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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잘 둬야 비행기 탈 일이 생긴다했든가?
그러한 딸을 시집도 보내기 전
우린 무슨 축복을 받았기에 효도관광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되는지
이 가슴 찡한 감동이 오래도록 가시지를 않는다.
두어 달 전부터 틈만 나면 딸아이와 아내가
식탁에 마주앉아 벽걸이 달력을 쳐다봐가면서
속닥거림을 이어 오더니
얼마 전에는 새해 초쯤이면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 올
시간이 되겠느냐는 딸아이의 물음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평일에 제주도는 뭔 제주도여?” 라며 얼버무렸었는데,
며칠 전에는 아예 1월5일~8일 제주 왕복 비행기 표
예약을 완료했다면서 제주 관광안내 지도까지
펼쳐 보이며 그냥 말로만 해보는 과시용 허풍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펼친 지도 앞으로 얼른 앉아보라며 성화를 부려댄다.
마지못해 털썩 앉으며
“아니 그래 네놈이 무슨 돈이 있다고?”
“비행기 표는 웬 거며?”
“또 네 엄마 회사 일은 어떻게 하고
3,4일 씩이나 집을 비우며 어딜 댕겨 오라는 게여?” 라며
억지스럽게 마주 앉고 나자
그냥 신정 연휴 동안 가족여행 삼아
제주도를 갔다 오려고 계획을 했었는데 딸아이와
아들은 시간이 안돼서 포기를 하고, 때마침 엄마
휴가기간이 그 때라서 날짜에 맞춰 정했노라며
딸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엄마 아빠께 드리는
효도선물이라 여겨주시고 두 분이 신혼여행 삼아
기쁘고 재미있게 다녀오시기만 하면 된다며
그동안 준비해온 여행 정보 및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아내도 그제야 주방을 물리고 건너와 이미
이야기가 다 됐다는 듯 싱글벙글 지도 앞으로 다가앉고,
딸아이는 지도에 형광펜으로 표시된 여러 부분들을
하나하나 설명을 해나가며 설명이 끝날 때마다
봉투를 하나씩 내밀고는 더 자세한 설명은 겉봉에
인쇄돼 붙여져 있으며, 봉투 안에는 거기에 맞는
비용 및 인터넷 예약 안내서가 동봉돼 있노라고
밝고 예쁘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간다.
이렇게 세밀하고 완벽히 준비 한 줄도 모르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내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복잡해진 마음을 애써 감추며,
“딸!!~ 언제 이렇게 예쁘게, 꼼꼼히 준비를 해 뒀어?”
“아빠가 되게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네!!?~”
딸아인 씩 한번 웃더니 신이 난 듯
비행기 티켓팅 에서부터 제주 도착 후 렌트카는
비 흡연가 용 이며 인수 시 보험에 관한 비용과
연료비 까지 동봉된 봉투를 마지막으로 건네며
여행 전반에 관한 세부 설명을 모두 마치고
엄마, 아빠에게 좋은 선물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예쁜 말을 덧붙이며 우릴 더욱 감동케 한다.
조용히 봉투들을 모아 지도와 함께 접어 아내께 내밀며
“우리가 이걸 이렇게 덥석 받아서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당신이 받아서 잘 챙겨 두소!!~”
혼자 조용히 물러앉아 TV에 눈길을 보내는데
딸아이도 일어나 저의 방과 거실을 들랑날랑 오가며
“아~참!!~ 기분이 묘하네!!~”
“이런 기분 정말 첨이네!!~”
저 혼자 주체치 못하는 흐뭇함에 고무된 듯
그 기쁨을 못내 감추지 못하며 오래도록
거실을 맴돈다.
그러는 딸을 불러서
“딸!!~
고맙다!!~
우리가 너를 딸로 만나서 너무나 큰 복을 누리고
더할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해!!~” 라고 말하고
꼬옥 안아서 등을 토닥여준다.
아내 역시 함께 딸을 포옹해 감동을 나누고,
조용히 TV로 눈길을 돌리고 앉아 생각에 잠긴다.
왜 아니랴!!?~
오래 전 불행했던 과거사를 잘 딛고 일어나
진정한 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끈기 있게 이어오며,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독하다싶을 만큼
노력과 열정을 다해 오는 동안, 한 때는
죽음을 오가는 깊은 병마의 수렁 속으로부터 겨우
빠져나와 그 환우가 다 가시기도 전에 재취업 성공에
대학원 공부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석사과정 두 학기 전 과목을 올 A+에 장학금까지
받아 챙겨서 오는, 당차고 욕심 많고 똑똑하고
영리한 딸아이 인 것을,
누누이 저의 엄마 입을 통해서
“난 신혼여행도 못 가봤다!!~”
“난 제주도도 함 못 가봤다!!~”
“난 여직 비행기도 한번 못 타봤다!!~” 는 말을
심심찮게 들으며 살았을 테니
어찌 그 푸념을 그냥 흘러 들을 수 만 있었으랴?
그런 자조 섞인 원망을 들을 때마다
저의 엄마 소원 함 풀어주자는 심정으로
돈을 모으고 준비를 해 왔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리며
참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딸을 가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 뜨거워져 옴을 느낀다.
그리고 이틀 후(1월5일/화요일, 가랑비)
(D-day)
새벽 04:30
지난 밤 늦게까지 여행 시 필요할 옷가지와 기타
생필품을 챙겨 담은 여행용 캐리어와 등산 배낭,
딸아이가 강조하며 챙겨준 제주여행 정보와
봉투 꾸러미를 포함한 신분증을 넣어두었던
아내의 핸드백을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가
총과 탄약을 챙겨서 나가는 비장한 마음으로
들고 끌고 메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 찻길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07:10분 탑승 / 07:25분 출발,
05시48분이 장한평에서 첫 차인 지하철을 이동시
아무래도 초행길이라서 시간이 촉박할 것 같은
예감에서 일찌감치 택시로 이동 할 것을 결정하고
서둘러 택시를 불러 세운다.(05:10)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도심,
8차선 텅 빈 천호대로를 가로등 불빛만 졸음을 쫓듯
흔들거리고 몇 안 되는 길 바쁜 차량들은
있는 배짱 껏 총알처럼 거리를 오가는데
맘 바쁜 우리를 태운 택시 기사님만
규정 속도를 철두철미하게 준수해 가시면서
내비 아줌마 만류에 속도를 줄이고
신호등에 걸려서 또 다시 서고를 반복하며
새벽길 김포공항을 더듬더듬 찾아간다.
05:40 마침내 김포공한 국내선 탑승구에 도착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고 다니다
해당 여행사 창구에서 신분증을 내 보이고
탑승권 발권을 완료 후, 지정된 게이트를 찾아
2층으로 올라 또다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보지만,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보게 되는 생소한 경험에
불안과 긴장감으로 한가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눈치껏 살피고 묻기를 반복한 후 겨우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늘상 배낭 속에 휴대하고 다녔던
등산용 만능 칼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다
배낭 속을 온통 까뒤집고 난 후 겨우
찾아내 휴대품 보관 통에 버리고나서야
검색대를 무사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아내의 손을 이끌어 검색대를
빠져나오자 비로소 쌓였던 우려와 걱정이 다소 좀
누그러뜨려지며 긴장이 좀 해소되는 듯하여
11번 탑승 게이트를 찾아 눈 표시를 해 두고 나서
시간을 보내 볼 마음으로 이리저리 걸어본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거대한 비행기 이착륙장이
그 위용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함을 발견하고
아내의 손을 이끌어 유리면에 바짝 눈을 붙인 채
탑승 장으로 끌려 들어오는 비행기나 끌려 나가는
비행기를 창하나 사이를 두고 지근거리에서
펼쳐지는 장관에 눈을 떼지 못하며
더욱 놀랍고 더욱 신기함에 비로소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설렘을 맘껏 실감한다.
그렇게 설렘이 점차 배가 되가는 사이 어느덧
예정된 시간이 현실 속으로 드러나 보이며
곧장 이어지는 탑승안내 방송에 따라 조마조마했던
탑승 수속을 모두 마치고 버스로 수 분을 이동한 끝에
마침내 우리를 제주도로 날려 보내 줄 그 어마어마한
여객기 앞에서 차가 딱 멈춰 선다.(07:15)
이내 곧장 버스로부터 우르르 내려서 제각각의
짐 보따리를 들고 메고 비행기 앞에 서자
날렵한 그 자태를 뽐내며 계단 높이 문을 연채 흡입하듯
승객들을 빨아올린다. 밀리듯 계단을 끙끙거리고 올라서
기내로 진입하자 이렇게 버젓이 눈앞에서
비행기를 보는 것도 처음,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태어나 처음 접해보는
낯설고 신기한 것뿐이라서 가슴은 쿵쾅거리고
눈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두리번거림의 연속이다.
발권 시 첫 경험이라며 좋은 좌석을 부탁했던 터라
11F(창측), 11E 좌석을 찾아 아내와 나란히 착석한 후,
조그만 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우익 바로 앞임을
확인하고 앞뒤를 둘러본 후 대략 150여명은
되지 않을까 나름 승객 수를 어림잡아본다.
친구나 이웃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신혼여행이나
제주도나 비행기 이야기만 나오면 말문을
닫아버리던 아내가 생각과 기대보다는 너무
말 수가 없고 무덤덤하고 침착하기 짝이 없다.
승무원의 기내 점검 및 비행 안내 방송을 마치고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참동안
이륙장으로 이동을 해 나가다 어느 순간 잠시 정지 후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속력이 가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땅을 차고 올라 우리 부부한테만은 가히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힘찬 비행을 시작한다.
한참동안 몸 중심이 등 쪽에 가있을 만큼
고도를 높여가는가 싶었는데 이내 순간 잠잠함이
지속돼가는 듯 하다가 좌측(?)으로 심하게 날개가
기울어진 듯 한 느낌 후 곧 수평을 유지해가면서
기장의 인사와 함께 한 시간여 비행 후 안전하게
제주 공항에 도착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아내는 눈을 감고 등을 의자에 기댄 채 수면모드로
빠져들고 난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간간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하는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오밀조밀한 세상 풍경을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넋을 잃고 바라보다
승무원들의 음료제공 서비스에 물 한잔을 주문해
목을 축이는 동안 갑자기 엔진소리가 커지는 듯하며
심한 떨림과 흔들림이 연거푸 일어나며 기체가
수평 감을 잃을 듯 요동을 치자 승무원들도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이상기류를 만나
기체가 잠시 흔들리는 것뿐이니 안심 하라는
안내방송이 이어진 이후로도 몇 차례 더 간간이
그런 기내방송이 거듭된 후 이내 제주 공항에 진입
중이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처음 보는 제주도 모습이
창밖에 신천지처럼 펼쳐져 보인다.
