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교회 「europe vision trip」 - “God send me!” 5.
5.외국 신부들 틈에서 스테이크를 먹다.
일정 중 뮌헨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자유여행이었다. 다들 쇼핑 시간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와 아내는 조용히 뮌헨 시청과 성당 그리고 광장을 둘러본 뒤, 레스토랑으로 갔다. 독일인들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서다. 나비 넥타이를 점잔께 맨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 값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한 끼 정도는 아내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며칠 전 몇 몇 목사님과 밤에 몰래 나와 이곳 시내에서 학센을 먹은 적이 있다. 가이드가 알면 큰일 날 일이다. 밤에 사고가 많고 시리아 난민도 많아서 위험하니 밤에는 절대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때 아니면 언제 나가겠는가?
호텔 직원에게 학센을 먹고 싶으니 유명한 집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소위 맛집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직원은 친절하게 주소와 식당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었다. 마침 호텔 앞에 벤츠 택시가 왔다. 독일은 택시도 벤츠라더니 정말 그랬다. 운전기사는 스리랑카 사람이었다. 반갑다고 서로 인사를 하던 중 우리 쪽 목사님 한 분이 그런데 너는 어떤 비자를 가지고 독일에 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스리랑카 운전사가 정색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이 왜 궁금하냐는 것이다. 아마 비자는 예민한 문제인 것 같다. 하기야 독일로 목회하러 간 선배들 보면 매번 비자 때문에 대사관과 한국을 오갔던 기억이 있다.
유럽은 밤 8시가 되면 모든 상점도 문을 내리고 조용해진다. 다들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곳은 9시가 9시가 넘었는데 아직 불야성이다. 식당 안에는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자 앉아서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하필 식당 한 가운데 앉게 되었다. 그 밤에 유일하게 동양인 세명이 그들 중앙에 앉게 된 것이다. 이건 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꼴이다. 어디에서 왔냐는 둥, 왜 왔냐는 둥, 한국이 어디냐는 둥, 신기한가보다. 하기야 우리도 서양인 하나가 식당에 들어오면 신기하지 않은가?
학센은 맛있었다. 단순한 족발 요리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맛있었다. 다만 웨이터가 학센은 애플 와인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고 몇 번이고 권하였으나 우리는 괜찮다며 콜라를 주문했다. 아마도 이들은 우리가 왜 와인이나 맥주를 고사하는 지 이해를 못할 것이다.
그 때 생각이 나서 아내와 함께 독일인들만 앉아 있을법한 식당을 고른 것이다. 음식이 나올 때가 되자 단체 손님이 들어온다. 모두가 신부님들이다. 그런데 다들 피부색이 다르다. 뮌헨에서 신학 세미나가 있어서 참석했고 점심시간이라는 것이다. 그중에는 마카오에서 온 신부님도 계셨다. 정말로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모든 세계인들이 교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와 반대편에 살고 있는 브라질 성직자,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며 환경과 생각도 전혀 다른 성직자들이 모여서 예수를 주제로 세미나를 하며 이것을 함께 공유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세상은 더 빨라질 것이다. 이런 세계화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고려시대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 당시 전체 인구 350만명 중 10%는 외국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우수한 외국인은 인재로 등용한 사례도 많다. 위나라 사람 쌍철이라는 자가 능력이 뛰어나 재상으로 임명했다는 기록과 그들을 위해 귀족들의 집을 기증 받아 그들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40 여 년 전부터 외국인들의 이주에 관대했던 북유럽 국가들은 이주해온 우수한 인재들 덕분에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지혜와 능력이 그 안에서 꽃 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개인 소총을 수입한다. 네덜란드 상인은 조총 한 자루에 교토 성 일 년치 식량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지도자들은 그 값을 지불하면서 조총을 구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조총을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당쟁을 일삼고 있을 때 이미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고 그들의 것을 받아들여 내 것을 만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그 힘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국가나 개인이나 국수적이면 안 된다. 열린 마음, 열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