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의 성막은 “증거막”으로, 법궤는 “증거궤”로도 불렸다. 비일은 그 이유를 신학자들이 주장한대로 십계명이 자주 “증거”로 불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비일에 의하면, 아담의 후손들은 창 1:28의 명령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지만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언약을 상기시키시고, 자신의 구속 행위를 “증거”하심으로써 동행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앞에서 어떻게 지혜와 지식을 전하고 빛으로 이끌어야 했을지 아쉬움으로 남는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앞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새롭게 변화된 인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그들의 자녀들로 “땅을 가득 채워야” 했다. 이 자녀들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적인 어둠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횃불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 자신의 임재의 빛을 비추는 데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성전의 거룩한 공간과 하나님 나라의 점진적인 확장에 속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바로 이것이 온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증인” 역할이었다.
사실상 창세기 1:28이야말로 인류 공동체에게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최초의 “위대한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명은 땅을 축복하는 일이며, 이런 축복의 본질은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있었다. 타락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각각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면서 그분의 영광으로 땅을 가득 채우게 될 후손을 생산해야 했다. 타락 이후에는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이 자신의 회복된 형상으로 창조하신 자들이 밖으로 나가서 그분의 영화로운 임재를 어두워진 인류 공동체의 나머지 영역에 널리 전해야 했다. 이런 “증인” 역할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담을 대표하는 공동체적 인격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증인” 역할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와 관련해서 성막이 왜 때때로 “증거막”(5회: 예. 출 38:21) 또는 “증거의 성막”(5회: 예. 민 9:15)으로 불렸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은 성막이 “증거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14회: 예. 출 25:22; 26:33-34). 그렇다면 법궤는 왜 이런 방식으로 불렸는가? 왜냐하면 십계명이 자주 “증거”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셨고, 모세는 그것을 법궤 안에 두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되었기에(출 31:18), 또한 그분의 진리와 뜻의 가시적인 증거 자료였기에 “증거”로 불렸다. 율법은 “하나님의 인격과 목적에 친숙한 그분의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증거”였다(Schultz 1980: 650). 그뿐 아니라 이 “증거”는 이스라엘 민족이 볼 때 하나님의 구원 행동들에 대한 “증언” 역할을 하기도 했다(van Leeuwen 1997: 844). 이 점은 법궤가 십계명의 유일한 보관 장소(출 25:16-22)요, 법궤 바로 앞에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을 상기시키는 물품—만나 항아리(출 16:31-36), 모세가 만든 향의 일부(출 30:36),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민 17장)—이 놓여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십계명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출 20:2)과 그분의 세계 창조(출 20:11) 및 광야 동행과 보살핌의 섭리 등을 생각나게 했다. 이 모든 물품은 이스라엘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던, 구원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증언하는 법적인 “증거 자료”였다. 법궤나 “증거”의 성막과 관련된 하나님의 임재는 법궤의 자리에 비치되어 있던 네 가지 물품이 각각 그분의 임재 안에 있었음을 말하는 반복적인 진술에 의해 강조된다. 이와 관련해서 출애굽기 30:36의 히브리어 텍스트는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에 대해서 언급한다(민 17:4도 마찬가지). 그리스어역 구약성경이 “만남”을 “증거”로 대신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점이 곧 그분이 자신과 자신의 율법 및 이스라엘을 위한 자신의 구속 행동에 대해 모세에게 “증거”하시는 것과 같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런 증거는 동일하게 온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증거”의 법적인 성격은 어근이 같은 명사 “ ̒ēd”가 거의 항상 “증인”으로 번역되며 일반적으로 법적인 문맥에서 사용된다는 관찰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예. 이스라엘에서는 누군가의 범죄를 입증하려면 “두 명의 증인”이 필요했음). “증인”(martys)은 어떤 진리를 확증하기 위하여 법정에서 “증언하는”(martyreō) 사람이다(예. 민 35:30의 70인경을 보라).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면 “언약궤 곁에 둔 율법책”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증거”가 될 것이다(신 31:26). 이런 이유로 두 개의 율법 돌판은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날마다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아마도 “증거의 성막”과 “증거궤”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의 핵심은 이스라엘 자신이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여야 하고, 율법과 그들을 위해 행해진 다양한 구속 행위라는 그분 자신의 “증거”를 선포함으로써 과거에 이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하나님의 구원 임재에 대해서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증거” 역할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임재의 진리에 대해서 증거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가 지성소로부터 퍼져나가는 방식은 그분의 백성이 지성소에 비치된 증거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있었다. 이방 나라들 앞에서의 말과 순종적인 행동을 통해 백성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렇게 행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실함을 가능케 하는 분으로 자기들과 함께하심을 보여줄 것이다. 신명기 4:5-7은 특히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와 순종을 그분의 임재와 관련시킴으로써, 동시에 암묵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증인 역할과 관련시킴으로써 이런 목적을 잘 표현한다.