아내의 시선을 창밖으로 이끌어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함께 내려다보며 그렇게도
선망했던 제주도에 왔음을 확연히 실감한다.(08:35)
미끄러지듯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기 바쁘게
다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도착 홈에 이르자
서둘러 게이트를 빠져 나오며 아내 핸드백에서
렌트카 예약 봉투를 찾아내 5번 게이트 앞 건너편
한국 렌트카 회사를 두리번거리며 찾아 나선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승합차 유리를 간판삼아
영업지점을 알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인적사항을
말하자 곧바로 준비된 자동차 임대차 계약서를
내놓으며, 서명과 함께 4일간 보험료 3만 여원이라는
안내에 따라 망서림 없이 서명과 금액을 납부하고
차량(모닝) 앞으로 인도되어 차량 상태 점검 및 확인을
끝으로 키를 넘겨받는다.(09:00)
여기까지가
참으로 걱정스럽고 긴장하고 조마조마하기까지
했었던 일이었는데 이제 모든 과정이 다 해결된 듯한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으로 뒷좌석에 캐리어와
등산 배낭을 던져 넣고 아내와 나란히 운전석
조수석을 차지하고 앉아 미지의 제주투어에 나선다.
이제야 올려다보는 하늘은 잔뜩 흐려져 있고
차 앞 유리엔 분무기로 분사하듯 빗방울이 번진다.
날이면 날마다 제주도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와보는 제주도인데~~
이깟 가랑비쯤이야 문제가 될 게 뭐고
그 뭣인들 우리 정해진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으리라.
모든 친구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당시,
나를 포함한 3명만이 수학여행에 함께하지를 못하고
교실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던 서글픈 추억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누님과 형님과 동생에 비하면 나에겐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으므로 그러한 스스로의 자신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감히 차마
수학여행이라는 사치스런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었기에~~~~~~~,
그렇게 설움 맺힌 제주도를 배편도 아닌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깟 가랑비쯤에 제주투어를 주춤한다면
내 삶과 인생과 내 영혼에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야 아내도 활기를 찾고,
핸드백에서 지도를 꺼내달라고 하여 딸아이가
표시를 해 둔 곳을 쭈~욱 훑어 본 후,
아침식사를 꼭 여기에 가서 해야만 한다고 했던
봉투를 찾아낸 후, 내비 주소 창에 재빨리
“우진 해장국”을 입력하고, 4일 동안 우리의 애마가
되어줄 작고 예쁜 모닝에 출발을 시도한다.
낯선 곳 낯선 차에서 오는 낯선 느낌,
천천히 조심조심 안전운전만이 최선의 길,
빗방울이 굵어졌다 약해졌다 를 반복하며
앙증맞은 애마를 금방이라도 멈춰 세울 듯
거센 바람이 텃세를 부리듯 요동을 쳐댄다.
이국적인 가로수 길을 지나 이따금씩
한산한 도심 골목을 스치기도 하며 이내
목적지에 거의 다 온 듯싶었는데 봉투에 사진까지
첨부된 우진 해장국집은 좀처럼 눈에 띄지를 않는다.
제법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두 블록을 헤매고 난
후에야 골목 안쪽 다소 후미진 곳의 허름한
목적지를 겨우 발견하고 가까운 골목 앞에
애마를 세우고 안으로 스윽 들어간다.
주변 환경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 및 간판까지
어느 것 하나 볼품없는 이러한 선술집 같은 곳이
온라인상에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대엔 못 미치지만,
이른 오전 시간(09:30)인데도 불구하고 빈 좌석
하나 없이 사람들로 북적대고 우리가 홀에 막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나자마자 이후 손님들은
번호표를 받고서 문 밖 앞에서 대기하며 긴 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딸아이가 지정해주는 몸국 두 그릇을 주문
하마자자 몸국에 기본 몇 가지 반찬을 동반하고
닳을 대로 닳은 테이블 위에 쪼르르 자리를 차지한다.
그냥 보기엔 뚝배기 시래기 국인데 시래기도 아닌 것이
김 같기도 하고 김도 아닌 것이 톳 같기도 하여,
한 수저를 떠 맛을 음미해보지만 아무리 맛을 봐도
태어나 처음 보는 맛, 얼른 폰을 꺼내 한 컷 하여
딸아이한테 인증사진을 발송하는 중인데,
아내는 맛있다고 후루룩후루룩 수저질이 바쁘다.
난 별 감흥 없는 맛에 국그릇을 아내 앞으로
살짝 밀어 주고는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생김치에
금방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여유 있게 셀프커피까지 입가심을 하고난 후,
다음 행선지 “삼양 검은 모래해변”을 입력하고
애마를 재촉한다(10:10).
제법 드세진 비바람을 와이퍼를 휘저어 잠재우며
흥겨운 휘파람을 멋들어지게 불어보기도하고,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는 아내를 불러 노래를 불러보라
부추기기도 하며, 간혹 저 멀리 바다가 보일 때면
창문을 열어 제치고 아내의 시선을 손끝으로
유인하기도 하며, 마을을 지나고 한가로운 도로를
느릿느릿 스치고 지나 마을 안으로 천천히 진입한 후
해변 가에 이른다.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모래위엔 부지포를 덮어 씌워
가려져 있고 가장자리에 보이는 모래는 검은 모래임엔
분명하나 인적 하나 없는 검은 해변에 거센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한여름엔 벌거벗은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테지만, 그냥 이렇게 발도장이라도 찍었으니
잘 있거라 흑사장이여!!~ 발길을 돌려세운다.(10:50)
지도를 펴 살피다 가까이에 얼른 눈에 띄는
“돌하르방공원”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런 때 안 가보면
우리가 이런 델 언제 또 와보랴 싶어
꼬불꼬불 돌담길을 돌고 돌아 어렵게 찾아서 왔건만,
마을 뒤 외진 끝에 현수막하나 덜렁 걸어놓고
제법 고액의 입장료 까지!!~
고개를 흔드는 아내 만류에 되돌아서(11:25)
“김녕성 세기해변”으로 고고~~
공항에서부터 나와 오른 쪽으로 한 바퀴를
돌아가는 제주투어, 진행하는 좌측은 바다 쪽이고
우측은 제주 중심 쪽 일 것이다.
20여분 달려 도착한 목적지 역시 비바람에 일렁이는
시커먼 수평선에 잿빛 하늘에 혀를 날름거리듯
하얀 파도만이 우릴 반긴다.
딸아이가 하는 말은 제주도 바다는 보는 곳 마다마다
바다 색깔이 제각각 다르다며 잘 살펴보라 했는데,
푸른 바다 동해안과는 사뭇 다른 주변이 온통
현무암이라서 그런지 검은 바다, 잿빛 하늘, 하얀 파도다.
중장비와 차량들이 얽혀 어지럽게 공사하는 구간을
살짝 피해 주차하고 나서 급히 화장실을 거쳐
눈도장만을 찍고 딸아이가 강조했던
만장굴을 향해 출발한다(11:47)
잠시도 그칠 줄 모르고 도란도란 속삭이듯 내리는
빗방울이 애마 앞 유리면에 방울방울 맺혔다
사정없이 내젓는 와이퍼 손날에 힘없이 씻겨
내쳐져 나가고, 간간이 차도면 곳곳에 고인 빗물이
애마 바퀴에 으깨져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며
그동안 삶에 쫓겨 살며 느껴보지 못했던 하나하나
순간순간의 하찮은 모습들까지 지금 우리 부부 눈엔
그저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행복한 것 들 뿐이다.
드넓은 주차장을 휘젓고 들어가 안내 창구 가까이
애마를 쉬게 하고 매표 후 곧장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입장료/성인 1인 2천원)
천연기념물 98호,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된 제주도의 대표 명소,
총 길이가 7,4Km의 어마어마한 용암동굴에
겨우 1Km의 구간만을 허용한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구간 곳곳에 용암이
흘러내려갔을 법한 층층의 흔적, 물결 등
기이하게 생성된 종유, 유석, 선반 등등이
시커멓게 굳어진 채로 수십만 년 전 지각 변동이
일어났던 역사를 고스라니 간직 하고 있는
모습을 돌아보며 그 신기함이 그저 믿기지
않을 뿐이다. 구간 끝 지점에 7m가 훨씬 넘는
용암석주 앞에 이르렀을 때는 혹시 인간들이
날조해낸 조형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놀랍고 신비함을 금치 못한다.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도록 통제된 구간에서
발길을 돌려나오며 아내의 손을 부축해
발밑을 조심스레 살펴가며 걸음에 속도를
높인다. 컴컴하고 다습한 동굴을 빠져나오자
빗방울은 더욱 거세지고, 서둘러 차 안으로
쏙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관광안내도를
펼쳐 다음 목적지 비자림으로 향한다.(13:00)
너무 즐겁고 설레는 나머지 점심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내비 아줌마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그저 곧장 목적지를
쫓아서 간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내비여사님 말씀만 잘 들으면 제주도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 못 찾아갈 곳 없는 세상이 됐으니
그 편리함과 유용함을 새삼 실감하며
만장굴에서 그다지 머잖은 비자림숲 주차장에
주차 완료하고 아내가 서둘러 우산을 챙겨드는
것을 보면서 어디 편의점이라도 들러서 우의를
사서 입을 생각으로 매표소 근처를 둘러보다가
다소 후미진 곳에 위치한 편의점을 발견하고
아내를 이끌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본 후 우선먼저 우의를 찾아 두 개를
챙기는데 아내가 얼른 하나를 가로채 제자리에
갖다 놓으며 우산을 치켜들어 보인다.
심심풀이 주전부리꺼리라도 챙겨볼까 싶어
주변을 기웃거려보지만 아내는 그저
아무것도 생각이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쳐대고,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우의를 입으며
매표소 앞으로 다가가 표를 구입 후,
(성인 1인 1,500원) 오솔길처럼 예쁘게
숲속 깊이 이어진 잘 정리된 길을 따라
아름드리 비자나무 숲에서 풍기는
향긋한 숲 냄새와 비에 젖어 더욱 푸르른
비자나무와 원시림처럼 우거진 상록수의
어울림이 더욱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으로
폐 심장과 가슴과 영혼이 씻기듯이
편안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이 느낌을 이름 하여 힐링 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느낌과는 무관하게
아내는 그침 없이 계속 내리는 비 때문일까
잔뜩 움츠린 채 추위를 물리치지 못한다.
