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암고
@ 창단 - 1970년
@ 우승 - 7회
@ 준우승 - 2회
<대통령배 : 90년 우승, 72,87년 준우승>
<봉황기 : 77,88,95,07년 우승>
<황금사자기 : 90,09년 우승>
<미추홀기 2005,2006 2연패> 미추홀기 성적은 전체기록에서 제외
@ 연도별성적
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71 |
김기환 |
1회탈락 |
|
|
1회탈락 |
|
72 |
오윤환 |
준우승 |
|
8강 |
1회탈락 |
대통령배 감투(정순명) |
73 |
정종태 |
|
|
|
1회탈락 |
|
74 |
정종태 |
1회탈락 |
|
8강 |
32강 |
|
75 |
조정일 |
|
|
1회탈락 |
1회탈락 |
|
76 |
김성근 |
1회탈락 |
|
|
1회탈락 |
|
77 |
김성근 |
1회탈락 |
|
8강 |
우승 |
봉황기 최우수(조범현),최우수투수(기세봉) |
78 |
김성근 |
8강 |
1회탈락 |
|
3위 |
봉황기 우수투수(장호연) |
79 |
김성근 |
|
|
|
32강 |
|
80 |
한동화 |
4강 |
8강 |
16강 |
1회탈락 |
|
81 |
한동화 |
|
4강 |
8강 |
32강 |
|
82 |
정종태 |
1회탈락 |
1회탈락 |
|
1회탈락 |
|
83 |
정병규 |
8강 |
|
1회탈락 |
4위 |
봉황기 우수투수(김기범) |
84 |
정병규 |
8강 |
16강 |
1회탈락 |
16강 |
|
85 |
정병규 |
|
|
|
32강 |
|
86 |
김태수 |
1회탈락 |
8강 |
1회탈락 |
1회탈락 |
|
87 |
정병규 |
준우승 |
|
1회탈락 |
16강 |
대통령배 감투(유지현) |
88 |
정병규 |
|
1회탈락 |
16강 |
우승 |
봉황기 최우수(유지현),최우수투수(공의식) |
89 |
정병규 |
16강 |
16강 |
|
16강 |
|
90 |
정병규 |
우승 |
1회탈락 |
우승 |
8강 |
대통령배 최우수(심재학),최우수투수(송재용) |
황사기 최우수(심재학),우수투수(이원식) | ||||||
91 |
정병규 |
1회탈락 |
|
16강 |
8강 |
|
92 |
정병규 |
1회탈락 |
|
|
1회탈락 |
|
93 |
정용락 |
|
1회탈락 |
|
3위 |
봉황기 우수투수(신윤호) |
94 |
정용락 |
1회탈락 |
|
|
16강 |
|
95 |
정용락 |
|
1회탈락 |
1회탈락 |
우승 |
봉황기 최우수선수,최우수투수(박명환) |
96 |
김태수 |
1회탈락 |
|
|
1회탈락 |
|
97 |
곽성열 |
1회탈락 |
1회탈락 |
|
32강 |
|
98 |
곽성열 |
|
8강 |
|
1회탈락 |
|
99 |
곽성열 |
1회탈락 |
1회탈락 |
|
32강 |
|
00 |
곽성열 |
|
|
4강 |
32강 |
|
01 |
정병규 |
|
|
|
1회탈락 |
|
02 |
공의식 |
|
1회탈락 |
16강 |
1회탈락 |
|
03 |
강봉수 |
|
|
1회탈락 |
32강 |
|
04 |
이영복 |
|
|
1회탈락 |
1회탈락 |
|
05 |
이영복 |
4강 |
1회탈락 |
|
32강 |
|
06 |
이영복 |
1회탈락 |
8강 |
|
16강 |
|
07 |
이영복 |
16강 |
|
1회탈락 |
우승 |
봉황기 최우수(홍상삼),우수투수(이효상) |
08 |
이영복 |
|
1회탈락 |
4강 |
16강 |
|
09 |
이영복 |
4강 |
|
우승 |
32강 |
황사기 최우수(문성현),우수투수(이정훈) |
10 |
이영복 |
4강 |
|
16강 |
32강 |
|
@ 프로 지명&입단선수 명단
73 정순명 (우우/P/한양대-한국화장품(77)-성무(79)/MBC(82년 창단맴버)/85년은퇴)
