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핍박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안식일과 연관시켜서 말씀하시는 너무너무 중요한 장입니다. 근본정신을 설명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이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창조의 기념이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하거든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또 예수께서 안식일을 구원의 날로 만드신 거잖아요. 사람을 살리는 날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려야 해요. 예배를 잘 드릴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으로 이렇게 함께 나아가는 것이 수직적인 하나님 섬김과 수평적인 사람 구원, 이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6장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절.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 요한복음 5장은 정말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우리가 참예배, 참안식일 준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두 가지 국면인 창조와 구원, 그 두 가지 국면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 낼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하고요. 6장으로 건너오겠습니다. 남은 시간이 짧기 때문에 6장의 전체 내용을 다 다루지는 못하고, 첫 번째 에피소드 사건만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신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그렇게 빌립에게 물으신 이유를 6절은 해설해 줍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당신이 이미 계획이 있으신 거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6장
6절의 해설을 통해 예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예수께서 빌립을 콕 집어서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복음서에 다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성서학자들은 빌립이 늘 셈이 빠르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말씀을 듣지 않고 점심 때가 가까워 오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지?' 하고 속으로 계산만 하고 있었던 경향의 사람이었다고 해석해 냅니다. 우리 중에도 각각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에 저도 야영에 다녀왔는데, 야영의 식사 당번을 맡으신 멤버들은 설교가 귀에 안 들어오고 메뉴만 자꾸 생각나고 '돈이 얼마나 드나' 이런 생각만 하게 되죠.
아니나 다를까 빌립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7절,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질문하자마자 곧바로 계산이 탁 나오는 것으로 보아, 빌립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계산하는 사람이었고 제자들과 예수님 사역의 재정을 담당하는 회개가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8절입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속으로 계산하고 있던 상황에서 안드레는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하고 한 아이를 예수께로 데리고 오지요.
요한복음 1장 40절을 가보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안드레가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된 직후, 41절에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42절에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께로 온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안드레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게 두 가지가 있다면, 첫째는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께 온 것이고, 두 번째가 요한복음 6장 8~9절에서 아이를 데리고 예수께 온 것입니다. 안드레는 복음서에서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반면에 베드로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요. 그런데 그 베드로를 예수께 데려온 자가 안드레입니다. 교회에서도 사람을 잘 데려오는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는데 아주 중요한 은사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데려오고, 또 이 아이를 데려옴으로써 7대 기적 중 하나인 5천 명을 먹이는 사건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9절,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빌립은 200데나리온이라는 숫자를 이야기했지만, 안드레는 한 아이의 오병이어를 가지고 와서 "이게 도대체 뭐가 되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왔을 뿐 정작 그가 한 일은 없습니다.
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오천 명쯤 되더라. 먹은 사람이 남자들만 5천 명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에도 나오지요.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니,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차시라.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어떻게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였을까에 대해 현대인들이 기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어떤 설교자들은 한 아이가 오병이어 도시락을 내놓는 헌신의 모범을 보고 감동받은 어른들이 각자 숨겨둔 도시락을 꺼내놓아 다 같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고 합리적으로 해설하기도 합니다. 아주 그럴듯하고 이해가 잘 되는 설명이지만, 본문 11절은 분명히 예수께서 그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 나눠주셨다고 기록하며, 아이의 오병이어가 사람들을 먹인 원천이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주님께서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독특한 기록이 14절에 나옵니다. 14절,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한복음 4장 마지막 절(54절)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사건을 '두 번째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7개의 표적이 나오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서수 표현이 명시되어 있고, 6장 14절의 오병이어 사건이 세 번째 표적이 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표적 하나하나, 예수님의 자기 선언 하나하나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오병이어 사건도 단순히 기적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왕 하면 다윗이고, 조상 하면 아브라함이며, 선지자 하면 모세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모세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고 했습니다. 이 표현 이후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정관사를 붙여 '그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15절에 해설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이 구절은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로마의 지배에서 민족을 해방시켜 주고 정치적·역사적으로 으뜸이 되게 해줄 정치적 임금으로 예수를 삼으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군중의 반응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큰 시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타게 하여 보내시고, 당신은 기도하러 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는데 어두워졌고 풍랑을 만납니다. 이후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사건이 일어나지요. 다음 날 사람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예수를 찾아옵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긴 강화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60절에 중요한 사건이 나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십니다.
66절,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기록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중 중간에 떠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8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찾으실 때 던지신 질문은 "무엇을 구하느냐"였습니다. 그리고 6장 67절에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두 번째 질문은 "너희도 가려느냐"입니다. 신앙을 시작할 때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시고, 중도 포기하려 할 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십니다.
66절에서 많은 제자들이 주님을 떠났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제자들이 떠나갔으며, 베드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이에 대한 깊은 의미는 다음 주에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강좌에 몰두해서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핵심 요약 정리
안식일의 구원과 십자가 정신 (요 5~6장 연결)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수직적 섬김과,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수평적 사역이 어우러진 십자가 정신의 실현임.
오병이어 사건과 빌립·안드레의 태도 (요 6:1-13)
빌립:인간적인 계산(200데나리온)에 치중함.
안드레:한 아이의 작은 오병이어를 예수께 가져옴. (베드로와 아이를 예수께 인도한 안드레의 '인도하는 은사'가 강조됨)
오병이어 표적: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세 번째 표적.
유대인들의 정치적 메시아관 (요 6:14-15)
오병이어 기적을 본 무리는 예수님을 신명기 18장에 예언된 '그 선지자(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알아보았으나, 영적 구원보다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 왕으로 억지로 모시려 함.
예수님은 이 세속적 열망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심.
신앙의 시험과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0-67)
예수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많은 제자들이 수군거리며 예수를 떠나감.
신앙의 두 가지 질문:처음 제자를 부르실 때의 질문("무엇을 구하느냐?")과 떠나가는 무리 속에서 남은 제자들에게 던지신 질문("너희도 가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