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웬만한 도시 구시가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 곳이 많다. 옛날에 그 도시에서 사람들이 강을 끼고 어떻게 살아갔을 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고 도시마다 특색이 있어서 감동적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라 옛모습을 다 잃어버린 우리로서는 한없이 부러운 모습이다.
에센은 독일을 여행하기 전에 내가 몰랐던 도시다. 독일 여행 중 우연히 에센에서 지난 5월 독일에 광부를 파견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는 기사를 뒤늦게 접했다. 마침 퀠른에 가는 길이어서 에센 졸버레인 탄광산업단지를 찾아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독일 탄광에 일하러 갔던 배경이 바로 졸버레인 탄광이다.
졸버레인 탄광산업단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탄광건물 중 일부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라한다. 1986년 폐광될 때까지 150여년간 독일 산업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이곳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파독광부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에센 시내를 걸으면서 다가구주택이 보이면 '저 집이 우리 광부들이 머물던 집일까?'라는 생각을 했고, 에센 가정집 정원에 무궁화가 많이 보이는데 이것도 파독광부들이 전파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50년 전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꿈 하나만 품고 이 먼먼 땅에 온 젊은 광부들의 마음을 상상해봤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너무나 멀어서, 캄캄한 굴 막장이 너무 막막해서, 가족이 그리워서, 일이 힘들 때, 일 마치고 갱도에서 나오며 하늘의 달을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이 많았을까? 그래서인지 이 탄광이 아름다운지는 느낄 수 없었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 내가 이곳을 여행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뷔르츠부르크는 국내 한 여행책자에 독일 수도 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등 유명한 도시들 소개도 없는데 들어본 적이 없는 뷔르츠부르크와 밤베르크 소개가 있길래 뭔가 있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찾아간 도시이다. 지금까지 요새도 많이 만나고 성도 많이 만났는데 뷔르츠부르크의 마리엔베르크 요새가 진짜 요새다웠다. 원래는 켈트족의 요새였다고 하는데 엄청 튼튼해 보이고 뷔르츠부르크 시가지와 독일에서는 이례적으로 와인산지로 유명한 이 도시의 포도밭들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였다. 왕족출신 주교 쉰부른이 1744년 완공하게 한 레지던츠(궁궐)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어서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긴다고한다. 개방된 일부만 돌아보았지만 주교가 머물던 궁전이 이렇게나 화려해도 될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했다.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 알테마인교에는 이 고장 특산 와인을 마시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뷔르추부르크 특산 와인은 병부터 특이한 프랑켄와인이다. 우리도 한 병 사서 먹어보았으나 맛이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다.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이 뷔르츠부르크대학 교수로 있을 때 X선을 발견했다. 특허를 내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인류가 다함께 누려야한다며 특허신청을 거절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이 도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한 공로로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한 가지 있다. 도시 이름이 낯익어 혹시나 하고 카롤라의 주소를 찾아보니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만났던, 수리 맡긴 우리 캠코더를 받아주기로 했던 카롤라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뷔르츠부르크였다. 약속대로 내년 봄에 다시 들리겠지만 카롤라가 사는 도시에 가서 못만나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밤베르크는 2차대전 중 독일에서 유일하게 폭격을 피한 도시라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거리마다 고색창연(이 낱말이 진짜 실감나는)한 건물들이 아름답다. 밤베르크 대성당 등 수많은 종교 건축물과 궁전 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감동적이었으나 반대로 차도도 굉장히 좁고 주차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이틀 머물기로 했던 계획을 하루로 줄였다. 밤베르크 구시가지 강 한가운데 아름다운 붉은 프레스코화로 벽을 치장한 옛 시청 건물이 있다. 시청이 세워질 당시 강 왼쪽 카톨릭 교구와 강 오른쪽 서민들이 서로 시청을 자기네 쪽으로 유치하려고 다투어서 강 가운데 시청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주적이고 현명한 결정덕에 이 시청은 후손 대대로 밤베르크에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더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당시 카톨릭 교구의 권위가 대단했던 시기였을텐데 서민들의 의견을 똑같이 중요하게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구시청과 구시청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를 알고나니 더 특별하고 정겨웠다. 밤베르크에 충분히 머물지 못한 아쉬움은 밤베르크 특산 맥주(훈연한 맛이 나는 라우흐비어)로 달랬다.
이 도시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야기 때문이다. 독일 여행에서 이야기와 함께 오래 마음에 남을 예쁜 도시들을 알게된 우리는 복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