천연기념물 374호 비자림 숲 / 13만5천여 평에
500~800년생 2,8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천연 비자나무 군락지,
천천히 느긋하게 주변을 세심히 살펴가면서
산책을 즐기시는 분들을 조심스레 앞질러
탐방로 전 코스에 구석구석 족적을 남기며
기념이 될 만한 엄청난 둘레의 비자나무
앞에서 다가오는 탐방객의 수고로움을 빌러
둘이 나란히 사진을 한 컷 부탁하기도 하면서
비자림 숲을 한 바퀴 돌아 나온 후 인증사진을
딸한테 보내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불현듯
허기를 느낀다.(14:55)
성산에 예약된 펜션까지 거리가 좀 먼 듯하여
서둘러 길을 찾아 가는 중에 세화포구 어느 근처
민속 5일장을 발견하고 구경 겸, 허기를
채워볼 심산으로 해변 로에 주차를 해두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장은 파장에
짐 꾸리기들 바쁘시다. 시장외곽을 한 바퀴 돌아
애마가 기다리는 곳까지 오는 길에 해변이
바로 내다보이는 지점에 제법 규모가 괜찮은
식당을 발견하고 살며시 들어가 메뉴를 살핀 후,
해물뚝배기+갈치구이 추천 메뉴를 주문했는데
먼 바다로 해물을 잡으러 갔는지 도통
꿩 궈 먹은 소식이다. 그야말로 한참 만에
식탁위에 올려 진 음식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겨우겨우 허기를 반찬삼아 밥공기를 비우고
계산대 앞에 계산을 물으니 2인 삼마넌!!~
웬만하면 식대계산은 현금을 원칙으로 하는
나 이지만 너무 실망이 큰 나머지 카드를 꺼내
카드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 기억이나
해 두자는 심보로 기념 삼아 사진으로 남겨두고,
가랑비를 피해 한 우산 속에 몸을 맞대며
해변을 한 바퀴 돌아 본 뒤 애마 속으로
몸을 넣고 안내도를 펼쳐 펜션으로 가는 길목
아주 가까이에 예정에는 없던 “제주해녀박물관”을
찍는다.(15:55)
나지막한 구릉 위 잘 정돈 된 잔디 벌판에
드문드문 조형물을 거느리고 우뚝 세워진
현대식 건물 안, 어린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는 로비 저 안쪽
안내데스크의 두 여자분 안내에 따라
입장권을(1인 1,100원) 구입한 후,
그 바로 뒤 영상 실로 안내를 받아 스물대여섯
관람객들과 함께 해녀들의 삶과 일생을
재조명 해 소개해주는 영상물 관람을 마치고
그들의 일상에서 필요로 했던 생활 용품이나
생활상을 실물처럼 축소 해 입체감 있게
전시된 공간을 양측 건물 2층까지 돌아보는
사이 해녀들의 애환서린 삶을 다소나마
이해하는 계기를 경험하고 아내와 다정히
마주 잡은 손을 풀지 못한 채 살며시
밖으로 나온다.(16:52)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성산포 바다향 펜션”
딸아이가 비용봉투까지 챙겨 지정한
식당들은 이미 시간을 경과했거나 위치를
벗어나 있어 석식은 현지에서 해결해야한다.
일단은 숙소에 입실 후 생각하기로 하고
길을 서둔다. 비가 해를 삼켜버린 탓일까
하루해가 너무 짧고 바쁘게만 느껴진다.
주변은 한산하고 비에 젖은 도로에
위험이 가중 될까봐 운전에 집중하며
내비아줌마 안내에 온 신경을 쏟아서
애마를 몰아간다. 이제 제법 애마와
친숙해진 느낌으로 더 한껏 여유를 찾아
스멀스멀 내리는 어둠을 가르며 성산포항에
무사히 접근, 속도를 줄이며 바깥을
주시하는데 내비는 그사이 목표 지점을
놓쳐버렸는지 목적지점을 벗어났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이 골목 저 골목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한동안 헤매게 한다.
하는 수 없어 딸아이의 봉투를 찾아내
전화 통화를 하고나서야 비로소 인근
골목 안으로 약간 들어가 있는 지점의
성산 바다향 페션 & 식당 간판을 발견,
그 안마당에 애마를 쉬게 한 후
식당 일이 바빠선지 그냥 예약된 301호로
곧장 올라가 쉬면 될 것이라던 통화 안내에 따라
식당과 펜션이 분리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가 비로소 여장을 푼다(17:15)
“자 이제 저녁을 어떻게 할까?”
“그냥 1층이 식당이니 식당으로 내려갈까?”
“아님 구경삼아 함 다른 데로 나가볼까?”
아내는 한동안 망서림 끝에
“여보 차라리 우리 쌀도 준비 해오고 했으니~
밖에 나가 닭 한 마리 사다가 백숙 어때요?“
“아~ 그래!!?~ 그러면야 더없이 좋지!!~
우린 방을 나와 컴컴한 골목길을 빠져나와
인근 작은 수퍼에 들러 마트로 가는 길을 묻곤
팔짱을 낀 채 그들이 가르친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이제 비는 그친 듯 하고 바람은 여직 차고 강하다.
아내와 오늘 있었던 일을 상기하며 영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안내의 어깨를 감싸며
“아직도 긴장이 안 풀리는가?”
“내 보기엔 당신이 영 맥을 못 추는 것 같아서?”
“어디가 편찮아서 그래?”
그때야 아내는 어둠속에서 살짝 웃어 보이며
“아냐 이젠 좀 괜찮아!!~”
“처음 비행기를 타면서 많이 긴장하고~”
“날씨도 내내 비바람불고 춥고 그래서~”
“이젠 좋아!!~”
염려치 말라는 듯,
내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넣으며 안심을 시킨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걷고 묻고 한 끝에 성산리
중심가에서 비로소 마트 하나를 어렵게 찾아
닭과 마늘과 기타 양념 몇 가지를 구입하여
즐겁고 기쁜 맘으로 돌아와 오순도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펜션 주방 내에 마련된 집기들을
이용해 마늘 듬뿍 넣은 닭국을 준비한 후
이슬이 까지 한 병을 겸해 아내의 잔엔 물을
채운 후 딸아이가 선물해 준 우리들만의 역사적인
제주 투어에 자축의 축배를 든다.
별 양념도 없이 끓인 닭국에서 누렇게 우러난
동동동 뜬 투명한 기름 입자를 수저로 떠올려
국물 맛을 보며 갑자기 아득히 먼 어느 옛날
곱고 아련한 한 추억을 떠올린다.
아이들로 인하여 친구가 된 정다운 한 이웃과 함께
그 아이들을 데리고 청평 어느 계곡으로
피서를 갔었는데, 운 좋게도 여름 장맛비에 피해를 입고
산으로 흩어져 주인을 잃어버린 산 닭을 포획하여
오붓하게 포식을 했던 그 추억을 기억해내고
기분 좋게 웃으며,
“각시!!~ 혹시 아주 오랜 옛날 아이들 데리고
미선 네랑 어느 계곡으로 피서를 갔다가 거기서
포획해먹었던 그 천연 닭 생각나?“
지금 닭 국물이 그 때처럼 기름이 동동동 뜨면서
그 때 그 맛하고 똑 같이 고소하고 담백하고
깔끔하고 시원하네!!~“
아내도 금방 그 때를 기억 해내며
“아~~ 그때!!~”
“잊을게 따로 있지 그땔 어떻게 잊어?!!~“
아내도 맞장구를 치며 내 빈 술잔에 가득 술을 채워
내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 놓는다.
제주에서의 첫 하루가 우리 부부의 삶에
무한 기쁘고 설레고 흐뭇하고 행복함으로
뜻 깊고 아름답고 소중한 하루로 기억 속에
자리를 잡아가며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23:30)
D+1(6일 수요일 / 맑음)
늦도록 아침잠으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살며시 일어나 창밖 날씨를 먼저 살핀다.
고맙게도 햇빛 쨍한 쾌청한 날씨가 열린
커텐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며 찬란한 햇빛이
설렘과 기대를 부추긴다.
바람은 여전히 삼다도라는 자존심을 꾸준히
유지한 채,
아내도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고 나서
“아~~ 오늘은 날씨가 끝내주는데!!?~”
밝은 표정으로 주방을 이리저리 정리하며
어제 남은 닭국 국물에 불을 댕겨 데우며
순발력을 발휘 집으로부터 준비해온 약간의
재료를 이용 금방 미니 김밥까지 예쁘게 말아서
아침상을 뚝딱 챙겨낸다.
그러한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아니 언제 이런 것 까지 챙겨 넣어
이렇게 훌륭한 아침상을 차려 내?“
“당신은 참 우렁각시여!!~”
살아오는 동안 내내 마음에만 담아뒀던
사랑스럽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렵사리
밖으로 꺼내본다. 어색한 내 표현에 아내도
익숙하지 않은 듯 고개를 들다 눈이 마주치자
서로 환하게 웃고는 기분 쨍한 아침을
마치고 깨끗하게 주방 및 방을 정리한 후
살며시 펜션을 나선다.(10:15)
우도로 들어가기 위해 성산포 종합여객터미널로
가는 길이 불과 3분여,
주차장에 애마를 매고 바삐 대합실로 들어가
안내게시판을 살피고 나서 급히 승객 인적사항을
기록하는 용지 기입란에 연락처 및 기타 사항을
휘갈겨 쓰고 우도도항선 표를 구입 한다.
(성인 왕복 5,500원)
선착장으로 나와 잠시 배를 기다리는 동안
드센 바람에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거린다.
다행스럽게 햇빛은 밝고 아내 표정 또한 밝다.
성산 발 08:00~17:00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 소요시간 10여분, 평일이라선지 비교적 한산,
이내 우도에서 들어오는 배가 선착장에 발판을
걸치자 관광객들이 바삐 쏟아져 나오고, 이어
차량들이 모두 빠져 나온 후 줄지어 서있던 사람들이
앞 다퉈 배안으로 밀려서 들어가고 나자
성산포 선착장을 힘차게 밀어내며 검은 바다를
스르르 기어나가기 시작한다.
성산항에서 점점점 멀어질수록 바다는 검고,
거센 파도가 인정사정없이 몰아치자 배가
요동을 치고 사람들이 놀라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내의 손을 꽉 붙들며
“세월호에 잠겨버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두렵고
황망하고 절통했을까?“ 정말 섬뜩하네!!~”
아내도 겁에 질린 듯 내 손을 꽉 맞잡으며
“아~~진짜 그러네!!?~”
“그 애들 정말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웠을까?”
