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속에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한 데 이어, 세 번째 주제인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장 13절을 보시죠. 지난주 강의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보여주신 두 가지 환상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 환상이었지요.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Shaqed)'입니다. 그런데 12절의 '지키다'라는 단어는 '샤카드(Shaqad)'입니다. 1장 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하셨듯이, 살구나무(샤케드)를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실(샤카드) 것임을 언어유희를 통해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13절부터 나오는 북쪽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 환상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끓는 가마가 무엇입니까? 어릴 적 시골에서 소 여물을 끓이던 큰 가마솥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들이 놀다가 거기에 다리가 빠져 큰 화상을 입는 안타까운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끓는 물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처럼, 북방으로부터 쏟아져 내릴 끔찍한 심판의 재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4장 5절부터 7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심판이 얼마나 임박했는지를 절절하게 묘사합니다. 바벨론의 침략을 수풀에서 뛰쳐나오는 사자로 비유하며 긴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4장 11절을 보면 또 다른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사막 광야에서 불어오는 살인적인 열풍처럼 심판이 닥칠 것인데, 곡식을 고르기 위한 부드러운 바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파멸의 광풍이라는 뜻입니다.
5장 14절에서는 불의 비유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심판의 임박성과 확실성을 사자, 뜨거운 열풍, 그리고 모든 것을 태우는 불로 묘사하셨습니다. 15절에서는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라며 바벨론 군대의 침공을 명확히 예고하십니다.
6장 19절을 보십시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화하실 때도 '내 백성(My people)'이라 부르시다가 관계가 단절되고 심판에 이를 때 '이 백성(This people)'으로 호칭을 바꾸십니다. 여기에서도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선언하십니다. 인간이 맞이하는 파멸의 운명은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고 품었던 악한 생각의 열매라는 엄중한 선포입니다.
8장 13절부터 17절을 보면 임박한 심판의 양상이 더욱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으며 잎사귀가 마를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라고 기록합니다. 왜 '단'이 언급되었을까요? 우리나라의 국토 경계를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표현하듯, 이스라엘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표현합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국경입니다. 북방 바벨론의 군마 소리가 이미 북쪽 국경인 단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은, 적들의 침략이 이미 눈앞에 닥쳤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 주제인 '심판의 심각한 양상'은 본문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요?
예레미야 4장 23절부터 27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여기서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토후와보후(Tohu wa-Bohu)'로, 창세기 1장 2절의 창조 이전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와 정확히 같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3절)이 선포되기 전 원시 상태의 혼돈(Chaos)을 가리키던 단어가 예레미야 4장 23절에 쓰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벨론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당할 심판은 단순한 파괴를 넘어, 질서 있던 하나님의 세계가 창조 이전의 흑암과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De-creation)과 같은 철저한 파멸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27절 끝에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라는 말씀 속에 실낱같은 구원의 여지를 남겨두셨을 뿐입니다.
심판의 참상은 8장 1절과 2절에서 더욱 끔찍하게 묘사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볏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능욕하는 '부관참시'의 형벌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버리고 해와 달과 별을 섬겼던 그들이, 죽어서도 바로 그 해와 달과 별빛 아래 뼈가 버려져 거름더미처럼 짓밟히게 된다는 무서운 심판의 선고입니다.
이러한 기별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다섯 번째 주제는 바로 '선지자의 고통(패소스, Pathos)'입니다.
예레미야 4장 19절을 보십시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2절에서는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라며 탄식합니다. 알아야 할 하나님의 진리는 전혀 모르고, 몰라야 할 악행에는 영악한 백성들을 보며 선지자의 심장은 타들어 갔습니다.
8장 18절부터 22절에서도 눈물의 호소가 이어집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은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요단 동편 길르앗은 명약인 유향과 명의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명약과 의사가 있는데도 환자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니 고침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형국입니다. 죄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는 백성들의 영적 불감증 앞에서 예레미야는 피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보충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우상 숭배의 죄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7장 30절부터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힌놈'은 고유명사입니다. 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세워진 도벳 사당에서 그들은 암몬의 신 몰렉(밀곰)과 바알을 섬기며 자기 친자식들을 산 채로 불태워 바치는 인신 제사를 자행했습니다.
