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요 도로名의 유래》
1. 을지로와 충무로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후에도 종전의 일본식 도로명을 계속 쓰다가 1946년 10월 서울시장 주관하에 우리식으로 도로명을 변경하기 위한 T/F가 발족하면서 제일 먼저 개편에 착수한 도로명이 을지로와 충무로였다.
을지로는 당시 중국인들의 상가가 주로 이어져 있었고,지금도 중국인들이 직접 경영하는 안동장, 동화반점, 태화루, 오구반점 등이 남아있다. 이에 T/F에서는 중국인들의 색채를 빼내기 위해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을지문덕 장군을 모셔다가 을지로로 이름 지었다.
반면에 충무로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살까지 머물었던 생가가 을지로 3가 역과 충무로 역 중간 지점(명보 아트홀 앞) 이었기에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충무공을 모셔다가 충무로로 이름 지었다.
2. 퇴계로와 율곡로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문(文)과 무(武)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먼저 을지로와 충무로에 무인(武人) 중심으로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다른 도로들은 문인(文人) 중심으로 이름 짓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인(文人)인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 이이 선생이 논의되었으며, 이율곡 선생이 관직에 있을 때 주거주지가 인사동이었기에 이 일대를 율곡로로 이름 지었고, 퇴계로는 비록 퇴계 이황이 서울에서 거주한 사실은 없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인(文人)이었기에 퇴계로라는 이름을 지었다.
3. 세종로와 태평로 그리고 원효로
세종로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종로구 옥인동이었기에 그렇게 이름 지었고, 태평로는 중국 황제의 칙명을 가지고 오는 칙사가 머무는 태평관이 남대문과 시청역 사이에 있었기에 태평로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원효로는 당시 T/F팀장이던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이 독실한 불교 신자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인 원효대사를 기린다는 차원에서 다른 팀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밀어 붙여 원효로란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4. 테헤란로
우리나라는 1973년 오일 쇼크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 석유는 배급 받고 공장 조업은 단축되었으며 물가는 급등하였다.
이러한 형국에 유일하게 우리나라에게 석유를 지속적으로 공급했던 이란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서울시와 테헤란시는 자매 결연을 추진하여 1977년에 강남의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변경하였고, 테헤란에는 서울로라는 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5. 영동대로(永東大路)
지금의 강남이 본격 개발되기 이전의 강남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과 광주군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1963년에 이 지역이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에는 성동구 영동출장소가 생겼다.
그리고 1960~70년대에 한강 이남에서 제대로 도시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은 1936년에 시흥군에서 경성부(서울)로 편입된 영등포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남지역을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永東)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영동(永東)이란 이름이 남아있는 곳은 1976년 6월에 이름이 붙여진 영동대로(永東大路) 외에도 '비내리는 영동교'의 영동대교, 영동 시장, 영동고등학교 등이 있으며 얼마전에 강남 세브란스로 바뀐 영동 세브란스병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출처: 이성주의 블로그, '세상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