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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은 글공부를 하느라 밤 늦게 잠들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
났다. 눈을 비비며 좌우로 몸을 비틀던 강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린은 반대 쪽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강운의 옆 자리에 있어야 할
추남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 벌써 일어나서 응아하러 갔나? 나 보다 더 늦게 잔것 같았는데..
음... 추남형이 이렇게 부지런할리가 없는데..이상하네. '
강운은 추남이 돌아올 때 까지 기다리면서 글공부나 할겸 해서 탁자로 걸
어 갔다.
탁자로 걸어간 강운은 탁자위에 못 보던 쪽지가 있는걸 발견하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아니, 읽어보려고 했다.
[화린아.. 오빠가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어디 갔다와야 되니까 운이랑 같
이 기다리면서 공부하고 있어. 갔다와서 확인할 꺼니까 열심히 해야 돼!.. ]
쪽지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던 강운이 신경질 적으로 쪽지를
내팽개쳐 버렸다.
"치~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우씨.. 빨리 글을 배워야지 안 되겠다..
이따가 화린이 일어나면 무슨 내용인지 읽어달라구 해야지.
근데 추남형은 도대체 어디간거야? "
강운은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 앉아서 다시 글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추남은 그 시각 장백산에서 가장 가까운 산채를 수소문하여 찾아가
고 있는 중이었다. 객점에서 나올 때 까지만 해도 호기 있게 나왔었지만
지금은 객점 안에 있는 강운과 화린이 걱정되어 마음이 불안했고 또 자신
이 과연 산채를 상대로 홀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흠.. 너무 성급했던 걸까? 조금 더 힘을 키운 뒤에 와도 늦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진상을 알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약간의 단서라도 찾아
내야만 된다.'
추남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고 산채를 향해 쏜살같이 달
려 갔다. 검술을 익힐 때 틈틈이 경신술도 같이 익혔기 때문에 지금과 같
이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추남이 아직 신법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상태였고 그 이름과 근원
도 알 수 없었으나 오히려 명문 정파의 신법보다도 뛰어난 면이 많았고
또 내공이 충분히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추남이 펼치는 경신술은 어느 일
류 고수에 비해 전혀 뒤 떨어짐이 없었다.
강운과 올 때는 몇일 씩이나 걸렸던 거리를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 추남은
곧장 산채를 향해 신형을 옮겼다.
반나절 만에 산채에 도착해 보니 곳곳에 엄폐물들과 장애물들이 설치
되어 있었고, 보초들도 여러 명 서 있었다.
'이놈들! 이런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살고 있었군 그래. 아직 네놈들의
짓이라는 게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장백산
에 숨어서 산 죄이니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
독하게 마음을 먹은 추남의 눈에 은은한 혈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인원수를 대충 파악한 추남은 이를 악물며 칼을 빼들고 산채를 향해 신형
을 옮겼다. 각종 엄폐물들과 장애물들이 곳곳에 즐비했지만 애초부터 그
런 것들은 추남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될 수 없었다.
장애물들을 그대로 뛰어넘은 추남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보초병들을 단칼
에 베어버리고 산채 안에 들어가 버렸다.
광진현은 얼마전 장백산 근처의 마을을 노략질해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
들을 강제로 납치해 와서는 술시중을 들게 하고 밤에는 강제로 그녀들을
범한 다음에 수하들에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그 중 화정이라는 여인만큼은 광진현이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
었는데 평소에 온갖 미친 짓만 골라가며 했던 광진현도 화정 앞에서는
마치 한 마리의 순한 양처럼 온순하기만 했다.
사실 광진현이 마을에 침입한 가장 큰 이유는 재물을 약탈해 오는 것
보다도 우연히 보게 된 화정을 납치해오기 위해서였다.
"화정아 이것봐봐! 내가 화정이 주려고 거금을 들여 사온 거야. "
광진현은 꽤 비싸보이는 장신구들을 화정 앞에 내밀었지만 화정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저리 치워! 이 악마!"
착한 일을 하고 칭찬받길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화정을 쳐다보
던 광현진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평소에 그라면 애초부터 이런 일을 아예 하지도 않았겠지만 이미 화정에
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광진현은 생긴 것 답지않게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래.. 난 악마야 악마. 하지만 이것들을 좀 보라구! 내가 화정이
주려고 일부러 가져온 것들이란 말야. "
아무리 광진현이 부드러운 말과 재물을 써서 화정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해도 그녀는 코웃음만 칠뿐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난데없이 쳐들어와서는 자신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여자들은 강제로 잡아와 온갖 변태 같은 짓은
다하는 그런 미친놈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저리 가! 이 미친놈아. 넌 미쳤어.. 그것도 아주 완전히 미쳤다고!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해 주겠다고? 그럼.. 죽어버려. 내 앞에서 칼로
마을 사람들을 죽인 그 칼로.. 네놈의 돼지 같은 목을 잘라버리만 말야!"
