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수녀님, 앞으로 금요일 조식은 식빵으로 합시다. 어때요?”
순전히 남는 음식의 처리 문제 때문이었다. 3년 전 새끼손가락 굵기의 살구 묘목을 심었더니 올해는 제법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다가 허수녀가 또 누구한테 씨알 굵은 살구를 한 광주리나 얻어왔다. 망설일 것도 없이 곧장 삶고 고아 달이기 시작했다. 살구잼을 만들던 날은 왼 종일 온 데가 향긋하였다.
“그래요, 션푸. 봄에 해놓은 딸기장도 있잖아요!”
중국 사람들은 딸기잼도 살구잼도 그냥 딸기장(醬) 살구장이라고 부른다. 거기다가 새우젓이나 명란젓 역시 모두 새우장(醬) 명란장이라고 한다.
아! 제철에는 넘쳐나서 주체를 못하고 제 아닌 철에는 또 없어서 못 먹는 식재료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모름지기 숱한 음식들이 이 저장 기술과 더불어 개발되었으리라. 봄나물을 말려두고 여름 무청을 걸어두었다가 눈발 나리는 겨울밤에 볶고 끓이면 얼마나 맛있으리. 밥도둑이라는 간장게장 토하젓은 몰라도, 내사 된장 고추장 김장 없이는 외국서도 못 살아라.
잼도 젓갈도 그저 장醬이라고 부르는 중국은 상대적으로 장맛보다 향신료 쪽으로 발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땅덩이가 크다보니 언제든지 사철 식재가 없지를 않았다. 당나라 양귀비도 겨울의 서안西安에서 아열대의 해남도海南島 과일을 운반해 먹었다지 않은가? 이건 어디서 들은 것도 읽은 것도 아니지만, 한국과 중국의 음식 차이는 이 식재료 저장의 필요성, 바로 이점에 십분 좌우되었을 성싶다. 사시사철 철 아닌 철이 없으니 굳이 저장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신선하다고한들 특별대우를 받는 법도 없다. 일단 펄펄 끓는 기름 속에 들어가고 본다. 갓 잡아 올린 바다생선이라도 먼저 튀기고 본다. 얄짤없다. 우리네야 회 한 첨 생각부터 하게 되지만, 암만 신선해도 여지없다. 신선한 채로` 즐길 만큼 즐기다가 저장음식에 들어가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사철 나는 물뭍 식재를 우선 튀겨놓고는, 그 위에 현란한 향신료로 조화를 부릴 뿐이다.
그래도 중국요리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무궁무진할 정도로 풍부하다. 오죽하면 중국인이 ‘하도 많아서 평생 다 해보지 못하고 죽는 3가지’ 중 하나로 ‘여행’, ‘글자(漢字)’와 나란히 이 ‘음식’을 꼽았을까? 그래서 중국 여행 중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몰라서 못 시켜 먹는 요리가 부지기수일 거라고 생각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문할 때 진땀이 날만한 것도 각 지방마다 식당마다 음식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부득불 중국말을 좀 동원해서 원재료의 이름을 열거하고 조리 방법까지 설명해 주어야 제대로 주문이 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식당도 식당이지만 노련한 가이드의 주문이야말로 예술의 경지가 될 때가 적지 않다. 나도 5년 전에 요양遼陽 본당의 성모상 축성식 참석 차 음식 초대를 받았었다. 원탁이 얼마나 큰지 30명이 넘는 신부들이 빙빙 돌아가는 하나의 식탁에 앉아서 50여 가지 제 각기 다른 고도故都의 음식을 접했을 때야, 비로소 중국 요리의 진수를 맛보는 듯 했다.
‘하, 저 많은 토마토를 어떻게 하지?’
창밖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것들을 보며 순간 스파케티 소스까지를 생각했다면 무리수일까? 그러다가 엉뚱하게 내 생각의 꼬투리에서는 콩알만 한 게 톡 삐져나오는 것이 있었다. ‘야...... 이거. 우리 마음이라는 것도 말이여. 이 마음이라는 것도 저장할 수는 없을까? 무슨 잼처럼 달여 놨다가 오래두고 꺼내 쓸 수는 없을까? 당최 넘쳐날 날 때는 주체를 못하고, 메마를 때는 허허로우니 말이여.’
첫댓글 중국 음식?
그래서 먹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50가지 음식을 먹어봐야 중국요리의 진수를 맛보겠네요.
마음이 빨간 토마토와 닮았다면 스파케티 소스 마음은 또 무슨 맛이 날까요?
저두 음식 50여가지 차림상앞에서 중국의 맛을 음미하고싶어지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