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월간조선 토론방)
폭로>김일련이 시베리아 감옥에 있었다는 주장도 거짓!
김희선측의 주장에 따르면 해방 후에도 김일련은 한독당 특별당원으로 작은 아버지 김학규와 함께 활동했으며, 한국으로 들어오신 후에 일련 형님은 한독당의 특명으로 정보 수집차 상인을 가장하고 자주 중국땅을 내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9년 김철수라는 사람과 함께 중국 대련의 한 여관에서 투숙하던 중 형님 일행을 수상히 여긴 여관 종업원이 소련군에 밀고를 하여 체포되었고, 형님이 체포되던 당시에 남한의 거물급 간첩을 체포했다며 시가행진까지 했다고 한다. 그후 일련은 정치범이 되어 시베리아 땅의 형무소로 갔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 김일건은 형 김일련의 행방에 대해 김학규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 포로로 잡혔다가 1954년 집으로 돌아온 김일건 작은아버지는 집에 도착하니까 어머니 오병희가 김일련이 베르호얀스크 감옥에서 보낸 엽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주장을 의심할 만한 여러가지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김일련이 소련군에 체포되었다는 1949년 당시 중국 만주에 전투 또는 행정부대로서의 소련군은 없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만주에 진주하여 관동군의 무장해제 임무를 종료한 후 2개월후인 10월 만주의 관할권을 중국 국민당 정부에 인계(일부 지역은 중국 팔로군에 인계)하면서 그 해 연말까지는 완전 철수했던 것이다. 김일련이 체포되었다고 주장하는 대련도 중국 국민당 정부에 인계되었음을 물론이다.
이후 국공내전이 본격화하여 48년 11월에는 만주전역이 모택동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면 김일련은 한독당 요원으로서 무엇을 위해 모택동군 지배하의 대련에 들어갔던 것일까? 모택동군과 무기밀거래를 하러? 아니면 모종의 공작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건 그 당시 대련에 있지도 않았던 소련군이 어떻게 김일련을 체포하여 시베리아로 끌고 갔단 말인가?
혹 이런 상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련에 갔다가 북한으로 잠입한 후 주둔중인 소련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소련군은 이미 48년 10월 북한에서도 역시 철수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김일련의 체포 시점을 고려해볼 때 김일련이 소련으로 끌려갔다는 것은 논리가 서지 않는다.
둘째, 김희선은 자기 아버지가 베르호얀스크 감옥에 수용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베르호얀스크(Verhoyansk, 시베리아 야쿠트 자치공화국 소재)에는 강제 노동수용소(러시아어로 라게리)가 있었을 뿐 감옥은 없었다. 그리고 구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는 대부분의 경우 외부와의 서신교환은 금지되어 있었고 더더구나 수용소 내부에서 외부로 서신을 보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김일련이 북한도 아닌 남한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셋째, 태평양전쟁 종전후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관동군 60만은 시베리아, 동유럽, 중앙 아시아 등 각지로 분산 수용되어 강제노동에 혹사당했지만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52년까지는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런데 독립운동 전력이 있다는 김일련이 왜 54년 이후까지 소련 강제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결국 그곳에서 죽은 것일까? 2차 대전중 소련인 3천만명을 학살한 독일군 포로들도 52년까지는 대부분 석방되었다. 이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무슨 다른 악질범죄를 저질렀든가 아니면 이 부분에 대한 김희선의 주장 자체가 거짓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결론을 내리건대 자기 아버지에 대한 김희선의 주장은 소설일 가능성이 크다. 김희선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대국민 사기극에 대해 전 국민에 사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