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스승, 고마운 제자 - 유학생 단상
조무환/ 화학공학
1984년 8월 초에 나는 아내와 세 살 먹은 딸과 함께 미국 동부 뉴저지 주립대학, Rutgers 대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수준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2천 $ 정도였다. 당시 15평형 영남대 AID 교수 아파트 가격이 약 4백만 원 정도였으니 유학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지금의 인도, 10년 전의 베트남 수준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3만 $ 정도이므로 최근 우리나라 경제 수준은 유학 당시 미국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미국 유학 첫 달에 집세 및 중고 자동차 구입으로 갖고 간 유학비의 절반이 달아났다. 아내는 갑자기 위기감을 느껴 엄청 절약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대학으로부터 학비는 면제받고 생활비로 조교 장학금을 받았지만 집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지도교수였던 대만인 Wang 교수는 나에게 학위를 받을 때 까지 장학금을 제공하며 간혹 아내에게 아르바이트 일감도 주기도하여 유학생활을 큰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어 지도교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귀국 후에도 사제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10년 뒤 안식년에 방문교수로 다시 가서 지도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하기 까지 하였다.
1988년 귀국 후 약 20년이 지난 뒤 영남대 나의 실험실에 외국인 유학생을 받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이 내 유학시절 미국의 수준이 된 시점이다. 영남대 본부에서 외국인 대학원생의 경우 정원 외로 하여 TOEIC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이면 학비면제를 해주고 지도교수는 생활비를 연구비에서 지원해주면 유학생은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중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티벳 등에서 많은 유학생들이 영남대로 몰려 왔고 이는 교수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려운 유학생활을 해본 나로서는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들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교감이 잘 되고 나의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인도 유학생, 샤피어(Shafeer)가 있었다. 그는 인도 남서부 지역의 과학기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과정으로 우리 실험실에 들어왔다. 그는 석사논문으로 연료전지를 연구하였는데 나는 그때 미생물연료전지 연구를 막 시작할 때라 그로부터 유학문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준 학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전면 장학금을 제의하였고, 그는 영국 어느 대학과 영남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영남대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위상이 영국과 대등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는 사교성이 있고 창의적이라 연구주제를 놓고 같이 의논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학생이라기보다 함께 연구하는 공동연구원 수준으로 연구를 함께 이끌어 갔다. 그는 미생물연료전지의 생물막 전극에서 발생하는 전자를 이용하여 은 이온을 은 나노입자로 환원하는 방법을 최초로 고안하였다. 그리고 유사한 방법으로 나노 광촉매가 자외선뿐만 아니라 가시광선에서도 활성화가 되도록 하여 그 결과를 최초로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하였다. 샤피어는 박사학위를 받기 전까지 일곱 편의 논문을 국제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고 국제학술회의에 발표를 하여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많은 연구자들과 교류를 하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일본 JSPS 지원을 받아 박사 후 과정을 동경대학교 화학과의 광촉매 유명 교수 연구실에서 할 수 있었다. 거기서도 그는 훌륭한 업적을 쌓고 후에 ‘마리 퀴리 펠로우쉽’을 받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영국 Newcastle 소재 Northumbria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명을 받고 지금은 그 대학의 ‘Vice Chancellor’s Senior Fellow’로 연구 및 학생 지도를 하고 있다.
맹자는 군자삼락(君子三樂) 중 세 번째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 이라고 하였다. 나는 샤피어를 가르치면서 그 즐거움을 깊이 느끼며 나의 교수생활 마지막 10년을 많은 외국인 유학생 및 연구원들과 함께 그 즐거움을 이어나갔다. 특히 그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 다른 유학생으로 사지드(Sajid) 부부가 있었다. 사지드는 매우 부지런히 샤피어의 연구를 발전시켜 많은 응용분야를 개척하여 다수의 논문을 국제 저명학술지에 게재하고 박사학위 후에 영남대 연구교수로 남아 있다가 부인이 나의 실험실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King Faisal 대학교의 연구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들은 유학시절 영남대 후문에 있는 원룸에서 생활하며 오로지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공부와 연구에 열중한 결과 그 결실을 맺고 모두 대학의 교수로 활동을 하니 그들을 생각할 때 마다 내 마음은 흐뭇하다.
첫댓글 교수님, 소중한 연구와 교육의 현장 체험을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국가의 발전이 유학을 가고 유학생을 받는 토대로 이어지는 현상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자란' 학생이 '그렇게 제자'를 얻는구나 싶습니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복'을 축하드리고 부러워합니다. '글 숙제'를 털으셨음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무환 교수님: ,玉稿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