75 최정기 (우우/C/동국대-아마롯데(79)/MBC(82년 창단맴버)/87년은퇴)
76 정영기 (우우/IF/영남대-아마롯데(80)/MBC(82년 창단맴버)-롯데(83)-태평양(89)/90년은퇴)
78 기세봉 (우우/UP/포철(78)-경리단(81)/OB(84년 1차, MBC 83년 1차)/86년은퇴)
78 윤종오 (우우/C/포철(78)/빙그레(86년 2차)/87년은퇴)
78 이근식 (좌좌/OF/한양대/OB(82년 창단맴버)/86년은퇴)
78 조범현 (우우/C/인하대/OB(82년 창단맴버)-삼성(91)/92년은퇴)
79 김경갑 (우우/IF/영남대-한국화장품(83)/청보(86년 2차)/87년은퇴)
79 안성일 (좌좌/P/동아대/OB(84년 지명외)/84년은퇴)
79 이성수 (좌좌/OF/동아대/MBC(83년 1차)-해태(85)-빙그레(86)/86년은퇴)
79 장호연 (우우/P/동국대/OB(83년 1차)/95년은퇴)
81 김철주 (좌좌/P/건국대-상무(84)/미입단(청보 86년 2차))
81 탁재원 (우우/IF/중앙대/OB(85년 1차)/85년은퇴)
82 이복근 (우우/IF/경희대/OB(86년 1차)/91년은퇴)
83 채도병 (우우/IF/인천전문대/미입단(MBC 85년 1차))
84 김기범 (좌좌/P/건국대-한국화장품(88)/MBC(89년 1차)/00년은퇴)
84 김원식 (우우/IF/동국대/OB(88년 1차)-쌍방울(92)/92년은퇴)
84 김창식 (우우/OF/OB(84년 지명외)/84년은퇴)
84 원영권 (우우/C/OB(84년 지명외)/85년은퇴)
84 원원근 (우좌/IF/경희대/태평양(88년 2번)/95년은퇴)
85 김보선 (우우/P/한양대/OB(89년 1차)/93년은퇴)
85 하득인 (우우/OF/원광대-포철(89)/태평양(94년 5번, OB 89년 5번)/97년은퇴)
87 구동환 (좌좌/OF/상무(87)/LG(90년 2번)/91년은퇴)
87 나진균 (우우/OF/영남대/LG(91년 3번)/92년은퇴)
87 백성진 (우우/IF/동국대/태평양(91년 3번)/97년은퇴)
88 김승태 (우우/C/태평양(88년 지명외)/88년은퇴)
88 김유진 (우우/P/단국대/LG(92년 4번)-쌍방울(98)/99년은퇴)
88 김정준 (우우/IF/연세대/LG(92년 9번)/93년은퇴)
88 이재원 (우우/UP/동국대/미입단(쌍방울 92년 6번))
88 전승식 (우우/OF/경희대-한전(92)/미입단(롯데 92년 5번))
88 하창우 (우우/P/OB(88년 연고지명)/94년은퇴)
89 공의식 (우우/OF/동국대/태평양(93년 2번)-쌍방울(97중)/99년은퇴)
89 김종성 (우우/OF/경희대/OB(93년 2번)/97년은퇴)
89 최규하 (우우/OF/홍익대/LG(93년 5번)-쌍방울(97)/97년은퇴)
89 한혁수 (우우/IF/경희대/쌍방울(93년 4번)/95년은퇴)
90 유지현 (우우/IF/한양대/LG(94년 1차)/04년은퇴)
90 이승환 (우우/P/원광대/쌍방울(94년 3번)/95년은퇴)
91 김경호 (우우/OF/동국대/삼성(95년 7번)/97년은퇴)
91 송재용 (우우/P/건국대/OB(95년 1차)/96년은퇴)
91 신국환 (우우/IF/원광대/LG(95년 1번)-한화(00)/02년은퇴)
91 심재학 (좌좌/OF/고려대/LG(95년 1차)-현대(00)-두산(01)-기아(04)/08년은퇴)
91 이원식 (우우/P/한양대/해태(쌍방울 95년 1번, 지명권양도)-LG(05)/05년은퇴)
92 오규택 (좌좌/1B/한양대/LG(96년 2번)-한화(99)/00년은퇴)
92 최기문 (우양/C/원광대/OB(96년 1차)-롯데(99)/10년은퇴)
93 유환진 (우우/C/원광대/쌍방울(97년 5번)/99년은퇴)
93 이준용 (우좌/1B/중앙대/LG(97년 5번)/00년은퇴)
94 신윤호 (우우/P/LG(94년 연고지명)-SK(08중)/08년은퇴)