“지금도 저렇게 시커먼 바다 밑에 눈도 못 감고
잠겨있을 텐데!!~”
뒤집힐 듯 흔들리던 배가 간신히 수평을 되찾고
성산포항이 저만치 아득해 질만큼 떠나온 뒤
이내 우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르르 배 밖으로 탈출하듯
쏟아져 나온다.(11:10)
딸아이가 말해준 대로라면 여기 어디쯤에서
오토바이를 대여해서 오토바이 투어를 하면
여유가 있고 운치도 있고 더 재밌을 것이라
했는데 날씨가 너무 차가워 오토바이는 좀
아닐 것 같고, 여기저기서 버스를 타면
모든 게 그만이라며 손님 몰이가 한참이라
살며시 발길을 옮겨 가까이가 안내판을 살피는데
오늘은 특별할인에 버스비 4천원에 모신다며
곧 출발하니 어서 버스에 오르라 재촉이다.
아내한테 눈길로 신호를 보내며 얼른
지갑에서 돈을 꺼내 버스표를 구입 후
곧장 버스에 오른다.
우도 투어 구간을 5코스로 나누어 매 코스마다
시간당 2회씩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버스표 한 장으로 우도 전 구간을 순회하며
둘러볼 수 있게 한 유익하고 편리한 방식의
버스투어,
특히 기사님들께서 대부분 우도에서 낳고
자라신 분들이라시며 구간구간마다 재미있는
설명과 해설을 덧붙여 이동하는 동안 정겹고
유쾌한 시간을 제공해주심이 참으로 인상 깊다.
우선 첫 구간 “검멀레”(우도등대/동안경굴)코스에서
하차(11:25), 상가와 주변 경관을 살피고 난 후,
일단은 등대를 먼저 가보자 하고 오르막길을 따라
능선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구간을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가끔은 뒤돌아서
우도의 일면과 어우러진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손짓해 한 곳을 바라보며 감동과
기쁨을 공감하고 누리며 더 없는 행복감을 만끽한다.
오르막 능선 끝에 우뚝 선 두 개의 등대,
1906년 설치 후 97년간의 오랜 운영 끝에
노후로 폐지하게 되었었으나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구 보존케 되었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잇고 있는 하나와, 그 하나를 대신 한 또 하나의
새로운 현대식 등대가 내부에 등대에 관한 여러
기계적인 장치와 부품과 세계적인 유명 등대를
소개하는 그림과 같이 등대의 역사와 운영에 관한
이해를 설명하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하나의
등대가 앞뒤로 나란히 이웃처럼 사이좋게
그 모습을 자랑하고 서 있다.
그 신기함에 이곳저곳을 유심히 둘러보며
밝고 맑은 햇살에 방해꾼처럼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을 피해
아내를 돌려세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서로의 옆구리를 바짝 끌어 붙여 걷기도 하며
다정스럽게 돌아서 왔던 오르막길을 내려서온다.
어디서 들었는지 이 곳에 오면 꼭 맛을 보고
가야한다는 필수 음식 전복 짜장,짬뽕이 있다는
아내의 귀띔에 계단 높이 자리한 중국음식점을
성큼성큼 올라서 식대를 먼저 치르고 나서야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는다.(12:30)
잠시 후 식탁에 차려진 메뉴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래도 전복은 아닌 듯, 살며시 메뉴판을 보니
전복 위에 살짝 소라를 덧방 한
소라 짜장,짬뽕이 된 셈,
뭐 그러나 어쩌랴? 우린 그나마 나름 특별한 맛에
맛있게 두 그릇을 몽땅 다 비우고 나와
딸아이가 꼭 맛을 보고 오라했던 그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만은 도저히 더는 넘볼 수 없는
식욕의 한계에 봉착, 서둘러 소화를 유도할 겸
동안 경굴, 검멀레 해변을 향해 좁고 긴 계단을
뒤뚱뒤뚱 내려간다.
만장굴에서 보았던 용암흐름의 층 띠처럼
물결흐름 모양을 한 굉장한 높이의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드넓은 검은 바다를
앞마당처럼 펼쳐놓은 아늑한 해변,
“삼양 검은해변”에서 확실하게 느껴보지 못했던
검은 모래해변의 진가를 확인 해볼 만한 흑사장을
걸어서 조금 더 들어가자 엄청난 크기의 동굴이
검은 입을 쩍 벌린 채 바닷물을 들이켰다 뱉어내며
아슬아슬 오가는 관광인파를 어쩌지 못하고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도 행여나 넘어질세라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조심조심 동굴 안을 살피며 아이들한테 인증사진을
날리고 코스 이동을 위해 버스 이동로로 나온다.(13;30)
우도 섬 속의 섬 비양도를 찍고(14:00)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거쳐 우도 박물관에서 하차,
아득한 초딩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을
폐교를 살려 1층에는 사무실을 포함 진귀한 광물과
화석 등으로 볼거리가 많고, 2층에는 갖가지 추억의
향토 생활용품 및 골동품을 비롯한 해양관이
마련되어 있어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아련한 추억의 시간을 즐긴다.(14:30)
마지막코스 길로 접어들어 버스가 출발했던
원위치에 도착하자 엄청난 까마귀 떼가 온 마을과
하늘을 점령한 듯 온통 까마귀 천국이다.
아주 어렸을 적 한겨울이면 우리 살던 고향에도
까마귀 떼가 참 흔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 모습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는데 뜻밖에
여기에서 어릴 적 그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금방 마음이 아련한 옛 추억의 그 시절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처럼 훈훈하고 포근하다,
그렇게 한동안 까마귀들 틈새에 머물다 선착장으로
걸음을 옮겨 잠시 동안의 기다림 끝에 도착한
우도랜드 2호에 승선, 우도여 안녕하고(15:30)
다시 성산 선착장에서 애마를 찾아내 주차장을
빠져나오다 약간의 꼬리 물리기를 감수하며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성산 일출봉을 찍는다.
평일이라서 주차장이나 각 유명관광지마다 그다지
붐비지가 않아서 더 큰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수월케 일출봉 주차장으로 진입,
먼발치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려보며
아직 햇빛은 쨍하지만 제법 쌀쌀한 기온에
바람이 만만치 않으니 완전무장을 하면서
아내의 옷차림을 살핀다.
서둘러 매표소로 접근 입장권을(성인1인 2,000원)
구입하여 아내와 나란히 오솔길을 걸어가듯
천천히 점점 높이 쳐들려진 오름길로 깊이 들어간다.
구릉지처럼 완만한 잔디밭 저 멀리 한가롭게
한두 마리의 말들이 노닐고, 급경사 정상은 온통
시커먼 암벽 사이로 촘촘히 이어진 계단이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는다. 뒤돌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와 해안과 마을이 어우러져
참으로 낯선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시선을
잡아끌어 꼼짝을 못하게 한다.
계단이 꺾어져 돌아가는 곳마다 기암괴석이
기이한 형상으로 힘겹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섰고, 이곳도 또한 오가는 대화 속에
절반 이상은 중국계 여행객임이 분명하고
아내는 겉옷을 벗어 허리에 두른 채 성큼성큼
계단을 잘도 올라간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바다와 맞물린
거대한 세숫대야 속의 초원을 연상케 하는
성산일출봉의 그 신비한 자태가 한 눈 안에 쏙
들여다보인다. 언젠가 강원도 양구 해안면
펀치볼 마을에서 느꼈던 그 신비함처럼
성산 일출봉은 마치 미니 펀치볼 마을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내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계단에 앉아
잠시 쉬다가 다시 인파들 틈새에 끼어
좁은 내리막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천만 다행으로 오름길과 내림 길을 따로
설치해 한쪽방향으로 행인들을 이동하게 함으로써
보행에 안전하고 편리함이 있어 좋다.
내려오는 길에 동암사에 들러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를 올리고 삼배를 마치고 나오는 아내를 기다려
팔짱을 낀 채 주차장으로 내려온다.(16:45)
시동을 건채로,
“시간이 좀 애매한데 섭지코지까지 함 가볼까?”
조금도 지친기색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애마를 재촉한다.
조금은 허술하고 후미진 길을 달려 관광단지
입구에서 약간을 헤매고 난 끝에 좁은 땅이라는
섭지코지에 도착하자 땅거미가 내림과 함께
기온이 급 강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나름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다녔었는데 날씨가 어둑어둑하고 기온까지
여의치가 않으니 발길이 빨라진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과자로 만든 집을지나
정치나 군사적으로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육지에서의 봉수대처럼 쓰였다는 협자연대에서
지는 해에 가는 발길을 멈추고 아내를 돌려세워,
목표했던 방두포 등대를 먼발치로 눈에 넣는다.
발길을 되돌려 나오며 우리가 오늘 하루 종일
다녔던 곳이 제주도 최 동쪽 끝 우도로부터 마주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넘어서 여기 섭지코지까지의 여정을
되돌아서 살펴보니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우도와
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서로 나란히 일직선상에 위치하며
일출봉을 가운데 두고 우도와 섭지코지가 일출봉을
바라보며 서로를 동경하고 그리움을 품은 듯한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나도 모르게 “그리운 섬”인가 라는 말이
문득 입 밖으로 나오며 왠지 모를 애련한 마음이 갑자기
가슴을 시리게 한다.
앞서가는 아내의 손을 끌어다 나의 점퍼주머니에
함께 넣고
“힘들지 않아?”
“배는 안고프고?”
설레설레 머리를 흔드는 아내를 부축하듯 옆에 끼고
사랑스런 맘으로 길을 내려온다.
이제 오늘 남은 일정은 딱 하나 딸아이가 지정한
“명진전복”집에서 전복 돌솥밥에 전복죽 맛보기다.
아내한테 봉투를 찾아 달라 하여 내비 아줌마께
찍어 올리고 서서히 애마의 고삐를 옥죈다.(17:30)
한적한 길을 여유롭게 달리며
“오늘은 구경할 만 했는가? 라고 묻자
오늘은 날씨가 그나마 맑아서 아주 좋았노라며
아이들한테 사진을 보냈다고 혼자 싱글벙글한다.
단 둘이서만 오붓하게 즐기면서 다니는 여행을
그다지 경험해보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다가
성격마저 말 수가 적고 직설적인 편이라
둘 만의 분위기는 대부분 무미건조하다.
