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처음 사람으로 번역한 프로포스(처음)는 겉 사람으로 지칭한다.
2) 성경에서는 우리 안에 겉 사람과 속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3) 겉 사람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서 나오는 감각적 욕망의 산물이다.
2. 본론
“첫(겉) 사람은 땅(게)에서 났으니 흙(코이코스, 더러움)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속) 사람은 하늘(참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번역이 잘못되었다.
‘호 프로토스 안드로포스 에크 게스, 코이코스 호 뒤테로스 호 안드로포스, 호 퀴리호스 에크 우라누.’
(바른 번역은 처음 사람은 ‘게(땅)’로부터 나와서 더러움에 속하였으나 그 둘째 사람 곧 그 주님(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나왔다.)
1) 처음 사람으로 번역한 프로포스(처음)는 겉 사람으로 지칭한다.
그 처음 사람으로 번역한 처음(프로포스)은 겉 사람을 지칭한다. 육천 년 전 그 아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겉 사람과 속사람을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朽敗) 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0~24)”
2) 성경에서는 우리 안에 겉 사람과 속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輕)이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관사 없음)과 재물(맘모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우 뒤나스데 데오 돌류에인 카이 맘모나’ : 하나님(관사 없음)과 재물(맘모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 안에 이 두 개가 등장하고 있다.
두 주인 : 한 주인은 우리의 몸 된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며, 다른 한 주인은 불의의 제물로 번역된 ‘맘모나’ 곧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양식으로 삼는 겉 사람이다. 곧 겉 사람의 정과 욕심을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3) 겉 사람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서 나오는 감각적 욕망의 산물이다.
우리의 눈(안), 귀(이), 코(비), 혀(설) 몸(신), 마음(의)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혼란케 한다. 이것들이 감각적 욕망으로 변하여 나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나의 근본(근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겉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된 것이다.
보고(눈), 듣고(귀), 냄새(코), 맛(입), 감촉(몸), 마음의 대상(의)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들이며,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여기서 갈애(渴愛)가 일어난다. 이 갈애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끌고 다닌다.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 갈애가 바로 창세기 2장에 선악 지식(좋아함, 싫어함이 일어남) 나무의 열매와 각종, 나무들의 열매를 열리게 만든다. 끝없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 열매들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
성경에서 이것들은 내 안에 있는 뱀 곧 무명(無明, 잘못된 집착이나 의견)에서 나온다고 그 실체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래서 나의 근본(근원, 본성)인 하나님이 거하시는 몸 된 성전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 갈애들을 참으로 인식하게 되고 마음 너머에 있는 숨겨져 있는 속사람인 하나님의 성전(몸 된 성전)을 자연스레 잃어버리게 만든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