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전
김상태 / 기계공학부
대전에 사는 딸네 식구들이 지난 주말에 왔다. 다음 주 내 생일 모임을 위해 미리 온 것이다. 직장 생활로 주중 시간 내기 어렵다며 미리 당겨 토요일에 모임을 가졌다. 해마다 그랬듯 같이 점심도 먹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케이크도 잘라 가족이 모여 생일행사를 치렀다.
요즘은 어른이고 아이고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 생일이면 축하를 해준다. 지난번 손녀 생일 때는 학교의 반 친구들을 열 명이나 불러 제 어미가 큰 손님 치렀다고 했다. 그런 일도 모녀간의 중요 관심사이고 화제인 것 같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장하기까지 내 생일이라고 특별한 요리는 고사하고 흔한 국수 한 그릇 먹은 기억이 없다. 살기도 팍팍한 데다가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어 가족 생일이라 해도 미역국 한 그릇 밥상 올라오기가 어려웠다.
아버지 생일이나 돼야 그나마 쌀 섞인 밥에 미역국이거나 특별한 반찬 몇 가지 올라오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오늘이 네 생일이니 밥 많이 먹어라’ 하는 어머니의 공치사가 전부이고 어머니 생일은 아예 떼어먹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장성한 후에도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바쁘기도 하여 무심히 지나치거나 내 생일조차도 모르고 넘어가곤 했다. 요즘 시대 같았으면 전화나 문자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통신 수단조차 없었으니 가족 간에 모여 생일 잔치를 벌인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혼한 후에야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생일을 챙겨 주면서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상에 올려주었다. 생일마저 모르고 살다가 살가운 아내 덕에 생일상을 받으니,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하늘 대접을 받은 듯 우쭐했다.
지난주 가족들이 모여 미리 모여 생일을 치렀는데도 아내는 오늘이 진짜 내 생일이라며 저녁 식탁에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 상에 올렸다. 곱게 다진 소고기와 양념한 두부를 고루 섞은 것을 씨를 뺀 고추 안쪽에 채워 넣고,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지진 고추전이었다. 고추의 매콤한 맛과 어울려 씹을 때마다 입안에 개운한 맛을 풍겼다.
고추전은 결혼 초기부터 아내가 내 생일에만 해주던 특별한 음식이다. 물론 미역국이나 다른 반찬이 있지만, 아내가 만든 고추전은 내 생일의 단골 메뉴였다. 이번 고추전은 아주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감칠맛이 더한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고추전이 무슨 별미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혼 후, 처음 생일날 특별식으로 해준 음식이라 하늘 같은 남편으로 대접받은 느낌도 있고 결혼하므로 누리는 만족감도 작용했다. 그 많은 요리 중 왜 하필 고추전을 준비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내는 그저 우연히 요리책을 보다가 맛있을 것 같아 한 것일 것뿐, 나를 위한 특별한 의미는 없는 듯했다.
아내가 들으면 섭섭할지 몰라도 사실 나 역시 고추전 맛이 유별나게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만을 위해 정성껏 만들었다는 사실에 점수를 주고 나면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결혼한 이후 몇 년간 고추전을 잘 먹었지만,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 고추전 맛을 볼 수가 없었다. 집안일도 바쁘고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곤두세운 아내에게 차마 해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생일은 자연스레 후 순위로 밀려났다. 지금은 학교에서 점심을 급식으로 해결하지만, 그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주던 시절이라 주부의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거기다 아이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볼 때면 과외나 학원 선생에 대한 정보를 학부모 간 주고받느라 생일 타령은 언감생심 꺼낼 엄두도 못 했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제 아이들도 다 결혼해 독립하고 아내와 나 둘만이 살고 있다. 또한 직장과 봉사 단체에서 하던 일마저 다 내려놓고 나니 그야말로 남는 게 시간뿐이라 가끔 추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아름다운 시간을 불러들이곤 한다.
오랜만에 먹은 고추전은 맛을 떠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한데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내가 선포하듯 일침을 놓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고추전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몸이 늙어가니 손 많이 가는 음식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아내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흔한 말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 시계가 점점 빨라진다고 한다. 오십 대에는 오십 킬로미터로, 육십 대에는 육십 킬로미터로, 칠십 대에는 칠십 킬로미터로 흐른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아까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허락된 것이래야, 여유로운 시간뿐. 어쩌면 그 사이로 내 인생의 모래시계 양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나이 들어가며 세상 물정에 어두워지는 것 같다며 자기 옆에서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년 생일날에는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 주지 않을까. 이 같은 비밀을 알게 되면 아내는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년 생일상이 어떻게 변할지 은근한 기대가 솔솔 피어오른다.
첫댓글 교수님, 옥고 고맙습니다. 이 한편에 생일을 통한 우리 생활 변천사가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공대 교수'라고 겸손해 하시는 것과는 달리, 무척 섬세하고 조직적으로(공학적으로) 잡으신 글 속에서 부부의 믿음도 보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작가로 등단하신 소식에 반가와했고, 이런 좋은 글로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수님의 수필작가로서의 등단을 축하합니다!!!!! 앞으로 글로 자주자주 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