⁵내[모세]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⁶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⁷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같은 방식으로 이 텍스트는 출애굽기 33:14-17과도 긴밀하게 관련된다.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라고 말씀하시며, 모세는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이 이스라엘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시는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응답한다. 바벨론으로부터의 회복이 이루어진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주신다. 즉,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요, 두 번째 속박으로부터 자신들을 다시 구원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두 번째 출애굽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의 신적인 전능하심을 나타내실 하나님에 대한 “앎”과 “믿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사 43:10-12; 44:6-8).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게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여러 텍스트에 암시되지만(참조. 사 43:9), 특히 이사야 55:4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텍스트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전체 이스라엘이 함께 나누어야 할 사명이다. 이스라엘 왕들은 이 “증거”를 수행하는 지도자여야 했다. 이 사명은 이방 나라를 하나님께로 “불러내야” 하는 이스라엘의 과제를 뜻했다(사 55:5).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먼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그분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불러야” 했다(사 55:6).
그러나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 숨은”(창 3:8) 결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참된 인류를 대표하는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주어진 사명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담이라는 공동체적 인격”으로 이해되었다고 보는 것은 과장된 진술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과제는 처음에 아담이 수행하도록 명령받은 것을 그대로 행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동시에 아담처럼 이스라엘도 “동산과도 같은 땅”으로부터 추방당해 포로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포로 상태로부터 돌아오기는 했지만, 아담의 과제를 이행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실패는 주후 1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158-162.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잘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작성해주신 글은 성막과 법궤가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임재와 구속을 선포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짚어주셨네요.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빛의 증인'이라는 고귀한 소명을 이스라엘이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대목에서, 성경의 역사가 주는 묵직한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그 '증거궤'를 모신 성전으로서, 세상 속에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비추며 살아가야 할지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귀한 통찰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
"사실상 창세기 1:28이야말로 --- 영광으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부분은
창세기 1:28의 문화 명령을 복음 전파의 '지상 대명령'과 연결하여, 인류가 본래 가졌던 하나님 임재의 확장자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짚어주셨네요.
타락 이후에도 '남은 자'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에 그분의 형상과 영광을 투영하시려는 하나님의 끈질긴 회복 의지가 느껴져 큰 감동이 됩니다.
결국 온 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는 증인의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금 겸허히 되새기게 되는 깊이 있는 포스팅입니다.
네, 공감합니다 😄 😎
"이스라엘이 아담을 대표하는 --- 점을 생각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분에서는
성막과 법궤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십계명과 만나, 지팡이 등이 법궤와 함께 보존된 이유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는 통찰은 성막의 신학적 가치를 명확히 해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막'으로서 세상에 그분의 인격과 목적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귀한 나눔입니다.
공감합니다^^
"아마도 “증거의 성막”과 “증거궤”에 대한 반복적인 --- 증인 역할과 관련시킴으로써 이런 목적을 잘 표현한다." 부분에서
성막 안에 머물러 있던 하나님의 임재가 백성들의 **'말과 순종적인 삶'**을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통찰이 매우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 자체가 이방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 삶의 무게감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우리 각자가 움직이는 성막이 되어, 일상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증언하며 그분의 영광을 전파하는 통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귀한 글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게 “증인”이 되어야 한다 --- 이스라엘의 실패는 주후 1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부분을 읽으며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만민의 증인'이라는 사명이 결국 아담이 놓쳤던 인류 본연의 소명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매우 날카롭고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비추어야 할 이스라엘이 오히려 그 낯을 피함으로써 아담의 실패를 반복하고, 끝내 '에덴'과 같은 땅에서 추방당한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로 읽힙니다.
아담과 이스라엘의 실패를 넘어,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구하며 어두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그분을 증언하는 참된 '남은 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아멘!
성막이 단순한 제사 장소를 넘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임재의 전초기지’**였다는 점이 큰 울림을 줍니다.
아담과 이스라엘이 놓쳤던 '증인'의 사명을 되돌아보며,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형상과 지혜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비록 과거의 실패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 '증거'를 삶으로 살아내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위 댓글들이 다 하나같이 은혜와 감동을 주네요. AI가 일정 부분 도움을 준 거겠지만 정리, 요약을 핵심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꿰뚫어주어 속이 시원할 정도입니다. AI가 특히 요약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군요!!!
공감합니다^^