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馬大路
천마대로
天馬雄飛大路平
천마는 웅비하고 대로는 평탄한데
北文南理自縱橫
북쪽 인문 남쪽 이공 자연스레 어울렸네
人倫天造皆吾學
인륜과 천지조화 모두가 학문이라
大道無門君莫爭
큰 길은 문이 없으니 다투지를 말게나
[큰 길에는 처음부터 문이 없었다]
- 천마대로에서 만난 평화의 향기
봄날의 캠퍼스에는,
때로 사람보다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있다.
나무도 아니고 꽃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그것은 길이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나
누구에게도 자기 뜻을
강요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걸음을 받아 주던 길.
나는 그 길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게도
하나의 사상보다 먼저
한 줄의 침묵을 배운다.
천마지문 앞에 이르면
먼저 문이 보인다.
웅장한 돌기둥 사이로
아침 햇살이 길게 흘러들고,
갓 깨어난 벚나무들이 가지
끝마다 엷은 불빛 같은 꽃을
매달고 있다.
문은 서 있으나,
그 문은 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열어 두기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늘 문을 경계로
세상을 나눈다.
안과 밖,
시작과 끝,
허락된 자와 허락되지 않은 자.
그러나 봄빛 속의 저 문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해서,
마치 “들어오라”는 말보다 먼저
“애초에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문을 지나 천마대로에 들어서면,
길은 놀랍도록 곧다.
곧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 뒤에야 얻어지는
마음의 자세처럼 보였다.
벚꽃이 길 양옆에서
하늘을 이루고,
그 아래로는
이른 안개와 햇살이 서로를
놓아주지 못한 채 엉겨 있다.
나는 그 길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먼 데로 가는 길일수록
급하게 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확신에 들뜬 길은
사람을 재촉하지만,
깊은 길은 오히려 천천히
걸으라고 말한다는 것을.
조금 더 들어서면
길은 두 세계 사이를 흐른다.
한쪽에는 인간의 마음과 역사와
언어를 오래 들여다본
건물들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물질과 법칙과
우주의 비밀을 묻는 유리의
건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오래 머문다.
인문과 이공,
사유와 계산,
기억과 실험.
우리는 너무 오래 그것들을
다른 방에 가두어 두었다.
그러나 길은 한 번도
어느 편으로 기울어 본 적이 없다.
그저 둘 사이를 고요히 지나며,
다름이 대립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증언한다.
생각해 보면
진리는 언제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데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같은 빛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데 있었다.
꽃비가 내리는 시간,
학생들이 길 위를 걸어간다.
누군가는 친구와 나란히 걷고,
누군가는 혼자 걸으며,
또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생각하느라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다.
벚꽃은 그들의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이내 바람을 따라
다시 길 위로 흩어진다.
젊음은 늘
찬란한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 찬란함 속에
이미 작은 쓸쓸함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안다.
모든 시작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은 늘 지나간다는
예감을 함께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춘은
눈부실수록 더 애잔하다.
길 위를 걷는 저 아이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오늘 발밑에 밟히는
꽃잎 하나가 훗날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향기로 남는다는 것을.
길이 한 번 숨을 고르는 자리에서,
거울못은 하늘을 품고 있다.
물 위에는 벚꽃과
노을과 정자가 고요히 떠 있고,
한 번의 잔물결이 퍼질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흐려졌다가
다시 맑아진다.
나는 그 앞에 서면 언제나
마음의 소음이 먼저 보인다.
말로 다 설명하려 애쓰던 날들,
옳고 그름을 끝까지 가려야만
잠들 수 있을 것 같던 시간들,
내가 만든 수많은 문과 경계들이
물 위에 비친
그림자처럼 흔들린다.
그러나 물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비추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
그래서 물가에 서면
사람은 비로소 자기 마음의
모서리를 본다.
그리고 조금 늦게 배운다.
평화란
세상을 이기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안의 소란을
가만히 내려놓는 상태라는 것을.
조금 더 가면 분수의 물줄기가
반원형의 투명한 문을 이루며
길 위에 쏟아진다.
햇빛은 물방울마다
잘게 부서지고,
그 안을 지나가는 사람은
잠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평생 찾던 문은
어쩌면 돌과 쇠로 만든 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겼다가
이내 사라지는 물의 문,
붙잡을 수 없으나
분명히 통과할 수 있는 문,
넘어서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그런 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인생의 많은 변화가 그랬다.
거창한 선언 없이 찾아왔고,
눈에 보이는 문턱도 없이
내 안의 계절을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진정한 통과는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분수의 물줄기처럼 눈부시되,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리는 방식으로.
숲길로 접어들면
빛은 더욱 낮아지고,
나무들은 저마다 긴 그림자를
길 위에 드리운다.
돌비석들이
말없이 서 있는 그 길은,
누군가의 이름과 시간과
기억을 조용히 품은 채
오후의 햇살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런 길을 좋아한다.
말이 적은 곳,
그러나 침묵의 두께가 깊은 곳.
살아간다는 것은
앞으로만 가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사람들의 숨결 위를
조심스레 밟고 가는 일임을
이런 길은 가르치지 않아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자주
새로움만을 사랑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오래된 것들이 남긴
온기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틈이 되기도 한다.
나무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처럼.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없는 문 앞에 이른다.
텅 빈 듯한 공간,
빛으로만 이루어진 입구,
아무것도 막고 있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침묵의 경계.
그 앞에서 나는 오래전 들었던
한마디를 떠올린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
이 말은 단순히
선의 경지가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위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자격을 묻고
허락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 문을 통과해도 되는가,
나는 아직 부족하지 않은가,
누군가 나를 받아 줄 것인가.
그러나 정말 큰 길은
애초에 누구에게도
문을 세우지 않는다.
햇빛이 특정한 사람만
비추지 않듯,
봄이 어느 학과 앞에만 오지 않듯,
길은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
문이 없다는 것은
방황이 아니라 자유다.
가로막힘이 없다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포용이다.
그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인생은 허락된 입구를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넓은 길 위에
자신이 서 있음을
뒤늦게 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노을이 깊어질 무렵,
벚꽃길 위를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간다.
등 뒤로 두 손을 모으고,
오래된 책 한 권을 가만히 쥔 채,
마치 하루 전체를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사람처럼.
꽃잎은 그의 어깨와 길 위에
조용히 내려앉고,
저녁의 빛은 말보다
긴 여운으로 그의 등을 감싼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로소 알게 된다.
길의 끝에서 남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향기라는 것을.
누군가를 이긴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뜻하게 지나쳐 간
시간이라는 것을.
문과 문 사이를 헤매며
살아온 날들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더 높은 문이 아니라
함께 걸었던 길의 온기였다.
학문의 통섭도,
사람과 사람의 화해도,
거창한 논리의 승리가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생명의 숨결을
다시 알아보는 일일지 모른다.
큰 길에는 처음부터
문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름의 길을
걸어온 듯했으나,
실은 오래전부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람 속에서,
같은 길 위를 지나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꽃잎이 마지막
빛 속에서 천천히 흔들린다.
그 순간 마음속에
한 문장만이 조용히 남는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따뜻한 향기가 되어 주었는가."
https://youtu.be/f0DevkpAc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