저 정도 싱글벙글 이면 거의 최상의 분위기!!~
저절로 불러지는 휘파람을 불어가며 제법
먼 길을 왔음이 분명한데도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마을의 후미진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에 혹시 내비아줌마께서 또 뭘 착각하셨나 싶어
내비를 다시 확인해보려는 순간 한 모퉁이를 간신히
돌아서자마자 우측 편으로 검은 어둠속에서 바다가 확
드러나 보이며 거센 바람에 하얀 파도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소복을 펄럭이듯이 춤을 춰댄다.
이내 내비아줌마께서 도착을 알리는데 컴컴한 허허
벌판에 차들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여기가 딱
그곳이랴 싶다. 해변 갓길에 애마를 세우고 차도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 역시나 또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실이 있었지만 아내를 손짓해 우리 애마 속으로
바람을 피해 들어가 앉으며
“오늘 잠자리는 어떻게 하지?”
“내일 아침 지정식당 가까운 데로 가얄텐데?”
“혹시 인근에 찜질방 같은 덴 없쓰까?
얼른 폰에서 제주 성산 찜질방을 검색해본다.
두 서너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곳“한방찜질방”을
선택, 검색 블로그 리뷰와 평점을 확인, 소규모(15인 이하)
가정집 같은 분위기 찜질방인데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정보에
곧장 통화시도에 답변 2인 OK!!~
유심히 듣고 있던 아내의 표정이 더 없이 밝고
여유롭다.
잠시 후 아내의 폰이 울리고 2인 예약 입석하라는
호출에 다급히 애마에서 빠져나와 순번 표를 내밀자
탁자 하나를 가리키며 지정석을 알려준다.
서로 등을 맞대고 앉은 좁은 공간을 겨우 건너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지를 내민다.
돌솥 하나, 죽 하나를 주문하고 내부와 주변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실내장식과 메뉴를 엿보지만 처음 그
몸국 식당과 별 다름 없는 너무나 평범한 식당,
그러나 꾸역꾸역 밀려드는 손님들은 무슨 마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또 그렇게 대기 번호표를 받고
줄 서 기다리며 명진 전복집의 명성을 드높인다.
바삐 식탁에 올려 진 죽 한 그릇과 돌솥 밥을
번갈아 수저질하며 그 명성에 시장기가 더해진
고소한 맛에 한껏 빠져든다.
인증 샷을 올리며 아이들한테도 분위기를 전하고
딸아이의 사랑이 뭉클한 봉투를 찾아내 더도
모자라지도 않는 금액을 확인한 후 봉투를 털어
계산을 마치고 아내의 팔짱에 손을 끼며
검은 어둠 속을 걸어 나와 애마 품속으로 찾아든다.
미리 입력을 해두었던 한방 찜질방으로 고고!!~
그야말로 어둠속에서 드러나 보이는 어느 들 가운데,
허름한 단독가구 앞 파이프 지주에 덩그렇게 걸린
돌출간판 하나가 전부인 찜질방, 도시의 찜질방
규모에 비하자면 감히 찜 자도 못 꺼내볼 목욕탕
이하의 수준, 예상은 했었지만 의심을 풀지 못하며
강화문을 열고 들어가 샷시 문을 두드리자
스르르 쪽문이 열리며 어르신께서 얼굴을 내미시고
손님이냐 시며 얼른 밖으로 나오셔 문을 열어주신다.
커튼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가자 그 어르신 한분과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계신다.
목례를 마치고 요금은 선불이라 시는 어르신께
1인 1만원 합 2만원을 지불해드리자 금방 사물함
키와 함께 찜질 복을 꺼내주신다.
대여섯 평정도 돼 보이는 거실 안쪽으로 좌측은
남 샤워 실 우측은 여 샤워 실, 그 가운데 너 댓 평
쯤 돼 보이는 공간이 미닫이문 안쪽은 찜질방,
거실은 곧 손님들의 휴게실인 셈.
양측 샤워 실 사물함 앞으로 좁게 자바라를 설치
옷을 갈아입을 때 자바라를 끌어 가림을 한 후
환복하고 환복이 끝나면 다시 가림 막을 밀치면 끝,
샤워 실에 들어가서는 정말 깍두기처럼 작은 네모타일
벽에 어깨하나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속에 샤워기
3개가 설치 돼있는 것을 보면서 혼자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나마 더운 물에 샤워를 하고 휴게실로
나오자 찜질방에 누워계시던 남자 분께서 나오시며
서로 인사를 건네고, 곧 이어 아주머니 한 분께서
들어오시며 구면이 아니신 듯 찜질방 안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시고 샤워장과 찜질방을
두루 거친 후 휴게실로 나오셔서 곧 합석을 이룬다.
안 사장님께서 귤이 가득한 쟁반을 내다
놓으시고 다시 밖으로 나가시더니 큼지막한
무우를 한통 꺼내 오셔서 맛이 있을라나
모르겠다 시며 쭉쭉 깎아 자른 후 우리 앞으로
내미시니, 카운터를 지키고 계시던 바깥 사장님
께서도 빙그레 웃으시며 자리에 끼어드셔서
나름 한방찜질방에 관한 역사와 왕림한 손님들 간의
끈끈한 추억과 정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는
훈훈한 미담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두 분간 호칭이 아무래도 이상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두 분의 관계를 조심스레 여쭙자,
동시에 두 분께서 크게 웃으시며 그렇잖아도 손님들께
오해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시고 이상히 보시면
곤란하시다시며 누님과 남동생 사이 인 친 남매간
이라는 소개와 함께 누님께서 제주도로 시집을
오시게 됨이 계기가 되어 형제 남매간이 모두
누님을 따라서 제주로 와 살게 되었다는 가족 내력과,
이 한방찜질방을 오래도록 운영하셨던 두 노인
분들로부터 매입 후 6개월 정도 운영을 하고 계시다는
설명에 이어, 서울 어느 학교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
방학동안을 이용해 제주 올레 길을 탐방 중이라 시는
남자분과 제주에 올 때면 꼭 이 곳에서 쉬어 가신다는
여자 분과 우리 부부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다 보니 뜻밖에도 바깥사장님과
남, 여 손님과 나를 포함한 넷 모두가 58년 개띠라는
우연의 인연에 서로들 더욱 놀라며 기쁨과 반가움으로
함께 악수를 나누며 어쩌다 판이 온통 개판이 되고
말았다는 조크로 모두가 유쾌히 박장대소한다.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서로들 시대적 정서가 같다보니 오랜
친구들의 모임처럼 허물없는 시간이 또 하나의
추억과 인연으로 가슴에 빼곡히 쌓여만 가는데,
내일 아침 일찍 한라산 등반 하시려거든 좀 일찍
쉬어둬야 한다 시며 자리를 거두시고 잠자리를
봐 주시겠다 시더니 안내실 뒤 장을 여시고
매트레스와 이불을 꺼내셔서 일찍 나가신다니
제일 바깥쪽이라시며 우리 두 자리를 나란히
깔아주시고, 안쪽으로 이리저리 간격을 두고 세
자리를 더 펴 놓으신 후 바깥 사장님께서는 안마용
테이블을 차지하시고는 자리를 정하시자 모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늘의 특별한 인연에 무한
감사와 함께 서로의 내일에 무운을 빌며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며 즐겁고 흐뭇한
마음으로 제주 투어의 하루를 마무리 하고
바깥사장님의 특별하신 배려에 다소 부끄럽고
미안스러운 표정으로 나란히 우리 잠자리
속으로 몸을 숨긴다.
D+2(7일 목요일 / 진눈개비)
낯선 잠자리와 새벽녘 도착한 손님들의 입실로
잠을 설치다 일찌감치 일어나 아내를 깨워(07:20)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샤워실로 들어가 세면을
마친 후 아내를 기다렸다 살금살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낌새를 눈치 채시고 안 사장님께서
뒤따라 나오셔서 한라산 등반에 무운을 빈다 시며
큼지막한 봉지를 내미시고는 귤을 좀 담았으니
산행 중 출출할 때 맛보라 시는 정겨운 말씀과
함께 아내를 감싸 안으시고 고운 인연에 감사하다
시는 정 깊은 포옹으로 인사를 건네주신다.
마지막 인사가 참 인상적인 한방찜질방 안 사장님을
기억 속에 담으며 한라산 등산을 위해 시간을
비축할 생각으로 8시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는
맛나 식당을 향해 줄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 볼
생각으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시린 기온이 다소 가신 잔뜩 찌푸린 하늘,
동이 틀 시간인데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임야를 달리는 기분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상큼하다.
이내 도착한 맛나 식당 앞에는 아직 줄서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 없다. 식당 좌측 앞 주차장표시가 있는
공터에 애마를 세워두고 아내와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며 돌아보지만 이곳 역시나 주변
경관은 물론 식당 건물 또한 일반 구옥과
조금도 다름없는 허름한 주택, 아내는 다시 애마
속으로 몸을 들여 얼굴치장에 들어가고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던 끝에 한 두 사람씩 몰려들기
시작하며 비로소 가게 문이 스르르 열린다.(08:15)
준비하는 시간이 다소 있으니 번호 표를 받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는 엄명에 얼른 번호표를
받아들고 아내를 불러낸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 지정해주는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밖에 줄을 서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꼬리가 길어져가고 이내
식탁에 차려진 갈치조림 2인분에(20,000원)
인증사진과 함께 딸아이의 지극정성을 첨한
아침식사를 든든히 마치고 길게 늘어선
대기 손님들의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나와
애마에 오른 후 한라산 등반 코스 중 그나마
수월하다는 코스 성판악 코스를 목표로
성판악 휴게소를 찍은 후 보무도 당당하게
애마를 다그친다.(09:10)
잿빛 하늘에 바람몰이를 하던 날씨가
마침내 차 앞 유리에 빗방울을 들치는가 싶더니
들판을 지나 점점 오르막길이 잦아들수록
눈발로 바뀌더니 성판악 휴게소에 가까울수록
굵은 눈발이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질 듯
도로 위를 하얗게 덧칠 한다.
도로 가상에 애마를 세우고 한참을 망설이다
일단은 성판악 휴게소까지는 가야만 애마를
돌려세울 수 있을 것 같아 미끄럼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서행을 시작한다.
5분여 후 성판악 휴게소에 애마를 멈추고,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은 가보는 데까지 갔다가
정 못 가게 되면 내려오자 아내 의견을 묻자,
자신은 처음부터 한라산은 엄두를 못 냈었고
나 혼자 갔다 내려오는 동안 자기는 차에 있을
생각이었다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놀랄
선언을 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노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밖으로 나가 휴게실 안쪽으로 사라진다.