94 함석원 (우좌/OF/OB(94년 연고지명)/00년은퇴)
95 박준완 (우우/C/LG(95년 연고지명)/?년은퇴)
95 방동민 (좌좌/P/LG(95년 연고지명)-기아(02중)/06년은퇴)
95 조성환 (우우/IF/원광대/롯데(95년 8번)(現))
96 박명환 (우우/P/OB(96년 우선)-LG(07)(現))
96 이경원 (좌좌/P/LG(96년 우선)-OB(98)-기아(03)/05년은퇴)
96 장성호 (좌좌/1B/해태(96년 1번)-한화(10중)(現))
98 김세중 (우우/IF/홍익대/LG(98년 8번, 02년입단)/03년은퇴)
99 김우룡 (좌좌/1B/한양대/미입단(삼성 99년 11번))
99 박지호 (우우/P/고려대/LG(05년 지명외, 삼성 99년 8번)/05년은퇴)
99 주재필 (좌좌/P/성균관대/삼성(99년 10번, 03년입단)/03년은퇴)
00 김주찬 (우우/IF->OF/삼성(00년 1번)-롯데(01)(現))
00 문상호 (우우/P/두산(00년 1차)-기아(06)/06년은퇴)
00 민경수 (좌좌/P/경성대/LG(00년 7번, 04년입단)(現))
00 방승재 (우좌/IF->OF/동국대/두산(00년 2번, 04년입단)-상무(06)-두산(08)/08년은퇴)
01 윤상균 (우우/C/단국대/SK(08년 지명외)-LG(10중)(現))
03 권영석 (우우/IF/현대(03년 9번)/03년은퇴)
03 박대원 (우우/OF/한화(03년 지명외, 03년 8번)-사이버대-성균관대)
06 서남석 (좌좌/P/삼성(05년 8번, 유급후 06년입단)/06년은퇴)
06 이태원 (우우/C/동국대/LG(10년 5번, 05년 7번)-상무(11)(現))
07 박세진 (좌좌/P/롯데(07년 3번)-SK(08)/08년은퇴)
07 정우양 (우우/C/경희대/삼성(11년 10번)(現))
08 홍상삼 (우좌/P/두산(08년 3번)(現))
08 정근필 (?/IF/기아(08년 지명외)/09년은퇴)
08 최경환 (우우/P/송원대/히어로즈(10년 지명외)/10년은퇴)
09 정용운 (좌좌/P/기아(09년 2번)(現))
09 김진영 (우좌/IF/고려대(現)/미입단(롯데 09년 7번))
09 이학주 (우좌/IF/시카고컵스(09)-템퍼베이(11)(現))
10 문성현 (우우/P/넥센(10년 4번)(現))
10 이정훈 (우우/P/기아(10년 8번)(現))
10 문찬종 (우좌/IF/휴스톤(10)(現))
11 강병의 (우우/IF/LG(11년 6번)(現))
11 유원선 (우우/C/삼성(11년 7번)(現))
11 최현진 (우우/P/두산(11년 1번)(現))
@ comment
인천고와 경기공고 야구부를 크게 일으켰던 학교창립자의 영향을 받아 개교와 동시에 야구부를 집중양성했던 충암고는 덕분에 창단과 함께 강팀의 대열에 합류했던 서울 강북지역의 명문팀입니다...
충암의 초창기, 즉 70년대에는 주로 외지에서 스카웃한 전학생들 위주로 성적을 냈던 시기입니다... 창단팀의 에이스였던 정순명은 충남의 무명고에서 발탁했던 선수로 비록 최강팀 경북고에 큰 스코어차이로 패했지만 창단 2년째의 충암고를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시켰고 청소년대표에도 선발되었던 특급투수였습니다....
76년 명투수출신의 김성근씨를 감독으로 영입한 충암고는 77년 봉황기에서 두번째 결승에 올라 이번에는 진흥고를 셧아웃시키면서 대망의 첫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해체된 대구 대건고에서 영입한 기세봉, 조범현, 이근식 등이 크게 활약했고 뒤에 충암고 감독을 오랜기간 맡게 되는 정병규가 1루수를 맡았었습니다..
충암은 우승맴버가 졸업한 이듬해에도 대구상고에서 장호연을 전학시켜 또다시 봉황기에서 4강에 진출하는 호성적을 거둡니다..
