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강 동 구
가정과 가족은 어떻게 다를까?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그들이 낳은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가정이고 가족은 꼭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생활하면 가족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아 조심스럽다.
한 공간에서 함께 살지 않는 부모의 부모 조부모도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나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 조부모를 가족이라 여기는 아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지 않으니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자식이 장성하여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고 새로운 세대를 이루면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생기지만 자식은 여전히 부모를 가족이라 여길 것이다. 그것은 마음속 생각으로만 그렇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랬다. 삼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은 가족사진을 찍었다. 당시에 큰아들은 대학생 작은아들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무렵이다. 그 시절에는 가족사진을 찍어 대형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두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우리 가족도 그 유행에 합류하여 가족사진을 찍어 걸어놓은 사진이 지금도 거실에 걸려있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우리 가족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두 아들이 결혼하여 손자 손녀를 여섯이나 낳아 삼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은 넷에서 열둘이나 되었다.
나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지만, 과연 아들 며느리 손자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가 가족사진을 찍을 때 부모님을 형님이 모시고 있어서 멀리 계시기는 하였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마 형님네 가족이 가족사진을 찍는다면 당연히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조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리 가족이라 여겼을 것이 자명하다. 혈연으로도 그러하지만 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마땅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지 않았기에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부모님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미국에 사는 큰아들 가족이 한국에 와서 가족사진을 찍어 가져왔는데 나와 아내는 빠져 있었다.
사진을 받아보는 순간 몹시 서운한 감정과 살짝 괘씸한 마음이 든다. 부모는 가족이 아니고 남이란 말인가? 미국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고 한국에서 찍었는데 빈말이라도 부모님도 같이 찍자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들 입장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아니 아들의 판단은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 년 전 내 아버지도 그랬는데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지금 내 자식의 가족사진을 보고 있으니 나의 부모님도 자식의 가족사진을 보시고 나와 같이 서운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부모님께 큰 불효를 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딸이 없는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딸자식이 결혼하여 부모 곁을 떠나면 그 자식은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관계를 맺고 있으니 친정 부모는 딸자식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딸이 없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개념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직계혈통이나 친인척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생활하면 가족이라 여겨왔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전 같으면 동물이 사람의 주거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동물에게 부모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동물들은 그들의 자식 노릇을 하며 사람의 자식들하고는 형제자매로 지내니 당당히 가족이라 하여도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욕을 한다. 하기야 요즈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학대하거나 돌아보지 않는 패륜아들이 가끔 뉴스에 등장한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늙은 부모에게 온갖 재롱을 부리고 부모님을 를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를 하고 있으니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반려동물이 자식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평소에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개에게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주는 사례도 있었다. 개를 자식으로 가족으로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가족이 무엇인가? 혈연으로 얽혀져 함께 살아야 가족이고 혈연으로 얽혀져도 함께 살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가족의 또 다른 표현으로는 식구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개나 고양이는 사람은 아니어도 한집에 같이 살고 끼니를 함께하니 당연히 가족이고 식구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이나 식구는 서로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마음을 나누며 사랑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가족이고 식구라고 말하고 싶다. 혈연으로 얽혀도 믿음과 신뢰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고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앞에서 전제한 세 가지가 있으면 사람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는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듯이 그 은혜를 갚는다는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한두 가지 예를 든다면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 박 씨를 가져다준 제비, 주인을 들불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전북 임실의 오수마을에 충견 이야기 등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진한 감동의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나의 버킷리스트 1호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다 함께 모여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다. 어쩌다 두 아들이 외국에 살고 있어 삼 개국에서 열두 명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살아생전에 꼭 이루고 싶은 나의 첫 번째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