이쯤 되면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초절정으로 미쳐버린 광진
현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 너.. 으.. 이 쌍년아 지금 뭐라고 했냐? 미친놈? 방금 미친놈이라고
했지? 흐흐흐.. 미친놈이라고? 우하하하! 이런.. 미친년이 귀엽게 봐주니
까 이젠 아주 죽으려고 별짓을 다하는 구나. 좋아. 좋아. 네년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 당장 이 자리에서 단칼에 죽여주마. "
당장에라도 칼을 들고 화정을 내리킬 것처럼 행동하던 광현은 뭔가 기막
힌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마주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아니지 아니야. 그렇게 쉽게 죽 일수는 없지. 내가 특별히 네년
에게만 진정한 고통이 무엇인지 직접 가르쳐 주겠다. 영광으로 생각하라
고... 흐흐 "
그 동안 억눌려 있던 광현의 본색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버렸다.
"꺄악! 가까이 오지마.. 이.. 이.. 아악! 저리 치워!"
광현이 화정을 붙잡고 막 덥치려는 찰나에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가 들리며 누군가가 문을 확 잡아당기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채주님! 큰일났습니다. 어떤 이상한 놈이 쳐들어와서.. 억! "
그는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하고 광진현의 칼에 목이 날아갔다.
"이 개세끼가 감히 어디를 함부로 들어오는 거야! 죽을라고... 음.. 벌써
죽였던가? "
성질이 정말 뭣같이 더러운 광진현은 평소에도 곧잘 이유 없이 부하들을
두들겨 팼고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을 잘라버리는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자신의 앞에는 목이 잘린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또 그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화정이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모습을 본 광진현은
기분이 몹시 언짢아져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
지고 깨부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다시 화정에게 다가가서 분을 풀
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온 몸이 피투성이 인 채로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
고 있는 부하때문에 행동을 멈춰야 했다.
좀 전에는 성질이 나는 바람에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손을 썼지만
이번에는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수하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 광진
현이 호통을 쳤다.
"야! 이 개잡종 새끼들아. 왜 이렇게 야단법석 지랄을 떠는 거야? 모두 죽
고 싶은가 보지? 어? 말 안한다 이거지... 좋아. 이 썅 너 오늘 뒤져봐라."
채주의 개 같은 성질을 잘 알고 있던 수하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보
고를 했다.
"채.. 채주님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금 산채에 정체를 알 수 없
는 무림인이 나타나 식구들을 마구 학살하고 있어서... 억! "
이 사내 역시 말을 끝까지 잊지 못하고 목이 잘려버렸다.
광진현은 수하가 싹싹빌며 용서를 구하는데 까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다음말이 문제였던 것이다.
"어떤 미친자식이 겁도 없이 산채에 침입했단 말인데.. 이 개잡종들은
그런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병신들이란 말이야.. 쯧쯧! 이 몸께서 손수
나서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군. "
신경질 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광진현은 화정을 돌아보며 음
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넌... 이따가 보자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흐흐흐"
광진현이 뭐라고 지껄이 든 화정은 지금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다.
의기양양하게 방문을 박차고 나온 광진현은 상황의 심각성을 확인하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나가는걸 막을 수 없었다.
산채의 입구에서 부터 약 20여명의 수하들이 머리가 잘리거나 몸이 그대
로 두 토막이 나서 쓰러져 있었고 지금 30여명의 수하들이 한 사내와 맞
서고 있었는데.. 이건 맞선다기 보다는 일방적인 살육전에 가까웠다.
사내가 순식간에 신형을 움직이 칼을 한번 휘두를 때 마다 서너 명씩은 한
꺼번에 목이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광진현은 헛바람을 들이키
며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그 동안 자신이 따로 모아 두었던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인간이 자신만 살겠다고 혼자 만 도망치려는
것이다.
대충 짐을 꾸민 광진현은 뒷문으로 막 도망을 칠려다가 아직도 정신이 빠
져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 화정을 쳐다보고 눈빛을 빛냈다.
"생각 같아서는 네년도 데리고 가고 싶다만 상황이 급박하여 어쩔 수 없
구나.. 하지만 난 내가 품던 계집이 남에 품에 안기는걸 보고 있을 만큼
너그럽 지가 못해서.. 흐흐 네년이 죽어줘야 되겠다 이 말씀이지! 무슨 말
인지 알아 들었겠지? 음... 못 알아 들은 것 같군. 어차피 상관없다. 네년
은 이미 죽은 목숨이니까.. "
말을 마친 광진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화정의 목을 칼로 그어
버리고 뒷문을 통해 산채에서 빠져나갔다.
광진현이란 인물은 애당초 사람의 정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인물
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화정에게 느낀 감정도 사랑이 아닌 비정상적인 소유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추남은 산채에 들어서면서 부터 닥치는 대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베어버렸다. 지금 추남의 상태도 거의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강운이 만약 옆에 있었다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추남은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베어가면서 느껴지는 묘한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런 쾌감을
즐기기까지 했다.
지옥의 악귀의 형상을 한 추남이 동작을 멈춘것은 더 이상 그의 앞에 살
아있는 생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고르던 추남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지옥의 광경을 믿을 수 없
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 이게 정말 내가 한 짓이란 말인가? 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추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성이 폭발하여 그의 이성을 지배했었다는
사실과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광인이 될뻔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욱! 이런 끔찍한 짓을 정말 내가 했단 말인가? "
추남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을의 대학살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았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아아! 나는 마을을 습격했던 자들과 다
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
확실하지도 않은데 너무 성급하게 산채로 달려온 것부터 화근의 시작이
었던 것이다.
추남은 낙심하면서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피에 굶주려있는 야수처럼 미친듯이 행동했던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