이처럼 타지의 전학생을 위주로 하는 팀운영이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투자의지만큼은 높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충암은 80년대 들어 김성근감독을 신일고로 보내고 대신 신일고감독이었던 한동화씨를 영입하면서 대대적으로 팀컬러를 변모시키게 됩니다.....
인천출신으로 역시 편법으로 입학시켰던 초고교급 좌완투수 김기범을 중심으로 김창식, 남재욱, 원원근 등이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펼쳤던 스타일은 한동화 감독이 프로로 옮긴 이후에도 한참동안 충암 특유의 스타일로 자리잡았었습니다...
1987년은 김성근 전감독의 아들인 김정준과 하창우, 전승식, 2학년 공의식, 김종성 등 충암초등학교시절부터 오랜기간 손발을 맞춰왔던 맴버들로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외부영입 위주의 충암야구에서 탈피하는 매우 의미있는 해였습니다...
결국 이듬해 투수 공의식과 2학년으로 제2의 김재박이라는 찬사를 받던 유격수 유지현의 맹활약으로 11년만에 봉황기를 차지했고 심재학, 이원식, 송재용이 번갈아 마운드에 오르던 90년에는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 2관왕에 오르면서 충암고 최고의 해를 맞게 됩니다...
당시 이들 투수 세명은 대회마다 타격상을 번갈아 수상할 만큼 투타에 모두 재능을 보여주던 선수들로 이들을 돋보이게 한데에는 2학년 포수 최기문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93년에는 충암이 특히 강세를 보이는 봉황기에서 또다시 4강에 진출한 해로 비록 패했지만 준결승전에서 충암 에이스 신윤호와 부산고 주형광의 연장 12회 투수전은 매우 인상적인 경기였습니다...
광주일고의 이호준까지 포함해서 당시 고교 최고투수 트리오라고 불리던 이들은 모두 고교졸업후 프로에 직행했는데 주형광은 투수로, 이호준은 타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신윤호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다가 2001년에서야 진가를 발휘한 선수입니다...
95년초 OB의 장호연이 소속팀과의 트러블로 모교인 충암고에서 개인훈련을 하던중 특별지도했다고 알려진 박명환이 등장합니다... 스피드는 갖췄지만 제구력이 전혀 안잡혀 팀에서도 백업투수에 머물던 박명환을, 장호연은 투구폼을 교정시켜주면서 제구력을 잡아주고 더불어 장기였던 슬라이더를 전수해주면서 특급투수로 변모시키는데 박명환의 이 슬라이더는 그해 봉황기를 우승시킨 것은 물론 프로입단 이후에도 위협적인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렸습니다...
창단이후 탄탄대로를 걷던 충암야구부는 고교최고의 키스톤 플레이어들이었던 유격수 김주찬과 2루수 방승재를 배출한 직후인 2000년말에 일대위기를 맞게됩니다...
다른 어느 학교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충암의 재단측에서 곽성열감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전감독인 정병규씨를 다시 감독에 앉히면서 주력선수들과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결국 에이스였던 조태수는 배명으로,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은 신생팀인 한광고로 팀을 옮긴 직후 일순간에 서울의 최약체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한때 해체위기까지 몰렸던 충암고였지만 다행히 빠른 속도로 팀을 정비할 수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2005년 대통령배 4강진출은 충암고 야구재건에 큰 의미가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야구명문의 모습을 찾았던 충암은 2007년 봉황기에서 12년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데 당초 서울지역 최고투수중 한명으로 꼽혔다가 컨디션난조로 이전대회 내내 부진하던 홍상삼의 역투가 돋보인 대회였습니다.
충암은 홍상삼이 졸업한 2008년에도 팀리더였던 유격수 이학주와 좌완 정용운의 활약으로 4강에 진출했고 이듬해인 2009년에 또다시 황금사자기를 우승하면서 제2 전성기의 정점을 찍습니다. 투수 문성현과 이정훈이 이어던지고 문찬종, 구황이 타선의 핵심을 이룬 선수들입니다.
또 2010년에는 최현진-유원선 배터리와 유격수 강병의를 앞세워 대통령배 4강에 진출함으로서 충암은 4년연속 4강이상, 6년연속 8강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데 2004년부터 팀을 지도하기 시작한 모교출신의 이영복감독의 지도력에 높은 평가를 줄 수 있겠습니다.
매년 배출되는 충암의 에이스들이 프로팀의 상위권 지명을 받는 것은 물론, 2009년 이학주와 2010년 문찬종, 두명의 내야수는 미국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야구 사랑 최형석님의 글을 발췌하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