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새살림을 차려서 인생길을 걷다 가보니 첫째는 딸이고 돌째도 딸로 2살 차이로 태어나고 셋째는 아들이 태어나서 집안 모두 좋아서 어른들께서 덕담도 많이 해 주솄다.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나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앞날의 희망을 바라보면서 가정 살아가는데 둘째 딸도 입학해서 기분이 좋았다. 셋째가 아들인데 나는 항상 아들을 제일 많이 챙기고 하고 싶다는 것을 무조건 다해주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멀리하면서 친구들과 사귀면서 공부는 뒷전이 된 것 같아서 많이 타일러서 마음을 돌려보았으나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번은 학교에서 사무실로 한번 오라고 해서 갔더니 고등학교를 지원하는데 실력이 조금 부족한데 달성고등학교를 가겠다니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본인이 가고 싶다면 보내달라고 하니 떨어져도 후회 안 하겠다고 지원서를 제출해서 시험을 치고 나서 발표하는 날이다. 아들녀석은 아무도 오지 말라고 혼자서 갔다 오더니 합격했다고 했다. 나는 기뻤지만 혹사나하는 의심이 나서 이튿날 학교에 가보니까 합격자 명단에 있어서 침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서 달성고등학교 다니면서 집에서는 일찍 학교에 갔는데 지각을 많이 하고 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연락이 왔서 집에서 잘 타일러 달라고 했다. 집에서 꾸중하고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가는데, 태전교에 있는 대구보건전문대에 시험을 쳐서 또 합격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반 친구들과 싸움을 자주하고 해서 내가 못 배워서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을 너는 보고 있으면서 안타깝지도 않으냐 하면서 달래였다. 얼마를 지내고 있는데 밤에 자고 있으니, 전화가 와서 받으니 태전교 파출소라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반 친구들과 싸워서 한 사람을 셋이서 때려서 이빨이 부러지고 해서 상대방이 고발한다고 하니 나는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데 아들 친구 부모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안고 있어서 내가 치료비를 다 부담하고 하겠다고 했다. 상대방이 고개 끄덕이면서 경찰관 입회 하에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아들 부모들은 아무 연락도 없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군에 입대했는데 제2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치고 대구 의무학교를 마치고 전방에서 의무병으로 근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집에 놀고 있어서 집사람 초등학교 동창생이 곽병원에 있어서 주선해서 방사선과 에 취업을 했다. 며칠 다니더니 격에 맞지 않는다고 나와서 놀고 있더니 서울 간다고 하더니 그길로 서울에서 취업했다. 이제 고생을 다 했구나 하면서 지내는 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이과장 바꾸어주겠다고 해서 잘됐다고 하고 있으니, 아들이 집으로 와서 놀고 있으니, 난 대 없는 카드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오더니 돈을 갚지 않으면은 고발한다고 했다. 신용불량자로 되어서 취직도 못 하고 해서 그 돈을 갑고 나니 또 차가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2천만 원을 해주었는데 차도 없어지고 가정만 못살게 해놓았다. 한평생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까지 살겠다고 허덕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