너무나 황당하여 한참을 멍하니 아내가 사라진
휴게소 건물만 바라보다 잔뜩 움츠리고 다시
애마 속으로 파고드는 아내를 바라보며
실소를 감추지 못하며,
“아니 그럼 진작 이야기를 했었어야지!!~
“한라산 등반이야기 땐 아무 말 없더니
꾸역꾸역 여기까지 와서 거 뭔 소리여?“
아내는 별 대꾸가 없다.
왜 모르랴!!? 산 좋아하는 내 취향을 잘 알기에
면전에서 못 간다했다간 내 기분을 망칠게 뻔하고
같이 산행 길에 나서서 거치적거리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따라와 기다리는 동안 얼른 휘
다녀오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 각시야!!~ 미리서 말을 했더라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 없이 다른 델 갔을 것 아닌감?“
실없게 웃으며
“가세 그럼 이번에 한라산 등반은 취소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오는 길에 보니 혜영이가 보고 오라던
샤려니 숲길 간판이 보이데 그곳을 가세!!~“
애마를 돌려 성판악 휴게소를 빠져나오며 잔뜩
긴장한 채 눈길을 더듬더듬 내려온다.(10:10)
마침내 샤려니 숲길 안내 간판 앞에서 우측
진입로를 약간 들어가 주차장 안내 분의 안내에 따라
지정한 곳 나무 사이에 주차를 완료하고(평일엔
입장료 무) 식당에서 준비했던 온수를 채워 둔
보온병과 컵라면 등을 배낭에 챙겨 담고 아내의
손을 이끌어 산책길에 나선다.(10:30) 진눈개비가
심심찮게 어깨를 타고 앉으며 운치를 더해주고
우의를 꺼내 아내에게 건네주며 보온을 당부한다.
해발 500~600의 15Km 구간 완만한 평지 산책로,
자연림과 인공림이 어우러진 생명의 공간이자
자연생태 문화를 체엄하는 에코힐링과 치유의 숲,
날씨 탓인지 인적은 드물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족히 한 시간이상을 걸어 거의 중간지점
물찻오름에 당도, 즐비한 현수막에 안내 약도를
살피고 붉은오름에서 되돌아오면 딱 되겠다는
짐작으로 잠시 쉬었다 다시 안내 푯말을 따라
걷는다. 아내는 별 흥미를 잃은 듯 말이 없어지고~
한동안 그렇게 터벅터벅 얼마를 더 걸었을까?
붉은오름을 지나 되돌아가는 길과 마주쳐야
예상과 맞아떨어지는데 아무래도 뭔가 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때마침 반대편에서 오는 부부인 듯 한 분들께
오시는 방향과 함께 길을 물으니 우리가 목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 아닌가?
깜짝 놀라 서둘러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는다.
아내는 이제 지쳤는지 그저 끌리는 대로 묵묵히
따라서 오고 갑자기 피곤이 확 밀려든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앉아서 쉬어갈 만한 장소도 없고,
다른 때 같았으면 골이 나기도 했으련만 그저 말없이
나란히 걸을 뿐이다.
한참을 바삐 뒤돌아 나온 끝에 물찻오름에 도착,
다시 한 번 플래카드를 확인해도 틀림이 없는데~~~
가까이 덩그렇게 빈 방가로 안으로 진눈개비를
피해 들어가 목 의자에 걸터앉아
“각시 힘들제?”
“헤매게 해서 마이 미안하네”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배낭에서 보온병과 컵라면을 꺼내
“컵라면 끓여서 요기나 하고 언능 내려가세!!~”
그때야 아내도 웃어 보이며
“그러니까 잘 살펴보고 댕깁시다!!~”
따끔한 한마디를 건넨다.
컵라면의 용기를 뜯고 보온병을 열어 물을 채우는데
모락모락 피어올라야 할 김은 고사하고 뜨거운 느낌이
전혀 없다. 보온병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그냥 미지근한 맹 물통이었던 것을,
그나마 컵라면을 요기삼아 기운을 내볼 참이었는데
이 낭패를 어찌한담? 그러나 어찌하랴 불려서라도
허기를 달래볼 요량으로 덜덜덜 떨어가며 수분을
기다린 끝에 하나를 아내께 내밀며
“그냥 함 맛이나 봐보소!!~”
못 이긴 척 받아서 풀리지도 않은 라면 사리를
한 가닥 떼어내 맛을 보더니
“에~~~테테테!!~ 눈살을 찌푸리며
“차라리 생 라면을 먹었음 더 좋았을 것을!!~”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돌아앉아 아예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렇게 난감한 때 일수록 그냥 이러함도 지내 놓고
보면 먼 훗날 하나의 고운 추억이 될 것이라 여기고
재미삼아 먹는 시늉이라도 내 줬으면 조금은 덜
미안하고 좋으련만, 버리기도 아깝고 하여 내 몫의
컵라면을 국물까지 후룩후룩 마시며
“아~ 난 먹을 만 하구만, 아직 배가 덜 고픈가?”
은근히 약을 올리듯 아내 몫 까지 반을 흡입 후
남은 면발을 근처 후미진 곳을 파서 묻고는
배낭을 챙겨서 메고
“언능 가새!!~”
진눈개비가 산죽 잎을 간질이는 소리를 왠지 모를
볼멘소리처럼 느끼며 인적도 없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숲길을 휘적휘적 되돌아 나오는데
덜 익은 라면발이 위 속에서 퍼지는 중인지
배는 더부룩하고 어찌나 가죽피리 소리가 요란을
떨어대는지 혼자서 피식피식 웃어가며 터벅터벅
겨우 애마가 기다리는 주차장까지 돌아와(12:40)
추위와 피곤을 잠시 달래며 지도를 펼쳐 딸아이가
표시해둔 미션 지를 살펴보니 공항으로부터 동쪽으로
성산과 우도를 경유 서귀포 전까지 거의 반을 대충
둘러본 셈, 이제 다음 행선지는 서귀포 이후에서 서쪽과
공항 전까지의 구간이 남아있음 이렷다.
그렇다면 오후 네 시까지만 영업을 한다했던 옥돔식당
에서 식사를 한 후 이후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애마를 몰아 전력질주를 시작한다.(13:00)
남원을 지나 서귀포를 경유하는 동안 곳곳의
감귤농장 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누런 감귤이
시선을 잡아끈다. 어떤 곳엔 아예 수확을 포기
한 것처럼 귤나무 밑에 누렇게 방치된 감귤이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하여
너무 안타깝고 아까운 생각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시간이 되면 감귤수확 체험을 해보자는 아내의
별도 계획이 있었던 터라 서행을 하다가 농장에
일하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띄면 내려서 동참
해보려는 욕심으로 농장을 지날 때면 속도를 줄여
주변을 살펴보지만 그 어디에도 일하는 사람들
흔적은 없다. 그렇다고 떨어진 귤이라 마음대로
주워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저 누렇게 낙과 된
농장을 지날 때마다
“아깝다!!~”
“아이고~~ 참말로 아깝다!!~” 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그저 침만 꿀떡꿀떡 삼킬 뿐이다.
어느 길목에선 차도 밖 인도 안쪽으로
가로수처럼 드문드문 늘어선 나무나무 마다
귤인지 유자인지 노랗게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런
열매들이 제주도의 특산물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며
자랑하듯이 뽐을 내고 서있는 거리를 지나
서귀포에서 중문 사이의 차 막힘 구간을 빠져나오며
예상치 않게 시간을 빼앗겨 아무래도 4시까지는
도착이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아내에게 딸아이가
준비해준 봉투를 찾아서 통화를 함 해보라 하고
신호를 기다린다.
역시나 오늘은 영업 끝이라는 아내의 통화내용에
차를 골목길로 진입 후 세우고,
“배고프지?”
“아니!!~? 별로 생각이 없는디!!~”
“그려?” 그럼 아까 오면서 “유리의성” 이정표를
봤었는디~ 거기 혜영이가 관람예약한 곳 맞지?“
“거기를 가서 구경하고 식사를 할까?”
“그래보든가!!~”
얼른 유리의성을 검색 내비를 찍고 방향을 찾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내 텅텅 빈
주차장 한 곳에 애마를 멈추고 인터넷 예약 확인
프린트 페이퍼를 봉투에서 꺼내 매표소에 건네자
예약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확인한 후 반원이
뚫린 유리 창구 밑으로 입장권을 스윽 내밀어준다.(16:10)
진입하다 말고 잠시 멈춰서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추울 것 같아
다시 차로 뒤돌아 가 두꺼운 잠바를 꺼내서 아내
어깨에 걸쳐주며 주변을 돌아다보며 걸음을 옮긴다.
본 건물로 들어가기 전 우측엔 폐품 병을 재활용하여
물고기 모양을 형상화한 갖가지 모양들이 빽빽이
마치 물속을 그려놓은 듯 꾸며져 있고, 유리의 종류와
역사와 기원, 세계 유리문화 등등이 소개 되어 있다.
공원처럼 잘 다듬어진 공간 입구 중앙에 3층 높이의
건물 내부 중앙에는 둘둘 꼬인 귀목 모양의
형상을 한 유리 조형물이 돔 천장을 찌를 듯
우아하게 서 있고, 1층에는 긴 빨대(?)를 이용
유리 조형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체험 공간이
운용 중이고, 2층에는 각양각색의 유리 제품 및
조형물이 옹기종기 진열 되어있다. 한 편에는
유리로 만든 악세사리나 기념품 등등을 판매하는
곳이어서 아내를 잡아끌며,
“뭐 갖고 싶은 것 하나 골라보소!!~”
고개만 살래살래 흔들며 꽁무니를 빼는 아내를 따라서
건물을 빠져나와 관람 로를 따라 걸으며 그야말로
유리성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온갖 유리 형상의 조형물이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는 성을
구석구석 살펴가며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 시간여 동안 관람을 마치고 서둘러 애마 속으로 복귀,
일단은 번화가로 나가면서 석식을 해결하고 잠자리를
알아보자 하고 목적지 없이 유리성을 빠져 나온다.(17:10)
제법 한참을 나왔던 것 같은데 번화가는 요원하고,
어디 저녁을 해결할 만한 식당은 더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고 피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아내도 지친 듯 더더욱 말이 없고 표정이 굳는다.
얼른 지도를 꺼내 사람이 몰려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눈에 선뜻 들어오는 모슬포 항을 찍고 속력을 높인다.
