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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왕후의 한"
조선 5대 임금, 문종은 여자복이 없는 임금이었다.
동궁 시절 상호군( 조선시대 오위(五衛)의 정3품 관직)
김오문의 딸과 가례를 올리고 휘빈으로 삼았다.
세자빈 김씨는 세자에게 잘 보이려고 이상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온갖 천덕스런 방술을 써서 세자빈의 체통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마침내 이 일이 발각되어 김씨는 궁궐에서 쫓겨났다.
세자가 두 번째로 맞은 빈은 봉여의 딸 순빈이었다.
순빈은 세자가 학문에만 전념하고 자신을 소홀히 대하자, 자신이 부리는 하녀들과 동성연애를 하다가 발각되어 폐출당했다.
세 번째 빈은 후에 왕후가 된 현덕왕후 권씨다.
권씨는 슬기롭고 덕이 있어 세종이 몹시 어여삐 여겼다.
문종도 권씨를 매우 사랑했다.
권씨의 나이 42세에 단종을 낳고, 이틀 만에 산후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산에 장사 지내고 소릉이라 불렀다.
그러나 단종 복위 사건으로 인하여 현덕왕후의 어머니 최씨와 아우 권자신이 사형을 당하고 왕후마저 폐위당했다. 이 일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였다.
의정부에서 세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전하, 현덕 왕후의 어머니 아지와 아우 자신이 역모를 꾀하다가 처형되었사옵니다. 그 아버지 전은 이미 죽었으므로 폐하여 서인으로 내렸으며, 노산군(단종)이 종사에 죄를 지어 이미 군으로 강봉되었으니
그 어머니인 왕후의 지위를 보존함이 마땅하지 아니하오니, 청컨대 폐하여 서인으로 삼으시옵소서.'
세조는 그들의 의견을 따랐다.
현덕왕후의 능은 안산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능을 파헤치기 며칠 전, 한밤중에 왕후의 울음소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이 능 속에서 들렸다.
"내 집을 파헤치려 하니 장차 어찌할꼬?"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스님이 밤중에 들으니 능이 있는 곳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을 누가 막으랴. 참으로 원통하구나.
내가 갈 곳이 어디냐?"
스님이 자세히 들어 보니 그 울음소리는 바다에서 시작하여 능이 있는 곳에서 그쳤다.
얼마 후 말을 탄 병사들이 찾아와서 인부들을 시켜 능을 파헤쳤다.
이때 맑던 하늘이 금세 캄캄해지고 비바람이 몰려왔다.
일하던 인부들이 깜짝 놀라 능을 파헤치다가 도망을 쳤다. 한편, 밤에 울음소리를 들은 스님이 이튿날
능 가까이 가 보았다.
그런데 관이 바닷가에 떠 있었다.
스님은 깜짝 놀라 관을 언덕으로 옮기고, 풀을 베어 관을 덮고 흙을 쌓아 놓았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어느 날 밤이었다.
세조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현덕왕후가 나타나 몹시 성을 냈다.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세조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곧 동궁에서 세자가 죽었다는 기별이 왔다.
세조는 몹시 화가 나서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치라고
거듭 명을 내렸다.
병사들이 소릉으로 달려가 석실을 쪼개고 관을 꺼내려 했으나 도무지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백성들이 놀라고 몹시 괴이쩍게 여겨, 글을 지어 올리고 제사를 지낸 뒤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
관을 꺼내어 바닷가에 두었다.
그 후에 스님이 울음소리를 듣고 바닷가의 관을 옮겨
흙을 덮어 주었던 것이다.
그 위로 조수에 밀려온 모래가 쌓여 육지가 되었다.
몇 년 후 그곳에 풀이 나고 언덕이 되었다.
본디 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흙이 높이 쌓인 곳을 가리켜 관이 묻혀 있는 곳이라 했다.
그 뒤 중종 때 이르러 소릉은 다시 복원되었다.
-조선왕조 야사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