳐 나가지만
바로 앞의 방파제는 가면 갈수록 멀어지고 나중에는 그 방파제가 저 갯벌 넘어 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리에 힘은 빠지고
끝없는 자갈밭과 갈대밭 또 숲....
간신히 산허리로 올라서서 한 숨을 돌린다.
산허리 무밭과 양배추 밭에는 수확하고 남은 알이 덜 찬 양배추와 작아서 버림받은 무가 귀엽게 바라본다.
무를 뽑아 중하가 껍질을 벗겨 줘서 한 입 베무니 달고 시원한 맛이 갈증을 멀리가게 한다.
또 양배추도 속살은 없지만 그런 대로 요기가 된다.




그렇게 흑석리를 지나 드디어 안쪽 조금한 다리, 팔봉면 양길리 양길교를 만났다.
이 다리를 만나 건너기 위해 4km가 넘는 이 험한 해안을 따라 들어 왔다는 것이 허탈도 하다.
20미터가 조금 넘는 다리를 건너 팔봉초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학교 앞에서 잠깐 쉬고 덕송리 마을 쪽으로 계획된 진로를 수정하여 태안반도에 있는 제일 유명한 산,
팔봉산을 왼편에 바로 끼고 634번 도로를 질러간다.

태안반도는 서산시를 중앙에 두고 북동쪽으로 당진군과 서남쪽으로 태안군이 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삽교천부터 시작하여 아산만을 돌아 왜목항까지 한줄기,
대산항을 중심으로 2번째,
태안항 안쪽 만대항 쪽으로 3번째,
만리포 쪽으로 4번째,
통개항 안쪽으로 5번째,
그 건너 신진도 쪽으로 6번째,
마지막으로 안면도 쪽 드르니항이 7번째,
이렇게 반도안에 또 반도가 있다. 물론 작은 곳까지 치면 수십 개는 족히 더된다.
이 일곱 곳의 끝까지 가서 점을 찍고 오는 것이 우리 일토장정의 목표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그래도 조금 질러 갈 것은 질러가자. 답답하다.” 라는 의견과
“빨리 가면 뭐하냐? 구석구석 천천히 보며가자 언제든 갈 건데” 라는 의견이다.
대체로 장정계획을 짤 때나 첫 날의 기분이면 구석구석 가자로 의견이 모이다가
막상 배가 고프거나 첫 날의 장정이 끝날 갈 무렵부터 지친 둘째 날은 여지없이 질러가기로 의견이 모인다.
태안반도는 그렇게 질러가기와 구석구석가기가 섞여 지도상에 우리의 발자취가 재미있게 새겨진다.
지금이 바로 그 2번째와 3번째의 중간으로 들어와 있는 곳인데 그 중앙에 작지만
그래도 둘레가 10km는 넘는 덕송리와 호리쪽인데 그냥 잘라간다.
이유는 벌써 1시가 넘어 배가 고파서 인지도.... 고
개를 내려와 오목내사거리에서 일단 멈춘다.
인변이가 차를 가지고와 점심은 구도 선착장으로 간다.
오후가 되니 바다는 벌써 갯벌에 물을 가득 채웠다.
물이 가득한 바다는 흡사 남해의 다도해처럼 보인다.
이곳이 태안반도에서 육지 쪽으로 제일 깊숙하게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인데 항공지도로 보면 양 한 마리가 서있는 것 같다.
구도선착장이 목 부분이고 위로 올라가 호리와 마산리가 마주보는 직선거리로 300m가 되지 않는 바다를
직선으로 이으면 머리 뒤통수가 되고 솔감 저수지는 앞다리가 산후리 쪽은 뒷다리가 청산리 이화산 쪽이 뭉뚱한 꼬리가 된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조금한 두 개의 섬은 젖꼭지가 된다.
오늘의 일정이 이 양의 다리와 배를 쓰다듬으며 가는 코스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적절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목구멍부분에 와서 배를 채운다.
“박속밀국낙지” 박속을 넣고 밀국(수제비)를 띠운 낙지탕이다.
지금은 수제비 대신 칼국수지만 제철 낙지를 잘 흥정하여 개수를 맞춰 싸우지 않게 하고
싱싱한 굴도 한 접시 시켜 동동주와 함께 정신없이 먹는다.
섬유질이 많은 박속은 시원한 국물을 만들고 정신없이 끊는 물로 들어간 낙지는 분홍빛 야들야들한 다리의 달콤함을 준다.
정신없이 대가리까지 다 먹고 나니 칼국수가 또 풍덩 들어간다.
벌써 배는 부른데 밀가루와 만난 국물이 부드러운 스프처럼 계속 배속으로 들어가고 쫄깃한 칼국수는 입으로 찾아든다.



다시 장정의 시작이다.
인변이와 중하가 교대를 하고 난 계속 걷는다.
634번 도로를 따라 걷다가 양의 앞다리 부분인 솔감저수지 방파제를 넘어 드디어 서산시를 벗어나 태안군으로 들어서서
도내 나루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양의 가슴과 배를 쓰다듬으러 간다.
도내와 안쪽에 있는 안도내로 가며 다시 다도해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이 길로 가면 돌아가는 건지 안 돌아가는 건지 도네 안도네 하며 말장난을 해본다.
순간 길을 잘못 잡아 산위로 올라갔는데 산위에 고기잡이 작은 배가 올라와 있다.
사공이 많아서 예까지 올라왔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음식점을 하려고 지어 놓은 건물이 유리는 깨져있고
산으로 올라온 사공들이 음식점을 하려고 하니 잘 될 턱은 없을 것이다.
배를 지나 나오니 다행이 안도내로 들어가는 길과 이어진다.
안도내로 깊숙이 들어가 살짝 가슴을 만져주고 배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와 가질 못하고 뒷다리 쪽으로 바로 질러간다.
태안군 태안읍 어은리와 산후리가 바로 이 부분이다.
산길로 천천히 돌다보니 산후리가 끝나고 삭선리와 경계지점이 정확히 양의 뒷발이다.
산후리로 막 접어들어 내가 중하하고 교대를 하고 마지막은 인변이와 중하가 마감을 한다.




첫댓글 중하야 무는 손톱으로 득득 깍아먹어냐 제맛이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