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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12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상담 및 교리 진행 ★
< 선지식->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The Heart Sutra>지성의 길 322~329p
“갔다 갔다, 저 너머로 갔도다"
(인간의 진화의 네 단계”-<첫 번째는 광물권(鑛物圈 geosphere>)
▷ 일 시 : 불기2569(2025)년12월15일 (월) 오후1:00~4:00
▷ 장 소 : 서울구치소 소법당
지도법사: 보광-조철주
동참:김은현 전 계장,
2025년12월15일(월) 서울구치소
최고수 정기 자매 상담 및 교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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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에 이어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상담 후 생활법문 및 교리를 전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회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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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만54년 생일을 맞아 케잌을 커팅한 후,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고
새해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덕담과 건강 문제로 11월에 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는 1998년 활동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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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12월15일(월) 교리 < 선지식->라즈니쉬 오쇼의 반야심경
-”인간의 진화의 네 단계”-<첫 번째는 광물권(鑛物圈 geosphere)>
갔다 갔다, 저 너머로 갔도다 322
그러므로 반이바라밀다를 위대한 진언,
심원한 지혜의 진언,
비길 데 없는 최고의 진언으로 알아야 한다.
이 반야바라밀다는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 주나니,
진리 안에서 무엇이 잘못될 수 있겠는가?
반야바라밀다에 의해
이 진언은 다음과 같이 설해졌다.
가떼가떼 파라가떼 파라삼가떼 보디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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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야르 드 샤르뎅은 인간의 진화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프랑스 예수회 신부이자 생물학자. 고생물학과 진화론을 연관시킨
독자적인 학설로 인간의 의식 속에 신이 현현(顯現)한다고 보았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 신비주의를
종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광물권(鑛物圈 geosphere), 두 번째는 생물권(生物圖, biosphere),
세 번째는 정신권(精神圈, noosphere), 네 번째는 그리스도권(christosphere)이다.
이 네 단계는 중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을 이해하면 반야심경의 절정부 (별첨1) 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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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광물권이다. - 이것은 의식이 완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물질의 상태이다. 물질은 잠들어 있는 의식이다. 물질은 의식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잠들어 있는 의식,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의식이 물질이다.
바위는 잠자는 붓다다.
어느 날엔가 바위는 붓다가 될 것이다.
수억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이 영원성(性) 안에서 시간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동양인들이 돌(石)로 불상을 만들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다. 323
바위와 붓다가 석상(石像)을 통해 연결된다.
바위는 가장 낮은 차원이며, 붓다는 가장 높은 차원이다.
석상은 돌 안에도 붓다가 숨어 있음을 말해 준다.
석상은,
붓다라는 것이 바위가 자신을 최고로 현현(顯現)시킨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바위가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구현한 것이 붓다 다
.
광물권, 이것이 첫 단계다.
이것은 물질이다. 무의식이며 잠이다.
이것은 삶 이전의 차원이다. 이 상태에는 자유가 없다.
자유란 의식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는 오직 인과(因果)의 법칙밖에 없다.
원인과 결과, 이것이 절대적인 법칙이다.
우연(偶然)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 단계는 자유를 모른다. 자유는 오직 의식의 그림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의식이 깨어날수록 더 많은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붓다는 '묵타(mukta)'라고 불린다.
완벽하게 자유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바위는 철저한 속박 상태에 있다.
모든 곳, 모든 방향, 모든 차원으로부터 철저하게 구속당한 상태다.
바위는 철저하게 감금 당한 영혼이다. 반면 붓다는 날개를 단 영혼이다.
어떠한 사슬, 구속, 감금도 없다. 붓다의 주변에는 어떠한 벽도 없다.
그의 존재에는 경계선이 없다. 그는 존재계 만큼이나 광막하다.
그는 우주 전체와 하나다.
그러나
광물권의 차원에서는 원인과 결과(cause-and-effect) 만이 유일한 법칙이다.
이것이 유일한 담마(dhamma=DHARMA.)이며 유일한 도(道)이다.
과학은 아직 광물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과학은 여전히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조차 매우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이다.
과학은 물질 이상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의 개념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과학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많은 불행을 초래한다. 323
과학의 시각은 너무나 제한적이고 협소하기 때문에
이 존재계를 전체적으로 조망(眺望)하지 못한다.
이는 작은 구멍을 통해 내다보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과학은 여전히 광물권의 차원에 갇혀 있다.
과학은 구속 상태에 있다. 아직 날개를 달지 못했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의 법칙을 넘어서는 날,
과학은 비로소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물론, 약간의 조짐이 보이기는 한다.
지금 핵물리학자들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넘어선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경계선을 막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서
불확정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uncertainty : 1926년 독일의 하이젠베르그에 의해 발견된 원리, 원자 운동에 있어서,
위치의 확실성과 속도의 불확실성 사이에 반비례의 관계가 있다는 법칙이다) 가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인과율(因果律)은 확정성의 원리이다 .
'이렇게 하면 반드시 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법칙이다 .
물을 100도까지 끓이면 중발한다. 이것이 인과의 법칙이다.