모슬포 항에 근접 할수록 거리는 더 어둡기만 하고
정작 모슬포 항에 도착하자 이미 어둠은 짙을 대로 짙고
주변 상가는 거의 영업 끝이라 예상과는 전혀 다른
너무 초라하기만 한 항에 불과, 하는 수 없어 마라도
선착장으로 달려 가보지만 마라도 또한 다를 바 없다.
어둠 속을 이리저리 헤맨 지 거의 두 시간여,
이러다가 꼼짝없이 저녁을 굶고, 비좁은 애마 모닝
안에서 밤을 새워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위기감이
엄습한다. 내일 관람지가 카멜리아힐 이라는 예정
때문에 너무 멀리 나갈수록 불편이 따를까봐 주변만을
맴돌았던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고 과감히 서귀포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속력을 높인다.
2차선 도로를 벗어나 4차선 도로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자 금방 양 옆으로 조명이 울긋불긋 번화한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어서 오라 손짓이다.
봉사가 문고리 잡듯 중문 관광단지에 입성을 한 것.
“어~허이 참!!~ 지척에다 두고 그 쌩고생을 하며
뻘간디만 직사게 헤매고 댕겼네!!~“
“인자 맘 푹 놓고 뭐 맛난 걸로 골라서 함 말 해보소!!~”
잔뜩 긴장했던 아내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인자 언능 가까운 데로 들어가서 아무거나
때웁시다!!~“
아내의 대꾸에 허허허 웃으며 잠시 지나친 건너편
옥돔구이 집과 그 뒤편으로 펜션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턴지점에서 차를 돌려 금방 식당
주차장에 재빨리 주차를 마치고 성큼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19:30)
옥돔구이와 해물 된장찌개를 주문하고 밖으로 나와
펜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펜션 예약을 문의해보지만
이미 만실이라며 다른 곳의 전화번호를 안내한다.
그러나 그 곳마저도 방이 없다 시니 이거 참
난감할 일 아니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와 아내한테는 태연하게
차림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척, 중문 숙박업소를
검색하여 몇 군데 업소 명을 눈여겨 봐 둔 후,
아이들한테 사진 몇 장과 문자를 찍어 보내는 사이
기다렸던 우리 메뉴가 식탁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역시 시장이 반찬, 큼지막한 옥돔은 간이 적당하여
입맛을 살리고 구수한 해물된장찌개가 긴장했던
속내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아내 또한 맛이 참 개운하다며 된장찌개를 연거푸
떠서 맛깔스럽게 훌훌 넘긴다.
달고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는데 아내가 뒤에서 팔을 잡아끌며 식대 계산은
자신이 하겠노라며 성큼 계산대 앞으로 앞지르고는
얼른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며 주현이가(아들)
여행 중에 맛있는 것 사드시라 용돈을 20만원이나
주더라고 배시시 웃는다.
“에이 이사람!!~” 그렇게 큰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받아서왔는가?“
내심 싫지만은 않은 듯 돌아서 나오며(20:00)
커피를 한잔 빼들고 밖으로 나와 애마 속으로 파고든 후,
아까 눈여겨봐 두었던 숙박업소를 검색하여 통화를 시도한다.
두 세 곳 까지 만실에 그나마 한 곳은 2인 입실에
8만원이라니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펄쩍 뛴다.
다시 이어지는 송신호음이 오래도록 길게 가는데 무반응이라
막 끊으려는 순간 딸칵 연결 음과 함께
“여보세요!!~”라는 할머니 음성이 숨 가삐 들려온다.
“할머니 거기가 모텔이 맞는가요?”
“빈 방은 있구요?”
“네 잠자는 곳 맞아요!!~”
“누추하지만 잠만 자는 방 있어요~“
“한밤에 3만원이요!!~” 올라요?“
“어딘데요?”
“주소 좀 말씀을 해주세요!!~”
“아이고!!~” 내가 늙은이라!!~~
“여기 찾아오기는 쉬워!!~ 바로 제과점 옆인데?~~”
“할머니 제가 잠시 후 전화를 다시 드릴 테니까요~~”
“주소를 좀 알아놓으셨다가 말씀 해주세요!!~”
전화를 끊고 기다리는데 대충 그림이 보이는 듯하다.
70~80년대 노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는 골목길 안쪽
대문 높이 온천표시 밑에 조그맣게 모모 여인숙 간판이
내걸린 딱 그 여인숙 같은 그 추억의 정경,
처숙부님께서 동대문 문구골목 안쪽에 숙박업을
운영하셨던 그 때 그 모습을 연상하며 혼자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다 말고, 다시 전화를 드리자
또박또박 주소를 불러주신다.
내비여사님께 안내를 맡기고 이동한지 얼마 후
꽤 번화가인 큰길 건너편 골목 안쪽으로 비보호
좌회전까지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텔은커녕
여인숙 간판도 눈에 띄지가 않는다.
비좁은 골목이라 주변을 배회하며 다시 통화,
문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신데 어디쯤이냐 시며
애달아하신다. 다시 돌아서 큰길로 나갔다가
다시 유턴 후 골목으로 들어오자 70후반 정도의
할머니께서 상가건물 앞에서 모닝 애마를 알아보시고
어서 오라 손짓을 하신다. 근처 가까이 애마를 세우고
건물 앞으로 와서 보니 4층 상가건물 출입문 입구
상단 유리에 조그맣게 “에덴모텔 4층”이라 썬팅이
돼있다. 눈 작은 사람은 안경을 끼고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뵐까말까 한 소극적인 광고,
할머니께서는 환히 웃으시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앞서
올라가시며 빈방이어서 이제 막 보일러를 켜놨는데
일단 올라가 보시고 쉴만하면 쉬었다가라신다.
방화 문을 열고 미닫이문을 열어 보이시며
방은 크고 깨끗하니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신다.
말씀대로 침대가 놓인 밝고 무던한 방,
좀 오래 비었었던지 골방냄새와 함께 싸늘함이
묻어나지만 아내 표정 또한 긍정적이어서
“네!!~ 할머니 그냥 한 밤만 쓸게요!!~”
할머니께서는 고맙다 시며 장을 열어 두꺼운
솜이불과 베개를 후다닥 꺼내 방에 깔아주시고는
당신의 귤 농장이 있어 직접 만드신 귤 주스가
있다 시며 금방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시며
계단을 내려가신지 잠시 후 한 손엔 쟁반 위에
유리컵 두 잔의 노란 주스와 또 한 손엔 검은 봉지에
귤을 한가득 담으셔서 심심한데 까 드시라며 방바닥에
내려놓으시고 얼른 돌아 나가신다.(20:30)
“할머니 돈 받으셔야죠!!~”
“삼 만원 이라셨든가요?“
“아~예~에!!~”
배시시 웃으시며 들어오시는 할머니께 입실료를 드리며
“고맙습니다!!~ 잘 마시고 잘 까먹을게요!!~”
기분 좋게 웃으시고는 혹시 맛없어 하실까봐 조금만
가져왔는데 맛있으면 더 갖고 오시겠다 시며 표정을
살피심에 힘드실 텐데 충분히 됐다 만류해 내려가시게 한다.
막상 둘만의 시간이 되니 갑자기 피곤함이 엄습한다.
살며시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며
“각시 오늘 참 힘들고 고단한 하루였네?”
“애 마이 쓰셨어!!~”
“인자 좀 푹 쉬소!!~”
“아이고 참말로 아까는 걱정시럽드만
인자 좀 맘이 놓이요!!~”
성큼성큼 화장실 겸 수세실로 들어가 씻는 소리를
들으며 뒷목이 뻐근하도록 뭉친 긴장을 풀고
고단했던 하루를 애써 접는다.
온 몸이 땀으로 끈끈하고 등짝이 화끈거려 잠을
깨보니 방바닥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보일러
작동소리가 탱크 소리처럼 요란스럽다.
아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깊은 잠 속에 빠져있고,
한번 깬 잠을 도저히 이룰 수 없어 살며시 일어나
열기가 덜한 쪽에 다시 잠자리를 펴고 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짙은 어둠이 꽉 들어찬 방안에
깊은 정적과 함께 정신만 말똥말똥 어둠속을
휘젓고 다닌다.
D+3(8일 금요일 / 흐리고 비)
어둠이 살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창문이 환하게 밝도록 이불 속을 못 빠져나오다
아이들한테 문자를 보내 출근을 확인한 후
차근히 제주의 마지막 날 또 하루를 준비한다.
아내는 이미 세면까지 마친 후 치장 중이고,
어지럽혀진 이부자리를 개켜서 침대위에 가지런히
정리 해놓고 배낭과 소지품을 챙겨 넣고 메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휘둘러보면서 슬그머니 계단을 내려
숙소를 빠져나온다.(08:45)
애마에 시동을 건채 지도를 펼쳐 동선을 살피며,
딸아이의 지정식당 옥돔은 11시 이후부터 영업이
가능타 하였으니 어제에 이어 오늘 역시 이용 시간대가
불가하고, 이동 길목에 “카멜리아힐”이 있으니 일단 먼저
그 곳을 관람한 후 협재해변 “해녀의 집”에서 아침 겸
점심식사를 마친 후 16:05분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애마를 반납하고 공항에 도착하기로 아내와
상의를 마친 후 곧장 애마를 발동시킨다.
30여분 이동 후 “카멜리아힐”에 도착하니(09:10)
오늘은 또 무엇이 못마땅해선지 잔뜩 찌푸린 하늘에
가득고인 빗방울이 주르륵 흐르다 멈추고 바람에
실려 흩뿌려지다 또다시 멈추고를 반복한다.
아내가 펼친 우산을 함께 받치고 매표소로 다가서
인터넷예약 내용을 확인한 후 입장권을 받아
진입로를 따라 드문드문 설치된 유도푯말을 살피며
아내의 손을 다정히 마주잡고 관람로를 따라간다.
“카멜리아힐” 동백언덕이라는 비석의 소개처럼
동백 수목원으로서 6만여 평 부지에 80여 개 국의 동백
500여종, 6천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250여 종의
제주 자생식물과 어우러져 계절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아름다운 꽃과 풍경을 자랑한다는 제주 관광 명소로
알려진 곳,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다지 화려한 동백꽃을
볼 수는 없지만 날씨 쨍한 날이면 연인과 나란히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기에 딱 좋을 멋진 곳,
우리 부부에겐 다소 좀 무미건조한 코스이긴 했지만,
돌아갈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자꾸만 시간이 급해져
관람을 마치고 서둘러 협재해변으로 향한다(11:15)
내비 여사님의 상냥한 안내에 따라 산길과 들길을
번갈아가며 달린 끝에 마을 안쪽을 깊숙이 가로질러
마침내 해안에 인접한 “협재 해녀의집” 앞에 도착
줄을 서 기다리는 불편함은 없었지만 두 셋 팀이 이미
홀을 차지해있고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사장님께서 깍듯이 인사를 해오시며 환영과 함께
주문을 묻는다. 딸아이의 봉투를 꺼내며
“문어숙회에 해물 라면?” 이라고 되묻자 밝게
웃으시며
“아~~ 어느 분의 추천으로 오셨는가 봐요?”