'도벳'이라는 말은 '침을 뱉다', '토하다'라는 히브리어 '투프'에서 유래하여 극도의 혐오를 나타내거나, 북을 뜻하는 '토프'에서 유래하여 제물로 바쳐지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덮으려고 북을 크게 쳐댄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봅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방 여인들을 통해 유입된 이 몰렉 제사는 므낫세 왕 때 극에 달했고,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통해 도벳을 부정하게 만들어 폐쇄했으나, 요시야 사후에 백성들이 다시 이 악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을 불살라 바쳤던 그 골짜기의 이름을 더 이상 '도벳'이나 '힌놈의 골짜기'라 부르지 않고,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매장할 자리가 없는 '죽임의 골짜기'라 부를 것이라고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자녀를 무참히 죽였던 그들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도륙당할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히브리어 '게 힌놈')는 시체와 쓰레기를 태우는 악취 나는 하치장이 되었고, 헬라어로 음역되어 신약성경에서 바로 '게헨나(Gehenna)', 즉 '지옥'이라는 단어로 쓰이게 됩니다. 신약에서 언급되는 영원한 멸망의 장소인 지옥의 어원이 바로 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부터 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배은망덕한 죄, 가증한 우상 숭배, 지도층의 부패와 거짓 평강, 사회적 정의의 실종, 완악한 불감증, 그리고 성전 이데올로기라는 종교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동시에 창조 질서를 되돌릴 만큼 무서운 바벨론 침략이라는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마음 가죽을 베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아픈 마음으로 시대의 죄악을 경고하고, 그럼에도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희망을 눈물로 전했던 예레미야처럼, 저희 역시 이 시대를 분별하며 경고하고 위로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현대의 예레미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사용하여 주셔서 이 시대에도 구원받는 주의 자녀들이 늘어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우리 모두에게 영적 회복과 변화가 일어나게 하시고, 구원의 통로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핵심 요약 정리]
심판의 임박성에 대한 다양한 비유 (렘 4~6장, 8장):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 환상: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며, 북방(바벨론)으로부터 끓는 재앙이 쏟아져 내릴 것임을 계시함.
사자·열풍·불: 숲에서 뛰쳐나오는 맹수,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사막의 광풍, 나무를 사르는 불의 비유를 통해 피할 수 없는 바벨론의 침공을 경고함.
군마 소리가 들리는 단(최북단 국경): 심판의 군대가 이미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에 도달하여 재앙이 목전에 이르렀음을 선포함.
생각의 결과: 재앙은 외부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품었던 악한 생각의 필연적 열매임.
심판의 철저함과 참상 (렘 4:23~27, 8:12):
창조 질서의 붕괴 (토후와 보후): 심판의 상태를 창세기 1장 2절과 동일한 '혼돈과 공허'로 묘사하여, 창조 이전의 흑암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총체적 파멸을 의미함.
부관참시와 능욕: 무덤의 뼈들이 파헤쳐져 그들이 섬기던 해와 달과 별 아래 거름더미처럼 버려지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함.
힌놈의 아들 골짜기와 몰렉 숭배 (렘 7:30~32):
도벳 사당에서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인신 제사(몰렉 숭배)를 자행함.
자녀를 학살한 대가로 그 골짜기는 시체로 가득 차 매장할 곳조차 없는 '죽임의 골짜기'가 될 것을 선언함.
히브리어 '게 힌놈(힌놈의 골짜기)'은 신약성경에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게헨나(지옥)'의 어원이 됨.
선지자의 고통과 눈물 (렘 4:19, 8:18~22):
죄악의 파멸을 눈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며, 길르앗의 의사와 명약이 있음에도 병들지 않았다고 우기는 백성들의 영적 불감증 앞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애통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