물은 자유가 없다
. 물은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으니 100도가 되어도 중발하지 않겠다!' 고 할 수 없다 .
물은 법칙에 대항해 싸울 수 없다. 엄격하게 법칙을 따라야 한다.
또는 어느 날 물이 기분이 좋다고 해서 '오늘은 나에 대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
50도만 되면 중발해 줄테니까 당신의 수고를 덜어주겠다 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일은 블가능하다.
옛날의 물리학,
옛날의 과학은 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것을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불학정성의 원리는 자유의 원리를 뜻한다.
이제서야 무엇인가 어럼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예전처럼 확정적이지 않다.
이제 그들은 불질의 가장 깊은 곳에 어떤 자유가 있음을 보기 시작했다.
전자(電子)가 입자(粒子)인지, 파동(波動)인지 말하기는 매우 어럽다.
전자는 양쪽 방식을 다 취한다. 어떤 때는 이렇게 작용하고, 어떤 때는 저렇게 작용한다.
도무지 예측할 길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자는 동시에 파동(波動)이면서 입자로 행동할 만큼 자유롭다.
옛날의 과학자들에게 이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뉴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선(線)인 동시에 점(點)인 것처럼 작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비논리적이다.
어떻게 선인 동시에 점인 것처럼 작용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선이거나 점이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가장 깊은 영역을 엿보기 시작했다.
비록 멀고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그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에 다가서고 있다.
바로 자유라는 요소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물권에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물권은 수슈프티(sushuptu)다.
수슈프티는 절대적인 잠을 뜻한다 .
꿈조차 없는 깊은 잠이다.
바위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바위는 아무 의식도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바위에는 퍼스낼러티(personality)도 없고 영혼도 없다.
죄소한의 활동성도 없다.
그러므로 꿈조차 꿀 수 없다.
바위의 잠은 요지부동이다.
낮이나 밤이나,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바위는 계속해서 잠잔다.
바위는 까마득한 세월 동안 잠을 잤으며,
앞으로도 까마득한 세월 동안 잠잘 것이다.
단 하나의 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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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첨 1) 반야심경의 '절정부'
반야심경의 '절정부'는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대개 경전의 모든 지혜를 응축하여 깨달음의 경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진언(眞言)** 부분으로 꼽힌다.
이 진언은 다음과 같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모지 사바하*(阿提阿提 波羅阿提 波羅僧阿提 菩提 莎婆訶)
산스크리트 원문으로는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쓰와하) 라고 하며,
그 뜻은 '가자 가자,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넘어가자, 영원한 깨달음이여'이다.
이 진언은 모든 고통과 번뇌를 넘어 궁극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지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부분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향한 여정의 절정을 표현하며,
단순히 도착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진하여 일체고액(一切苦厄)을 건너는 과정 자체를 강조합니다.
어떤 해석에서는 '가떼'를 계(戒), '빠라가떼'를 정(定), '빠라상가떼'를 혜(慧), '보디'를 해탈, '쓰와하'를 해탈지견으로 보기도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적인 길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진언이 주는 메시지는
“번뇌를 넘어선 궁극적인 자유와 평화”를 향하는 길에 큰 울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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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분의 의미를 하나씩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제 (Gate / 가떼): '가라, 가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나아가자는 의미를 넘어,
번뇌와 속박의 세계를 떠나 피안(열반의 경지)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길로 발심(發心)하는 단계를 나타낸다.
아제 (Gate / 가떼): 다시 한번 반복되는 '가떼'는 첫 번째 '가떼'보다 더 깊은 진전을 의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번뇌를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수행(修行)의 과정을 강조한다.
바라아제 (Pāragate / 빠라가떼): '피안으로 건너가라'는 뜻이며.
여기서 '피안(彼岸)'은 깨달음의 세계, 즉 번뇌와 고통이 없는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고. 단순하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혹과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실상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며 바라승아제 (Pārasaṃgate / 빠라상가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는 뜻이며. '바라아제'가 피안으로 향하는 여정이라면,
'바라승아제'는 그 여정을 완수하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일체의 번뇌와 집착이 사라진, 더 이상 돌아갈 곳 없는 궁극적인 열반의 상태를 나타낸다.
모지 (Bodhi / 보디): '깨달음' 또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는 위 진언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최종적인 목표이자 성과로. 번뇌를 떠나 지혜가 원만해진 상태를 지칭하며,
자비의 마음이 가득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경지이다.
사바하 (Svāhā / 쓰와하): '성취되소서','이루어지소서'라는 뜻의 감탄사이자 축원의 말이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깨달음의 과정과 그 결과가 원만히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진언은
'가라, 가라, 저 언덕으로 가라, 저 언덕으로 완전히 가라,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소서'라고 해석될 수 있다.
단순히 문구적인 의미를 넘어,
모든 중생이 무지와 번뇌의 강을 건너 궁극적인 지혜와 평화에 도달하기를 염원하는 강렬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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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오쇼라즈니쉬 강의(손민규 옮김)『반야심경』초판2쇄;서울:태일출판사,2001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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