우린 잠시도 망서림 없이 동시에
“아 우리 딸이!!~”
“꼭 들러서 맛보고와야 한다는 미션 수행중이거든요!!~”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가 좌석에 앉아 인증 샷을
보내야한다는 엄명과 함께!!~“ 라며 웃자
“아 그러셨군요!!~” 어디 봐요!!~“
봉투를 건네받아 사진과 함께 내용이 깨알글씨로 적혀
첨부된 내용을 가만히 살피더니 봉투안의 현금까지
확인하고는
“아이구~~ 금액도 잔돈까지 정확히 넣으셨네요?”
“참 요즘 보기 드문 효녀님을 두셔서 두 분은
너무너무 행복하시겠습니다!!~“
“우선 저기 창가 쪽 의자에 앉으세요!!~”
“금방 맛있게 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린 더없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다를 내다보며 긴 목 의자에 앉아 창가에 붙은
좁다란 식탁에 팔꿈치를 올리며 나란히 앉는다.
딸아이와 아들로 인한 이 행복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고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가슴깊이
새겨 간직하며,
“각시!!~ 우리 아이들이 참 착하고 대견하고
뿌듯하고 든든하고 비할 데 없는 효자효녀지?“
아내역시 눈가가 축축해지며 고개만 연신 끄덕인다.
잠시 젊은 사장님께서 문어숙회와 해삼접시를
식탁에 올려놓으시며,
“이 해삼은 두 분의 효녀 따님께 감사표시로
제가 써비스 올리는 것이니 맛있게 드세요!!~“
이렇게 감사하고 이렇게 기분 좋은 경우가
언제 또 있을까?!!~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의 표시를 악수로 대신한 후, 식탁에 놓인
메뉴와 함께 창밖 바다풍경을 인증사진으로
아이들한테 보내며 두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너희 둘로 인한 엄마아빠의 행복이
참으로 크고 감사함을 문짜로 찍어 보낸다.
이어 나오는 해물 라면을 곁들여 멋지고
가슴 뭉클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고운 인연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애마를 재촉한다.(11:35)
지도를 펼쳐 해안도로와 자동차도로를 드나들며
공항 가까이 접근하는 중에 주유소에 들러 인수당시
게이지눈금 까지 연료를 보충하고 나서도 시간이
넉넉하다. 얼른 지도를 살펴 가까이 용두암에
딸아이의 표시가 있음을 확인하고 내비여사님께
급히 용두암을 입력한다. 꾸불꾸불 좌회 우회를
반복한 후 용두암 주차장에 진입하여 주차를
마치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참 동안 아내의
행방이묘연하다. 멈춰서 아무리 둘레를 살펴도
아내의 모습이 오간 데 없으니 살짝 짜증이~~~
불안한 생각에 잠시 주춤하다 급히 애마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데 아내가 막 차에서 나온다.
“아니 여태 뭐하다 이제 나오며 사람을 놀래키는가?”
버럭 화를 내자, 화장실 갔다가 너무 추워
옷을 가질러갔다나 뭐라나~~ 대뜸 화를 내놓고 보니
서로가 찜찜한 기분이 되어, 보는 둥 마는 둥
용두암 근처를 맴돌다 애마로 돌아온다.(13:10)
이제 차를 반납할 차례인데 어디 더 가볼 곳이나
더 하고 싶은 것 뭐 있느냐는 물음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이나
이웃들한테 너무 섭섭지 않겠느냐며,
자그마한 먹거리 선물로 제주 특산 오메기떡을 좀
사서갔으면 좋겠다 신다.
어느 님의 분부신데 거부를 하랴!!?~
내비 여사님께 공항근처 오메기떡집을 여쭙자
금방 쪼르르 위치와 연락처를 아뢰신다.
어려움 없이 금방 찾아가 인도 위에 차를 멈추고
들어가 보니 다행스럽게도 어마어마한 오메기 전문 떡공장!!~
“궁중오메기떡!!~”
“50알 3만원”
“맛도 그만!!~”
덕분에 우린 기분이 다소 좀 유화되어 오메기떡을
오물거리며 애마로 돌아와 최종 목적지
한국렌트카를 찍고 기분 좋게 출발한다.(13:50)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지나 어느 아주 후미진 창고형
한국렌트카 건물 앞에 도착 목적지에 도착 완료라는
내비여사님 안내에, 여긴 아닌데 싶어 내려서 여쭈니
이 곳은 본사 사무실이라며 공항 내에 있는 차량 인도
지점으로 가야한다며 친절히 길안내를 해주신다.
내 실수도 실수지만 시간이 충분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아닌가?
다시 차를 돌려 공항 주차장으로 달려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 후, 차량 인도 절차를
모두 하자 없이 마치고(14:00) 정말 홀가분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공항 대합실로 들어선다.
그제야 아내는 배가 고프다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어~헛 참 그렇다면 젠즉 말을 했어야 근처
혜영이가 일러준 자매국수집을 들렀을 것 아니가?“
“이젠 나갈 수도 없고!!?~”
“아 그냥 이 안에 식당으로 가면 되지 뭐?”
“당신 싫으면 나 혼자 가서 먹고 올 테니
여기 구경하고 있으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리 태연하게 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오메기떡이 위장을 채웠는지 영 밥 생각이 없었지만
아내를 앞세우고 2층 한식집으로 들어가 비빔밥 하나와
제육덮밥 하나를 주문한 후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순번 뜨기를 기다렸다가 번호가 올라오자마자
배식 대에서 식판을 챙겨와 식탁에 올린 후,
비빔밥을 선택한 아내 앞으로 가까이 제육덮밥까지
밀고는 맛있게 드시라 덮밥을 섞어 한 잎 맛본다.
밀거니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덧 식판 둘이
말끔히 비워지고 물 컵 가득 입을 헹구고 나서
“아이고~ 제주도에 와서 제일 맛나게 밥 묵어봤네!!~”
깔깔대고 웃으며 옆으로 다가와 캐리어를 끄는 팔에
팔짱을 끼면서 멋쩍게 웃는 아내를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미워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내 사람,
내 아내임에 불변이 없음을 확고히 믿고 다진다.
예약 항공사를 찾아 창구에서 창 측 날개 뒷부분
자리로 부탁하여 티켓팅 완료 후, 11번 탑승구 앞에서
검색대를 통과(14:40) 이제 비행기만 기다리면 곧
집으로 간다. 아내와 TV 멀찌감치 대기석을 차지하고
긴 기다림에 들어간다.
딸아이와 아들 덕분에 둘이서 오붓하게 처음
비행기를 타고 처음 제주도에 내려 신혼여행처럼
제주 투어를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큰 감격이고
감동이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내년에는~~, 내년에는 꼭~~,
하며 여태 미루고 미뤄왔던 자신이 아내한테는
못내 부끄럽고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내 자신한테 부끄럼 없고 내 주변에 불편 줌 없이
거짓 없고 성실하게 열심 껏 살아왔건만
돌아서 보면 늘 부족하고 늘 뒤쳐진 자신이
가끔은 작고 구차해 보이고 가끔은 짠하고 연민스럽다.
이러한 내 자신을 지아비 삼고 오늘날까지
애써 살아 내준 아내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위대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우리 둘 앞에
더할 수 없는 행운으로 딸과 아들로 인연해준
두 아이들이 있어 참으로 기쁘고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루한 줄도 모른 채 행복에 겨운 시간이
끝없이 흐르는 사이 간간이 연착륙 방송이 들리곤
했었는데 마침내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까지
연착륙이 이어진다. 몇 분 몇 시간 쯤 연착 할
것이라는 예상도 없이 계속 연착이라는 방송에
살며시 부아와 불안이 가중될 무렵(탑승예정 한 시간 후)
11게이트에 탑승 준비하라는 방송에 겨우 안도하고
아내의 손을 잡고 게이트를 급히 빠져나간다.
날개 부분을 약간 지난 우익 지정석 23F에
탑승 완료하고 작은 둥근 창밖으로 제주 공항을
스크랩 해둔다.(16:40)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하여 마침내 이륙을 감행,
마치 이승을 박차고 올라 천국을 향해 가는 것처럼
멀어져만 가는 제주의 모습이 간간이 구름에
가렸다 보였다 를 거듭하며 천국으로 하늘나라로
더 높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낮은 잿빛 구름을 뚫고 점점점 고도가 높아 갈수록
천국이 따로 없고 별천지가 따로 없다.
언젠가 학창시절 노고단으로 소풍을 갔었을 때였든가!!?~
운 좋게 햇빛 찬란하고 바람 고운 날씨를 만나
그 창연했던 노고단 정상에서 발아래 펼쳐진
운해를 바라보며 그 곱고 아름다운 운해를 향해
풍덩 한번 뛰어들어봤으면 싶었던 그 꿈 속 같은
순간이 지금 내 눈 앞에 장엄히 펼쳐져있다.
될 수만 있다면 동그란 문을 밀치고 머리를 쳐 넣어
스르르 빠져버리고 싶은 환상 속의 충동을 지그시
누르며 황홀감을 감추지 못한다.
심 봉사가 부럽지 않을
내 참한 딸 덕분에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운해를 건너 제주를 훑었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던가?
내잘난 딸 덕분에 나팔을 분다.
이순이 다 돼 도록
밀쳐둔 신혼여행을
딸 아들 덕분에
맘껏 다 누렸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 속으로
아내 손 맞잡고 춤추며 간다.
이승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천국의 황홀함에 눈을 감는다.
땅거미가 내리는 이승의 도심에 어둠을 거부하듯
하나 둘 불빛이 반짝거리고 천국을 이탈해버린
비행기 안에 꼼짝없이 갇혀 김포공항 활주로에
여지없이 내팽개쳐 진다.
쫓기듯 도망치듯 두더지처럼 터널 속을 뚫고
5호선 지하철에 몸을 쑤셔 넣은 채,
아이들과 이웃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삶 속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