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장 위에 황동나비가 고요히 앉아있다. 흡밀吸密이라도 하듯 미동이 없다. 철심鐵心이 박힌 나비의 반쪽은 몸판에, 다른 쪽은 문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금빛 날개가 팔랑거린다.
친정 안방에 놓인 화초장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 두 칸짜리 문판에 단아하게 매화가 그려져 있고 황동나비 세 마리가 돋을새김 되어있다. 안쪽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 한지를 덧발랐다. 위 칸엔 모시적삼을 비롯해 두루마기와 유건이 걸리고, 아래 칸엔 치마저고리며 처녀 때 손수 수놓은 베갯잇이 포개져 있다.
친정 부모님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육십 년 전이었다. 열다섯에 가장이 되어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놀기 좋아하던 철없는 막내딸 어머니는 초례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엔 으레 연애 기간을 갖지 못한 동갑내기 부부의 성격은 판이했다. 아버지는 섬세하며 꼼꼼했고 어머니는 대범하고 쾌활했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아버지와 싫증이 나면 바로 그만두는 어머니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두 분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편이었고 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부지런했다. 아버지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내달렸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는 지나치게 굼떠 보이고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너무 조급해 보였다. 농촌에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어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며 대처로 나가 옷가게를 차렸다. 머릿속으로 셈해 본 이익은 컸겠지만 날이 갈수록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이라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급히 논밭을 팔아 그 손해를 메우려 했다. 그럴수록 밑 빠진 독처럼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머니가 눈물로 아버지를 말렸지만 본전 생각은 아버지를 깊숙한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결국 마지막 남은 땅마저 넘기려하자 논바닥에 드러누웠다. 차가운 비는 어머니의 몸을 파고들었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 마음에 파고들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우리를 보더니 결국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사업에 대한 아버지의 꿈은 쉽사리 접히지 않았다. 어느 해,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땅을 세내어 시멘트 블록 공장을 차렸다. 건물 한 채 없고 직원은 달랑 어머니뿐이라 딱히 공장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는 혼자서 젖은 블록을 나르고 있었다. 갓 찍어낸 블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귀퉁이가 무너져 쓸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어머니의 두 손에 들린 것은 젖은 블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인 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미수금을 거두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사고로 몸을 다쳐 일 년도 못 넘기고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농부의 삶으로 돌아왔다.
육십여 년, 온갖 풍상을 겪은 화초장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다. 문짝은 헐거워지고 나비는 녹이 슬어 빛이 바랬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을 메운 흔적이 우툴두툴하다.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쓸쓸함이 묻어난다. 한사코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와 그걸 말리려던 어머니의 시간이 아릿하게 전해져온다.
신혼 때 우리는 아귀가 잘 맞았다. 언제나 그러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나의 관계는 헐거워지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온 실직과 그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쌓인 피로로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실적 때문에 괜스레 짜증을 부린 적도 있었다.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자꾸 삐거덕거렸다.
그즈음이었을까, 친정집 윗목에 묵묵히 앉아있는 화초장이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전에는 낡고 색이 바래 별로 대수롭잖게 보았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하도 낡아서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괜히 어머니를 핀잔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어릴 적, 잠결에 무슨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면 어머니가 화초장에 기대앉아 있곤 했다. 아버지와 고성이 오간 날이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되뇌며 화초장을 연거푸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아 보여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경첩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어머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도시락을 쌌다.
여닫는 문은 물론이고 안경다리를 접었다 펴거나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데도 경첩이 쓰인다. 만약 그것들이 풀이나 노끈으로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쉽게 망가질 것인가. 사교댄스에서 회전하는 축을 어느 한쪽 발끝에 두고 체중을 옮기면서 회전하는 것도 경첩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은 모두 경첩이라 할 수 있겠다.
반백 년을 함께 산 친정 부모는 이제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는 방법을 안다. 헐거워진 화초장 문짝처럼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가려 할 때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안정된 가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절망도 했고,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잡아주었다.
그동안 밖으로 나돌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적응하는 동안 온 힘을 쏟았다. 그만큼 집안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땟거리며 아이들 챙기는 일까지 도맡아 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변화를 싫어하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어질러진 집안을 견디고 나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늦은 귀가를 할 때도 남편은 반갑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헐거워지려 할 때마다 어머니가 붙들어 주었고 내가 돈을 번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돌 때 붙들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첩이 되어주었기에 화초장처럼 든든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기와가루를 가져와 나비의 날개를 닦는다. 세 마리 황동나비는 여전히 단단하게 문짝을 붙잡고 있었다. 녹슬어 있던 황동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매화나무 위에 앉았다간 팔랑팔랑 안방을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간 자리마다 매화향이 가득 퍼진다.
[당선소감]
초겨울 들판에 검은 천이 일렁이고 있었다. 천 자락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다시 아슬아슬 땅바닥에 닿을 듯 오르내렸다. 자세히 보니 이맘때면 늘 찾아오는 까마귀 떼의 군무였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넘실거렸다. 그러다 문득, 기쁜 소식을 들었다.
수필을 만난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일을 써놓고 들여다보면 일기 같았고 머리로 이끌어낸 글은 논설문 같았다. 감정의 힘과 삶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후에야 비로소 피기 시작하는 게 수필이라면 나는 이제 가지 속에 작은 꽃봉오리 하나쯤 숨겨두었을까. 어쩌면 활짝 핀 모습은 생전에 볼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희망 하나쯤 갖고 쓰다보면 작은 꽃잎 몇 개는 펼치기도 하리라.
부족한 글 뽑아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세계를 향해 마음껏 타고 오르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는 가족에게 사랑을 보낸다. 늘 응원을 보내는 벗들의 이름에도 애정을 담는다.
[ 심사평]
#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
이번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공모에서 백 서른 한 분이 오 백 이십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보내왔다. 세 편에서부터 무려 아홉 편을 보내온 분도 있었다. 응모자 모두가 수필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품고 있음이다.
수필은 작가가 바라본 그 어떤 것(소재)에 대하여 어떻게 사유하고, 해석하고,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글이 달라질 수 있다. 표현 방식도 다양하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녹아있어야 한다. 즉 공감을 불러오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촉수가 있어야 함이다. 성찰이나 관조가 없으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
우선 수필로서의 요건을 생각하며 심사위원들은 우수작 몇 편을 선정하였다. 김서연 님의 ‘배냇저고리’, 강미란 님의 ‘합방(合邦)’, 김장배 님의 ‘군새’, ‘꽁뚜뱅이’, 김경아 님의 ‘페이지터너’, 서민교 님의 ‘에밀레’, 김애자 님의 ‘양반탈’, 이성아 님의 ‘편지’, ‘이어폰’, 이상수 님의 ‘도린자기’, ‘황동나비경첩’이다.
한 편만 선정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이성아 님과 이상수 님으로 좁혀졌다. 이성아 님의 ‘이어폰’은 늘 이어폰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이어폰을 두고 출근을 하면서 타인을 향해 귀를 막았던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글이다. 이상수 님의 ‘ 황동나비경첩’은 육십 년 전 부모님이 쓰던 화초장의 경첩을 깊이있게 관조하여 가정을 지탱하는 것은 서로 경첩과 같은 역할을 해온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두 작품 모두 소재를 통해 주제 전달에는 성공했으나, ‘황동나비경첩’이 문장의 함축성과 문체의 간결성에서 부족함이 없어 최종 선정하였다.
최종 선정되신 분께 축하를 드리며,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도 그동안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대표집필 김순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