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우리 제자 3기 1반 반원들은 생활에 바쁜 중에서도 정영기 집사님의 새로운 일터를 방문했다. 60번 서쪽으로 가다가 Fullerton 출구로 나가자마자 Gale 길로 좌회전하여 Free Way와 나란히 가다가 현대자동차 간판을 따라 들어갔다.
방문을 환영이라도 해 주는 듯이 넓고 커다란 전광판에는 한국어로 된 문구가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었고, 마당에 함초롬히 정리되어있는 자동차들을 보는 순간 옛날 군에 있을 때 사열을 받기 위해 정리해 놓은 수송부의 연병장을 보는 것 같았다. 오색 찬란한 풍선들이 하늘을 수놓고 은은히 들리는 감미로운 음악의 멜로디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우리를 반기고, 잘생긴 우리 정 집사님의 함박꽃 미소가 우리를 기쁘게 맞이했다.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각종 색깔의 자동차들이 자태를 뽐내며 윙크하고 있었고 설명하는 정 집사님의 차분하고도 힘찬 말속에는 어느 나라 자동차와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듯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며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가 1903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캐딜락” 승용차 한 대를 칭경식 의전용 어차로 들여왔고, 1950년 6, 25전쟁을 치르면서 연합군의 군용 트럭과 각종 탱크가 우리의 눈을 자극했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의 발효로 전쟁을 중단하면서, 1955년 서울에서 정비 사업을 하던 최무성 씨가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이용하여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택시가 등장했고 1962년 12월, 하 동환 자동차(쌍용)설립, 1965년 7월 아시아 자동차 설립, 1967년 12월 현대 자동차 설립, 현대에서 만든 “포니” 승용차가 50만대의 생산을 돌파했고, 55년의 짧은 시간 속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본의 명치(메이지) 시절 그들은 서양 문물에 관심을 기울여 1858년 7월에 일, 미 수호조약을 체결하여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흥선 대원군 시절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고수하여 현대 문명의 물고를 차단하였음으로 열강의 대열 뒤편을 배회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고 했던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고급 차들이 우리 제품이라는 현실에 가슴 뿌듯함과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정 집사님의 안내로 “아제라” “쏘나타,” “제네시스,” “엑센트” 등 모든 차들을 돌아보며 시승을 해 봤다.
모든 시스템은 전자 제어로 이루어져 있고 의자의 푹신함 과 쾌적함, 아름답게 조화된 디자인은 가히 예술품이었고 어떤 유명 제품의 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았다.
집사님의 사무실로 안내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첫눈에 보이는 “빌립보서 4장 6, 7절” 말씀이 우리를 반겼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언제나 주님의 말씀 속에 살고 있는 집사님의 성실함이 그분 이 주시는 평강으로부터 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회사의 사장님은 한국 분으로 현대 자동차의 미래가 어느 자동차보다 밝다는 확신으로 사업 시작을 했단다.
정 집사님은 먼저 다니든 회사에서 명철한 사업 수완과 성실함이 알려져 지금 회사로의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 뜻 따라 살겠다고 매일 기도 했단다. 집사님은 찾아오는 자동차 딜러들에게 자동차를 배분해주는 오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사업의 번창을 간구하는 예배를 드림으로 견학의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